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59) 북아일랜드] ‘식당은 예뻐야 함’ 일깨워주는 더블린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8.02.12 09:41:4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1일차 (벨파스트 → 더블린 도착)


가장 예쁜 집은 술집


도시의 소담한 거리와 골목들을 계속 걷는다. 더블린에서 아마도 가장 예쁜 집은 술집과 식당인 것 같다. 집 전체가 예쁘게 꾸며졌을 뿐 아니라 꽃이 넘쳐나도록 피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가 바로 ‘꽃의 도시’ 아닌가? 더블린의 별칭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왜 술집과 식당이 예뻐야 하는지 자명한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바쁘게 먹고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데 평생 익숙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잊고 있었던 예쁜 식당, 예쁜 술집의 의미를 더블린에 와서 배운다. 아마 이런 것도 작은 나라 아일랜드가 수천 년 열강 틈바구니에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방식 아닐까? 


그 중에서도 유명한 술집은 아직 대낮인데도 가득가득 손님들로 차 있다. 웃음소리, 노래 소리가 들리는 그 선술집에 들어가 그들 사이에 끼어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다. 솔로 여행자가 가장 애절하게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이다. 하루 여행기를 정리하는 밤늦은 시각, 숙소 부근 유흥가 거리에서는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분명 아일랜드에 와 있는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듣기 힘든 소리다. 펍과 나이트클럽이 유독 많은 유흥의 도시답다.

 

‘꽃의 도시’ 더블린은 집 전체가 예쁘게 꾸며졌을 뿐 아니라 꽃이 넘쳐나도록 피어 있다. 사진 = 김현주
더블린 거리 모습. 펍과 나이트클럽이 유독 많은 유흥의 도시답다. 사진 = 김현주

공원의 도시


성 스테판 정원(Saint Stephen’s Green)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푸름이 가득한 정원(공원)이 더블린 시내에는 여러 개 있다. 그린이 풍부한 유럽에서도 더블린은 더 많고 넓기로 유명하다. 더블린에는 박물관도 많다. 게다가 모두 무료 입장이다. 예술, 현대 미술, 고고학, 자연사 박물관 등도 시내 중심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더블린 성(Dublin Castle)도 이 도시의 명소다. 노르만 시절 건축된 성을 비롯해 교회 등 다양한 역사 유적이 모여 있는 더블린 관광 1번지다.


마지막으로 성 패트릭 성당(Saint Patrick’s Cathedral)에 들른다. 1191년 건립된 아일랜드의 국가급 성당이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높고(41m), 가장 큰 성당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중앙우체국(GPO, General Post Office) 앞을 지난다. 더블린 중심에 자리 잡은 건물은 이 나라의 가장 상징성 높은 랜드마크다. 지난 200년 동안 우체국 고유의 역할뿐만 아니라 파란만장한 아일랜드 역사의 목격자로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독립전쟁 등을 겪으며 불타거나 부서진 것을 1929년에 복원했다.

 

더블린 성도 이 도시의 명소다. 노르만 시절 건축된 성을 비롯해 교회 등 다양한 역사 유적이 모여 있다. 사진 = 김현주
성 패트릭 성당에 들렀다. 1191년 건립된 아일랜드의 국가급 성당으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높고(41m), 가장 큰 성당이다. 사진 = 김현주

유럽의 한국인?


소박하지만 재능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수도 탐방을 마쳤다. 내일 스위스로 떠나는 일정 때문에 이 나라,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더는 탐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뭔가 가슴 속에 남는 게 하나 있는 것도 같다. ‘한국인은 아시아의 아일랜드인?’ 또는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한국인?’ 생뚱맞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식민지 역사가 그렇고 자존심 강한 것이 그렇고, 술과 가무를 즐기고 가족주의가 강한 것이 그렇다.


지난밤에도 숙소 바깥 창 너머에서 떠들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오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심지어 마늘을 먹는 것까지도 그렇다. 유럽 백인 중에서 앵글로 색슨은 마늘을 먹지 않는데 말이다. 크지도 않은 섬이 수백 년 영국 통치를 막 벗어날 즈음 영국에 의해서 분단됐다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아일랜드인은 2등 백인’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영국이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편견의 결과 아닐까 곰씹어 본다.

 

 

12일차 (더블린 → 제네바 → 스위스 그린델발트 도착)


마음 설레게 하는 스위스


스위스 제네바 행 항공기에 오른다. 힘든 여행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미지의 세계를 앞두고 늘 마음이 설렌다. 세계인이 모두 일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 스위스는 어떤 모습일까?

 

스위스는 쉥겐(Schengen) 지역이어서 유럽 내 출입은 자유롭지만 유로 국가는 아니고 유로화 지역은 더욱 아니다. 스위스 프랑(CHF)이 이 나라의 공용 화폐다. 유로 국가 중에서는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많아서 서유럽을 벗어나면 수시로 화폐가 바뀌는 것이 꽤나 성가시다. 제네바 공항에서 약간의 유로화를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하니 손에 쥐는 것이 몇 푼 되지 않는다. 환전 수수료가 놀랍도록 비싸다.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절감한다.

 

스위스 그린델발트 풍경. 산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지는 스위스 특유의 멋진 풍광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유럽의 교차로


면적 4만 1100㎢, 남한의 2/5 면적에 불과하고 게다가 알프스 산악 지역이 전 국토의 60%를 차지한다. 마터호른(Matterhorn, 4478m), 융프라우(Jungfrau, 4158m) 등 4000m가 넘는 산이 48개나 있는 명실공히 산악 국가다. 스위스는 작지만 기후와 풍광뿐 아니라 문화, 언어, 인종적으로도 다양하다. 게르만 유럽과 로망스 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한 만큼 언어 비율로는 독일어 사용자 64%, 프랑스어 23%, 이태리어 8%가 공존한다.


1648년 신성로마제국에서 분리 독립해, 1815년에는 전쟁 없는 영세 중립을 선언한 평화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적십자사 본부를 비롯해 세계 평화의 중심지 역할을 자임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다. 특수 화학(건강, 의약품), 정밀 기계 등 부가가치 높은 제조업과 함께 은행, 보험, 관광, 국제기구 등 서비스 산업도 발달해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소득을 누리는 국가임은 잘 아는 사실이다.

 

산악 도로가 험하기는 해도 안전 시설이 잘 돼 있어서 운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사진 = 김현주

여행 경비 많이 드는 스위스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운전해 제네바 공항을 빠져 나온다. 레만 호수(Lac Léman)를 오른 쪽에 끼고 로잔(Lausanne) 방향으로 간다. 이번 여행길에 연이어 렌터카를 이용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비용과 시간 절약이다. 물가가 매우 비싼 스위스에서 차량을 이용해서 이동하면 여행 기간을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숙박과 식사 비용 또한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끼니로 해결한 빅맥 세트는 13 스위스 프랑, 한화 1만 6000원이니 말이다.


또한 예를 들어 인터라켄(Interlaken)에서 융프라우 가는 편도 두 시간 남짓 거리의 등반 열차는 왕복 20만 원이 넘는다. 곳곳 깊숙이 숨어 있는 스위스 비경 탐방을 위해서도 자동차가 편리하고 자유롭다. 나는 제네바 공항에서 BMW 110d 디젤 차량을 무제한 거리 조건으로 2박 3일, 48시간 대여했고 여기에 완전 면책 자차 보험(zero deductible, zero excess)을 구입하니 예상 견적이 한화 30만 원 가량 된다. 자유롭고 빠른 이동을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스위스 운전 숙지 사항


다만 주의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스위스는 자동차 운행 관련 법규가 매우 엄격해 과속은 절대 안 된다. 스위스 경찰은 여행자가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라도 국제 경찰 공조를 통해서 범칙금 고지서를 보낼 정도로 집요하다고 한다. 주차 위반, 버스 차로 위반, 자전거 전용로 위반, 보행자 우선 배려 위반, 로터리(round-about) 통행 방법 위반 등 곳곳에 복병이 숨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산악 도로가 험하기는 해도 안전시설이 잘 돼 있어서 운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한국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 도로를 운전해 본 사람이면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과 상쾌함으로 출발한 스위스 렌터카 여행은 여행이 끝난 후 엉뚱하고도 불쾌한 경험으로 나를 괴롭혔으니 그 이야기는 추후에 하기로 한다.


유럽 다른 지역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스위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주의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스위스의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없는 대신 연간 통행료 비넷(vignette)을 선납한다. 외지 차량이 스위스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비넷을 반드시 구입해야 하고(40 스위스 프랑, 한화 5만 2000원) 만약 경찰에게 적발되면 200 스위스 프랑(한화 26만 원)이라는 무거운 벌금을 내야 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그린델발트 산악 철도가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우리 집은 저 스위철랜드 맑은 호숫가♬


국제올림픽 위원회(IOC)가 위치한 로잔, 세계의 시계 수도라고 불리는 정밀 기계의 도시 베른(Bern)을 지날 즈음에는 도로 표지판이 독일어로 모두 바뀐다. 삽시간에 불어권에서 독일어권으로 건너온 것이다. 


난데없이 비가 거세게 퍼붓는다. 무서운 폭우를 뚫고 달리며 산중의 변덕스런 날씨를 체감한다. 인터라켄(Interlaken)을 앞두고 산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지는 스위스 특유의 멋진 풍광이 나타난다. 학교 시절 배웠던 스위스 민요가 절로 생각난다. ‘오브레넬리, 당신 집은 어디입니까? 네, 우리 집은 저 스위철랜드 맑은 호숫가~’로 이어지는 노래 말이다.


숙소를 예약해 놓은 융프라우 북쪽 아이거 북벽(Eiger North Face) 기슭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 도착할 즈음에는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깊은 산중 마을, 여행자는 상념에 빠진다. 이따금 지나는 등산 열차만이 밤의 적막을 깬다. 얼마나 오랫동안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간직해 왔던 곳인가? 내일 펼쳐질 풍광을 그리며 잠을 청한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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