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률이야기] 의사가 진료해도 ‘사무장 병원’은 불법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기자 2018.04.23 09:35:48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법조계에는 속칭 ‘사무장 로펌’, ‘사무장 법률사무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변호사들은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사무장 법률사무소란 변호사의 자격이 없는 자가 변호사를 고용해서 개설한 법률사무소를 말합니다.


우리 변호사법 제34조는 변호사와 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동업을 금지하고 있으며,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를 고용해서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변호사가 아니라 사무장이 주인인 법률사무소는 불법입니다.


그런데 왜 불법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무장 법률사무소는 과도한 수임료를 청구하는 등 업계를 교란하고,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법률 소비자들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로펌이나 법률사무소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의료인은 병원을 개설할 수 없지만 
협동조합은 가능하니 문제 소지


의료계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습니다. 의료법 제33조 2항에서는 의사가 아닌 사람의 의료기관 개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의사 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 특수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료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해 시설을 갖추고, 자격이 있는 의료인을 고용해서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 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의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불법입니다. 이런 병원을 ‘사무장 병원’이라고 하는데, 이 불법 의료기관에서 자격 있는 의사가 직접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불법입니다. 


의자 하나, 책상 하나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우리 변호사들과는 달리, 의사들은 작은 병원이라도 개원을 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장 병원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자 중에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서 정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도 있습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의료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법은 만들어질 때 좋은 목적, 정의로운 취지를 가집니다. 만들어진 목적이 좋지 않은 법은 없습니다. 단지 잘못 적용되거나, 악용될 뿐입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4월 5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와 관련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병원이 속칭 ‘사무장 병원’ 형태로 운영됐다고 결론 내렸다. 사진 = 연합뉴스

필자의 생각으로 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은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서 영리를 추구하는데 악용될만한 여지가 매우 많습니다. 실제로 비의료인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명의만을 빌리고, 의사를 고용해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가 적발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서 요양급여 받으면 ‘사기’


다만, 이런 불법개설 의료기관이라도 진료는 의사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장이 아무리 돈이 많고, 의료 지식이 있어도 의사의 의료행위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료법 체계는 의사와 환자의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기관을 끼고 있는 삼각관계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요양급여 항목에 있는 진료를 하고 나면, 요양급여 항목에 따른 진료비용 중 공단 부담금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이 직접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합니다. 즉, 의료기관은 환자를 진료하고, 공단에 직접 돈을 청구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무장 병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 대법원은 일관되게, 적법하게 개설되지 않은 의료기관은 그곳에서 의사가 환자 진료를 했더라도, 해당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요양기관이 아니므로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지급받을 자격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무장 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하고 지급받는 것을 사기죄로 보고 있습니다. 불법 의료기관이 적법한 의료기관처럼 공단을 속이고 돈을 받아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동차보험·실손보험 청구는 가능?


그런데 의료기관이 비용을 지급받는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한 곳만은 아닙니다. 자동차보험이나 실손 보험의 경우처럼 의료기관이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 등 돈을 직접 지급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교통사고 피해자가 사무장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서, 이 병원이 보험회사에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하는 행위와 사무장 병원에서 환자가 실손 의료비 보험금을 타기 위한 진료확인서를 발급해 주는 행위를 ‘사기죄’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 되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우리 대법원은 자동차보험 계약과 실손 의료비 보험의 경우에는 설사 사무장 병원이 관련되었다 하더라도, 사무장 병원 측에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자동차 보험계약의 경우, 원래 보험회사에서 교통사고 환자 등 피해자에게 직접 보험금을 지급하고,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람이 의료기관에 의료비를 납부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 법은 이 보험금 중 자동차보험진료수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의료기관이 보험회사에 직접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험수익자가 보험사에서 돈을 받아서, 이를 다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절차는 매우 번거롭기도 하고, (피해자와 보험수익자가 다른 경우) 보험수익자에게 지급된 보험금이 피해자의 의료비로 지급되지 않는 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손 의료비 보험의 경우, 환자가 먼저 의료기관의 진료를 받고 의료기관의 진료확인서를 보험회사에 제출하면, 보험회사가 보험수익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형태입니다. 의료기관의 역할은 단지 진료확인서를 발급해 주어서, 보험 청구를 도와주는 역할일 뿐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앞서 말씀드린 국민건강보험공단-의료기관-환자의 삼각 구도와는 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기죄에 대해서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보험금과 관련된 사건들은 사기죄의 성립 여부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 반환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무장 병원의 입장에서 이 무죄 판결은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입니다. 


이런 형태의 사무장 병원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 과잉진료를 하고, 보험금청구를 부풀리는 등 불법적인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보험회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만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의료서비스를 받는 일반 국민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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