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세 승계' 놓고 갈라진 서정진과 김정주의 엇갈린 선택 앞날은?

정의식 기자 2018.06.18 14:59:20

정의식 부국장

두 사람 모두 성공한 CEO다. 둘 모두 미래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산업 분야에서 성공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하지만 가족과 미래세대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한 사람은 한국 재벌의 구태로 지목받아온 가족경영을 사실상 영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2세 경영권 승계까지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이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부터 짚어보자. 그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맨주먹으로 출발해 불과 20년 만에 자산 8조 원대(2017년 말 기준)의 거대기업집단을 일궜다. 램시마와 허쥬마, 트룩시마 등 쟁쟁한 바이오시밀러가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은 코스피 3위(2018. 6. 18 기준)다.

 

그는 족벌경영과 순환출자로 대표되는 재벌의 악습과도 결별한 것처럼 보였다. 지난 3월 23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서 회장은 “셀트리온그룹에는 제 아내, 아이들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가 없고 순환출자도 없다”며 “기존 대기업과 다르게 우리나라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전의 대기업들과 다른 새로운 성공 모델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서 회장의 주장은 이내 허점 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나 가족들이 지분을 보유한 건 아니지만 계열사의 요직을 차지한 건 재벌과 매한가지였고, 일부 친인척이 경영하는 기업과는 내부거래‧일감몰아주기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를테면 서 회장의 아들 서진석 셀트리온스킨큐어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보안과 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두 회사 티에스이엔씨와 티에스이엔엠은 서 회장의 친인척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일감이 셀트리온 계열에서 나와 내부거래가 심각한 기업으로 지목됐다. 

 

이쯤 되면 “기존 대기업과 다른 기업을 만들겠다”는 서 회장의 발언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물음표가 찍힌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왼쪽)과 김정주 NXC 대표. 사진 = 연합뉴스

반면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는 지난 5월 29일 “경영권을 2세에게 승계하지 않겠다”는 공개선언으로 기존 재벌은 물론 여타의 신흥 대기업 총수들과 차별화된 면모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1994년 국내 유수의 게임사 넥슨을 설립한 인물이다. 넥슨은 세계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한 이래 수많은 히트작을 양산했으며 2011년 도쿄 증시에 상장돼 2017년 말 기준 매출이 2조 2987억 원에 달하는 대한민국 대표 게임 기업이다. 지난해 9월 총자산 5조 원을 돌파하며 셀트리온과 마찬가지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게임 기업으로는 국내 최초의 일이었다.

 

그런 김 회장이 자녀 승계 포기를 선언한 건 진경준 게이트 논란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5년 김 회장이 과거 2005년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뇌물을 제공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2016년부터 약 2년 간 재판에 휘말렸다. 지난 5월 11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김 회장은 간신히 송사에서 자유로와졌다. 

 

앞서 김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이후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되갚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후 그가 사회에 내놓은 첫 번째 대답이 바로 이번에 내놓은 자녀 승계 포기와 1000억 원 이상의 재산 사회 환원 계획이다.

 

김 회장은 자녀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 “재판을 받는 중에 1994년 컴퓨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창업했던 조그만 회사가 자산총액 5조 원을 넘어 ‘준대기업’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지난 20여년 동안 함께 일해온 수많은 동료의 도전과 열정의 결과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배려 속에서 함께 성장해왔다는 점 또한 잘 인식하고 있다. 이 또한 저와 제 주변을 깊이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직 넥슨의 미래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그동안도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일임하는 모습을 보여온 터라 업계는 김 회장이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내다보는 분위기다. 록펠러, GE, HP 등 해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창업자 가족은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나 지분만 보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 맡기는 형태다.

 

반면 서 회장과 셀트리온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재벌의 악습을 이어받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현재 보여지는 모습은 기존 재벌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 회장과 셀트리온에 필요한 건 미사여구로 치장된 약속이 아닌 실천이다. 그래야만 기존 재벌의 '열화 카피'가 아님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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