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로 날다 ① 나이키] "물건 아닌 꿈을 판다"…유럽 명품 뺨때리는 '브랜드 1등'

윤지원 기자 2017.08.11 16:51:05

▲나이키는 대중에게 널리 각인된 브랜드 답게 특유의 로고만 드러나는 심플한 광고로 자신감을 드러낸다. (사진 = 나이키)


핸드폰을 고를 때 삼성이냐 애플이냐를 가르는 건 품질일까 아니면 이미지일까. 유명 메이커라면 대개 일정 정도의 품질을 보장하는 요즘, 소비자는 이미지를 산다. 그 제품이 나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광고다. 잘 만든 광고는 그 기업을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추월불가 단계로 진입시키기도 한다. 물건 만들기에 대한 발상을 바꾸고("제조는 내 공장이 아닌 제3자의 공장에 맡긴다"는), 항상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광고로 세계를 정복한 기업이 있다. 바로 나이키다. '광고로 날자' 시리즈의 스타트는 그래서 나이키다.


▲초기 에어조던 지면 광고. 이 '점프맨'의 이미지는 에어조던의 브랜드 로고가 되었다. (사진 = 나이키)


I. 라이벌은 디즈니: 제조업 넘어 ‘꿈의 공장’ 되겠다

‘브랜드Z 100대 세계 최고 가치 브랜드 순위’라는 것이 있다. 글로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그룹인 WPP와 광고 미디어 전문 시장정보회사 칸타 밀워드브라운이 공동으로 조사해 선정하는 순위로, 2017년 100대 브랜드 순위는 지난 6월에 발표됐다.

나이키는 패션 및 어패럴 부문에서 루이비통, 자라, 에르메스 같은 명품업체보다 높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전체 순위에서는 26위이고,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9% 하락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몸에 걸치는 브랜드로서는 최고봉이랄 수 있다. 

나이키 브랜드가 이처럼 높은 지위에 오른 원동력은 창업자 필 나이트의 혁신과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1962년 필 나이트는 자기 집 지하실에서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수입해 혼자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팔았다. 1971년 사명을 '승리의 여신' 이름(니케)에서 온 ‘나이키’로 심플하게 고치고, 육상 코치 출신인 동업자 빌 바워먼이 개발한 와플 모양 밑창을 적용했다. 그리고 디자인 전공 여대생에게 35달러를 주고 개발한 ‘스우시(swoosh) 모양’ 로고를 스포츠화에 결합해 성공을 거뒀다. 전세계인이 다 아는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가 단돈 35달러에, 그것도 여대생이 개발했다니 놀라운 뿐이다. 나이키는 1980년에 아디다스를 넘어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의 운동화 업체가 됐다.

하지만 필 나이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렸다. 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노 로고(No Logo)'에 따르면, 나이키는 스포츠화를 팔기보다, 디즈니처럼 꿈을 심어주는 회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훨훨 날아오를 수 있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기업체의 기본이지만, 물건 만드는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묵묵히 물건만 잘 만든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신발 제조는 인건비가 싸고 제조기술도 좋은 제3세계에서 진행하고, 본사의 머리좋은 경영진은 훨씬 차원 높은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게 나이트의 착상이었다. 대중이 욕망할 만한, 갖고싶어 미치는 브랜드 이미지를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벌금을 왕창 내더라도) 만들어내고, 이를 문화로까지 승격시키면 제품은 저절로 팔릴 거라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최초의 에어조던 농구화를 신고 덩크를 시도하고 있는 마이클 조던. 나이키는 첨단 촬영기술을 이용해 실제보다 훨씬 더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한' 조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사진 = 나이키)


에어 조던의 탄생 : 사람은 날 수 있다니까

스타를 앞세우는 마케팅은 이러한 전략의 기본이다. 스포츠 용품 회사는 뛰어난 성적을 내는 스포츠 스타를 기용해 자신의 제품을 광고한다. 1984년 당시 농구화 시장에서 나이키의 강력한 라이벌이던 컨버스는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이사야 토마스 등의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이키도 뛰어난 농구선수와 계약할 필요가 있었고, 대학 리그에서 뛰어난 능력과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마이클 조던에 주목했다.

그러나 단지 성적과 스타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나는 화제성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성능을 뛰어 넘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에어조던 광고는 단순했다. 카메라는 시합 중 지쳐 숨을 몰아쉬는 조던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가 신은 농구화가 보인다. 검은색과 빨간색, 그리고 밑창의 흰색이 어우러진 이 농구화는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심지어 3가지 색 이상이 사용된 농구화 착장을 금지하는 NBA 규정에 어긋나는 디자인이었다. 시청자가 그 강렬한 화려함에 집중할 때 쯤, 갑자기 농구화(마이클 조던)가 로케트처럼 날아올라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말 그대로, 로케트가 연기를 분출하며 발사되듯 농구화에서 연기가 분출되는 효과를 담은 것이다. 

그 해 마이클 조던은 성공적인 NBA 데뷔 시즌을 보냈고,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규정에 어긋난 농구화를 계속 신고 게임에 출전했기 때문에 매 경기 5천 달러라는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나이키는 이 벌금을 모두 대신 내주면서까지 조던에게 이 농구화를 신게 했다. 사람들은 조던이 벌금을 물면서까지 그 신발을 고집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해 주니까”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에어조던은 코트 위 선수들이 신은 열 켤레의 농구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농구화였다. 게다가 이러한 뒷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높은 매출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NBA 시합 도중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는 마이클 조던. 조던은 데뷔 첫 해 농구화 디자인과 관련된 NBA 규정 때문에 에어조던을 신고 경기를 뛸 때마다 5천 달러의 벌금을 내야만 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에어조던의 매출은 더욱 증가했다. (사진 = 나이키)


두 번째 시즌은 나이키 최초의 에어조던 광고와 함께 했다. 이 광고가 추구한 것은 꿈을 심어주는 것이었고, 이 꿈은 “사람은 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는 데서 시작했다. 자유투 라인에서 골대까지 점프해 덩크슛을 꽂아 넣을 수 있는 마이클 조던은 이 불가능한 꿈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적합했다. 나이키는 할리우드의 뛰어난 영상 전문가들을 섭외했고, 마이클 조던의 점프 장면이 마치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광고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최대한 낮게 위치시켜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삼는다. 초고속 촬영으로 만든 슬로우 모션으로 조던의 체공 시간을 최대한 늘린다. 그 결과 허공에서 10초 이상 머무는 영상이 탄생했다. 심지어 이륙하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를 배경음으로 사용했다. 광고는 성공적이었고, 이 광고에서 실루엣으로 잡힌 조던의 ‘비행’은 이후 ‘에어 조던’ 브랜드의 공식 로고로 사용됐다.

이후 마이클 조던은 단일 시즌 3천 득점, 평균 37.1득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조던이 승승장구 하면서 에어조던 시리즈도 나오는 족족 히트상품이 되었고, 조던이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면서 에어조던 역시 수많은 매니아들을 탄생시킨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최초의 '저스트 두 잇(Just do it)' TV 광고. (사진 = 유튜브 화면 캡처)


II. JUST DO IT : 삶에 영향을 끼치는 브랜드

스포츠 용품은 스포츠를 위해 소비된다. 즉, 스포츠 용품의 소비자는 언젠가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운동선수와 스포츠 관계자, 그리고 운동을 취미로 즐기는 일반인들이다. 따라서 운동을 즐기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포츠 용품 업체의 시장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잠재적 소비자군(群)에는 이들도 포함된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을 스포츠 용품 업체는 ‘아직’ 운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본다. 이들 업체는 이 사람들에게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기인이 되기를 욕망하게 만든다. 

스타 마케팅이 이런 목적에 효과적이라는 데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더군다나 그 스타가 마이클 조던처럼 농구팬을 넘어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로 성장해준다면 스폰서 기업 입장에서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스타는 어디까지나 대중과는 동떨어진 존재다. 현명한 소비자는 제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스타와 자신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이들에게 스타가 주인공이 되어 전달하는 꿈과 환상은 달콤하지만 너무 멀리 있다. 오히려 운동하지 않는 게으름에 대한 자기합리화의 근거가 된다.

나이키는 이 꿈과 환상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목적은 물론 매출 신장이다. 마이클 조던이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아닌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를 광고의 메인 모델로 삼는다. 1988년, 나이키 광고에 등장한 월터 스택이 그런 할아버지다.

당시의 그는 80살이다. 광고에서 그는 아침 조깅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매일 아침 17마일(약 27km)씩 뜁니다. 사람들은 겨울에 뛸 때는 이빨이 부딪쳐서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틀니는 옷장에 두고 뛰지요.” 마지막에 한 줄의 카피와 함께 나이키 로고가 나오기 전에는 이 광고가 나이키 광고인 줄 모를 정도로 심플한 광고다.

시시하지만 따뜻한 유머를 담은 이 광고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80세의 나이에 매일 운동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를 닮고 싶게 하면서, 동시에 저런 노인도 매일 하는 일을 나는 이빨이 부딪치니 어쩌니 하는 시시한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만든다. 아침 운동에 핑계는 필요 없다. 그냥 하면 된다. 지금도 30년 가까이 쓰이면서 나이키의 상징이 된 유명한 광고 카피, “그냥 해(Just do it)”의 시초가 된 광고다.

저스트 두 잇을 내세운 광고 캠페인은 최근까지도 진행되어 오고 있다. 특히, 집중적인 캠페인을 이어간 10년 동안 운동화 시장 부문에서 나이키의 점유율은 18%에서 43%까지 성장했다. 저스트 두 잇은 미국의 광고 전문 매체 ‘애드버타이징 에이지’가 선정한 20세기 광고 슬로건 톱5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이키 코리아의 '저스트 두 잇' 지면 광고 중 하나. 비가 오는 것은 운동을 기피할 핑게가 되지 않으니 저스트 두 잇. (사진 = 나이키)


영감을 주는 기업

당신도 운동할 수 있다. 저스트 두 잇. 이 카피는 수많은 버전의 광고에 쓰이면서 많은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운동을 시작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영감(inspiration)을 주었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의 운동하는 건강한 모습을 담는다. 운동을 실천하기를 가로막는 사소한 핑계는 저리 치우고 저스트 두 잇. 팔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도 운동을 한다. 당신의 핑계는 핑계도 아니다. 그러니 저스트 두 잇.

이후 운동과 관련된 영감을 주는 광고의 카피는 “네 안에 원래 내재한 위대함을 찾아 봐(Find your greatness)”, “그만 두려워하고 더 노력해(Fear less, do more)”, “(실력은) 노력해서 얻은 것이지, 타고난 것이 아니다(Earned, not given)” 등으로 발전하며 나이키가 스포츠 문화를 독려하고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 무렵 필 나이트는 ‘광고를 싫어하는 CEO’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필 나이트는 애드버타이징 에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반적으로 모든 광고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판에 박힌 기성 광고를 싫어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필 나이트가 이 광고에 대해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 광고가 바로 그런 기성 광고들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저스트 두 잇’이라는 말은, 어느 직장에서나 일을 신속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흔히 쓰는 표현이었고, 심플한 광고의 구성이나 노인 모델을 등장시키는 것 등은 기존 광고의 강박적인 관행을 깨는 창의적이고 강렬한 기획이었다.

‘저스트 두 잇’ 광고는 나이키에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 광고 이후 지금까지 나이키 광고와 캠페인 대부분을 기획하며 세계적인 광고 기획사로 자리매김한 ‘위든+케네디(Wieden+Kennedy)’와의 긴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위든+케네디의 광고 기획자 댄 위든은 바로 ‘저스트 두 잇’이라는 카피를 제안한 장본인이다.

한 광고계 전문가는 나이키의 이러한 광고 전략을 나영석 PD의 프로그램 성공 요인에 빗대 설명했다. 최근 깐느 라이온스 국제 광고제에서 제일기획이 주관한 한 세미나에 나영석 PD가 발표자로 나섰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나영석 PD는 ‘1박2일’,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같은 자신의 성공 프로그램들이 일반 대중이 현실의 삶에서는 누리기 힘든 판타지라고 규정하면서, 그러나 현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판타지가 아니라, 마음먹고 한 발만 내딛으면 닿을 수 있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공감을 많이 얻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조던의 활공이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발놀림과 달리, 80세에도 건강하게 운동하는 노인의 모습은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판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스트 두 잇 캠페인은 마케팅 전략 중 가장 차원 높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저스트 두 잇 캠페인은 스포츠를 생활에 밀착시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었다. 한정된 시장을 대상으로 경쟁자보다 우리 상품이 더 낫다고 어필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키우고 그 크기를 무한정 유지할 수 있는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저스트 두 잇에 이어진 나이키의 급성장은 나이키 설립 초기였던 1960년대 중후반을 돌아보게 한다. 당시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사명의 이 회사가 의외로 쉽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케네디 대통령은 아침마다 가볍게 달리기를 하는 것을 즐긴다고 밝혔고, 미국의 상류층 인사들 가운데 아침 달리기로 건강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아직 ‘조깅’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이전이었지만, 아침 달리기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빠르게 번져나갔고, 스포츠화 시장과 함께 나이키의 매출도 커질 수 있었다.

▲나이키가 최초로 후원한 스포츠 스타였던 육상 선수 스티븐 폰테인과 그가 모델이 된 최초의 나이키 광고. (사진 = 나이키)

▲2016년 공개된 나이키의 대형 광고 '스위치(The Switch)'. 호날두와 한 축구팬 소년의 영혼이 바뀐다는 이야기로 만든 초대형 스케일의 7분짜리 단편영화. (사진 = 나이키)


III. 브랜드 파워로 압도하다: 올스타 총출동 광고

‘저스트 두 잇’ 캠페인과 같은 인스파이어링(영감을 주는) 광고와 별도로, 주요 종목별 스타 마케팅은 계속 이어져 왔다. 특히, 나이키가 스폰서가 되는 스타들 가운데 해당 종목의 챔피언이 될 뿐 아니라, 그 성취를 계속 이어가며 전설을 써 나가는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았다.

나이키 골프가 후원한 스타 중 최고는 타이거 우즈였다. 나이키와 계약 당시 타이거 우즈는 PGA에서 뛰어난 성적을 이어가던 젊은 선수였음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남자 프로골프의 ‘황제’로 군림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즈와 나이키는 199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0년 이상 파트너십을 이어 왔다. 우즈가 선수생활 도중 슬럼프를 겪고, 불명예스런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도 나이키는 우즈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우즈와 나이키의 계약이 끝난 것은 나이키가 지난해 골프 클럽 생산을 중단하기로 선언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톱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20대 초반이던 2003년부터 나이키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선수다. 당시 세계적인 프로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스카우트 되어 들어간 스타였지만 유소년 클럽을 벗어난 지 겨우 1년 남짓 지난 신인이었다. 그는 나이키의 후원에 힘입어 뛰어난 성적을 이어오고 있고, 천문학적인 연봉 계약 갱신을 거듭해가며 바르셀로나 FC의 리오넬 메시와 함께 세계 축구의 간판스타로 수년째 군림하고 있다. 

호날두는 현역 선수 최다 골 기록 보유자라는 축구 성적 외에도 빼어난 외모와 팬서비스로도 최고의 광고 모델이다. 나이키가 후원하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은 즐라탄, 이니에스타 등 호날두 외에도 많지만 나이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매출을 책임지는 것이 호날두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나이키는 지난해 11월 호날두와의 종신 계약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 나이키는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해외 언론사들이 추정한 내용을 종합하면 축구 선수로는 최고액인 연간 2400만 달러(약 270억 원) 규모에 달한다. 

나이키가 후원하는 선수들은 나이키의 스포츠 용품과 의상을 착용하고 경기에 뛸 뿐 아니라, 나이키가 진행하는 각종 캠페인과 광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월드컵이나 올림픽 시즌이면 나오는 나이키의 초대형 특집 광고는 축구팬들 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몰고 있다. 나이키의 오랜 광고 파트너인 위든+케네디가 집행하며, 단지 스타플레이어들이 대거 등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스토리와 정교한 특수효과 등이 더해져 잘 만든 블록버스터 판타지 영화를 보는 재미도 준다.

▲1996년, 당시 브라질의 호나우도, 포르투갈의 피구 등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은 나이키 '선과 악(Good vs Evil)' 광고 화면. (사진 = 유튜브 화면 캡처)


1996년, 나이키의 ‘선과 악(GOOD VS EVIL)’ 광고는 올스타 축구 광고의 대표작이다. 지구에 나타난 악마들이 축구 경기로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겠다고 위협하자 결성된 축구 올스타 팀이 뛰어난 기량으로 악마팀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피구, 클루이베르트, 칸토나, 호나우두 등이 출연했다.

2008년에는 카메라가 1인칭 시점으로 네덜란드 국적의 하부리그 선수로 등장, 고된 훈련으로 점차 실력을 쌓고 더 뛰어난 선수가 되어 간다는 내용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Take It To The Next Level)'라는 광고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인공이 경기를 뛸 때마다 등장하는 아군 혹은 상대팀 선수들 사이에 호날두를 비롯한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이 까메오로 등장했다.

2014년에는 동네 축구의 열정이 호날두, 네이마르, 루니, 즐라탄, 이니에스타 등등 수퍼스타들을 소환하며 마치 월드컵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호화로운 경기처럼 여겨진다는 내용의 ‘이긴 사람만 남기(Winner stay)’라는 제목의 광고가 제작되었고, 3D 그래픽으로 표현한 ‘마지막 경기(The Last Game)’라는 애니메이션 작품도 나왔다. 이 영상들은 2014년 유튜브에서 공개된 모든 광고 영상들 가운데 조회수 순위 1, 2위를 각각 차지했다. ‘마지막 경기’의 경우, 현재까지 나이키 공식 채널에서의 조회수만 1067만 건 이상이다.

또한, 지난해에는 호날두가 한 고등학생 축구팬과 충돌 후 둘의 영혼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스위치(The Switch)’가 공개됐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의 나이키 축구 광고 중 가장 긴 6분짜리 영상으로, 단편영화나 다름없는 스토리 구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IV. 1위 브랜드 파워지만 온라인 대세에 따른다

의류 부문 브랜드 파워 1위인 나이키가 아마존에 정식으로 입점한다. 이 소식은 지난 6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 등 다수의 외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전통 유통채널이 무너지고 온라인으로 시장이 급속히 이동하면서 아마존의 지배력이 커지자 강력한 브랜드조차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나이키의 이번 아마존과의 제휴는 아디다스와 언더아머 등 라이벌 브랜드의 거센 추격에 위기감을 느낀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아디다스는 지난 8월 3일 2017년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글로벌 매출이 직전 분기보다 19퍼센트나 증가한 59억 7천만 달러(한화 약 6조 8374억 원)에 달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두 자리 수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때 미국 시장에서 언더아머에게 빼앗겼던 2위 자리도 되찾았다.

이처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나이키는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벅차다는 것을 느꼈을 것.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나이키는 지난 6월 15일 글로벌 나이키 직원의 약 2%에 해당하는 1400명 정도를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생산 모델도 줄여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방침도 덧붙였다. 또한, 글로벌 마케팅 전략에 변화를 시도,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서울, 도쿄 등 전 세계 12개 핵심 도시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아마존닷컴 쇼핑몰에 공식 입점한 '숍 나이키'. (사진 =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브랜드 가치 보전 VS 더 큰 시장 진출

그리고 1주일 뒤에 아마존의 제휴 소식이 나왔다.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 유통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지만 나이키는 아마존에 직접 입점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이키는 약 1000여 개의 직영 대리점과 백화점, 스포츠 전문점을 통해 제품을 유통해 왔다. 온라인 매장인 아마존에 대해서는 오프라인 매장에 비해 고객 경험이나 서비스가 좋지 않다는 판단, 또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근거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입점을 거부해 왔다.

또한, 나이키는 기존 판매점들과의 관계에서 세계 1위라는 브랜드 파워를 무기로 가격과 제품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반면 초대형 유통 플랫폼인 아마존은 나이키가 브랜드 파워를 무기로 ‘갑’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이키는 라이벌인 아디다스와 언더아머가 먼저 아마존을 통해 매출을 키워 온 것을 지켜보며 생각이 조금씩 바뀐 모양이다. 아디다스는 2014년 아마존을 유통업체로 추가한 이후 미국 운동화 시장 점유율이 7%에서 11%로 급등했다. 게다가 스위스 금융사인 UBS를 비롯한 각종 경제 관련 기관의 보고서에서 현재의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 구매를 더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더 이상 온라인 시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이키는 대중에게 널리 각인된 브랜드 답게 특유의 로고만 드러나는 심플한 광고로 자신감을 드러낸다. (사진 = 나이키)


아마존에서 나이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가능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아마존에서 나이키 제품을 취급하는 판매자는 7만 3천 개 업체에 달한다. 하지만, 이 판매자들은 나이키가 승인하지 않은 제3자들로, 자신들이 다른 루트로 구매한 나이키 제품을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아마존에서 나이키 제품에 매겨진 가격은 나이키 본사가 원하는 가격 정책과 무관했고, 배송 및 품질 관리 등의 면에 있어서도 본사의 통제를 벗어난 범위에 있었다.

이에 나이키는 이번 아마존과의 협상을 통해 위조·복제품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비공식 판매상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아마존을 공식 유통 채널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 협상에 따라 아마존은 7월 13일부터 기존 판매상이 특정 나이키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나이키의 아마존 입점 결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골드만삭스는 아마존을 통한 직판이 나이키 매출을 3억~5억 달러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나이키도 온라인 매출이 2020년까지 50억 달러(약 5조 738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업계에서 전망한 나이키 매출 성장치의 30%에 달한다. 이러한 발표가 나온 뒤 나이키의 주가는 2.6%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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