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골프만사] 300=300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기자 2017.08.14 09:53:11

(CNB저널 =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300은 당연히 300과 같지, 그게 무슨 뚱딴지냐고 하실 분들 많을 것이다. 미처 단위를 붙이지 않아서 묘한 또는 맹한 제목이 되고 말았다. 앞의 300은 mm를 붙이고 뒤의 300은 m를 붙여보자. 30cm=300m 뭐, 이렇다. 이제는 “완전히 틀리잖아!!” 하고 열 내며 따지실 분이 나올 것 같아 얼른 설명을 드리겠다. 골프에서 공이 움직일 때, 300미리 곧 30센티미터의 길이는 300미터 길이만큼 가치가 같다는 말이다. 맞잖은가. 30센티의 짧은 퍼트나 300미터나 되는 긴 거리의 드라이버 샷이나 똑같은 1타니까.

사람들은 살면서 작거나 적거나 짧은 것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대충 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골프에서 유난히 심하다. 가볍게 여겼다가 큰 일이 나는 법인데, 하찮게 대했다가 엄청난 상처를 입고 만다.

특히 퍼트에서 ‘한 뼘 남짓 되는 짧은 거니까 뭐!’ 이러면서 별 신경 안 쓰고 툭 건드린 공이 들어가질 않아 결국 1타가 뒤지고, 그게 최종 점수에서 1등 아닌 2등이 되고, 아예 컷 탈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짧은 것, 점수로는 1타를 만만히 보다가 결과가 참담해져 버린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모르긴 해도 골프 역사상 30센티 이내의 짧은 퍼트 놓쳐 1점 차로 탈락한 골퍼들이 쉬었던 한숨을 모아보면 수백 채 가옥을 날려버릴 토네이도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김인경 선수가 이 글을 읽는다면 다시 울컥해질지 모르지만 그녀의 경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김인경이 데뷔 5년 차였던 2012년, LPGA 메이저 대회 ‘나비스코 챔피언십’(현재는 ANA 인스퍼레이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30㎝ 우승 퍼트를 놓친 통한의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게 18번 홀의 우승 퍼트였는데, 그걸 넣지 못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눈을 감고 퍼터를 대도 될 아니, 발로 차도 들어갈 정도의 아주 짧은 퍼트였는데, 그걸 놓쳐 연장전으로 갔고 아쉽게도 패하고 말았다.

30cm 퍼트 트라우마 극복한 김인경
“30cm가 골프의 시작이고 끝” 산증인

김인경은 5년 전의 그 악몽이 내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아주 다행히도 2017년 8월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이 빛나는 메이저대회서 아쉬움을 털어내게 됐다. 이 대회 우승으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지 않았나 싶다.

▲김인경은 8월 6일(한국 시간) 열린 브리티시 여자오픈 골프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정상에 올랐다. 사진 = 연합뉴스

김인경은 그동안 역전패의 트라우마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위의 30센티 퍼트 후 연장전 패배 말고도 2013년 ‘기아 클래식’에서도 연장전에서 지고 말았고, 2014년 포틀랜드 대회에서는 2m 파 퍼팅을 못 넣어 또 다시 2위에 그쳤던 전력이 있다. 

탁닛한이라고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명상가이고, 시인에 평화운동가인 사람을 알 것이다. 그분은 명상가답게 이런 멋진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내고,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며,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뭐든 작은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이 엄청나게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 아닌가. 김인경더러 명언을 하나 남기라고 하면 “30센티미터의 거리가 골프의 시작이고 끝이다”라고 했을 것 같다. 우리는 걸핏하면 ‘티끌 모아 태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등의 속담을 입에 올리는데, 속으로는 ‘티끌 모아 먼지’, ‘천리 길은 자동차로 달려’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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