버들치와 다슬기·도롱뇽 같은 1급수 동물이 살던 하천이 단지 양쪽 측벽이 콘크리트로 돼 있다는 이유로 측벽을 헐어내다가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사태가 일어났다. 안양천의 지류인 수암천 계곡이다. 한국 전체가 도시에 멋을 내기 위해 ‘삽질’을 하는 가운데 멋을 내다가 또 생태계가 망가진 경우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수리산 자락을 타고 흐르는 수암천 계곡에 재앙이 닥친 것은 작년 5월이었다. 안양시가 222억여 원을 들여 만안구 안양2동의 안양천 합류 지점부터 안양9동 공군 부대까지 5.3km 길이의 수암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가꾸는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공사는 수리산으로 올라가는 부근에 있던 콘크리트 제방을 뜯어내고 돌을 쌓아 올려 멋진 자연형 하천을 복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제방이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고, 단지 모양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작된 삽질이었다. 시는 하천 둑에 콘크리트 제방을 헐어내 그 자리에 돌 축대를 쌓고 사이사이에 철쭉과 조팝나무를 심었다. 생태계 파괴는 그 콘크리트 제방을 부수고 돌 축대를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작업 효율을 높인다고 수암천 안으로 굴착기 같은 중장비가 들어가 작업을 하면서 하천 바닥이 망가진 것이었다. 중장비의 무게로 하천 바닥이 평평해진데다 하천 바닥의 바위 등이 부서지면서 계곡 물이 땅 밑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공사 중 계곡 곳곳에 놓인 석축용 바위가 계곡 물 흐름을 막으면서 군데군데 물줄기도 끊겼다. 여기에 주변 식당 등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유입되면서 계곡이 더러워지기 시작했고, 하천 바닥 생태계가 망가지면서 자정 능력을 잃은 계곡은 푸른 이끼가 끼면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녹조·악취에 등산객도 피하는 계곡 돼 겨울이 다가오는 요즘 하천 바닥에는 녹색 이끼가 더욱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곳곳에 두터운 청태가 군용 담요를 펼쳐놓은 듯 하천 바닥을 덮고 있고, 청태를 들춰 보면 악취가 진동한다. 계곡 가장자리 곳곳에는 폐콘크리트와 아스콘 부스러기 등이 노출돼 있었다. 콘크리트 제방을 헐어내면서 나온 건축 폐기물이다. 계곡 상류에는 중장비가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잘리었고 암반은 무너져 있었다. 이전에는 계곡의 암반 사이로 물이 흐르고 그 위로 수십 년생 때죽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가지를 드리워 많은 등산객들이 찾던 곳이었다.
등산하러 수리산을 자주 찾는다는 박모 씨(59)는 “전에는 산에 오르면서 주변의 계곡과 경치를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공사가 시작된 뒤에는 중장비가 들어와 풍경을 망쳐놓았다”고 한탄했다. 산에 오르던 등산객 김모 씨(62)도 “주변이 온통 공사판인데다 요즘 들어서는 계곡에서 악취도 올라와 웬만해서는 다른 등산로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수암천 근처에 사는 최모 씨(45)는 “하천 복원 공사를 하기 전의 수암천은 바닥에 자갈이 깔리고 버들치가 살던 곳이다. 특히 다슬기가 굉장히 많았다”며 “모양을 위해 석축을 쌓는다지만 이렇게 하천 생태계를 파괴해도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의 안명균 사무국장은 “공사를 하기 전에는 계곡에 녹조가 낀 적이 없었다”며 “오염원을 배출하는 새로운 시설이 상류에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공사 과정에서 흙을 뒤집으면서 영양 염류가 계곡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중장비에 눌려 하천 자정능력 사라져 전에 버들치와 도롱뇽이 살 정도로 수암천이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바닥의 수서 곤충과 미생물이 유기적으로 자정 작용을 했기 때문이라고 안 사무국장은 말했다. 하천 바닥에 서식하는 수많은 수서 곤충과 미생물이 하천의 영양 물질을 분해하여 늘 맑은 물이 유지되도록 해줬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에 수암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다슬기는 계곡 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쌓인 유기물을 먹어 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했다”며 “다슬기에 영양분이 많은 것은 이렇게 하천 바닥에 쌓인 유기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천 바닥에 있는 자갈과 모래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며 “이들은 하천 바닥에 있는 유기물을 먹고 분해하여 물을 맑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다, 좁은 계곡을 흐르는 물이 여울과 작은 소를 반복하면서 계곡은 자체적으로 맑은 수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맑은 물을 좋아하는 버들치가 살 수 있게 하는 하천의 자정 능력이다. 안 사무국장은 “오랜 세월 물이 흐르며 형성된 여울과 소가 한 번 망가지면 하천은 자정 능력을 잃고 물이 썩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천 생태계는 바닥에 다 있다 하천의 생태계는 하천 바닥에 조성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고기뿐 아니라 여러 수서 생물이 하천 바닥을 기반으로 살기 때문이다. 안 사무국장은 “최근 전국에서 반딧불이가 거의 자취를 감춘 데는 다슬기가 사라진 데도 원인이 있다”며 “반딧불이 애벌레는 하천 물속에서 다슬기를 먹고 자란다. 다슬기가 사라지면 먹을 게 없는 반딧불이도 함께 사라진다”고 말했다.
하천 물속의 다양한 수서 곤충 중에는 잠자리 유충도 있다. 잠자리 유충은 물속에서 모기 유충이나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산다. 이렇듯 하천은 물고기뿐 아니라 여러 생명체들이 어울려 사는 생명의 터전이다. 수암천에 삽질을 하는 원인을 제공한 콘크리트 제방이 정말로 생태에 해로운지도 의문이다. ‘쓰레기 시멘트’를 폭로한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는 “시공 전에 있었던 시멘트 콘크리트 벽은 공사한 지 수십 년이 지난데다 양변 둑을 형성했기 때문에 계곡 바닥을 해치지 않았고 하천 수질과 생태계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전 계곡에 살던 버들치, 그리고 콘크리트 제방에 끼었던 돌이끼가 콘크리트 제방의 유해성이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안명균 사무국장은 “안양시가 생태하천을 만들겠다면서 공사를 제대로 못해 하천 바닥을 잘못 건드려 계곡의 생태계를 망친 것”이라며 “모양을 내기 위한 하천 공사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번 수암천 사례가 교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소장 “피해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이종원 수암천 공사현장 소장은 “계곡의 생태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공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버들치와 다슬기·도롱뇽 등은 지난해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보이는 대로 다 잡아서 공사하지 않은 구간인 상류의 공군기지 근방 물이 고여 있는 쪽에 옮겨놨다. 최근에는 버들치 새끼들이 거기서 많이 사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계곡에 중장비가 투입된 이유에 대해 그는 “하천 변에 석축을 쌓기 위해서는 중장비가 하천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며 “100% 원상복구되지는 않았겠지만, 작업에 장애가 되는 바위들은 작업하는 동안 치워 두었다가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암천에 녹조가 창궐한 현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하천 생태가 원상복구되려면 2~3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계곡 물이 마른데 대해서 그는 “원래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많지 않던 하천이었다”면서도 “공사가 시작된 뒤 하류 쪽에서 계곡물이 바닥으로 스며드는 현상이 발견돼 하천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