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40) 마닐라·산타마리아] 필리핀 네 교회에서 17세기 바로크를 만나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7.09.04 10:13:20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마닐라 도착 - 일로일로 - 미아가오 교회 - 마닐라 귀환)

필리핀 바로크 교회

이른 새벽, 숙소를 나와 택시를 타고 시내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로 길을 재촉한다. 과거 스페인 통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옛 마닐라의 성곽 도시이다. 산 어거스틴(San Agustin) 교회를 찾아 필리핀 바로크 교회 첫 탐방을 시작한다. 

필리핀 전국에 흩어진 수백 개의 교회 중에서도 199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한 4대 교회를 두루 탐방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테마다. 유네스코는 “필리핀의 4대 교회는 물리적, 지질학적, 역사적 조건에 적응하여 설계 및 건축됐고 유럽 바로크 양식을 현지 방식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을 세계문화유산 선정 이유로 밝혔다. 

역사의 사연 많은 마닐라 산 어거스틴 교회

아직은 컴컴해 과연 교회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한 시간 남짓 기다리니 거짓말처럼 사방이 훤해진다. 어둠을 물리치는 새벽의 힘에 새삼스럽게 놀란다. 인트라무로스 안쪽 마닐라 대성당에서 남쪽으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교회(일명 성 바오로 교회, Church of St Paul)는 당초 남쪽에서 올라온 스페인이 1571년 마닐라를 점령하자마자 세운 것으로서 이후 화재, 지진, 해적의 침입, 독립혁명, 세계대전 등 필리핀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모두 목격했다. 

산 어거스틴 교회는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는 스페인의 항복 서약문을 받은 곳이고 1942년 일본의 마닐라 점령 시절에는 성직자와 정치범의 처형 장소이기도 했다. 옛 마닐라 인트라무로스에 있다는 이유로 유독 역사의 시련을 많이 겪었다. 1587년부터 10여 년 걸려 석조로 재건축됐고, 1945년 세계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마닐라 탈환(Liberation of Manila) 전투 때 완전 소실되었다가 1958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산 어거스틴 교회. 사진 = 위키미디어 이용자 Patrick Roque

비록 사연 많은 교회이지만 교회 건물과 수도원은 17세기 초 스페인 제국 황금기의 위상을 반영할 정도로 화려하다. 마침 교회 문이 열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다. 식민지 교회 치고는 유달리 제단이 크고 화려하다. 

바로크 4대 교회 중 역사적 의미가 가장 큰 산 어거스틴 교회 탐방을 마치고 공항으로 나가 아침 8시 10분 일로일로(Ilo Ilo)행 국내선 항공기에 오른다. 남쪽으로 한 시간쯤 날아 도착한 일로일로에는 부슬비가 온다. 웨스트 비사야스(West Visayas) 지방 일로일로 주의 주도로서 인구 42만 명의 도시이다. 공항에서 미니버스로 40분 걸려 시내 SM Mall에 도착한 후 택시로 모혼(Mohon) 터미널로 이동, 그곳에서 지프니로 갈아탔다. 지프니는 바닷가 작은 어촌 마을들을 무수히 지나 한 시간 후 미아가오(Miagao)에 도착했다.

▲미아가오 교회는 요새 바로크(Fortress Baroque)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췄다. 사진 = 김현주

▲필리핀의 가장 보편적인 중·단거리 대중교통 수단인 지프니. 사진 = 김현주

요새 바로크, 미아가오 교회

마을 복판 작은 언덕에 위치한 미아가오 교회(Santo Tomas de Villanueva Parish Church, 일명 Miagao Church)는 종교적 목적 이외에도 당시 남쪽으로부터 끊임없이 몰려오는 무슬림 침략자들의 파수대(망루) 역할까지 했다는 의미에서 ‘요새 바로크’(Fortress Baroque)의 전형으로 평가 받는다. 깊이 6m의 기초 위에 지었고 두께 1.5m의 석벽으로 교회를 감쌌으니 지진, 태풍 등 이 지역의 자연 환경에 충실히 대비했다는 측면에서도 여느 필리핀 바로크 교회보다 월등하다. 특히 코코넛 나무와 각종 열대 식물, 현지인 복장을 한 성 크리스토퍼와 함께 미아가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전면(facade, 파사드) 장식이 특이하다. 필리핀 신앙과 예술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18세기(1734년)에 최초 건축을 시작했고 이후 여러 차례 재건, 중건, 복구를 거듭한 것은 다른 필리핀 교회와 다르지 않다. 

▲반타이 종탑에서 본 비간 부근 풍경. 사진 = 김현주

허망하게 사라진 스페인 대제국

미아가오는 지금은 머나먼 변방이 되었지만 과거 스페인의 가톨릭과 모로(Moro) 무슬림이 대치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스페인이 식민지 필리핀에 가톨릭을 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필리핀은 이슬람 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오늘날 이슬람 지도는 동아시아 대만 바로 아래까지 뻗어 있었을 것이다. 

요새처럼 서있는 미아가오 교회를 보면서 남쪽에서 몰려오는 적이 얼마나 극성스러웠을지 짐작해 본다. ‘이교도’ 적을 물리쳐가며 거대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한 식민 통치자들의 욕심을 엿본다. 당시 세계 최강으로서 천년 제국을 꿈꿨을 스페인은 필리핀에 영구히 견딜 만큼 튼튼한 교회를 수백, 수천 개 세웠다. 자신들의 종교를 심고, 주민들의 성씨까지 바꾸었던 대제국이 쇠락해 버린 것이 허망하다. 


2일차 (마닐라 - 일로코스 수르, 산타마리아 교회 - 비간)

어제에 이어 또다시 새벽길에 오른다. 한국의 초가을처럼 맑은 하늘을 보며 루손섬 중북부 산타마리아 행 버스 여행을 시작한다. 옥수수가 푸르게 익어가는 들판을 보며 버스는 북상을 계속한다. 앙헬레스, 산페드로, 산페르난도, 라우니온…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의 크고 작은 마을들을 지나다 보니 내가 지금 멕시코 어디쯤 와있는 것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든다.

▲산타마리아 교회에 도착하니 성모 상이 나를 반긴다. 사진 = 김현주

지진 바로크, 산타마리아 교회

마닐라를 떠난 지 7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일로코스 수르 주 산타마리아는 해안과 중부 내륙 산악지대 사이의 좁은 해안 평야에 위치한 까닭에 스페인 시절에는 종교와 교역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쇠락하여 작은 마을로 남았다. 마을 외곽 작은 광장에서 85개의 화강암 계단을 오르니 교회가 요새처럼 버티고 서있다. 대부분의 스페인 교회가 마을 복판 광장에 자리 잡은 것과는 달리 이 교회는 동네 뒷켠 언덕에 자리 잡은 점이 특징이다. 교회는 1765년에 최초로 건축되었고 훗날 종탑을 세웠고, 방벽도 추가했는데 교회라기보다는 요새에 가까운 전형적인 ‘지진 바로크’(Earthquake Baroque) 양식이다. 수도원(convent) 등 부속 건물이 교회 옆이 아니라 교회 앞에 서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좁은 언덕 위라는 입지 조건이 그런 설계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산타마리아 교회 내부. 사진 = 김현주

▲산타마리아 가는 길. 사진 = 김현주

식민지 백성들의 신앙심

일단 교회의 거대 규모에 압도당한다. 식민지 본국 기준으로 보아도 거대하다. 교회 내부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넓은 제단이 있다. 가난한 식민지 교회라서 흔한 대리석 한 조각, 모자이크 유리 장식 하나 없이 이 지역에서 나오는 흙벽돌과 돌로 지었고 교회 내부는 뿌연 회칠 밖에 하지 못했지만 신실한 마음만은 읽히고도 남는다. 식민지 백성들은 바라고 갈구할 것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말 못 할 서러운 사연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마음의 크기에 비례하여 교회 또한 커졌을 것이다. 현실을 잊고 오로지 다음 세상에서 만날 천국을 꿈꾸며 공덕을 쌓듯 벽돌 한 장 한 장을 올린 끝에 거대 건축물을 지었으리라. 천국에 가있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마음이다.

험난한 여정, 필리핀 바로크 교회 탐방

교회 마당은 전망이 일품이다. 작은 언덕이지만 마을과 주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 평화로운 모습이다. 교통이 불편한 필리핀에서, 그것도 동서남북에 걸쳐 흩어져 있는 유네스코 4대 바로크 교회를 모두 탐방하는 이번 여행은 결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어제는 밤늦게 일로일로에서 마닐라로 돌아와 2~3시간 짧은 잠을 자고 오늘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와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긴 시간 버스에 앉아 버텨야 하는 힘든 길을 달려왔다. 그러나 그 걸음은 마음의 위로와 감사 기도로 백배 보상 받는다.

▲비간 시에 위치한 반타이 종탑. 사진 = 김현주

필리핀 독립 운동의 본산 비간

산타마리아에서 비간(Vigan)은 버스로 40분 거리이다.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끝나니 곧 비간이다. 도시탐방 첫 목적지는 비간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구 지역형무소 자리로서 키리노(Elpidio Quiriño) 전 필리핀 대통령(1948-1953)의 출생 장소이기도 하다. 교도관으로 일하던 아버지 때문에 형무소가 그의 출생지가 되었다. 박물관은 키리노 대통령 특별 전시로 시작한다. 2차 대전 후 복구와 경제 부흥이 그의 치적으로 꼽힌다. 이어서 바시 전시실로 간다. 바시(Vasi)는 사탕수수로 만든 필리핀 전통 주류로서 박물관은 이 지역 특산물인 바시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소개한다. 전시물마다 완벽한 영어로 꼼꼼하게 적어놓은 설명문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바시는 1807년 필리핀 북부에서 일어난 반식민 혁명(Vasi Revolution)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스페인 통치기간 중 필리핀 도처에서 반란과 혁명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비간은 중심이었으니 혁명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크리슬로고(Crislogo), 부르고스(Burgos) 등 이 도시 거리나 광장 이름 중에 지역 출신 혁명가들의 이름을 딴 것이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박물관 벽을 따라 걸린 혁명화의 장면 장면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스페인 통치 330년은 어떤 의미인지를 잘 말해 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주 청사가 있는 살세도(Salcedo) 광장으로 나간다. 시청 앞 작은 광장에는 비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1999) 기념비가 있다.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스페인 계획도시로서 아시아와 유럽 양식의 융합 속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콜로니얼 교역 도시라는 점이 선정 이유다. 살세도 광장에는 키리노 대통령 동상과 리잘(Rizal) 동상이 서있고 건너편에는 비간 성당(성바울 메트로폴리탄 성당)이 있다. 광장 중앙 연못에 설치된 분수는 필리핀 전체를 통틀어서도 명물이다. 밤마다 열리는 분수 쇼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분수 쇼에 못지않다고 현지인들은 주장한다. 참고로 분수 쇼는 한국 기술자들이 설계·시공했다고 한다.

광장 남쪽 끝에 붙어있는 비간 성당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실내가 훨씬 웅장하고 화려하다. 성당과 거의 붙어서 부르고스(Burgos) 광장이 있다. 비간 출신의 성직자이자 혁명 열사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부르고스 기념비와 동상이 있고, 성 바울 성당 쪽으로는 8각형 종탑이 서있다. 지진이 잦은 이 지역에서 지진이 나더라도 교회 건물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와 거리를 두고 세웠다고 한다. 

(정리 = 김광현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