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63) 모스크바] 떠나고 싶지 않은 美와 情의 러시아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8.03.19 09:41:02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일차 (세르기예프 → 모스크바 도착)


모스크바 도시 탐방을 시작하다


모스크바 시내 출근길 교통 혼잡을 감안해 일찌감치 숙소를 나선다. 오전 11시, 셰레메티에보 공항에 무사히 차를 돌려주니 3박 4일, 72시간 동안 909km를 주행했다. 연비 좋은 현대 소형차에 유류비 저렴한 러시아라서 연료비는 모두 4만 원 들었다. 머나먼 북방 코스트로마로부터 어제 묵은 세르게예프 포사트까지 지나온 길이 아련히 기억에 남는다. 시내로 나와 숙소에 체크인 하고 모스크바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국립 모스크바 대학(Moscow State University)부터 찾는다.


숲속 같은 국립 모스크바 대학


모스크바 대학의 고색창연한 캠퍼스를 걷는다. 1775년 시내에서 시작해 1953년 스탈린 시절 이 자리로 옮겨 왔으니 족히 60년이 넘은 캠퍼스다. 공원인지 캠퍼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속이다.


도심 속 빽빽한 빌딩 숲 캠퍼스에 익숙한 나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기 캠퍼스 주요 건물들은 거대한 백색 콘크리트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캠퍼스 중앙 본관 건물은 높이 240m, 중앙 30층, 좌우 양측 17층의 초대형 건물이다. 이른바 ‘스탈린 양식’의 소비에트식 고층 건물로서 모스크바에서는 여기 말고도 외무성, 우크라이나 호텔 등 7개가 있다. 중앙 건물 중간쯤에는 ‘CCCP(USSR)’ 마크가, 꼭대기에는 붉은 별 등 소비에트 제국의 상징이 남아 있다. 제국은 해체됐지만 그 상징은 그대로 여기 남겨뒀으니 여전히 제국을 주장하는 러시아인의 마음을 읽는다.

국립 모스크바 대학 캠퍼스에서 생물학도 이반을 만났다. 그에게 한국은 낯선 곳이라고 했다. 사진 = 김현주

캠퍼스에서 이반(Ivan)이라는 남학생을 만난다. 내가 다녀온 북쪽 야로슬라블 출신의 생물학 전공, 3학년이란다. 그에게 한국은 매우 낯선 곳이다. 모스크바에서 서울까지 하루 두 번 대형 직항기가 다닌다고 하니까 놀란다. 이번 여행 중 내가 만난 거의 모든 러시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나라 땅 동쪽 극동이나 시베리아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한국은 아득히 먼 동방의 어떤 나라쯤일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에게 러시아는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명랑한 러시아 아가씨들


가로수 울창한 숲길을 걸어 강변으로 나간다. 모스크바 강이 ‘S’자로 꺾이는 꼭짓점 남쪽 끝과 대학 캠퍼스가 닿았으니 주변 풍광은 그만이다. 강변에는 북방의 여름 오후를 맞아 많은 시민들이 산책 나왔다. 여대생 세 명과 우연히 대화를 나눈다. 까챠, 다샤(다리아), 그리고 아냐…. 꽃다운 나이 스무 살 안팎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장래 변호사를 꿈꾼다. 한결같이 일자리, 그리고 장래 걱정이 깊지만 표정만큼은 파란 하늘만큼이나 밝고 명랑하다. 아직은 경제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러시아의 현실을 말해준다.

명랑한 러시아 아가씨들을 만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장래 변호사를 꿈꾼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공감하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나는 미안한 마음만 든다. 그들의 앞길에, 그들이 사랑하는 조국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비는 마음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따뜻하고 우아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저녁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는다.

 

 

21일차 (모스크바)


극장 광장의 볼쇼이 극장

극장 광장의 주인공 볼쇼이 극장. 세계 공연 예술의 본산답게 매우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사진 = 김현주

극장 광장(Teatralnaya Ploschad)에서 도시 탐방 2일차의 아침을 시작한다. 이 광장의 주인공은 당연히 볼쇼이 극장(Bloshoi Theatre)이다. 세계 공연 예술의 본산답게 매우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리스 도리아식 원주 8개로 떠받친 지붕에 얹은 말 4마리와 로마식 전차 장식이 멋지다. 올여름 웬만한 공연 티켓은 가장 싼 것은 6만 원, R석은 24만 원 정도 하지만 극장 재정은 열악하다. 정부의 재정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에서 낙후한 시설을 보수해 가며 빠듯이 꾸려나간다고 한다.


 

붉은 광장에 자리잡은 굼 백화점. 사진 = 김현주

붉은 광장에 발 딛다


극장 광장 앞에서 시작해 크렘린 북단까지 이어지는 넓은 대로, 즉 혁명 광장을 지하도로 건너 드디어 붉은 광장에 입성한다. 광장 북단 초입의 오른쪽(서쪽)은 국립역사박물관, 왼쪽(동쪽)은 굼(Gum) 백화점, 그리고 남쪽 광장에는 그 유명한 성바실리 성당이 있다.

붉은 광장 서편을 따라 길고 높게 이어지는 성벽이 모스크바 크렘린이다. 사진 = 김현주
크렘린 남쪽 출구로 나오면 성 바실리 성을 만난다. 세계를 다니면서 봤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사진 = 김현주

광장의 서편을 따라 길고 높게 이어지는 성벽이 곧 모스크바 크렘린이다. 크렘린은 5각형 구조로서 둘레 2.2km, 높이는 5~20m이고 남쪽 끝은 모스크바 강변에 닿아 있다. 크렘린 안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망루, 우스펜스키 사원, 불라고베시첸스크 사원, 아르항겔스크 사원 등 화려한 건물들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야말로 러시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들이 여기 모두 모여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크렘린 남쪽 출구로 나오면 성 바실리 성당(Saint Basil’s Cathedral)을 만난다. 47m 높이의 중앙 ‘양파 돔’과 높고 낮은 8개의 작은 양파 돔으로 이뤄진 이 성당은 아마도 내가 세계를 다니면서 봤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다만 조금만 더 크게 지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욕심도 부려본다.


이 성당은 이반 3세가 몽골의 카잔 칸을 항복시키고 국토를 회복한 것을 기념해 이반 4세(Ivan the Terrible) 때인 1555년 건축을 시작해 1560년 완공했다. 6년 걸려 완성된 성당을 본 이반 4세는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탄복해 다시는 이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설계자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1812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건축한 비잔틴 양식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사진 = 김현주

크렘린과 어울리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크렘린 성벽을 따라 모스크바 강변을 걷는다. 저 높은 성벽을 두고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천히 15분쯤 걸었을까?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Cathedral of the Christ the Savior)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1812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건축한 비잔틴 양식의 성당이다. 러시아 어느 도시를 가도 시내 중심에 같은 이름으로 서 있는 성당의 원형이 여기 있는 셈이다. 성당도 성당이지만 바로 옆 모스크바 강 위에 놓인 보행자 다리에 오르면 사방으로 모스크바의 전경을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다리 위에 서니 방금 지나온 크렘린 성벽과 내부가 마법의 성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전설의 록커 빅토르 초이


걷다 보니 결국 오늘도 많이 걸었다. 다리가 뻐근해질 즈음 아르바트(Arbat) 거리에 닿는다. 아르바츠카야(Arbatskaya) 지하철역부터 스몰렌스카야(Smolenskaya) 지하철역까지 이어지는 보행자 거리다. 지나치게 상업화돼버려서 아쉽지만 거리를 메운 젊은이들 덕분에 낭만이 넘친다. 거리 악사, 거리 미술사들이 프로의 경지를 넘는 솜씨를 뽐내는 것을 보며 분명 내가 러시아 모스크바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한다.


아르바트 거리 중간쯤에는 한국인 방문자들의 발길이 오래 머무는 곳이 있다. 한국계 러시아 록가수로서 그룹 키노(Kino)의 리더였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전설의 빅토르 초이(Victor Choi)를 추모하는 벽이다. 수많은 낙서와 그림이 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지나간 시절 빅토르 초이가 러시아에서 어떤 존재였을지 짐작하게 한다. 아르바트 거리가 끝나는 스몰렌스크 광장에는 스탈린 소비에트 양식의 초대형 러시아 외무성 건물이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도시 탐방의 마지막 방문지 노보데비치 수도원(Novodevich Convent)으로 향한다. 수도원 자체도 볼거리지만 수도원 경내 한켠에 조성된 묘지가 많은 방문자들을 끌어 모은다. 고골(Nikolai Gogol), 체홉(Anton Chekhov) 등 문인, 군인, 정치가, 예술가,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수백 기의 묘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은 후르쇼프(Nikita Khrushchyov)와 옐친(Boris Yeltsin) 묘이다.


짧은 잠을 자고 아주 늦은 밤 숙소를 나선다. 내일 새벽 4시 50분, 비엔나(Vienna) 행 항공기를 타려면 지하철과 버스가 끊기기 전에 공항에 나가 있어야 한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공항 가는 길을 재촉한다. 마음은 참 아쉽다. 세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서 떠날 시간만을 기다리게 되는(다시 오고 싶지 않은) 나라가 있는 반면, 떠나기 아쉬운 나라가 있는데 러시아는 당연히 후자이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행자를 편하게 해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러시아 여행의 매력이다. 깊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 번 와도 볼 것이 또 생기는 그런 곳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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