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영화와는 또 다른 뮤지컬 ‘타이타닉’의 감성에 뭉클한 이유

김금영 기자 2017.11.17 15:15:44

▲뮤지컬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사우스햄프턴을 출항해 바다에 가라앉은 타이타닉의 5일 간의 여정을 그린다.(사진=오디컴퍼니)

국내에 뮤지컬 ‘타이타닉’이 첫 상륙했다. 브로드웨이 초연 20년 만에 국내 무대에 처음 오른 뮤지컬 ‘타이타닉’은 ‘지킬앤하이드’ ‘맨오브라만차’ ‘스위니토드’ 등을 선보인 오디컴퍼니와 연출가 에릭 셰퍼, 안무가 매튜 가디너, 무대 디자이너 폴 드푸가 만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역시 뮤지컬 버전 ‘타이타닉’ 소식에 사람들이 흔히 떠올린 건 동명의 영화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타이타닉’은 1997년 개봉해 전 세계에서 흥행했다. 그래서 ‘뮤지컬 속 두 남녀 주인공은 누굴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영화와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가 두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로맨스를 부각시켰다면, 뮤지컬에는 따로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특정 인물만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실제 타이타닉 호에 탑승했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춰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성했다.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하고 배에 남은 스미스 선장과 설계자 앤드류스도 무대에서 볼 수 있다. 1등실 승객들은 실존 인물의 성격과 배경이 거의 동일하게 그려졌다. 스트라우스 부부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구명보트 자리를 젊은이들에게 넘겨 준 감동적인 스토리로 알려졌는데, 영화에는 짧게 등장한 이 노부부가 뮤지컬에 등장하며 영화와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지 않고, 무대 위에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으로 열연하는 구성을 취했다.(사진=오디컴퍼니)

2등실 승객들은 당시 중산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극에 맞게 각색됐다. 3등실 승객들은 아일랜드 이민자가 많았는데 이들에게 타이타닉 호는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이처럼 저마다의 이야기와 꿈을 안고 타이타닉에 탑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우 27명이 그려낸다. 각 배우들은 장면이 변할 때마다 1등실, 2등실, 3등실 승객을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데, 의상과 걸음걸이 등 각각의 특징이 명확해 혼돈의 여지는 없다. 무대 2층 갑판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연주를 펼친다. 실제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도 자리를 지키며 연주했다는 선상 밴드를 떠올리게 하며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보여주기 위해 군더더기 없이 대본이 구성됐다.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 속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하지만 분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대사 또한 거의 노래로 전개되는 송스루(song-through) 형식을 갖춰 꾸준한 집중을 요하기에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독 한국 관객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이유가 있다.  1912년 4월 사우스햄프턴을 출항해 바다에 가라앉은 타이타닉.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흘러 2014년 같은 4월에 한국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가슴 아픈 지점을 연상케 한다.


▲뮤지컬 ‘타이타닉’은 실제 타이타닉 호에 탑승했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춰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성했다.(사진=오디컴퍼니)

극중 3등실 승객들에게 “가만히 자리를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선원과, 배가 가라앉는 와중에도 “당신 때문”이라고 남의 탓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 혼란 속에서도 서로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제 세월호 참사 관련해 보도됐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해 유독 가슴 시리다. 한 선원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극중 14세의 어린 선원은 승객들을 대피시킨 뒤 배에 남는다.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솔직히 두렵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책임을 정확히 알고 회피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준다. 실제의 우리는 어땠고, 어떤 상처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극의 말미에 이르러 와이어를 사용해 연출한 장면은 특히 가장 가슴 아프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극, 그리고 극과 비슷한 상황을 바로 몇 년 전 마주했던 관객들은 ‘타이타닉’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눈을 뗄 수 없다. 과장된 감동이나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실화에 근본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극의 구성이 더욱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공연은 샤롯데씨어터에서 내년 2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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