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그때 그 시절, 전국민이 바르고 먹던 그 약들

박현준 기자 2017.09.18 10:05:30

▲과거 유한양행의 약품 제조 과정.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CNB저널 = 김유림 기자) 제약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 중의 하나이자 국민 건강의 영원한 동반자다. 최근에는 신약개발 열풍이 불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제약사들이 장수한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히트 제품이 있었다. 국민의 추억과 현실 속에 살아 있는 효자 약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① ‘국민 영양제’ 일동제약 ‘아로나민’
반세기 세월 1위 자리 지켜온 ‘토종브랜드’

백미를 주식으로 먹는 한국인은 비타민이 부족하기 쉽다. 쌀은 그 어느 것도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건강식이지만, 도정과정에서 탄수화물 이외에 주요 영양소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이 우리 몸에서 열량을 내는 기능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분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분해를 못하기 때문에,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비타민’과 ‘미네랄’이다. 

만약 비타민 부족으로 탄수화물이 제때 대사되지 못하게 되면 당분이 노폐물로 체내에 쌓이고, 혈액이 산독성으로 바뀌면서 암·고혈압·동맥경화·심장병·비만 등 갖가지 질병이 유발된다. 따라서 백미를 먹는 한국인들은 탄수화물을 처리해주는 ‘비타민’과 ‘미네랄’을 적절히 섭취해야 한다. 

▲일동제약 아로나민 1960년대 제품 사진(왼쪽)과 현재 제품 사진. 사진 = 일동제약

하지만 음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건강기능식품’을 사기 위해 약국을 찾는다. 화이자의 센트룸, 다케다제약의 액티넘 EX플러스 등 전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제약사의 종합비타민제가 시장을 휩쓸고 있지만, 한국은 출시 50여년이 넘도록 소비자들한테 사랑받고 있는 일동제약의 ‘아로나민’이 압도적인 1위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별도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국내 일반의약품 중 일동제약 ‘아로나민’ 시리즈가 매출액 1위를 차지했다. 아로나민골드, 아로나민씨플러스, 아로나민실버프리미엄, 아로나민아이, 아로나민EX 등 아로나민 시리즈의 매출액은 666억6800만원으로 전년 대비 8% 증가했다.  

‘국민영양제’ 아로나민의 탄생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동제약 창업주 윤용구는 1930년 경성약학전문학교 시험에 합격하며 약사의 길을 걷게 된다. 1941년 극동제약을 사들이고, 이듬해 사명을 변경하면서 일동제약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 특히 윤 창업주는 남녀노소 모두 먹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개발에 힘썼다.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아로나민’의 본격적인 연구개발은 1960년 연광제약을 나와 잠시 쉬고 있던 이금기 전 일동제약 회장(현 일동후디스 회장)이 합류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아로나민을 개발 중이었던 일동제약은 기술이 있는 약사를 필요로 했고, 그 기술을 갖고 있던 저는 비전 있는 회사라 생각하고 입사를 결정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입사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일동제약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63년 프로설티아민과 리보플라빈을 주성분으로 하는 아로나민정을 발매하게 된다. 이어 1970년 프로설티아민을 개선한 성분인 푸르설티아민(활성비타민B1), 리보플라빈부티레이트(활성비타민B2), 인산피리독살(활성비타민 B6), 히드록소코발라민(활성비타민B12) 등 활성비타민B군에 비타민C와 비타민E를 보강한 ‘아로나민골드’를 선보였다. 

아로나민골드의 ‘활성형 비타민’은 국내 제약산업의 기술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에서 쉽게 파괴되지 않고 흡수가 잘되어 생채 내 이용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속성이 긴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출시 초창기 아로나민은 탁월한 약효가 입소문이 나면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중에 경쟁 제품이 쏟아져 나왔고, 일동제약은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윤 창업주와 이 전 회장은 “광고비로 망하나 판매가 안돼 망하나 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니 전진하다 명예롭게 죽는 편이 낫다”는 승부욕으로 마케팅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다. 

특히 1965년 권투선수 김기수를 모델로 등장시킨 광고는 한국 광고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타이틀 매치 당일, 매 라운드를 알리는 라운드보드 뒷면에 새겨진 아로나민 광고가 TV화면에 클로즈업됐다. 이튿날 조간신문에는 ‘승리! 아로나민 효과’라는 광고문구가 실렸다. 전 국민의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한 것.

▲1965년 일동제약 아로나민 광고. 사진은 권투선수 김기수. 사진 = 일동제약

뒤이어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이어진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는 한국 최초로 국외에서 개최된 광고 페스티벌에 출품돼 당당히 입상하기도 했다. 고된 일로 지친 근로자들에게 ‘하면 된다’는 신념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다. 당시 CF에는 고열작업자를 시작으로 파일럿, 프로그래머, 건축기사, 시스템오퍼레이터, 엔지니어, 지휘자, 기관사, 조류연구가, 등대장, 도예가, 포경선 포장 등 다양한 직업군들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결국 일동제약의 과감한 마케팅 전략에 경쟁사들은 모두 손을 들었고, 아로나민이 시장을 평정하게 된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는 처방을 다양화해 소비자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피로회복제 아로나민골드 ▲항산화제가 더해진 아로나민씨플러스 ▲중장년층을 위한 아로나민실버프리미엄 ▲고함량 비타민B복합제 아로나민EX ▲눈 영양제 아로나민아이 등 총 다섯 종류를 선보이고 있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CNB에 “아로나민이라는 브랜드의 역사는 곧 일동제약의 역사일 만큼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고 그만큼 브랜드의 성장과 품질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철저한 품질관리와 브랜드전략을 통해 고객 사랑에 보답 하겠다”고 말했다.


② 가난했던 시절 만병통치약, 유한양행 ‘안티푸라민’
손끝에서 전해오는 어머니 사랑…80년 세월 ‘국민상비약’

부모님의 부모님, 부모님의 할아버지 세대까지 ‘안티푸라민’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온갖 종류의 약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가난했던 시절에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됐다.

겨울철 튼 손발 위에, 코감기가 걸리면 코에, 배가 아프면 배꼽 주변에, 두통이 있으면 이마에,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눈두덩이에… 어디가 안좋다 하면 무조건 안티푸라민을 발랐다. 

어릴적 아픈 배를 어머니가 쓸어주면 신기하게도 고통이 가셨던 것처럼, 변변찮은 약을 구할 수 없던 시절에 육체적 고통은 물론 마음까지 보듬어 준 것이다. 

▲유한양행 과거 제품 케이스(왼쪽)와 현재 판매되고 있는 안티푸라민 전체 제품군. 사진 = 유한양행

안티푸라민의 시작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1920년대 미국에서 숙주나물 통조림을 제조하는 라초이 식품회사를 세워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며, 중국계 미국인 소아과 의사 호미리 여사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런데 사업차 북간도를 방문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유일한 박사는 그곳에서 ‘약’ 한 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는 조선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1926년 돌연 미국에서 잘나가던 사업을 접고 일제치하에 있던 조국으로 돌아와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하게 된다. 

유한양행이 설립할 당시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약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던 시절일 정도로 국내 의료환경이 열악했다. 유일한 박사와 호미리 여사는 민족을 위해 약품 개발에 매달렸고, 결국 1933년 자체 제작 제품 1호 ‘안티푸라민’을 만들어낸다. 

안티푸라민의 주성분은 멘톨, 캄파, 살리실산메칠 등으로 소염진통작용, 혈관확장작용, 가려움증 개선작용 등의 효능이 있다. 그리고 다량의 바세린 성분도 함유되어 뛰어난 보습효과도 있다. 

브랜드명은 ‘반대’라는 뜻의 안티(anti)에 ‘불태우다, 염증을 일으키다’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합쳐 발음하기 좋게 바꾼 것이다. 제품의 특성을 정확히 설명한 ‘항염증제’ ‘진통소염제’라는 의미인 것이다. 

유일한 박사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제품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1930년대 신문 광고에는 항상 ‘사용 전 의사와 상의하라’ 등의 문구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61년 녹색 철제 케이스에 간호사의 모습을 그려 넣으면서 가정상비약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 사진 = 유한양행

변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999년 로션 타입의 안티푸라민S로션을 출시한다. 100ml 용기에 지압봉을 부착해 환부에 약물을 펴 바르면서 마사지를 할 수 있게 차별화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안티푸라민의 파프 제품 5종(안티푸라민파프, 안티푸라민조인트, 안티푸라민허브향, 안티푸라민쿨, 안티푸라민한방 카타플라스마)과 스프레이 타입의 안티푸라민 쿨 에어파스까지 선보였다.

최근에는 동전 모양의 안티푸라민 코인플라스타, 필요한 만큼 손으로 잘라 쓸 수 있는 롤파스, 하이드로겔 제형으로 밀착포가 필요 없고 하루 한번 사용 가능한 카타플라스마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소비자가 상처 모양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내놓고 있다. 

안티푸라민은 다양한 제형 확대와 개발을 진행하면서, 20~30억원대에 머무르던 매출이 2013년 100억의 매출을 돌파했다. 2015년 130억, 2016년에는 15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연매출 200억원을 목표로 노익장을 제대로 과시하고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CNB에 “80년이 넘도록 안티푸라민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온 국민이 꾸준히 사랑하고 찾아주었기 때문”이라며 “소비자 편의성 증대와 효능·효과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새로운 제형, 제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여 이제껏 받아온 사랑에 보답 하겠다”고 말했다. 


③ 조국독립·민족사랑 120년, 동화약품 ‘까스활명수’
국민 소화제, ‘답답한 속’ 뚫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자 양약인 ‘활명수(活命水)’. 아선약, 육계, 정향 등 11가지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급체, 토사곽란 등 각종 소화불량에 뛰어난 효능을 나타내며, 현재까지 84억병이 팔렸다. 

‘활명수’의 탄생은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 고종임금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당시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은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일반 국민에까지 널리 보급 하고자 서양의학을 접목해 ‘활명수’를 선보였다. 

그해 민병호 선생의 아들인 창업주 민강 선생은 활명수를 대중화하기 위해 서울 순화동 5번지에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설립했다. 특히 민강 선생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후 활명수를 독립운동의 자금줄로 활용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 이동할 때 고가의 활명수를 지참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또 서울 중구 동화약품 본사는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부로 활용됐다. 지금도 동화약품 사옥 앞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동화약품 활명수 초창기 이미지. 사진 = 동화약품

현재 활명수는 시장점유율(지난해 기준) 70%를 차지하고 있다. 신제품이 나와도 10년을 버티기 힘든 제약 시장에서 120년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효’가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채표가 없으면 활명수 아니다”

그러나 부채표 활명수도 고비가 존재한다. 1965년 삼성제약이 ‘까스명수’를 내놓으면서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까스명수는 액체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제품이었다. 당시 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인기를 끌던 것에 착안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동안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미투 상품’과 달리 까스명수를 향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 동화약품은 곧바로 활명수의 시즌2를 열었다. ‘까스활명수’를 신제품으로 내놓았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2년 만에 1위 자리를 재탈환하게 된다. 동화약품은 1990년대까지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통해 오리지널 제품임을 강조했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활명수는 개발 당시부터 일제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살리는 물’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소비자 곁을 지키고 있다. 현재는 일반의약품인 활명수, 까스활명수, 미인활명수, 꼬마활명수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까스活(활) 등 총 5가지 제품이 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CNB에 “올해  120살이 되는 활명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장수 의약품으로 앞으로도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을 더욱 충실히 이행해 나갈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화약품은 활명수의 의미를 딴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식수 정화 사업과 우물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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