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서편제’의 배우 차지연을 더 사랑하게 됐다

김금영 기자 2017.09.15 13:39:59

▲뮤지컬 ‘서편제’에서 송화 역으로 돌아온 차지연.(사진=CJ E&M)

배우 차지연을 사랑하게 된 공연이 있었다. 차지연은 ‘아이다’ ‘위키드’ ‘더 데빌’ ‘레베카’ ‘마타하리’ 등 수많은 공연에 출연해 왔다. 그런데 특히 차지연의 울부짖음이 가슴에 와 닿았던 공연, 바로 ‘서편제’.


차지연의 ‘서편제’를 처음 본 건 2014년 공연 때였다. 솔직히 처음엔 진부할 것이라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판소리에 대한 편견이었다. 그런데 이 편견을 깬 것 또한 판소리였다.


‘서편제’는 고(故) 이청준 작가의 작품이 원작이다. 1993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록커와 소리꾼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호와 소리에 집착하는 유봉, 그런 유봉의 열망에 상처받는 송화의 이야기를 그린다.


차지연은 소리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송화 역을 맡았다. 극 속에서 송화는 한(恨)스러운 상황들을 마주한다. 아끼는 동생 동호는 송화의 만류에도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찾아서 떠나고, 아버지 유봉은 진정한 소리를 찾지 못한 자신의 꿈을 송화에게 강요하며 눈까지 멀게 한다. 이 가운데 아버지 유봉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울부짖는 송화의 ‘원망’이 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던 순간을 기억한다.


▲뮤지컬 ‘서편제’는 소리를 둘러싸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동호와 유봉, 송화의 이야기를 그린다.(사진=CJ E&M)

이후 ‘서편제’는 늘 다시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공연 중 하나가 됐다. 올해 ‘서편제’ 공연 소식이 들렸고, 차지연이 또 송화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렜다. 그리고 다시 ‘서편제’ 공연장을 찾았다.


‘인간’ 차지연에게는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캣츠걸로 5연승을 거두며 대중에게 더 많이 자신을 알렸다. 그리고 결혼해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변화가 많았던 만큼 성숙해진 걸까. ‘배우’ 차지연의 송화는 이전과 비교해 한층 무르익은 느낌이다.


사실 송화는 그 어떤 역할보다 차지연과 닮은 인물이다. 이전 인터뷰 자리에서 만났던 차지연은 그간 그에게 씌워진 이미지와는 상반된 매력을 지녔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임재범의 그녀’로 알려졌을 때도, ‘복면가왕’에서 캣츠걸로 활약할 때도 차지연에게는 ‘무언의 카리스마’ 이미지가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유독 강렬하고 힘 있었기 때문.


그런데 실제의 차지연은 매우 수다(?)스러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진난만했다. 평소 카리스마를 장착했다기보다는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아이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송화도 그렇다. 송화는 소리와 동생, 아버지밖에 모른다. 이 세 가지에 순수한 사랑을 쏟고 늘 밝게 웃는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닌다. ‘서편제’의 대표곡 중 하나인 ‘살다면’을 부를 때도 “살아보면 살아진다”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가슴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그야말로 인간 차지연과 배우 차지연이 만나게 해주는 최적화된 캐릭터가 송화가 아닌가 싶다.


▲차지연은 이번 공연에서 보다 성숙해진 감정의 송화를 선보인다.(사진=CJ E&M)

하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다. 송화는 한(恨)이 가득한 인물이다. 사랑하는 동생이 자신을 떠나고, 믿었던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한다. 차지연은 과거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듯이 그간 겪었던 인생의 역경을 이야기하며 “내게 한이 많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단지 우스갯소리였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밝음 이면에 드리워져 있는 송화의 어두운 면까지 차지연은 포착해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새롭게 느껴진 변화가 ‘포용’과 ‘이해’다. 이전 차지연이 보여준 송화에는 원망의 목소리가 더 강하게 느껴졌었다. 아버지 유봉이 세상을 떠날 때의 울부짖음을 담은 ‘부양가’에서도 ‘왜 나를 혼자 두고 떠나나요’ 식의 한스러운 정서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 차지연이 부른 ‘부양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폭발적인 성량은 이전보다 약해졌다. 그런데 그 약함이 단지 약한 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이해까지 도달한, 더 강해진 마음을 포효하는 느낌이다. ‘왜 나를 혼자 두고 떠나나요’에서 ‘아버지, 그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이랄까.


차지연은 현재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 자신 또한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 부모의 입장이 되면서 송화와 유봉의 이야기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동생이 자신을 떠나도,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하고 먼저 떠나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사랑하는 송화의 목소리가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2014년 ‘서편제’를 보고 배우 차지연을 사랑하게 됐는데, 그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는 걸 이번 ‘서편제’에서 깨달았다. 배우 차지연이, 그녀가 보여주는 송화가 사랑스럽다. 공연은 광림아트센터 BBCG홀에서 11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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