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55) 네덜란드] 홍등 관광지에 “딴길로 새지 맙시다” 찬송가 울리고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8.01.15 10:26:1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4일차 (오슬로 → 암스테르담 도착) 

홍등가도 관광 콘텐츠

숙소 체크인 후, 인근 홍등가(Red Light District)부터 찾는다. 홍등가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곳, 올드타운 중심에 있다. 홍등가는 우범지대라는 고정관념을 깨듯 넘쳐나는 관광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 골목 저 골목,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린다. 섹스샵, 핍쇼(peep show)에 심지어 매춘 박물관(Museum of Prostitution)까지 있다. 

반나체의 여성들이 쇼윈도에 앉아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아마도 이곳은 네덜란드의 황금기 세계 각국 선원들이 기웃거렸던 시절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출입하기에 위험한 곳이었으나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홍등가에서 바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올드 처치(Old Church, Oudekerk)의 장엄한 고딕 종탑 스피커에선 수시로 찬송가가 나온다. 마침 유명한 찬송가 ‘주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선율이 펴져 나오니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어슴푸레한 저녁은 야릇한 분위기에 젖는다.

▲올드타운 중심에 홍등가가 있다. 홍등가는 우범 지대라는 고정관념을 깨듯 관광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린다. 사진 = 김현주

▲홍등가에서 바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올드 처치에서 ‘주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선율이 울려 퍼졌다. 사진 = 김현주

좁은 땅에 사는 법

암스테르담은 어디를 가도 운하가 환상(環狀)으로 촘촘하게 엮여 도시 곳곳과 바다를 잇는다. 크고 작은 고리처럼 도시를 감싸는 암스테르담 운하, 이른바 ‘Canal Ring’은 17세기에 건설됐고 지금은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좁은 땅에 사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한계를 극복한다.

운하를 따라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마다 옥상에는 외부 화물 승강기(도르래, 기중기)가 있어서 가구 등 무거운 물건들을 집안에 들여 놓을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좁은 내부 계단으로는 운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몸집이 큰 사람들이지만 사는 집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좁다는 것 또한 암스테르담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올드타운. 사진 = 김현주

▲암스테르담은 어디를 가도 운하가 환상(環狀)으로 촘촘하게 엮여 도시 곳곳과 바다를 잇는다. 사진 = 김현주


5일차 (암스테르담)  

작은 나라가 사는 법

월요일 아침 8시, 옆 건물에서는 벌써 집수리 공사가 시작됐다. 드릴 소리, 망치 소리, 톱 소리, 작업자들이 떠드는 소리….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부지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도 한국과 똑같은가 보다. 경제가 어려웠던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정부 주도로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남아공 등으로 해외 이민 장려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을 정도다.

네덜란드인의 외국어 능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국민 대부분이 출중한 외국어 능력을 가진 이 나라에서 87%는 영어가 능숙한 수준이고, 70%는 독일어, 29%는 프랑스어 이런 식이다.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박물관 광장이다. 렘브란트 작 ‘야경’이 소장돼 있는 릭스 박물관을 비롯해 반고흐 박물관 등 도시 곳곳에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산재해 있다. 사진 = 김현주

▲담 광장에서 시내 관광을 마쳤다. 자유와 젊음이 넘치는 암스테르담 대표 광장에는 유럽과 세계 각국의 젊은이가 모두 모인 것 같다. 사진 = 김현주

순환버스 투어가 딱 어울리는 도시

역 광장에 나가 버스 투어에 오른다. 시내를 순환하는 Hop On & Off 버스와 보트를 합쳐 1일권 28유로이니 괜찮은 가격이다.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어 다닐 만큼 작지도 않은 암스테르담에서는 최상의 선택이다. 

버스는 역 광장의 랜드마크인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olaas Kerk)를 지나 옛 조선소 앞에 들른다. 성능 좋은 플류이트(fluyt) 네덜란드 범선들로 가득 찼을 조선소의 모습이 그려진다. 1650년 무렵 이미 1만 6000척의 배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 해양 왕국의 심장 같은 이곳은 1697년 러시아 피요트르 대제가 목수 신분으로 취업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웬 열대 박물관?

버스는 곧 열대 박물관(Tropical Museum)을 지난다. ‘이 서늘한 여름 날씨에 웬 열대 박물관?’이라며 의아해도 했지만 과거 네덜란드 황금기 때 전 세계에 식민지(해외 영토)가 없는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곧 이해가 간다. 

좁은 땅에 살았지만 넓은 바깥세상을 꿈꿨던 조상들의 개척 정신을 기리는 것과 함께 열대 지방을 착취했던 잔혹한 식민주의에 대한 치열한 반성의 메시지가 담긴 곳이다. 유대인 거리를 지나자 곧 하이네켄 박물관이다. 운하가 더러워져서 더 이상 물을 마실 수 없게 된 암스테르담에서 맥주는 그렇게 성장했고 문화가 됐다.

▲버스를 타고 암스테르담 투어에 나섰다. 도중에 역 광장의 랜드마크인 성 니콜라스 교회도 발견했다. 사진 = 김현주

네덜란드의 유대인

박물관 광장(Museumplein)에서 시내 관광은 절정을 이룬다. 렘브란트(Rembrandt)의 ‘야경’(Night Watch, 1642)이 소장돼 있는 릭스 박물관(Rijksmuseum)을 비롯해 반고흐 박물관(Van Gogh Musem) 등 도시 곳곳에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산재해 있다.

웨스터케르크(Wester Kerk) 부근 안네 프랑크 하우스(Anne Frank Huis)에 들른다. 2차 대전 발발 시 암스테르담 인구의 10%가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이 도시의 높은 포용력 때문에 스페인의 국토 회복(레콩키스타, Reconquista, 1492) 이후 추방당한 이베리아 반도 출신 유대인은 물론이고 훗날 동유럽에서도 많은 유대인 이민자가 들어왔다.

유대인 이민자들은 주로 무역과 다이아몬드 세공업에 종사하며 도시의 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다이아몬드 세공술은 지금도 네덜란드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사정이 이랬으니 나치의 힘이 커지면서 특히 이곳에서 유대인 박해가 심했던 사연을 이해할 만하다. 2차 대전 말기 긴박했던 시절, 이 거리 어디에선가 독일군 군화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오는 것만 같다.

버스 투어가 끝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보트 투어로 도시를 한 바퀴 더 돌아본다. 북방의 베니스. 과연 물의 도시임을 실감한다. 담 광장(Dam Square)에서 시내 관광을 마친다. 자유와 젊음이 넘치는 암스테르담 대표 광장에는 유럽과 세계 각국의 젊은이가 모두 모인 것 같다. 작은 도시에는 방문자가 넘쳐난다. 역 광장에서 담 광장까지의 인도는 행인들로 메워져 걸음이 더딜 정도다. 연간 700만 명이 찾는 국제도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볼 것과 생각할 것이 많은 깊이 있는 도시라는 뜻일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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