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구간] 네덜란드, 이 나라는 뭐지?…한국선 안 되는 게 왜 거기선 되지?

<네덜란드에 묻다, 행복의 조건>과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최영태 기자 2018.09.18 12:32:57

최영태 발행인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있다. 여기서 ‘~라는’이란 표현을 쓴 것은, 한국인이 아는 네덜란드가 딱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좋아하고 모방하려 애쓰는 나라들이 있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같은 강대국들이다. 이 다섯 나라에는 여행 다녀온 한국인도 많고, 유학 갔다온 교수도 많으며, 외신을 통해 각 나라의 세세한 내용이 제깍제깍 소개된다. 


네덜란드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이 관심을 가질 만큼 큰 나라가 아니어서 그럴 게다.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나라 이름 정도나 알고,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일화들, 즉 “섹스숍이 발달해 있다더라” “땅 높이가 바다보다 낮다더라” “축구를 잘할 때도 있고 히딩크의 나라” "고흐의 나라" 등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평창에서 큰 질문을 남겨놓은 네덜란드 선수단


그런데 이 나라는 가끔 우리를 놀래킨다.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그랬다. 하계 올림픽의 꽃이 육상 경주라면, 동계 올림픽의 꽃은 빙상 속도 대결일 텐데 네덜란드 선수들은 남녀 불문하고 최고 성적을 올려 메달 시상식 때마다 “또 네덜란드야?”라는 감탄 또는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의 방송 화면 캡처.


여자 빙속 500m에서 한국의 빙속 여제 이상화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자비로 네덜란드 유학을 다녀온 뒤 성적이 급상승해 톱클래스가 됐다”는 해설자의 말을 들으면 “이건 또 뭐야?”라고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 규모로 볼 때 네덜란드가 빙속 부분에 국가적 차원의 자금 투자를 할 가능성은,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스포츠 강대국은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옆 나라인 독일만도 못할 것 같다. 인구 1700만의 작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고다이라의 금메달 기록이 있기까지는 '네덜란드'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방송 화면. 

 

나라 규모가 그렇고, 또 나라의 성격으로 봐도 그랬다. 과거의 동독이나 소련처럼 국위선양을 위해 어린 유망주에게 집중 투자해 ‘금메달 민족주의’에 목을 매는 나라도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강대국도, 사회주의도 아닌데… 그렇다면 이건 뭐람?

 

“강대국이어서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주의-전체주의라서 강압적으로 빙상인을 키워내는 것도 아니라면… 그러면 체격 조건이 월등한가?”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북구의 스웨덴-노르웨이 선수들의 정말 ‘딱 보면 보이는’ 체격만큼도 아니었다. 바로 옆나라 독일 선수들만큼도 커보이지 않았다. 체격-국력과 상관없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해설자도 말해주지 않으니… 모르겠네”라고 생각을 접었다. 

 

그런데, 신간 ‘네덜란드에 묻다, 행복의 조건’(김철수 저)을 읽어보니 그 해답이 나와 있다. 이런 문장이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보충 수업을 받거나 학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스포츠나 취미 활동을 한다. 원칙적으로 초등학교는 숙제와 책가방이 없다. 유소년 때부터 스포츠클럽에 가입하여 동네 스포츠 센터에서 운동을 하거나 취미를 즐긴다. [중략] 일반적으로 하듯 토너먼트 대항으로 순위를 결정하지 않고 리그 경기를 통해 우수한 선수를 발굴한다. 한 번의 시험과 시합으로 당락과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과 경기를 통해 적성과 실력을 평가한다.(21쪽)

 

숙제와 책가방 없이 학교에 다닌다니 그것도 신기하지만, 방과 후에는 스포츠클럽에들을 간다니 전국민이 운동을 즐기고, 그러다보니 고다이라를 지도한 빙속 코치 같은 우수한 지도자들이 배출되는 원인을 알 것만도 같았다. 

 

한국 부모들이 알면 펄쩍 뛸 네덜란드식 어린이 교육


요 짧은 문장에서도 한국과 다른 점이 톡톡 튀어 나온다. 한국에서도 요즘 ‘무조건 공부’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출세시키려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그런 만큼 대개는 빠른 결정을 보려 덤벼든다. 자기 자식이 “신동” “천재” 등의 찬사를 받으며 좋은 성적으로 빨리 두각을 드러내길 원하는 한국 부모의 심정에서 본다면, 토너먼트 식으로 싹둑싹둑 잘라내고 우리 아이만 최고로 밀어올리는 속전속결 방식이 좋다. 리그전 방식으로 끝없이 돌아가면서 경기를 벌여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으면서 꾸준히 지도한다는 네덜란드 방식은, 한국에 수입될 리가 없고, 또 수입되더라도 어머니들의 성화 때문에 원형대로 유지되기도 힘들 듯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크게 물의를 일으켰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한국팀의 노선영 선수를 유일하게 위로한 네덜란드 출신 보프 더용 코치의 모습도 당시 주목을 받았다. 더용은 지난 5월 중국 대표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연합뉴스)


이 책의 저자 김철수는 서울대 해양학과를 나와 삼성중공업 유럽 지사 주재원으로 파견된 뒤 22년째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단다. 출신은 한국인이지만 거의 현지인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한국과는 여러 면에서 180도 다른 나라

‘한국과는 정반대’여서 읽는 이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 이 책의 문장들을 몇 개 읽어보자. 

우선 필자는 네덜란드가 ‘어린이와 노인이 행복한 나라’라고 성격을 규정한다. 이게 가능한가? 어린이와 노인은 사회의 가장 약자들이다. 약자가 행복하려면 강자가 도와줘야 하는데, 한국 같은 약육강식(강자가 약자를 밥으로 먹는)의 나라에서 어린이와 특히 노인은 행복해지기 힘들다. 한국 같은 권위주의-배금주의 나라에선 힘센(권력이나 돈이 많은) 자가 행복하기 마련이며, 강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대상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비교. 아동 단계에서도 한국 어린이들의 행복 정도는 크게 낮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그래픽 = 연합뉴스)

한국의 어린이는 그래도 부모들의 성화와 적어진 자녀 숫자 덕에 예전보다는 ‘가정 내 행복’이 증가한 듯 하다. 그러나 청소년 단계로 올라가면 행복도는 지나친 경쟁과 입시 경쟁 탓에 극히 낮아진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 한국 노인들의 불행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공지사실이다. 미국에서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나왔으니, 노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한국인은 흔히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웬 말? 네덜란드에선 어린이는 물론 노인까지 행복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저자는 네덜란드의 노인과 어린이의 행복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릴 때 장래 진로 결정해버리고, 

퇴직 후 연금은 동일 액수를 주고


우선 이 나라에선 고등학교 때 이미 인생 진로를 결정해버리기 때문에 입시나 취업에 대한 고민이 한국보다 적다고 한다. 앞에서 말했듯 방과 후 스포츠나 취미 활동을 전반적으로 하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학창 시절을 보낸단다. 또한 네덜란드 노인의 빈곤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젊은 시절부터 퇴직연금을 준비할 뿐 아니라 좋은 직업을 가졌건 세금을 많이 냈건 상관없이 ‘노년기에는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영위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초연금을 지불한다. 

 

네덜란드 노인들의 기초연금 얘기는 69쪽에 나온다. 

양로원과 더불어 네덜란드 노인 복지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기초연금 제도다. 은퇴 나이인 65세가 되면(67세로 단계적 연장) 네덜란드에 적법하게 50년을 거주한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기초 노령연금에 해당하는 기초연금을 받는다. 기초연금액은 부부가 같이 사는 경우는 일인당 월 100만 원 정도, 홀로 사는 경우는 150만 원 정도를 받는다. 거주 기간이 50년 미만이면 거주 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받는다. 보험료를 낸 사람에 한해서 연금을 받거나 보험료 납부 금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연금을 받는 국민연금 같은 제도는 없다. 이러한 기초연금 제도는 과거 직업이 없어 세금을 못 냈건 또 좋은 직업이 있어 많이 냈건 상관없이 노년기에는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영위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포스터.

낸 대로 받아가지 않고 일괄적으로 같은 금액을 받아간다니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원칙에 충실한 한국인의 상식에서 볼 때는 “공산주의 식”이라 폴짝 뛸 일이다. 한국에서는 불평등 구조가 잘 정착돼 있다. 젊었을 때 노력해 명문대 들어가 직장 생활 멋있게 하고 그래서 연금 많이 부은 사람이 늙어서도 많은 연금을 받아 잘 사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게 첫 걸음이니, 부모 입장에선 자녀의 주리를 틀더라도 강제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물론 노인(번 돈을 대개는 자녀 학비 또는 부동산에 쏟아 붓는 바람에 가난하기 쉽다)까지 모두 공평히 불행하게 사는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네덜란드는 반칙의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적 평등관'과는 전혀 다른 네덜란드식 노인 평등관


‘노력한 만큼 잘살아야 하며, 노년에도 예외는 없다’는 한국적 정의와, ‘노년기에는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영위해야 한다’는 네덜란드의 정의가 한국에서 맞붙는다면, 전자가 100전 100승 할 것이기에, 물론 한국에서 노인의 행복은 요원하다. 


한국과 정반대인 현상은 다음 사항도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 △갑과 을이 없으며 △뇌물과 접대를 오히려 의아해하는 사회라는 소개다. 이 사항들을 거꾸로 읽으면 한국 사회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별로 갖지 못하며 △지속적으로 일할 수 없고 △갑과 을이 분명하며 △뇌물과 접대는 당연시돼 왔기에 근절이 힘든 게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과 청년희망재단이 작년 취업 초년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만족도 조사결과. 절대다수가 직장에 만족감을 못 느끼고 있으며 우울증과 '결혼 의향 없음' 정도도 높다.(그래픽 = 연합뉴스)  


한국인들이 대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결정으로 선택하기보다는, 대개 학력 순으로 진입 장벽이 있는 직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며, 또한 성적-학력이 좋은 사람도 ‘의당 가야 할 길(나에게 좋기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경력이나 직장)’을 걷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고르고, 또 어떤 일을 고르건 차별이 크지 않은 네덜란드와는 다른 구조다. 또 네덜란드식 ‘65세 정년’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기껏 뽑아 놓은 직원들을 자르지 못해 안달을 떠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쓸 사람이 없다”며 또 다른 안달을 또는 한국의 직장인지라 네덜란드처럼 ‘지속적으로 일하는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질적 차이가 크다. 

 

갑과 을이 없으면 불편한 한국인, 

"갑과 을이 뭐야?"라는 네덜란드인

 

한국은 갑과 을이 분명한 사회다. 나이를 물어 아래위를 정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한국인에게 ‘갑과 을이 없는 상황’은 불편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갑과 을의 거리를 더욱더 벌리려는 노력이 도를 더해가고 있다.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간 아줌마가 알바 청년의 싸대기를 올려붙이고 무릎을 꿇리는 일, 또 ‘갑인 우리가 영원히 갑이 되고 을은 절대로 받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는 철학의 구현인 전관예우 또는 고위 공직자 출신의 낙하산 인사 등이 점점 맹위를 떨치는 한국이다.

 

(자료=알바몬)


힘센 사람은 뇌물과 접대를 당연히 받아야 하는데, 뇌물과 접대를 의아해 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이야말로 한국인에게는 정말로 의아한 외계 생물체 같은 존재들이다. 

 

‘어린이와 노인이 행복한 네덜란드’라는 저자의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라도 노인과 어린이의 행복도를 기준으로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첫째는, 한국처럼 노인과 어린이가 모두 불행한 나라다. 경쟁지상주의에다가 ‘일하지 않는(즉 돈 벌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철학에 충실한 나라이니, 경쟁-돈벌이와 무관한 노인은 찬밥도 안 되는 신세다.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려는 흐름은 있지만 “돈 잘 벌 기회를 만들어주마. 이게 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다”라는 취지에서 어려서부터 엄청난 공부-특기 경쟁에 나서게 하니 행복과는 점점 멀게 만드는 구조가 정착된 한국이다.  

 

1926년 미국 여성 잡지에 실린 청소 제품 광고 지면. 제품 이름이 아예 '더치(네덜란드) 청소제'다.

두 번째로는 어린이들은 대개 행복하지만 노인들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미국 같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네덜란드처럼 어린이와 노인의 행복지수가 모두 높은 나라가 있는 듯 싶다. 
저자 김철수는 네덜란드인의 청결함에 대해서도 말한다. 강대국 프랑스의 파리와 영국의 런던 등에서 오줌 등 배설물을 창밖 도로로 그냥 내버려 악취가 진동하던 16세기 시절에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도시의 청결을 잘 유지해 ‘더치 클린리네스(Dutch Cleanliness)’라는 숙어가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악취 진동하던 과거의 파리-런던과 달리

16세기에도 청결했다는 네덜란드 도시들

 

청결도 유지는 지금도 이어져 저자는 “2~3층으로 된 가정집의 커다란 창문을 주기적으로 전문 청소 업체에 의뢰하여 닦는다”고 소개했다. 저자는 “부끄럽지 않게 남에게 숨기는 것 없이 생활해야 한다는 칼뱅이즘의 종교적 영향과 일반 가정에서도 치즈를 생산했던 생활 방식에 기인한다. 치즈를 만들려면 우유를 짜고 보관하고 숙성시킬 때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게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청소업체에 의뢰해 네덜란드 특유의 '커튼 없는 커다란 창'을 청소하는 모습.(사진 제공 = 스토리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너무나도 큰 창'


네덜란드 가정집의 ‘커튼도 없는 큰 창’이 항상 개방돼 있어 집안에서 사람들이 뭘 하는지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현실에 대해 김철수 저자는 칼뱅이즘(칼뱅주의)과 치즈 제조 전통을 얘기했지만, 이 책에 앞서 10년 전(2008년)에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이란 제목으로 네덜란드論을 낸 바 있는 인문학자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는 ‘커튼도 없는 너무 큰 창’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그렇게 숨기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과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담도, 커튼도 없이 살아간다. 그런 이유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창을 멋지게 장식한다. 미묘한 명암의 조명으로 방을 장식하고, 밤거리를 향하여 쾌적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는 자기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 또 앞으로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 세계에 선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네덜란드인은 없다. 그것은 프라이버시 침해이기 때문이다. (76쪽)


이렇게 개방적인 생활에 대해 박 교수는 “네덜란드인은 무엇이든 감추지 않는다”(75쪽), “교수들 중에도 [중략] 동성애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는 경우를 나는 몇 번이나 보았다”(76쪽)고 전했다. 

 

'나라 거덜낼 소리' 잘도 하는 네덜란드 교수들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칼뱅주의에는 공감한다고 해도, 교수가 동성애 경험을 수업 시간에 버젓이 하는 행태들은, 만약 한국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 “나라 거덜낼 교수다. 당장 퇴출해야 한다”라고 비난을 퍼붓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나라 거덜낸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도대체 한국의 이른바 보수 언론들은 왜 그렇게 ‘나라가 거덜난다’는 표현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 것 갖고 걸핏하면 나라를 거덜낸다고 표현하고, 복지 예산에 돈에 많이 들어가거나 재벌에 불리한 정책을 정부가 추진하면 그런 표현들을 더 많이 동원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이 ‘거덜낼’이라는 표현이 더욱 더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이른바 보수 언론들은 나라가 거덜나길 원하는 건 아닌지, "거덜나라"고 주문을 외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라가 위기에 몰려야 국민들은 불안에 휩싸이고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보다는 옛 질서에 안주하기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기 쉽기에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나라는, 언론이 수시로 ‘나라가 무너질 일’이라고 겁을 주는 바람에 지진이 없어도 언론 기사만 보면 항상 가슴이 달랑달랑 흔들리기 쉬운 나라다. 미국 정치인이나 언론은 '국기가 흔들린다'든지,'나라를 거덜낸다'라든지 하는 무시무시하고, 현실성도 없는(국기/國基가 흔들려서 없어진 나라 또는 발언 때문에 거덜난 나라를 봤는가? 국가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대상이 아니다)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나라가 흔들린다, 거덜난다"는 표현을 잘 쓰는 한국 정치인들. 미국 정치계에선 이처럼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위 사진은 YTN 화면 캡처, 아래 사진은 올해 6월 5일자 중앙일보 인터넷 지면.  

박홍규 교수는 한국과 네덜란드의 불안감 지수를 이렇게 비교했다.     

 

불안한 사회에서는 더럽고 위험한지에 대한 분류가 엄격하고 절대적이어서 ‘다른 것은 무엇이나 위험하다’는 인종차별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와 외국인 공포증이 강하고 상대주의가 약하다.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다른 것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중략] 불안의 정도가 높은 독일에서 분명한 주제, 상세한 과제물, 엄격한 시간표가 있는 구조화된 학습 상황을 선호하는 데 반해, 불안의 정도가 낮은 영국에서는 애매한 목표, 광범위한 과제물, 시간표가 없는 개방적인 학습 상황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독창성은 후자의 경우 더욱 크다. [중략] 불안 정도가 낮은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나는 모르겠다”라는 교사도 인정하며,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는 교사를 존경하고, 난해한 문제를 일상적 용어로 쉽게 설명한 책을 선호하며, 학생이 교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불안 정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철학과 과학의 거대 이론이 발달한다. 가령 독일과 프랑스에서다. [중략] 불안 정도가 낮은 나라에서는 경험주의가 발달한다. [중략] 불안 정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중략] 규칙에 대한 감정적 욕구(논리적 욕구)로 인해 무의미하거나 일관적이지 않거나 역기능적인 규칙 혹은 규칙 지향 행동이 생긴다. 반면 불안 정도가 낮은 나라에서는 규칙을 두려워하여 꼭 필요한 경우에만 만들려고 하고, 규칙을 보다 잘 지키는 경향이 있다.
불안 정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바빠야 한다고 생각하나, 불안 정도가 낮은 나라에서는 필요에 따라 일하고 도리어 쉬는 것을 좋아한다.
(131~132쪽)

 

네덜란드는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타는 나라이기도 하다. 차도와 자전거도로의 면적이 같거나 좁은 길에서는 자전거도로가 더 넓다(사진 오른쪽 참조). 차를 더 많이 타는 국민과, 자전거를 더 많이 타는 국민 중 어느 쪽이 불안감이 적을까? (사진 제공 = 스토리존)  

 

불안감 높은 한국인은, 이념에 휘둘리고

몸-마음 부조화로 생활에서도 긴장감 고조?

 

이처럼 한국과 네덜란드의 다른 점을 불안 정도를 기준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가 보다. 항상 불안한 한국 사람들은 아기를 낳지 않으려 하고, 드물게 아기를 낳으면 한국에 살 아이의 장래가 너무나 걱정되기 때문에 양육과 교육과 과외공부에 그렇게 열을 들이나 보다. 불안하기에 거대 이론,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교사가 “나는 모르겠다”고 밝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들을 떤다. 항상 열심히 일해야 하고, 쉬는 걸 죄악시하는 습관도 불안해서 그런 모양이다. 


불안 정도가 낮은 네덜란드에서는 아이들도(방과 후에는 운동-취미생활을 하니), 어른도(돈 많이 벌려고 덤벼드는 건 스포츠처럼 즐기자고 하는 일이니), 노인도(삶이 창피하지 않도록 연금을 받으니) 편안히 살면서도, 경제 수준도 높고, 히딩크도 나오고, 빙속도 세계 최강이라니 참말로 억울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아둥바둥 어렵게 살고, 네덜란드인들은 설렁설렁 사는데도 저쪽이 더 잘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16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 피터 브뤼헬의 '농민 춤' 그림.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는 모습에서 네덜란드식 허젤러흐(스스럼 없음)가 느껴진다. 


박 교수는 또한 네덜란드인의 개방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준다. 

 

자국인들끼리도 자주 외국어로 말한다. [중략] 옛날부터 최고의 유럽인이라고 자부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끝없이 흡수하면서 자국 문화는 포기했을 정도였다. 이를 네덜란드에서는 유연성과 관용의 결과라고 적극 평가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사대주의라고 소극 평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누구나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나,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역시 다르다 .(58~59 쪽)

 

해외 문물 받아들이기, 네덜란드는 "유럽인" 자부,

한국에선 "사대주의자" 비난 

 

한국의 연령별 행복 지수.(그래픽 = 연합뉴스) 

네덜란드어가 있는데도 네덜란드인들끼리 영어나 프랑스어로 말하는 모습이 흔하고, 이를 전혀 죄악시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한국인끼리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참기 힘들어하는 게 한국인이다. 자기 스스로는 해외 문화를 미친 듯이 받아들이면서도 걸핏하면 다른 이에게는 사대주의라며 공격하는 것도 ‘네덜란드식 유연성과 관용’과는 다른 태도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작년 기준 68%로, 네덜란드의 60%보다 높다. 그런데도 국제주의에 관한 한 네덜란드가 훨씬 더 적극적이라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이 모든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네덜란드나 한국이나 다 외국에 기대어 살아간다. 문화 측면에서도 그렇고, 경제 측면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불안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이념적’이 되기 쉽다고 박 교수가 그랬듯, 항상 불안해하는 한국인들은 몸은 외국에 기대 살지만, 불안하기에 머릿속으로는 ‘민족 중흥’ ‘인종주의’ ‘사대주의’ 등을 되뇌면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거 아니냐는 진단이다. 

 

마약 부분 허용하는 네덜란드, 

마약 사망자는 가장 적어


‘상대적으로 덜 불안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외국어를 쓰건, 마약 사용을 허용하건, 섹스숍 또는 섹스 거리를 허가하건, ‘현실적으로 편안하고 적용가능한 방법’을 고안해 사용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건 100% 되고 저건 100% 안 된다는 ‘올 오 나씽(all or nothing)'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념-주의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은 흑백논리에 익숙하기에 “절대로 안 돼” 주의가 많다. 


박홍규 교수는 이렇게 썼다. 
매춘이나 존엄사 또는 동성애나 가벼운 마약 같은 경우 개인의 자유라는 점에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제 [중략] 현실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허용하되, 허용 범위 내에서 그 위생을 철저히 규제한다는 것이 네덜란드식의 현실주의, 실용주의 정책이다. 도저히 막을 수 없다면, 또 그것을 인정하되 철저히 규제하는 것이 도리어 무조건 막는 것보다 현실적이라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계되어야 하는 것은 전통이니 역사니 도덕이니 종교니 윤리니 하는 추상적인 이상이나 관념들에 의한 무조건적인 부정적 태도이다.(54~55쪽) 

완전하게 없앨 수 없다면 ‘올 오아 나씽’이 아니라 문제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한국은 대단히 도덕주의적인 나라다 [중략] “나의 개인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또 범죄로 발전되어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나와는 무관하므로, 마약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마약을 조금만 사용한다면 허용한다”는 주의이다.(187쪽) 

 

jtbc '비정상 회담'에 출연한 네덜란드 청년 샌더 룸머가 네덜란드에서 약한 마약(soft drug)을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 통계를 보면 재미있다. 

마약 중독자가 네덜란드에서는 인구 1천 명 당 1.6명으로서, 유럽 평균인 2.7명보다 낮다. [중략] 마약의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1995년 네덜란드의 경우 인구 100만 명당 2.4명이었으나, 프랑스는 9.5명, 독일은 20명, 스위스는 23.5명, 스페인은 27.1명이라는 점이다. [중략] 강성 마약 소지자도 범죄자가 아니라 환자로 취급하여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189쪽)  

 

마약이건, 사회주의건, 

말과 몸이 따로 놀기 쉬운 한국인

 

마약을 없앨 수 없다면 일부를 허용하되 관리를 잘하자는 주의에 따라 마약으로 인한 네덜란드의 사망자가 인근 독일-프랑스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다니 참 그 지혜가 부럽다. 


말과 몸이 따로 노는 한국인의 이중성-이념성은 과거 “사회주의 혁명을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자신의 자녀만큼은 미국 유학을 보내고 싶어했고 또 보냈던 한국 좌파들의 행태에서도 확인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 놀면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나의 속마음을 그대로 노출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커피숍과 바 등에서는 약한 마약을 판매하기도 한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대마초 모양을 그려놓고 '여기서 피워도 된다'고 써놓았다. (사진 = 위키미디어) 

 

네덜란드인이 좋아하는 '허젤러흐'


반대로 네덜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개념이 있는데, 바로 ‘허젤러흐(gezellig)’라고 박 교수는 소개했다. 편안하다, 유유자적하다, 여유있다, 따뜻하다, 부드럽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란다. 머리와 몸이 분열되지 않으면 편안(허젤러흐)하다. 반면 한국인처럼 머릿속과 실생활이 분열하면 스스로 긴장하고, 유유자적하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 걍퍅해지며, 차갑고 모질기 쉽다. 이래서 어느 일본인의 진단처럼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모두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된 걸까?

 
박 교수는 네덜란드인과 한국인의 차이를 이렇게 진단하기도 했다.  

네덜란드를 “일상-실용-현실”의 체질로 “자유-자치-자연”이라는 가치를 “협의-합의-통합”이라는 방식으로 구현 [중략] 이는 “관념-추상-사치”의 체질로 “예의-권위-전통”이라는 가치를 존중하며 “명령-억압-분열”이라는 방식으로 따로따로 분리되어 사는 계급사회와는 반대이다.(61쪽)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마음속을, 그리고 자신의 집안 속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허젤러흐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자는 게 10년 전에 나온 ‘작은 나라에서 잘 사는 길’, 그리고 이번에 나온 ‘네덜란드에 묻다, 행복의 조건’의 취지일 것이다. 나비의 날개짓은 항상 보잘것없고 미미하지만, 그 날개짓이 모이면 태풍도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책들이 10년에 한 번씩 나온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크게 달라질 리는 절대로 없지만,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나비 날개짓만큼이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쪽이 조금은 허젤러흐해지는 듯 하다.

 

넓게도 창을 내고, 커튼으로 가리지 않고 사는 네덜란드 사람들. 그렇다고 집안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없으니 그것도 참 특이하다. (사진 제공 = 스토리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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