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44) 베들레헴] 예수 탄생했다는 곳엔 은총 없고 살벌만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7.10.23 09:52:2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예루살렘 → 베들레헴 왕복)  

드디어 예루살렘

예루살렘 체크 포인트를 지나 긴 언덕을 오르니 그 끝에 예루살렘이 있다. 사해 휴양지 마을을 떠난 지 1시간 30분, 100km의 거리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성지, 11~12세기 십자군 점령 시절에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극한 대치하여 수만 명의 무슬림과 유대인의 학살이 일어났던 곳, 2000년 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파란만장한 도시이다. 동예루살렘 아랍 지역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조심스럽게 운전하여 숙소에 도착했다. 

베들레헴 가는 가깝지만 먼 길

여장을 풀자마자 곧장 베들레헴(Bethlehem) 행 버스에 오른다. 베들레헴 가는 길은 가깝지만 힘들었다. 버스는 굴곡이 심하고 좁은 비탈길을 약 30분 달리더니 베들레헴 외곽에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이스라엘 버스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베들레헴 중심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예수 탄생 교회(Church of Nativity)가 있는 만제르(Manger) 광장까지는 여기서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20분을 걸어야 한다. 지형이 험하고 미로로 얽힌 베들레헴을 걸어서 다닐 자신이 없어 택시 기사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시간 남짓 택시를 대여해서 베들레헴을 좀 더 넓고 효율적으로 돌아보기로 한다(약 6만 원). 분에 넘치는 호사이지만 무엇보다도 짧은 겨울 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베들레헴 장벽. 지나는 모든 벽마다 이스라엘의 폭압을 고발하거나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과 글이 가득하다. 사진 = 김현주

그러나 택시를 이용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제3세계 관광지 택시가 언제나 그렇듯이 기념품점, 가이드, 찻집 등과 연계하며 돈을 쓸 것을 은근히 반강요하지만 버텨야 한다. 제1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언제나 그들에게는 ‘봉’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택시 기사 야후브(Yahuv)는 현지인답게 이 골목 저 골목을 빠르게 드나들며 도시 탐방을 이어간다. 어글리(ugly)한 도시 모습, 관광객들에게는 정보가 없는 베들레헴 장벽부터 보여주기 시작한다. 오늘 나의 주 관심은 예수 탄생이지만 이것도 분명 베들레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그의 안내를 따른다. 

베들레헴의 여러 모습

탄흔, 철조망, 불에 그을은 망루, 군사 시설… 2000년대 초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웨스트 뱅크(West Bank)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격렬하게 번져 나갔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현장들이다. 지나는 모든 벽마다 이스라엘의 폭압을 고발하거나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과 글이 가득하다. 

예수가 탄생했고, 동방 박사가 찾아들었고, 하늘에서 별이 내린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여기 없다. 7000년 이상 인류가 거주해 왔고 구약 시대부터 언급되어 왔던 이곳의 역사와 사연, 아픔과 시련의 본질을 금세 이해한다.

▲셰퍼즈 필드.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탄생 소식을 알린 곳으로 전해진다. 사진 = 김현주

▲예수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사진 = 김현주

팔레스타인 유대인 정착촌

베들레헴 동쪽 셰퍼즈 필드(Shepherds’ Fields, 목자의 들)부터 먼저 찾는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성소(聖所) 중 하나이다. 양치는 목자(牧者)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 탄생을 알렸다고 전해오는 자리에 프란치스코회(Franciscans)가 관리하는 교회가 서있다. 

채플 안 초기 교회가 열렸던 동굴에는 예수 탄생과 양치기 목자들이 경배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바깥 언덕에는 오늘도 그때처럼 양떼를 이끌고 가는 목자들이 있는 반면, 더 멀리 골짜기 건너로는 유대인 정착촌의 높은 담장과 그들을 보호하는 이스라엘 군사 시설이 보인다. 아직도 쉬지 않고 유입되는 전 세계 유대인 이민자들을 수용하기에는 국토가 너무 작은 이스라엘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크게 억울한 일이다. 

높은 산언덕 위 헤롯 궁전(Herodian)을 찾는다. 높고 낮은 언덕을 따라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혀 예상을 뒤엎는 모습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후광에 가려진 작은 시골 마을이 아니다. 예수 탄생 말고도 이 시대의 베들레헴은 먼 곳에서 온 방문자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찬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는다. 

▲베들레헴 전경. 가운데 울타리 쳐진 곳은 유대인 정착촌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불씨다. 사진 = 김현주

예수 탄생 말구유는 어디?

드디어 시내 복판 만제르(Manger) 광장이다. 예수가 탄생한 자리에는 예수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가 요새처럼 서있고 광장 건너 맞은편에는 오마르 모스크가 있다. 330년 로마 콘스탄틴 대제의 명령으로 최초 건축되었고, 훗날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시절(11~12세기, Siege of Jerusalem)에 요새화되었다. 

예수가 탄생한 곳은 말구유가 아니라 교회 내부 지하 동굴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長子)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왕의 명령에 따라 인구 조사를 받기 위하여 그날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들렀다. 

그러나 만삭의 마리아는 변변한 잠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이곳 지하 동굴에서 아기 예수를 낳은 것이다. 어둡고 침침한 차가운 동굴 바닥이 그의 탄생지일 줄이야. 할 말을 잊는다. 매년 12월 24일 성탄 전야(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에 생중계되는 미사가 열리는 곳이 바로 여기다. 

▲예수가 탄생한 동굴 내 제단. 예수가 탄생한 곳은 말구유가 아니라 지하 동굴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사진 = 김현주

이 순간, 이 광경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목이 메어온다. 왜 인류 역사는 예수가 이런 곳에서 태어나도록 쓰여졌을까? 그리고 그의 드라마틱한 탄생은 인류에게 어떤 예고편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방문자들이 지하 동굴 예수 탄생 지점 앞 작은 공간에서 하염없이 묵도를 하고 있다. 묵도가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빗대어 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밀크 그로토 교회(Milk Grotto Church, 모유 동굴 교회)가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수유하면서 흘린 젖 몇 방울이 튀어 동굴 안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다는 곳이다. 벽이 하얀 칠로 되어 있다. 기막힌 사연, 기막힌 모습이다. 

가슴 먹먹한 베들레헴 방문

해가 기우니 해발 900미터, 높은 지대에 위치한 도시의 공기가 매우 차가워진다. 예루살렘 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곧 라헬(Rachel) 체크 포인트에 닿는다. 승객 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차에서 내려 검문을 받는다. 베들레헴 거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허가가 있어야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분당 정도도 안 되는 두 도시가 이렇게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밀크 그로토 교회(Milk Grotto Church, 모유 동굴 교회).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수유하면서 흘린 젖 몇 방울이 튀어 동굴 안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사진 = 김현주

인권 운동 시절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 또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이 이랬을까? 주거 제한, 통행 제한 같은 지나간 시절의 제도와 예수 탄생지가 공존하는 것을 확인하는 베들레헴 여행에서 돌아오니 가슴이 먹먹하다.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차별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참으로 서글픈 모습이다. 

30분도 안 걸려 버스는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고원에 자리 잡은 예루살렘도 밤공기가 무척 차갑다. 번잡한 동예루살렘의 아랍 거리에 자리 잡은 숙소 주변은 아직은 분주하다. 잠자리에 누워 오늘 찾은 베들레헴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보지만 혼란스럽다. 

성탄절, 말구유, 동방박사, 양치기 목자, 눈 덮인 작은 마을. 그런 것들이 여태까지 내 머릿속에 있었던 베들레헴이다. 예수 탄생 시대에는 베들레헴 인구가 300~1000명 되었을 것으로 추산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이제 인구 2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으니 오늘 눈으로 확인한 베들레헴은 그 이미지를 완전히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리 = 김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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