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LA·알래스카] 희망과 기회의 프론티어로 가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7.06.26 11:01:40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밴쿠버 → 시애틀 환승 →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착)

밴쿠버 공항 출국장 해프닝

캐나다에서 항공편으로 미국으로 갈 때는 캐나다 내 공항에서 미국 입국 수속이 미리 이루어진다. 캐나다발 항공기는 미국 공항 국제선 터미널 대신 국내선 터미널에 곧장 도착하기 때문이다. 밴쿠버 공항에 파견을 나와 있는 미국 국토안보부 직원은 내 여권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이란 입출국 스탬프를 찾아낸다. 이란에는 왜 갔느냐, 어디어디 갔느냐, 누구랑 갔느냐 등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 서울 소재 미국대사관 비자 인터뷰 때 영사가 물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이 이어진다. 미국 입국에 관한 한, 이란에 다녀온 기록은 거의 낙인(烙印)에 가깝다. 이란 여행 계획이 있는 분들은 꼼꼼히 따져볼 일이다. 

미국 국토안보법 수정안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서 비자를 받아야만 했던 사연을 소개할까 한다. 2015년말 미국 의회는 국토안보법 수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미국 비자면제(VWP, Visa Waiver Program) 국가 국민일지라도 2011년 3월 1일 이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리비아, 예멘 등을 방문했다면 무비자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정확하게 여기에 해당하는 데서 문제가 생겼다. 2015년 7월 중앙아시아 여행 말미에 이란에 들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 입국을 못하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비자를 받는 성가심 끝에

나는 이번 미국 여행을 위해서 일찌감치 미국방문 비자(관광비자, B1/B2)를 받았고, 그 경험을 여기 공유하려고 한다. 무척 성가신 점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 서울 소재 미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영사와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관광비자도 마찬가지), 비자발급 비용(USD 160), 그리고 복잡한 비자신청서 작성이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의 행정 시스템은 철저하다. 비자신청 서류는 직접 작성했는데 영어에 어지간히 익숙한 나도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작성해야 할 내용도 많거니와 실수 없이 작성해야 하므로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청서 작성과 온라인 제출을 끝나고 비자 인터뷰를 받기까지 2주일을 기다렸다. 

이란 방문의 멍에

인터뷰 상황을 정리해본다. 영사는 전자여권이 있고 비자면제 프로그램으로도 미국 입국이 가능한데 왜 비자를 받느냐고 먼저 물어온다. 당연히 이란 얘기가 나왔고, 그러자 영사는 나의 이란 여행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왔다. 지구촌 탐방을 위하여, 그것도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이 아닌 개인 솔로 여행으로 이란에 다녀왔다고 하니 영사도 의아해한다. 어쨌거나 이번 미국 여행은 그런 성가심 끝에 성사된 것이어서 더욱 소중하다. 밴쿠버 출발, 시애틀 환승 끝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6일차 (로스앤젤레스)

미주 한인 미디어 세미나

오늘은 이번 미국 방문 목적 중 하나인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다. ‘미주 한인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 다루는 학술 세미나이다. 미국은 해외 거주 한인 규모가 중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크다. 미국측 조사로는 170만 명, 한국 정부 추산으로는 220만 명이 미국에 거주한다. 미국 전체 인구의 0.6∼0.7%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규모이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한인들이 집중 거주하여 45만 명, 주 인구의 1.2%에 이른다. 

▲LA에서 열린 ‘해외 한인 미디어의 역할과 발전 방향’ 세미나에 참석했다. 사진 = 김현주

눈물겨운 미주 한인 이민사

20세기초 고종의 이민 장려 정책으로 문이 열린 하와이 이민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미주 이민 역사를 조사해 보니 눈물겨운 사연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하와이 사탕수수 밭은 한인들에게 너무 좁았다. 그런 까닭에 네브라스카의 농장부터, 콜로라도의 광산, 유타의 철도 공사장, 알래스카의 통조림 공장까지 뻗어나간 한인들의 얘기를 담아내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 코리아타운 한복판에서 열린 세미나는 같은 언어. 같은 얼굴,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참여하는 이민 사회를 위하여

세미나는 또한 한인들이 이제는 이민 사회의 공동체 이익 추구를 넘어 미국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했고, 격리된 커뮤니티가 아니라 참여하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다. 세계사의 온갖 질곡을 겪은 한민족, 좁은 반도에 결코 안주할 수 없었던 진취적인 한민족, 외세 치하에 살 수 없어서, 전쟁과 독재를 피하여, 또는 자신과 후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을 삶의 사연들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온 방문자들과 현지 교민, 그리고 한인 미디어 종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나눈 대화는 허심탄회했다. 세미나가 공식 폐회하고 식사 장소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세미나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겠으나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어두었던 얘기를 나눌 계기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흡족한 시간이었다.   

▲독립기념일 명절을 맞은 라스베이거스 프레몬트 거리(Fremont Street). 사진 = 김현주

7일차 (로스앤젤레스 → 알래스카 앵커리지)  

감격의 알래스카 행

이른 새벽 라스베이거스행 메가버스(megabus)에 오른다. 알래스카행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다. 대한항공과 알래스카항공(Alaska Airlines)의 마일리지 제휴 덕분에 구입한 보너스 항공권이 내가 원하는 날에는 오직 라스베이거스 출발편에만 잔여석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라스베이거스로 가게 된 것이다. 여섯 시간 걸려서 라스베이거스 도착, 그리고 공항에서 또 여러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앵커리지 행 항공기에 올랐다. 소싯적 미국 유학 시절부터 얼마나 여러 번 다닌 하늘길인가? 그저 발 아래 알래스카 땅을 내려다보며 가슴속 버킷리스트에 담은 지 실로 수십 년만에 드디어 알래스카 행을 결행하니 감회가 무수히 피어 오른다.


8일차 (앵커리지 → 슈워드 키나이 피요르드 당일 크루즈)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사들이다

시애틀에서 환승하여 알래스카 항공교통 중심지 앵커리지(Anchorage)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었다. 사방이 아직도 훤한 것을 보며 마침내 북위 61도, 머나먼 북극권에 도착한 것을 실감한다. 미국 전체 면적의 20%, 남한의 15배에 해당하는 거대한 땅이다. 1741년 러시아 피요트르 대제의 지시로 덴마크인 비투스 베링(Vitus Bering)이 탐험한 이후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1867년 러시아의 알래스카 경영 포기로 미국이 사들임에 따라(당시 가격 720만 달러) 미국의 영토가 된 곳이기도 하다. 

슈워드의 실책?

미국의 알래스카 매입은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멍청한 짓이라며 미국의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당시 링컨 행정부 국무장관은 ‘슈워드의 실책(Seward’s folly)’이라고까지 혹평을 받았다. 그러던 중 19세기말 골드 러시(gold rush)에 이어, 2차대전(태평양전쟁) 중에는 상업적,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아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예를 들어, 골드 러시 때 알래스카 북서부 놈(Nome)에서 캐낸 금만으로도 알래스카 구입 비용의 9배 가치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 1960년대말 북쪽 프루도 만(Prudhoe Bay)에서 원유가 발견되면서 알래스카 논쟁은 러시아의 패착, 미국의 횡재로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폭스 아일랜드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으며 바라본 경치. 사진 = 김현주

빙하가 주도하는 알래스카 풍경

이른 새벽, 앵커리지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키나이 피요르드(Kenai Fjords)를 돌아볼 크루즈의 출발 지점인 슈워드(Seward)로 향한다. 매우 아름다운 길이다. 앞으로 펼쳐질 알래스카 비경의 예고편 쯤으로 받아들인다. 바다를 끼고 달린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이제 풍경은 빙하가 주도한다. 포티지(Portage), 엑싯(Exit) 등 장쾌한 빙하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약 두 시간 후 알래스카 첫 목적지 슈워드에 도착했다. 북태평양과 알래스카 내륙을 연결하는 항구로서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딴 도시이다.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항만 수심이 깊고, 철도와 도로, 항공까지 모두 연결되는 부동항이다. 

▲빙하 크루즈. 사진 = 김현주

알래스카 피요르드 크루즈

드디어 아침 10시, 피요르드 탐방 유람선이 출발한다.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라 기대가 크지만 아쉽게도 비가 퍼붓고 바다는 거칠다. 그러나 곧 바다사자. 혹등 고래(humpback whale), 긴수염 고래 등 수많은 해상 동물들을 바로 코앞에서 보면서 배안은 탄성으로 가득찬다. 크루즈선은 이어서 기암괴석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키나이 피요르드(Kenai Fjord)의 협곡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거대한 빙하 앞에 도달하니 피요르드 탐방은 절정을 이룬다.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가운데 선장은 배를 최대한 빙하 가까이 붙이며 승객들을 황홀감에 젖게 한다. 피요르드 탐방은 돌아오는 길에 폭스 아일랜드(Fox Island)에 들러 킹크랩과 스테이크 뷔페 성찬으로 마감하니 야간 비행에 긴 운전까지 겹쳤으나 피로감을 느낄 겨를도 없는 행복한 하루였다. 

▲슈워드 항. 사진 = 김현주

마지막 프론티어 알래스카

쉬엄쉬엄 차를 몰아 앵커리지로 돌아온다. 이곳은 인구 30만 명으로 알래스카 인구의 40%가 거주한다. 여름 휴가철 숙박 요금이 무척 비싼 알래스카에서 어렵사리 구한, 그나마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오늘 나의 숙소다. 나같은 여행객 이외에도 게스트하우스에는 새로운 기회, 새로운 인생을 찾아 본토에서 올라온 다양한 사람들이 몇 주 또는 몇 달씩 머물기도 한다. 

이렇듯 앵커리지, 아니 알래스카는 미국의 마지막 프론티어(last frontier)이자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하다. 앵커리지에는 한국인도 8천 명쯤 산다고 하니 그들의 사연 또한 구구절절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앵커리지는 미국 여느 다른 지역에는 없는 분위기, 어떻게 보면 조금은 야릇하고, 한편으로는 다이나믹한 분위기가 도시 전체에 흐르는 것 같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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