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인사이트] 통신원가 공개에 IFRS 15까지…잇단 악재에 이통3사 ‘한숨’

정의식 기자 2018.04.20 11:29:54

서울의 한 전자상가에 보이는 이동통신 3사 로고. (사진 = 연합뉴스) 

통신요금 원가공개 논란에서 대법원이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동통신 3사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는 기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판결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의외로 이통사의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원가공개 외에도 IFRS 15 회계처리방식 도입, 5G 주파수 경매 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있어 이통 3사의 2018년은 여러모로 힘겨운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대법원 “통신요금 원가자료 공개하라” 최종 판결

 

7년을 끌어온 통신요금 원가공개 논란이 마침내 일단락됐다. 지난 12일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참여연대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통신요금 원가 산정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동통신사의 통신요금 산정과 관련해 사업비용과 일부 투자보수 산정근거자료 등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것. 2011년 참여연대가 “통신 서비스는 국민의 생활 필수재이므로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첫 소송을 낸 후 무려 7년 만에 나온 최종 판결이다. 

 

판결에 따라 공개되는 자료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각사의 손익계산 및 영업통계 자료 등으로 한정되지만, 대법원이 “통신비 산정 자료는 국민의 알 권리에 근거한 공개 대상 정보”라며 “영업을 침해하지 않는 한 언제든 공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문화한 것이어서 앞으로 정부가 이동통신사에 통신비 인하 논의를 압박하는 근거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지난 2011년 참여연대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전신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이동통신사 원가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통신사들의 영업상 비밀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안진걸 시민위원장(왼쪽) 등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이날 열린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소송 선고 결과와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후 1심에서 “이동통신사가 약관 및 요금 인가 신고를 위해 제출한 서류와 심사자료를 공개하라”며 “참여연대가 공개를 청구한 자료를 전부 공개하라”며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지만 방통위는 재심을 요구했다.

 

2심에서도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로 국민으로부터 정보공개 요구를 받은 공공기관은 비공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다만 공개 대상 범위를 원가 산정을 위한 사업비용과 투자보수 산정근거자료 가운데 영업보고서의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영업통계 등으로 한정하고, 영업보고서 중에서도 인건비, 접대비, 유류비 등 세부 항목, 이동통신사가 콘텐츠 공급회사나 보험사 등 제3자와 체결한 계약서 등은 “영업전략 자체가 공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비공개 대상으로 분류했다. 공개 대상 시기도 2005년부터 2011년 5월까지 2·3세대 통신 서비스 기간으로 제한했다.

 

이번 대법원 최종 판결은 2심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했다. 재판부는 “이동통신 서비스는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이용해 제공되고 국민 전체의 삶과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양질의 서비스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돼야 할 필요 내지 공익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 “이를 위해 국가의 감독 및 규제 권한이 적절하게 행사되고 있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영업상 비밀에 해당되므로 공개하기 힘들다는 통신사 측 주장에 대해서는 “이동통신 시장의 특성에 비춰볼 때 정보 작성 시점으로부터 이미 상당 기간이 경과한 약관 및 요금 관련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통신사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통 3사 “우려” vs 전문가들 “악영향 없을 것” 

 

판결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이르면 이달말 공개 대상이 된 이동통신 영업보고서와 이동통신 요금신고·인가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법 등 관련 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공개하게 된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이동통신 요금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련 자료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앞으로 유사한 정보공개 청구 시 대법원 판결 취지를 고려해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선고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어 “늦은 판결이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이동통신 요금의 공공성과 알 권리,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 등을 감안해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기념비적인 판결”이라며 “2011년 소송 제기 후 새롭게 도입된 4세대 LTE 서비스 통신요금과 관련해서도 원가 자료 공개 요구활동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이통사들은 난감한 입장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민간 개별 기업의 정보를 보호받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라는 공식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각사 관계자들은 “정부가 요금인하를 직접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통사가 ‘원가 자료 공개’까지 해야 한다면 기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통 3사의 연도별 원가보상률. (사진 = 과기정통부, 하나금융투자)

하지만 이통사들이 이번 판결을 너무 침소봉대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통사 실적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6일 보고서에서 “통신요금 원가공개 판결로 통신비가 실제 인하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가보상률로 통신요금의 적정선을 평가하고 요금인하 권고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맞지만 원가보상률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현 통신사 원가보상률 수준을 감안하면 요금인하를 권고할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원가보상률이란 영업수익을 총괄원가(사업비용+투자보수)로 나눈 값을 말한다. 원가보상률이 100%라는 것은 사업비용(영업비용+감가상각비)과 투자보수가 영업수익으로 회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단체 입장에선 통신사의 원가보상률이 100% 이상이라면 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에 해당하는 기업은 SK텔레콤 밖에 없다. 

 

과거 국정감사에서 통신비 원가공개 이슈가 불거지며 원가보상률이 공개됐던 사례가 있지만 이때도 SK텔레콤만 원가보상률이 100%를 넘겼고 KT와 LG유플러스는 2014년과 2015년 각각 92%와 97%, 98%와 98%로 100%에 미달하다 2016년에 와서야 100%를 넘겼다. KT와 LG유플러스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통신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앞으로 도입될 5G에 원가보상률을 적용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상용화 초기에는 원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데 원가보상률을 적용하면 요금을 크게 올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신요금 원가공개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정부가 통신요금 인하를 권고하고 통신요금이 실제로 내려갈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는 게 여러 증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IFRS 15‧5G 주파수 경매… 이통사 실적에 ‘부정적’

 

문제는 이통 3사의 앞길을 가로막는 악재가 이번 판결만이 아니라는 것. 

 

정지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지난 17일 보고서를 통해 “2018년 통신업종 내 가장 큰 변화는 IFRS 15 도입에 따른 회계기준 변경”이라며 “IFRS 15 도입으로 변경되는 사항은 고객지불대가, 고객획득비용, 복합계약 세 가지인데 수익과 비용 인식 기준 변화로 SK텔레콤과 달리 자체 단말기 유통 사업을 진행하는 KT와 LG유플러스는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국제회계기준) 15는 기업의 수익에 대한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으로, 올 1월 1일부터 이통사들은 의무적으로 IFRS 15를 소급해 적용해야 한다. 

 

기존 회계처리 기준과 가장 큰 차이는 고객에게 지급하는 상품권, 현금 등 금전적 대가를 그동안은 비용으로 인식했지만, 앞으로는 매출에서 차감하게 된다. 또, 고객과의 매출계약 체결을 위해 발생한 각종 비용을 현재는 발생 시 전액 비용으로 인식하지만 IFRS 15에서는 발생 시 자산으로 인식한 후 예상 가입기간 동안 상각해 비용 처리하게 된다.

 

단말기와 통신서비스 등 고객에게 2개 이상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의 경우 현재는 통신은 청구서 기준으로, 단말기는 판매 기준으로 매출로 인식하지만, IFRS 15에서는 재화와 서비스 각각의 개별판매가격을 산정한 후 해당 비율에 따라 매출을 재배분하게 된다.

 

이렇듯 매출과 비용 처리 기준이 대폭 바뀌므로 이통 3사의 실적도 영향을 받게 되는데 현재까지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2017년 실적에 IFRS 15를 적용하면 영업이익이 10% 가량 증가하지만 올해 실적에서는 10% 줄어든다는 것.

IFRS 15 회계 기준으로 전환 시 2017년 통신 3사 영업이익 변화 추정. (자료 = 각사, 하나금융투자)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IFRS 15 도입에 대해 “이통 3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존 회계기준을 적용할 때보다 올해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이 약 10%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막 시작된 5G 주파수 경매도 이통사들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다.

 

지난 19일 공개된 5G 주파수 경매안에서 시작가(최저경쟁가)가 3조 3000억 원에 달하고 한 통신사가 가져갈 수 있는 주파수 양도 제한되자 이통 3사는 즉각 “시작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반응을 내놨다. 총량 제한 역시 최종낙찰가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아 한층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5G 주파수 경매는 한 회사가 대략 400MHz 내외의 주파수를 가져갈 예정이어서 주파수 당 단가는 낮아지겠지만 전체 금액은 상당히 커질 것”이라며 “여러 악재를 감안하면 이통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017년 3.74조원에서 2018년 3.79조원으로 1.5% 상승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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