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히로시마·마쓰야마] 히로시마 원폭으로 7만명 죽인 美, 사흘 뒤 또 한방 왜?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7.08.28 09:18:13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고쿠라 → 히로시마 → 오카야마 환승 → 마쓰야마)

아, 히로시마

오전 9시 고쿠라 역(小倉駅)을 떠난 신칸센 사쿠라(さくら) 호는 히로시마(広島)까지 213km를 51분 만에 주파한다. 16량 장대 편성 열차가 10분이 멀다 하고 드나드는 일본 철도의 대동맥 구간이다. 히로시마 역 코인 락커(coin locker)에 여행 가방을 넣고(300엔) 노면 전차(트램) 1일권을 구입하여 원폭 돔(原爆ドーム, 겐바쿠 도무)으로 향한다. 도시는 70여 년 전, 1945년 8월 6일 일어났던 일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몰려드는 내외국인 관광객들만이 이 도시가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일깨워 준다. 

히로시마는 어쩌다 비운의 도시가 되었을까? 정작 전쟁 중에는 미군의 폭격을 피했으나 알고 보니 그것은 히로시마, 고쿠라, 교토, 나가사키, 니가타와 함께 원폭 투하장소 후보지로 올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날 아침 8시 15분, 미군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에서 투하한 ‘리틀 보이’(Little Boy) 폭발로 당일 7만 명이 죽었고, 훗날 14만 명이 더 죽었다. 원폭 투하 당일 저녁에는 검은 비(black rain)가 떨어졌으나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다. 

기막힌 사연

야마구치 쓰토무(山口 彊) 씨의 사연은 기가 막히다. 원폭 투하 전날 그는 히로시마 출장을 마치고 나가사키로 돌아가려 했으나 서류에 서명이 덜 된 것을 깨닫고 하루를 더 머물다가 원폭 투하를 겪었다. 다행히 겨우 살아남아 나가사키에 돌아가서 상관에게 보고하는 순간 나가사키 하늘에도 원폭이 투하되었다. 천운으로 그는 화상과 시력 손상 이외에는 중대한 피해를 입지 않아 천수를 누렸다. 두 원폭 투하 지점에 모두 있었던 희귀한 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원폭 돔. 원폭으로 돔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사진 = 김현주

평화기념 공원

평화기념 공원(平和記念公園, へいわきねんこうえん, 헤이와키넨코우엔)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많은 세계유산을 방문했지만 이처럼 야릇한 사연을 담은 곳이 또 있을까?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 인류는 다른 방식으로 가슴 아픈 사연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공원에는 수많은 조형물, 기념비, 조각물들이 서 있다. 그중 더러는 방문자들의 특별한 관심을 끄는 것들이 있다. 군수탄약 공장에 강제 동원되었다가 죽은 6300명의 어린이들을 추모하는 어린이 추념탑에는 방문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이번 방문에서는 찾지 못했지만 한국인 징용자 희생 추념비도 있다. 군수 공장에 동원되었던 수만 명의 한국인들을 기억해 본다. 희생 추념비는 1970년에야, 그것도 도시 외딴 곳에 세워졌다가 1999년 평화기념 공원 구역 내로 옮겨졌다. 평화기념 자료관, 즉 원폭 박물관은 원폭 이전과 직후의 도시 모습, 녹아버린 세발자전거를 비롯한 참상 자료들, 그리고 전후 피폭자 대책 등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다. 자료관을 나올 즈음에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화기념 자료관(원폭 박물관). 사진 = 김현주

미국은 예상했을까?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했다지만 미국은 결과가 이 정도일 줄 예상했을까? 그리고 사흘 후 나가사키에 또 하나를 떨어뜨린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하나? 그것보다 더한 북한, 핵무기, 불바다, 처참한 보복 운운하는 북한 김정은이야말로 이곳에 꼭 한번 와봐야 할 사람 아닌가? 인류의 한 사람이면서도 한국인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여러 가지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 

비운의 상징 원폭 돔

오늘 히로시마 날씨는 무척 덥다. 이 더위의 몇 천, 몇 만 배의 불세례가 그날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기념공원 한복판에 히로시마 비운의 상징 원폭 돔이 서있다. 160m 떨어진 지점 600m 상공에서 원자탄이 폭발했다. 원래 돔은 녹색이었다. 체코 건축가 얀 렛첼(Jan Letzel)이 설계하여 1915년 완성했다. 우중충했던 공업 도시에 세워진 녹색 돔의 유럽식 건물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날 폭발로 돔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히로시마 희생자들은 이렇듯 대부분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들이었다. ‘전쟁이 그래야 하는 건지? 원래 전쟁은 이토록 황당하고 참혹한 것인지’ 계속 나에게 묻는다. 

마음을 달래려고 미야지마(宮島) 섬 입구 바닷가까지 가본다. 시내에서 트램으로 한 시간 거리이다. 휴일을 맞은 유원지는 인파로 크게 붐빈다. 지난 몇 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미국 알래스카, 미국 서부, 그리고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과 서해안 주고쿠(中国) 지방 오지까지, 변방 깊숙한 곳만 돌아다니다가 인구 밀집 지역에 들어오니 낯설다. 이제 하루 이틀 후에는 서울에 돌아가 이러한 환경에 묻혀 지내야 하는데 말이다. 

▲멀리서 본 평화기념 공원. 사진 = 김현주

세토나이카이

히로시마 역으로 돌아와 오카야마(岡山) 행 신칸센 열차에 오른다. 시코쿠(四国)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오카야마는 시코쿠뿐만 아니라 돗토리, 시마네 등 주고쿠 지방으로 가는 관문이다. 오카야마까지는 히로시마에서 161km, 40분 걸린다. 오카야마부터는 JR 시코쿠 구역이지만 나의 막강한 전국 패스는 문제없다. 오카야마에서 시코쿠 마쓰야마(松山) 행 열차로 환승하니 곧 세토오오하시(瀨戶大橋)를 건넌다. 일본 혼슈와 시코쿠를 연결하는 9.4km 장대 교량 아래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일본 다도해의 장관이 끝없이 펼쳐진다. 세토나이카이는 일본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경승지 아닌가? 수없이 느끼지만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다. 

일본의 4대 섬을 다 가보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히로시마나 고베, 또는 오사카쯤에서 쉬었을 법도 한데 시코쿠까지 욕심을 내었으니 무리한 여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코쿠 땅에 발을 디디는 작은 감격에 불평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혼슈, 큐슈, 홋카이도, 시코쿠까지 일본의 4개 큰 섬은 물론 오키나와, 쓰시마까지 모두 가보는 나만의 기록에 혼자 흐뭇해한다. 시코쿠는 남한의 10분의 1, 제주도의 10배 면적이다. 에히메(愛媛), 도쿠시마(徳島), 고치(高知), 그리고 가가와(香川) 이렇게 네 개의 현(県)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화의 종을 치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전원도시 마쓰야마

오카야마에서 180km, 특급 열차는 세 시간 걸려 마쓰야마(松山)에 도착한다. 에히메 현(愛媛県)의 현청 소재지이고 인구 51만 명으로서 시코쿠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지만 다른 지역 유사한 규모의 인구를 가진 도시에서 느끼는 번잡함은 없다. 시코쿠의 전원 풍경과 넉넉한 분위기는 분명 시코쿠만의 매력을 풍기는 것 같다. 마쓰야마 역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숙소에 체크인하고 도시 탐방에 나선다. 매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한적한 가로를 걸어 시로야마(城山) 공원에 닿는다. 시로야마 공원 앞산 정상에는 마쓰야마 성이 마법의 성처럼 서있다. 꽤 멀어 보여서 올라갈 용기는 내지 못한다. 공원 주변 사방으로는 넓은 해자(공원을 둘러싼 물)가 있고 소나무가 우거진 해자 주위 산책로는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멋을 더한다. 공원에는 전원도시의 여름밤을 즐기는 산책객이 드문드문 오고간다. 저녁이 아주 여유로운 삶을 엿본다. 한국에서는 이제 어디를 가도 느낄 수 없는 시골 정취를 만끽하며 이곳에서 긴 여행의 피날레를 맞이하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여행은 곧 생활의 활력소

숙소로 돌아와 기린 맥주와 함께 일본의 마지막 밤을 자축한다. 이제는 현실 세계로, 분주한 삶의 경쟁으로 모드를 바꿔야 할 시간이다. 여행을 통하여 얻는 에너지는 치열한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 4주간의 대장정을 끝까지 주관하신 절대자께 감사드린다. 일본의 또 다른 변방, 시코쿠의 밤이 이제는 정겹다. 이런 밤을 두고두고 그리워할 것 같다. 


6일차 (마쓰야마 → 오카야마 환승 → 도쿄 → 서울)  

어느 열차 승무원

뽀송한 아침,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을 떠난다. 시코쿠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쓰야마에서 오카야마까지 세토나이카이를 끼고 도는 열차 2시간 50분이 지루할 틈이 없다. 열차 내에서 나도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바쁜 사람이 있다. 열차 승무원이다. 열차 정차시마다 승하차객의 안전 관리부터 안내 방송, 승객 접대, 검표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일본 철도 여행 중 보았던 대부분 철도 승무원들의 모습이자 일본인들의 모습이다. 

▲마쓰야마(松山) 역전. 시코쿠의 북서쪽 현인 에히메 현(愛媛県) 안에 있다. 인구 51만의 도시이지만 이렇다 할 번잡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 = 김현주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세토내해)에 있는 한 공업단지. 사진 = 김현주

도카이도혼센, 초광역 도시군

세토오오하시(瀨戶大橋)를 건너 혼슈 땅 오카야마에 다시 오니 집이 한층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작은 안도감이 인다. 이제 도쿄까지 726km. 신칸센 히카리(ひかり) 호는 빠른 속도로 달린다. 열차는 히메지, 신고베, 신오사카, 교토의 거대한 공업 지대를 지난다. 일본의 산업 경쟁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오사카부터 도쿄까지 도카이도혼센(東海道本線) 연선(沿線)은 거대한 초광역 도시군(megalopolis)의 연속이다. 이 구간은 16량 편성 신칸센 장대 열차가 2∼3분에 한 대 씩 다닐 정도로 분주하다. 나고야(名古), 시즈오카(静岡), 요코하마(横浜), 시나가와(品川)를 지나니 곧 도쿄다. 

▲시코쿠(四国) 행 특급 열차. 만화 호빵맨의 캐릭터들이 인상적이다. 사진 = 김현주

엿새 동안 열차 3700km

열차는 크고 작은 역 열 몇 군데를 모두 들르고, 초고속 노조미(のぞみ) 호에 몇 차례 양보까지 하면서도 오카야마에서 도쿄까지 4시간 17분 만에 주파했다. 참고로 JR패스 소지자는 신칸센 초고속 노조미와 미즈호는 이용할 수 없다. 지난 엿새 동안 도쿄를 출발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혼슈를 일주하고 시코쿠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3700km의 먼 길을 순전히 열차로만 이동했다. 그동안 자주 다녔던 일본과는 다른 일본을 체험했다. 간단히 넘겨 버릴 수 없는 거대한 일본 시스템에 혀를 내두르기 일쑤였다. 

아름다운 일본

이제 하네다-김포,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열 번째 항공 구간만 남겨 놓고 있다. 당초 무리이다 싶은 여정을 기획하고 은근히 걱정도 많았지만 무사히 해냈다는 성취감에 희열을 느낀다. 일본 열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다양하고 아름다웠다. 여행 중 느낀 감상과 호연지기를 일상에 풀어놓을 일만 남았다. 김포행 ANA 항공기에 몸을 싣고 잠을 청하니 삽시간에 서울 하늘이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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