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전시]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에 차가 한 대도 없는 이유

아시프 칸과의 협업으로 수소자동차가 가져올 평등한 미래 표현

김금영 기자 2018.02.23 09:39:56

평창올림픽플라자에 마련된 현대자동차 파빌리온. 약 370평, 높이 10m 규모의 파빌리온의 외벽은 우주를 상징한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전 세계인의 축제의 장인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 이 현장에 마치 시공간을 가른 듯 독특한 건물이 등장했다. 새까만 건물에 각기 다른 길이의 LED 기둥이 꽂혔는데, 꼭 무한한 우주를 부유하는 별들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 같다. 오묘한 풍경에 사람들이 블랙홀에 빨려들 듯 계속 몰려든다.

 

현대자동차와 영국 건축가 아시프 칸의 협업 프로젝트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이 올림픽 기간(동계올림픽 2월 9~25일, 동계패럴림픽 3월 9~18일) 동안 평창올림픽플라자를 채운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을 후원하는 현대자동차는 평창올림픽플라자에 차량 전시 위주의 홍보관을 만드는 대신, 아시프 칸과의 예술 협업을 통해 브랜드 체험관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을 구성했다.

 

‘워터(water)’ 전시실에서는 2만 5000개의 물방울이 센서에 의해 수백미터의 대리석 수로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로에 마련된 구멍에 물을 넣으면 물방울들이 흐르기 시작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조원홍 현대자동차 고객경험본부장 부사장은 “제네시스 브랜드 분리 이후 현대자동차는 고급차 브랜드와 차별화된 대중차 브랜드로서 인식됐다. 이 가운데 대중 브랜드이지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프리미엄한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은 ‘모던 프리미엄 익스피리언스(Modern Premium Experience)’가 현대자동차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브랜드 철학을 설명했다.

 

조 부사장은 이어 “자동차의 기술만 강조할 게 아니다. 고객들이 자동차를 구매하고 삶에 이용하는 과정까지 모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품격 있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며 “기술을 기술 그대로가 아니라 예술과 결합해 보여주는 것도 이런 브랜드 철학에서 비롯됐다. 자동차를 단순히 파는 게 주요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 표현하고, 미래 사회를 바라보며 비전을 제시하는 것, 즉 고객의 삶에 직접 녹아들며 브랜드 철학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관람객들이 만든 물방울들은 큰 호수를 만들었다 사라지는 과정을 10분마다 반복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를 위한 과정으로 아시프 칸과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을 구현했다. 아시프 칸은 문화와 연계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해 왔는데, 특히 관람자의 반응을 중요시하는 인터랙티브 예술을 지향한다. 2014년 소치 올림픽파크에는 방문객의 얼굴을 빠른 시간에 스캔해 3D로 8m 높이 건물 외벽에 구현하는 ‘메가 페이스(Mega Face)’ 프로젝트를 선보여 칸 광고제에서 혁신부문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또한 아시프 칸은 카자흐스탄 전통 텐트 유르트에서 영감을 받아 2017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 엑스포 영국관에 유리막대들을 설치했다. 이 유리막대는 사람들이 만지면 빛이 나고, 센서로 연결된 스크린의 영상이 변하는 등 시시각각 사람들에 반응해 눈길을 끌었다. 교감을 중요시하는 혁신적인 작업 스타일로 2011년 마이애미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미래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워터(Water)’ 전시실을 지나면 태양 에너지를 표현한 공간이 이어진다.(사진=신경섭)

지성원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 워크스 실장은 “협업 파트너를 정할 때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현대자동차를 떠올렸을 때 자동차, 혹은 기술력으로만 브랜드를 대변할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과 혜택을 주며 소통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며 “아시프 칸은 이런 면에 매우 탁월했다. 또한 아시프 칸은 다양한 파빌리온 작업을 세계 곳곳에서 펼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그가 현대자동차와 협업에서 좋은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아티스트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소 에너지를 직접 만들어보는 관람객들

칸 "눈으로 보는 지식과 직접 체험은 다르다"

 

물의 전기분해를 표현한 방.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진=김금영 기자)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은 ‘수소 에너지’에 대해 다룬다. 조원홍 부사장은 “올림픽 정신은 국가, 인종을 초월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에서 비롯된다. 이 올림픽 정신이 현대자동차의 미래 비전과도 맞닿았다”며 “수소는 고갈의 위험, 산유국과 비산유국의 불평등, 높은 비용부담 등의 제약이 없는 궁극의 에너지원이다. 수소전기차가 가져올 평등하고 무한한 미래 사회를 꿈꾸는 현대자동차의 비전을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파빌리온을 통해 제시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파빌리온은 수소 자동차를 전시하는 게 아니라 수소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며 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해시켜주는 형태로 꾸려졌다. 가장 먼저 건축 면적 약 370평, 높이 10m 규모의 외관을 마주하게 된다. 외벽 4개 면이 우주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파사드 작품 ‘유니버스(Universe)’다. 수소전기차의 연료인 수소가 우주의 75%를 차지하며, 태초에는 우주와 모든 생명의 에너지원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충전된 수소가 자동차 연료전지 안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표현한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이 작품에 특수한 재료 ‘반타블랙VBx 2’를 사용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어둡다”고 일컬어지는 재료다. 작가는 “빛을 99% 흡수해 가두고 이를 반사하지 않아 아주 어둡게 보이는 소재다. 맨눈으로 봐서는 평면의 굴곡 등 정확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점점 가까이 갈수록 형태가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작가는 “마치 우주를 관측하는 위치에 따라 별이 달라보이듯, 파사드 작품 유니버스는 관람자가 건물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인다. 광활한 우주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라 판단해 사용했다. 보통 과학자들은 이 소재를 아주 작은 나노스케일로 다루는데, 수백만 배 큰 건축물로 만드는 건 큰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꽂힌 LED 기둥들은 별을 상징한다.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별이 바로 수소가 만들어내는 물질이라는 걸 깨달은 뒤 수소를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의 답을 얻었다”며 “또한 우리는 별을 통해 꿈을 꾸고 영감을 받는다. 수소를 표현할 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꿈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이 어두운 우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까만 외부와 달리 새하얀 세상이 나타난다. 모두 두 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는데, 메인은 ‘워터(Water)’라는 이름의 실내 전시실이다. 이 전시실에서 2만 5000개의 물방울이 센서에 의해 수백 미터의 대리석 수로를 따라 초속 1m의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 물방울들을 만드는 건 관람자다. 전시장 한쪽에 흐르는 물을 담아 수로 위에 쏟아 부으면 이 물방울들이 흐른다.

 

깨끗한 물의 방은 천장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파동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수소를 주제로 한 전시들을 많이 봤는데 흥미로웠던 게 없었다. 수소가 만들어지는 이론적인 지식을 나열해 그냥 눈으로 보게 전시해 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관람자가 몸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며 “이번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의 경우 수소 에너지가 가져올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을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고 작업의 주안점을 밝혔다.

 

관람객들이 만든 물방울들은 커다란 호수를 구성하고 사라지기를 10분마다 반복한다. 또 수로 곳곳에 설치된 바람이 나오는 구멍 위에 손을 가져다 대면 물방울들의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 작가는 “우주와 물방울은 모두 수소로 구성돼 있다. 넓은 우주와 아주 작아 보이는 물방울의 근원은 같은 것”이라며 “관람자가 우주의 규모에서 시작해 작은 물방울의 규모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사진=김금영 기자)

또 이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하나의 큰 호수를 구성하는 모습은 꼭 개개인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작가는 “전시장 내부를 돌아다니는 물방울들은 개개인이 가진 목표와 열정도 상징한다. 이 물방울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씨앗이 된다”며 “사람들이 미래 수소와 맺게 될 관계를 표현하는 동시에 하나로는 작아 보이지만 우리가 힘을 합치면 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워터’ 옆으로는 4개의 각각 다른 소재와 감각적인 색으로 구성된 ‘하이드로젠(Hydrogen)’ 전시실이 이어진다. 수소 추출부터 수소전기차 구동 이후 물의 배출까지 수소전기차의 원리를 4단계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4개의 방은 각각 태양 에너지, 물의 전기분해, 연료전지, 깨끗한 물을 상징한다.

 

태양 에너지 방은 다른 전시실과 비교해 가장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물의 전기분해 방에는 큰 물방울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들이 설치됐는데 마치 거울의 방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할 만큼 투명하다. 연료전지 방에는 빛을 담은 구조물들이 눈에 띄고,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의 방에서는 물 한 방울이 일으키는 파장을 볼 수 있다. 천장 위에 물 일부를 담아 놓은 뒤 이곳에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물방울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물결이 생긴다.

 

(왼쪽부터) 아시프 칸, 조원홍 현대자동차 고객경험본부장 부사장, 지성원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 워크스 실장이 2월 12일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모든 과정이 태양 에너지로 생성된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고, 충전된 수소는 자동차 연료전지 안에서 전기를 만들어 수소전기차를 달리게 한 뒤, 다시 깨끗한 물만을 남기는 수소전기차의 순환 과정을 상징한다.

 

아시프 칸의 국내 첫 협업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측에 따르면 전시 오픈 3일 만에 6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작가는 “나는 실험적 협업을 좋아한다. 이번 현대자동차 파빌리온도 흥미로운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항상 첫 프로젝트는 신혼여행처럼 설렌다”며 “과학과 미술 둘 다 관심이 많은데 건축을 통해 그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소수 엘리트들의 취미가 아닌 모두의 건축이 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추후 두바이, 런던, 카자흐스탄, 대만 등에서 건축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현대자동차 파빌리온을 통해서 받은 영감으로 재미있는 작업들을 앞으로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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