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51) 모리셔스] “태초에 모리셔스가 생겼으니” 할만큼 아름다운 섬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7.12.11 09:59:4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이스탄불 → 모리셔스 도착)

모리셔스에 도착

새벽 2시 20분, 터키항공기로 이스탄불을 떠난다. 모리셔스까지는 4613마일, 9시간 50분 걸린다. 모리셔스에 접근하니 파란 인도양이 반긴다. 공항 시설은 아주 훌륭하다. 내가 타고 온 터키항공의 A330 대형 여객기 옆에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초대형 A380 여객기도 들어와 있다.

영어, 불어, 타밀어, 중국어를 병기한 입국장 안내판이 이 나라의 복잡한 정체성을 말해 준다. 10세기 아랍 상인들이 오가는 길에 자주 들렀던 것을 시작으로, 16세기 초반에는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포르투갈인이 들어왔고, 이후 네덜란드(1638~1710), 프랑스(1715~1810), 그리고 영국(1810~1968)으로 통치자가 바뀌다가 독립(1968)한 나라다. 

화산섬 모리셔스

오늘 낮 기온 30도, 바다가 사방을 둘러싼 섬의 여름 날씨가 상큼하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대여한다. 좌측통행인 데다가 운전석 왼쪽에 위치한 수동변속기까지…. 익숙하지 않은 운전 조건에 적응하느라 시동을 여러 번 꺼트린다. 

오후 시간을 활용해 섬의 서쪽과 남쪽 탐방을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니 남인도양 한복판 외딴 작은 섬도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면적 2040km², 우리나라 제주도의 1.1배 크기에 120만 명이 거주하는 이 섬은 젊은 화산섬이다. 빈 땅이 거의 없이 사탕수수 밭이거나 주택, 도시, 공장,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다.

▲항공기가 공항에 접근한다. 화산섬 모리셔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진 = 김현주

인도양 문화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인도계가 절반을 넘는다. 마을마다 들어서 있는 힌두교 사원은 남인도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리셔스 인도 이민 180년의 역사가 간단치 않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노예제도 폐지(1835년)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영국은 인도인 계약 노동자를 데려와 이 섬의 인구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어디 여기뿐이랴? 남아공, 싱가포르, 피지, 심지어는 남아메리카 수리남까지 인도 노동자들을 데려갔다. 인도 본토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인도의 색채가 넘쳐나게 된 사연은 이렇게 영국(인도)의 식민지 역사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인도양 문화권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천국이 따로 없다

섬의 중부 내륙 블랙리버 협곡 국립공원을 먼저 만난다. 산 하나하나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숲과 산,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트레킹이나 자전거를 즐기는 유럽인 방문자들도 많이 만난다. 토착 야생 동물을 만날 수도 있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곧 플릭 엉 플락(Flic en Flac) 해변에 도착한다. 해변에는 고급 리조트와 퍼블릭 비치(public beach)가 번갈아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은 항공기로 열 시간 넘게 걸리는 먼 곳이지만 방문자들은 유럽인이 대부분이다. 어느 해변이든 바닷물은 한없이 맑고, 모래는 한없이 부드럽고 희다. 아주 파란, 코발트블루의 바다가 가슴을 뛰게 한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바다를 감격으로 만난다.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맡아본 적이 없는 깔끔하고 상큼한 갯내음은 또한 어쩌란 말이냐?

▲모리셔스 공항 터미널. 영어, 불어, 타밀어, 중국어를 병기한 입국장 안내판이 이 나라의 복잡한 정체성을 말해 준다. 사진 = 김현주

견디기 어렵도록 아름다운 바다

타마린(Tamarin) 해변과 차마렐(Chamarel) 해변을 연이어 지나 숙소가 있는 마에부르(Mahebourg)로 돌아온다. 가끔 오래된 요새와 대포도 보게 된다. 대항해 시절, 동방으로 가는 뱃길을 확보하기 위해 이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섬을 놓고 열강이 각축했던 흔적들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변 도로를 달리는 사이 석양이 깔린다.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바다 색깔이 시시각각 바뀐다. 파랑, 녹색, 노랑, 붉은 빛까지 도는 바다는 견디기 어려운 황홀감에 젖게 한다.

▲옛 사탕수수 정제 공장. 사탕수수는 아직도 모리셔스의 주요 산업이다. 사진 = 김현주

조물주가 숨겨 놓은 비경

당초 여행을 계획하면서 모리셔스에서 온전히 사흘 정도를 지낼 수 있도록 여정을 짰으나, 터키항공의 갑작스런 스케줄 변경으로 체류 기간이 이틀로 줄어 버렸다. 열 시간 넘는 비행  시간을 들여 굳이 머나먼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지 고민도 했으나, 정작 와보니 투자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음을 확인한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말이 맞다. 태초에 모리셔스가 먼저 생겼고, 조물주는 모리셔스를 모방해 천지를 창조했다는…. 황홀한 석양의 해안 드라이브가 끝나고 내륙으로 들어올 때  쯤에는 아예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한국에서 너무 멀어서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쉬울 뿐이다. 적도 건너 남위 20도, 인도양 남쪽 끝 아득히 먼 곳이다. 이렇게 대양 깊숙한 곳에 비경을 감추어 놓은 조물주가 야속해지기까지 한다.


6일차 (모리셔스)

유럽 열강이 각축했던 흔적

오늘은 섬의 동쪽과 북쪽 해안을 탐방한다. 숙소가 있는 마에부르(Mahebourg)를 떠나 동남쪽으로 10km 지점 비외 그랑 포(Vieux Grand Port) 옛 항구에는 이 섬의 초기 유럽인 정착자 네덜란드인들이 건설한 요새와 정착촌이 남아 있다.

이 섬에 흔한 현무암으로 성기게 지었지만 모리셔스에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역사의 페이지를 열었던 곳이다. 1638년에 건설한 초기 유럽인 정착촌은 네덜란드의 모리셔스 포기 및 재점령으로 이어지다가 1722년 프랑스에 넘어갔다. 옛 항구는 훗날 생긴 마에부르에 항구로서의 기능을 넘겨주고 쇠락하고 말았다.

▲모리셔스의 해변. 면적 제주도의 1.1배 크기에 120만 명이 거주하는 이 섬은 젊은 화산섬이다. 사진 = 김현주

정취 그윽한 해변 옛 마을들

모리셔스에는 Beau, Belle 등 단어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프랑스어로 ‘예쁘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결코 과장이나 허명이 아닐 만큼 가는 곳마다 정취 그윽한 옛 마을이 많다. 

사는 사람들 또한 정겹다. 인도계와 함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인도계와 현지 흑인들의 혼혈인 크레올(Creole)이다. 그들의 절묘한 얼굴을 통해 이 섬에서 교차한 여러 문명의 흔적들을 읽는다. 모리셔스 동부 해안은 어제 갔던 서부 또는 남서부 해안에 비해서 개발이 적게 돼 방문자에게는 훨씬 원시에 가까운 풍경을 선사한다. 

굴곡 심한 모리셔스 도로

오늘도 제법 덥지만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가동되는 천연 에어컨 덕분에 더위를 느낄 필요가 없다. 곳곳에 힌두교 사원과 마스지드(masjid, 모스크), 요새 터가 번갈아 나타난다. 대항해 시절 이 섬이 얼마나 중요한 요충이었는지 말해 준다.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이 자란 사탕수수가 열병하듯 서 있는 도로를 달리고 또 달린다. 모리셔스 도로는 수도 포트 루이스(Port Louis)와 공항 구간 1급 하이웨이를 빼고는 대부분 굴곡이 심하다. ‘ㄱ’자, ‘ㄷ’자로 꺾어지는 것은 예사려니와 좁은 노폭에 행인,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맞은편에서 질주해 오는 대형 버스와 트럭들 때문에 운전자는 신경이 곤두선다.

▲섬의 중부 내륙 블랙리버 협곡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산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 = 김현주

훌륭한 관광 인프라

벨르 마레(Belle Mare) 마을 퍼블릭 비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백사장만큼이나 넓은 솔밭은 곧 공원이자 주차장이자 휴식 공간이다. 모리셔스는 전 국토에 걸쳐서 훌륭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심심할 즈음이면 나타나는 퍼블릭 비치, 공원, 무료 주차장, 무료 화장실. 게다가 도로 표지판까지 세심하게 설치해 운전자를 도와준다. 게다가 현지인은 대부분 영어와 불어를 편안하게 구사하는 언어 재능까지 있다. 바다에서 고마운 바람이 불어준다.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휴식의 시간을 즐긴다.

모리셔스의 중국인

섬의 북쪽 끝 그랑 바이(Grand Baie, Grand Bay)를 지난다. 유럽인으로 가득 찬 상업화된 휴양 도시는 태국의 푸켓을 많이 닮았다. 멀지 않은 곳에는 이 나라의 수도 포트 루이스가 있다. 인구 14만 명의 도시는 번잡하지만 세련됐다.

항구에는 크루즈선 여러 척이 닻을 내려 방문자들을 쏟아놓고 있다. 차이나타운까지 있어서 인종, 문화, 언어적으로 다양한 이 나라의 참 모습을 보여 준다. 중국계는 모리셔스 인구의 3%인 3만 5000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모리셔스 이민 역사는 길다. 18세기 후반 광둥성에서 최초 이민자들이 건너온 이후 꾸준히 이 나라에서 기반을 쌓아나간 중국인은 현재 이 나라의 상업과 무역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남쪽 쑤이약(Souillac)으로 내려간다. 끝없는 사탕수수 밭 복판으로 도로가 나 있다. 곳곳에는 오래된 사탕수수 가공 공장의 높은 굴뚝이 남아 있다. 사탕수수는 여전히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하늘이 더 파랗다. 이 마을 외곽에는 폭포가 있다. 모리셔스는 작은 섬이지만 초원, 산, 들, 폭포, 동굴 등 모든 종류의 자연을 접할 수 있다. 토양은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붉고 기름진 테라로사(terra rossa)다.

폭포에서 한 무리의 중국 단체 관광객을 만나 크게 놀란다. 외딴 섬 모리셔스하고도 작은 마을 외곽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단한 중국인이다. 바깥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다. 세계를 향한 그들의 탐구심에 이제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인도양의 보석

블루베이(Blue Bay) 방문을 끝으로 모리셔스 탐방을 모두 마친다. 짧았지만 빡빡했던 이틀이었다.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는 너무 멀어 다시 올 기약은 없지만 그래도 인생에 한 번, 딱 한 번만이라도 이곳에 와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절대자께 감사드린다. 한국에 돌아가도 두고두고 그리울 것 같다. 내가 지나온 해안 도로 한 구비 한 구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작지만 큰 섬, 인도양 아프리카의 보석 같은 곳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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