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업: 보일러 ②] CM송 꽂아넣은 귀뚜라미 vs S라인만 보여준 대성쎌틱

윤지원 기자 2017.11.10 14:22:08

▲2017년 가을 새롭게 온에어 된 귀뚜라미(위)와 대성쎌틱의 보일러 광고. (사진 = 광고 영상 캡처)


에어컨의 계절은 물러나고 보일러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내 보일러 기업들도 앞 다퉈 새로운 TV 광고를 내놓으며 연간 145만 대로 추정되는 국내 가스 보일러 시장을 본격적으로 데우기 시작했다.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대성쎌틱에너시스 등 보일러 매출 순위를 다투는 3대 기업의  최신 TV 광고를 살펴보는 순서의 두 번째다.


I. 귀뚜라미: 친숙한 CM송 편곡해 브랜드 어필에 집중

귀뚜라미의 이번 광고는 단순하다. 30초 광고를 꽉 채우는 CM 송(song)에 맞춰 메인 모델인 가수 홍진영이 춤을 춘다. 배경이 몇 번 바뀔 뿐 구도도 대부분 동일하다. “좋은 보일러가 좋은 집을 만듭니다”라는 메인 카피 한 줄이 나오고 나서 마무리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CM 송이 ‘열일’ 했다. 

이 CM 송은 25년 전 광고에 사용했던 것을 조금 바꿔 홍진영의 목소리로 새로 녹음한 것이다. 25년 전 노래를 가져왔지만 복고 콘셉트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귀뚜라미는 이 노래를 현대적 감각으로 편곡했으며, 이를 통해 40대 이상의 소비자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20~30대 젊은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도록 의도했다고 밝혔다. 홍진영이 메인 모델로 채택된 것도 그녀가 전 연령층에 고루 사랑받는 연예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992년은 이 회사가 사명을 기존 로켓트보일러공업에서 귀뚜라미보일러로 바꾼 지 3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본래 로켓트 보일러라는 브랜드지만 귀뚜라미 보일러라는 별명이 더 유명해진 후 이를 브랜드명으로 삼았고, 아예 사명까지 바꾼 경우다. 귀뚜라미는 대개 ‘거꾸로 타는 보일러’라는 고유 기능도 강조하지만, 브랜드의 유명세를 최대한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사명까지 바꾸고 난 직후에는 말할 것도 없다. 당시 광고에는 ‘귀뚜라미’라는 단어 언급 외에도 귀뚜라미를 의인화 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귀뚜라미 소리를 효과음으로 더하는 등 온갖 감각으로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들 수단을 총동원했다. 중독성 강한 노래 또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브랜드 마케팅을 중시하는 보일러 회사는 귀뚜라미만이 아니다. 현재 보일러 매출로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는 경동나비엔의 성공이 바로 브랜드 변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동기계(주)’에서 1991년 ‘경동보일러’로 상호를 바꾸고 취급하는 제품에 대해 알린 이 회사는 2006년에는 ‘경동나비엔’으로 이름을 바꿨다. 에너지소비가 급격히 증가하던 1990년대에는 보일러를 앞세웠고, 21세기에는 첨단, 글로벌 이미지를 내세울 수 있는 사명으로 바꾼 것이다. 대성쎌틱의 대표 브랜드인 ‘S라인 콘덴싱보일러’도 S자 열구조를 통해 열효율을 높인 자사의 기능성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명칭이며, 이를 10년 이상 밀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는 보일러가 소비되는 특성 때문이다. 보일러는 냉장고, 세탁기처럼 어느 집에서나 필요한 제품이다. 또한, TV가 없는 집보다는 보일러가 없는 집이 더 드물 것이다. 하지만 보일러는 백색가전이나 TV와는 달리 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된다. 이사나 결혼을 할 때도 보일러는 잘 교체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일러는 외관 디자인이나 신기술로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그래서, 꾸준히 팔리는 브랜드라는 점을 어필해 신뢰를 얻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중독성 강한 CM 송과 홍진영의 발랄한 춤으로 브랜드 알리기에 집중한 귀뚜라미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그런 점에서 이번 광고의 일등공신이 바로 노래였다고 할 수 있다. 광고 영상을 긍정적으로 봤다는 시청자들의 댓글을 보면, 대다수가 이 노래의 중독성을 지목한다. “확 들어온다”, “한 번 듣고 외웠다”며 쉽고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라는 평가는, 빠른 파급력과 각인효과가 필요한 광고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이 노래가 들리면 돌아보게 된다”거나, “근래 들은 CM 송 중 가장 좋고 오래 기억된다”며 듣기 좋은 노래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이 노래는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기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여러 댓글 중 ‘수능 금지곡’이라는 표현은 아주 참신하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 때문에 수험생의 집중에 방해될 거라는 의미다. 이와 함께 “‘귀뚜라미=따뜻한 우리 집’이라는 생각에 세뇌되는 기분이다”라는 댓글은, 광고주가 들으면 정말 기뻐할 만한 피드백이다.

좋은 이미지로 끝!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

홍진영은 호감형의 미모를 가진 광고 모델이다. 하지만 이 광고에서는 그의 클로즈업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는 15초 광고 중 절반에 가까운 7초 정도를 풀쇼트(멀리 위치한 카메라로 전신을 다 비추는 화면)로 등장해서 춤을 춘다. 광고의 주인공인 보일러 제품은 1초 정도 딱 한 쇼트 등장할 뿐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홍진영이 춤을 추는 장면들은 계속해서 배경과 의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특히 배경이 중요하다. 여섯 번 바뀌는 배경은 모두 침실, 주방, 거실 등의 집안 모습이다. 한 집도 아니고 여러 집이며, 모두 넓고, 인테리어가 잘 갖춰져 있다. “좋은 보일러가 좋은 집을 만듭니다”라는 카피에 나오는 ‘좋은 집’을 시각적으로 직접 표현한 것이다. 보일러가 좋아서 집이 좋으니, 춤이 절로 나온다는 설정이다. 댓글 가운데도 “배경으로 등장하는 집이 맘에 든다”, “살고 싶은 집이다”, “배경이 따뜻해 보인다”는 등의 반응들이 적지 않아, 기획 의도가 잘 전달된 편으로 보인다.

홍진영의 춤은 발랄하고, 코믹하다. 따라 추고 싶어진다고 반응한 누리꾼도 있다. 그가 여러 예능 프로에서 선보인 장난기와 흥, 밝은 에너지 등이 춤과 표정 등에서 잘 표현되어 전해진다. 홍진영을 따라 팔짝팔짝 뛰는 강아지까지도 흥겹다. 예의 듣기 좋은 노래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점이 광고를 본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전해진 것이다. 한 광고계 인사는 이 광고에 대해 “먼저 귀(CM 송)에 홀리고, 보다 보면 귀여운 춤에 눈도 홀리고, 에너지와 흥에 기분도 홀린다”며 “홍진영 역할이 컸다. 모델이 광고의 전략을 120% 소화한 모범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비판적인 의견들도 있다. CM 송과 홍진영의 애교만을 보여줄 뿐, 귀뚜라미 보일러만의 특징이나 장점은 파악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여자 모델이 춤추는 것과 보일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의견과,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는 있겠지만 제품이 어필되는 데는 부족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광고계 인사는 “무턱대고 ‘우리 브랜드 좋다’고 우기는 게 전부인, 안일하고 올드한 기획”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앞선 인사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 낸 것은 분명하다. 15초 광고는 눈길만 사로잡아도 성공인데, 이 광고는 호감도까지 상승시키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럴 때 구구절절 설명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1992년의 귀뚜라미 보일러 광고. CM 송과 귀뚜라미 캐릭터, 효과음 등을 골고루 사용해 이름 알리기에 집중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II. 대성쎌틱: 프리미엄 추구했지만 "몰라보겠네"

대성셀틱의 새 광고는 중견배우 김성령이 “따져봤어?”라고 보일러 선택 기준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일러 선택의 다양한 기준인 가스비, 기술, 환경 영향 등을 언급하고, 이런 점을 각각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1인 3역으로 표현한다. 그리고는 “따질수록 빈틈없다”는 멘트와 함께 대성쎌틱 보일러의 장점을 자막으로 전한다.

김성령은 우아하고 이지적인 이미지와 꾸준한 활동, 안정적인 연기 등으로 신뢰도가 높은 배우다. 대성쎌틱은 2015년에 김성령과 계약을 맺고 광고의 분위기를 바꿨다. 대성쎌틱이 최근 2~3년 간 김성령을 메인모델로 내세운 일련의 광고들은 프리미엄 보일러 시장을 겨냥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지난해 공개한 광고에서는 유럽의 옛 성 혹은 특급 호텔 스위트룸을 연상시키는 실내에서, 상류사회 모임에 참석할 것 같은 차림새의 김성령을 등장시켰다. 세계적인 명품 화장품이나 의류 브랜드 광고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레벨을 지향하는 광고였다.

이번 광고도 그런 톤과 매너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령이 표현하는 세 캐릭터는 모두 고급스러운 차림을 하고 있다. 특히 가운데는 한쪽이 허벅지까지 트인 빨간 드레스를 입어 평범한 주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배경도 일반 중산층 가정집이 아닌, 세련되고 모던한 공간이다. 광택 나는 붉은 침대 시트나 짙푸른 커튼 등이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인테리어를 어필한다. 이는 이 광고가 ‘프리미엄 보일러’에 관한 광고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프리미엄 보일러 시장에 뛰어들다

국내 보일러 시장에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된 것은 세계 가스 보일러 시장 점유율 1위인 독일 브랜드 바일란트가 2014년 말 한국에 진출하면서부터다. 기존 국내 보일러 시장은 일반 가스보일러와 콘덴싱 가스 보일러 두 가지였는데, 바일란트가 상위 1%의 보일러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지고, 고급주택 단지 및 타운하우스 형태 단지를 대상으로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일란트는 중국에서 이미 지난해 전년대비 33%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아시아 가스보일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기에, 한국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보일러의 성공적 안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2년이 지난 현재 국내 프리미엄 보일러 시장의 확대는 바일란트의 기대보다는 더디지만, 프리미엄 바람은 분명 불고 있다. 서울시와 환경부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 보일러 지원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저가 중심이던 가스 보일러 시장이 중·고가로 점차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중이다. 

매출 상위의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 린나이 등은 이미 프리미엄 보일러를 표방한 제품들을 내세웠다. 기존 국내 보일러 시장이 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좌우되어 왔다면, 이제 더욱 커진 용량과 높아진 효율, 안전성뿐 아니라 친환경 기능 및 IoT 기능을 포함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차별화된 서비스까지 내세운 프리미엄 보일러는 시장을 다양한 방향으로 재편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대성셀틱은 2015년에 ‘와인’이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보일러를 출시했다. 와인은 무선망(Wireless-Network)의 약자이자, 와이파이(Wifi) 기술력이 포함(in)되었다는 의미의 제품명이면서 포도주를 연상시킨다. 기존 콘덴싱 보일러에 IoT 기술을 적용해 편리함을 향상시킨 제품이며, 이름의 콘셉트에 맞춰 디자인도 고급스럽게 바꿨다. 우아한 이미지의 김성령을 전속모델로 캐스팅한 것도 당시 이 제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올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본격적인 프리미엄 브랜드, ‘S-CLASS’를 새롭게 선보였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S라인’ 브랜드를 확장하고, 친환경 고효율의 콘덴싱보일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광고에서 보여주는 제품 역시 ‘S-CLASS' 제품이다.

▲김성령을 메인모델로 한 대성쎌틱 S-CLASS 보일러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제품보다 모델을 보게 한 이유는?"

제품과 광고가 고급스러운 소비를 지향하는 중산층 이상의 40~50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 모델과 의상, 배경, 그리고 재즈 풍 음악까지 모두 적절히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고에 대한 누리꾼의 댓글 반응에서는 고급스러움에 대한 평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드물게 고급스러움을 언급한 댓글은 “처음에는 모델과 제품이 별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알 수 있었다. 보일러가 원하던 이미지가 고급스러운 이미지였기 때문이다”라는 정도였다.

모델과 분위기는 고급스러움을 추구했지만, 정작 제품이 가진 차별점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 광고의 가장 큰 단점으로 분석된다. 댓글 반응에는 “장점 설명하는 시간이 너무 짧게 지나간다”, “제품보다 모델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 이유를 모르겠다”, “장점 설명이 자막으로만 제시되는데, 읽기에 너무 짧아 뭐가 좋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내용들이 많다. “가스비와 기술, 친환경적인 강점은 여느 보일러 광고와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광고계 인사는 “자기네 제품이 더 좋다고는 하는데, 정작 뭐가 좋은지는 알려주지 않으니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경 공간이 모던한 고급스러움을 추구한 것도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배경이 차갑고 시원해서 그런지 보일러의 따뜻한 이미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다. 이런 종류로는 유일한 댓글이지만, 여러 시청자가 이 광고의 고급스러움에 의아해 한다는 점이 바로 이런 간극 때문이 아닌가 짐작하게 만드는 댓글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이 광고에 대해 좋다고 평가한 것은 주로 카피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져봤어?”라고 단호하게 묻는 김성령의 태도가, 보일러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의견, 그리고 “따질수록 빈틈없다”는 카피에서 신뢰감이 든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또한, 김성령이라는 배우가 주부라는 점에서, 똑 부러지는 이미지로 성공한 사람이 선택한 제품이라는 어필이 와 닿았다는 의견도 긍정적이었다.

광고계 인사는 “프리미엄 지향의 제품 및 광고라는 점이 제대로 어필되지 못해서,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S라인이라는 브랜드 명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이름은 본래 대성쎌틱의 S자 가열 기술을 어필하는 데서 비롯됐지만, S라인이라는 표현은 여성의 몸매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대성쎌틱은 브랜드명의 이런 중의적 의미를 이용해 여자 모델의 S라인을 강조하는 요소를 집어넣어 왔다. 하지만 S라인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 단어에는 늘 부정적인 시선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광고에 대한 시청자 댓글에는 붉은 드레스나 각선미에 대해 불필요한 요소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물론 이런 지적은 앞서 다룬 귀뚜라미 광고의 홍진영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이 인사는 “이런 식의 원초적인 대응, 남성 위주의 시선에서 비롯된 자극, 단순한 구조라는 한계가 이번 광고에서은연중에 드러났고, 그것이 달라야만 했던 광고의 차별화를 가로막은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 귀뚜라미 2017년 TV CF : 좋은 보일러가 좋은 집을 만듭니다.




■ 대성쎌틱 - S라인 보일러 및 온수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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