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누군 일당 10만, 누군 수억 원? 황제 노역 사라진다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기자 2018.03.19 09:41:02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황제 노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형법의 제도적 맹점에서 생겨났습니다. 형법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벌금을 내지 않으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역장에 유치되는 일수에 따라 매일 일정한 금액의 벌금을 공제합니다. 벌금을 내지 않고 대신 몸으로 때우는 것입니다. 법률 용어로는 ‘환형유치제도’라고 합니다. 


과거 우리 형법은 노역장 유치 기간을 ‘1일 이상 3년 이하’로만 규정하고, 며칠 동안 노역장 유치를 선고할 것인지는 판사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대략적인 기준은 정해져 있는데, 보통 판사가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1일당 5만 원에서 10만 원의 노역장 유치를 함께 선고합니다. 


그런데 벌금의 액수가 너무 큰 경우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노역장 유치는 아무리 길어도 3년이기 때문에, 벌금의 액수가 크면 하루당 공제되는 벌금의 액수도 커지게 됩니다.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아도, 벌금 1000억 원을 선고받아도, 노역장 유치는 최장 3년 이상을 선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된 법규, 61년 만에 개정돼


여기서 황제 노역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노역장 유치가 되는 경우 하루에 10만 원씩을 공제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 수백만 원에서 심지어 수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공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일부 기업인들이 벌금 수십억 원을 선고받고도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고작 몇 십일 정도의 노역으로 벌금 납부를 대신한 일들이 바로 이 조항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노역장 유치와 관련된 형법 제70조는 우리 형법이 제정된 1953년에 규정되었고, ‘로역장 유치’가 ‘노역장 유치’로 바뀐 것 외에는 그대로 있었던 조항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개정되지 않고 있던 이 형법 규정은 ‘황제 노역’ 사건으로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고, 결국 2014년 개정되었습니다. 


개정 형법은 선고하는 벌금이 1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300일 이상, 5억 원 50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500일 이상, 5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1000일 이상의 유치 기간을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1억 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할 때는 최소 300일 이상의 노역장 유치를 해야 하며, 벌금의 액수가 커지면 3년이 넘는 노역장 유치가 가능하도록 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칙에서 이 조항은 ‘법 시행 후 최초로 공소가 제기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벌금 1185억 원을 구형함에 따라 징역형 후 강제 노역을 하게 될 경우 일당이 최소 1643만 원짜리 ‘황제 노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이 조항과 관련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습니다.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A 씨는 2012년 하반기와 2013년 상반기의 부가가치세 확정 신고 당시에 197억 원 상당의 허위 세금 계산서 합계표를 제출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법원은 ‘징역 1년 6월 및 벌금 20억 원에 처하고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400만 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A씨가 벌금 20억 원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경우, 최장 50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된다는 것입니다.


A 씨는 벌금 액수가 5억 원 이상 50억 미만인 경우 반드시 500일 이상을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정한 형법규정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는 개정법 시행 전인 2012년과 2013년에 이루어진 것인데도 새로운 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어제의 죄를 벌하려 오늘 새 법 만들면 안 돼


일단 헌법재판소는 고액 벌금을 선고할 경우 노역장 유치 기간의 하한을 정한 규정은 합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형법 부칙에서 ‘법 시행 후 최초로 공소가 제기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한 부분은 위헌으로 보았습니다. 

1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은 최순실이 벌금을 전부 다 못 내는 경우 ‘황제 노역’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우리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형벌 불소급의 원칙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당시 그 범죄를 처벌할 법률이 없다면, 나중에 법률을 만들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노역장 유치가 그 자체로 독립된 형벌은 아니지만, 노역장 유치 명령을 받은 경우 징역형 수형자와 함께 교도소에 수감되어 정역(定役: 강제 노동)에 복무하는 등 실질적으로 징역형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노역장 유치에 관한 조항을 소급적용하도록 규정된 형법 부칙을 위헌으로 본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A 씨의 경우에는 개정 형법이 아니라, 예전 형법에 따라 다시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새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황제 노역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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