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 골프만사] 가난한 은퇴자 골퍼의 살아남기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기자 2018.03.26 10:24:59

(CNB저널 =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요즈음 골프는 안 하세요?”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는 인사다. 내가 요즈음 국내 골프를 등한시하는 것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골프의 고비용이 중요한 이유다. 은퇴한 동창생들은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클럽을 창고에 처박아 놓았고, 함께 어울렸던 재미있는 골프 친구들은 하나 둘씩 골프를 떠나기 시작했다. 비록 골프가 인간이 옷 입고 하는 행위 중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지만, 이젠 주머니에 구멍이 나서 골프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20여 개국에서 1682회의 라운드를 했다. 30년 동안 주당 1회 이상 라운드를 한 셈이니 봉급쟁이 주말 골퍼로서는 정말 대단한 축복을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이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나도 골프는 실컷 쳤고, 웬만한 것은 다 해봤기에 여한이 없다.


몸치인 내가 골프에 입문하면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레슨 받고, 열심히 연습하고 수많은 국내외 서적과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실력을 키워갔다. 고수들과의 라운드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백을 메고 나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입문 첫해에는 365일 중 366번 연습장에 갔고, 밤이 새도록 퍼팅 연습을 한 적도 있었다.


1682회의 라운드 중 비즈니스 골프가 약 65%이며, 사적 골프는 불과 600회만 라운드했다. 그리고 그 중 절반은 최근 10년 동안 여러 동남아 골프 리조트에서 휴가차 머물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친 것이다. 국내 라운드는 회원권도 있어서 경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대부분의 골프장은 걸어서 라운드를 했고, 회원의 날에는 캐디백을 어깨에 직접 메고 플레이하는 것도 허용됐다. 그래서 따로 계산을 해놓지는 않았지만, 내가 부담한 개인 골프 비용은 해외 골프를 포함해서 지난 30년 동안 약 5000만 원에 불과하다.


나는 그동안 언더파스코어도 쳐봤고, 홀인원도 세 번이나 했으며, 아들과 라운드하면서 그의 세 번째 홀인원도 목격해 축하패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려서 취미로 가족 스포츠로 플레이하던 아들은 후에 프로선수가 됐고 지금은 지도자 생활을 한다. 주니어선수 때 우리 부자가 합산 스코어로 2언더파를 기록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기분 좋은 추억이기도 하다.

 

“이제 비싼 골프는 하지 않겠다” 선언


골프광이던 나는 하루에 64홀씩 나흘 동안 연속 플레이했던 기록도 있다. 아들이 호주의 골프스쿨로 유학 갔을 때, 교장이 호의를 베풀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버기(2인용 골프카)를 쓰게 해줬다. 파 72의 터프한 골프장이지만 외부인 플레이어가 없어서 학생들의 수업시간에는 텅 빈 골프장에서 마음대로 고속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1번 홀 그린 옆에 있어서 63홀을 치고는 숙소로 가는 길에 한 홀을 더 치고 가니 64홀 플레이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시절부터 나는 연습 스윙을 하지 않는 빠른 플레이로 전향했다.


아들이 골프 유학을 하는 동안 나도 골프를 많이 공부했다. 티칭 자격증도 땄고, 칼럼을 쓰기 시작했으며, 대한골프협회로부터 핸디캡 6을 산정받기도 했다. 자원봉사로 노인복지관에서 노인을 상대로 몇 년 동안 지도했고, 그게 인연이 돼 시각장애인들로부터 요청을 받아, 그들에게 골프를 지도했고, 시각장애인 골프 시합도 열어줬다.


1990년대에는 업무상 해외 출장 때에 골프를 참 많이 쳤다. 17일 동안 북미주와 유럽 출장 시에, 15개의 다른 도시에서 15번이나 비즈니스 라운드를 한 기록도 있다. 클럽 빌리는 돈을 아낀다고 국세청 눈치 안 보고 용감하게 클럽을 들고 다녔다. 외국 골프장에서 3대가 함께 하는 패밀리 골프의 좋은 점도 봤고, 하프백을 메고 라운드 하는 노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미래를 기대하면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골프를 권장했고 방학 때에는 퍼블릭이나 경제적인 리조트를 찾아서 마음껏 패밀리 골프를 즐겼었는데, 오늘의 현실은 주말에 한 가족이 라운드 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만 원 수준이 됐다.


“이제 비싼 골프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아내의 반응이 차가웠다. 30년이 지나서 겨우 골프에 재미를 느끼는데, 남편이 그만둔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금년에도 아내를 위해 하루 6만 원에 숙박, 식사와 2라운드가 해결되는 말레이시아 A리조트로 저가 항공을 타고 열흘 동안 볼을 치러 가기로 했다. 둘이 합쳐 200만 원의 경비는 10박에 30끼를 먹고 15라운드의 골프로 우리 부부에게는 아주 적합한 패키지다. 골프를 끊지 못하는 가난한 은퇴자 골퍼로서 살아남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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