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평양 나들이 마치고 돌아온 대기업 총수들, 어떤 그림 그릴까?

이재용 “한민족 느꼈다” vs 최태원 “한반도 발전 방안 고민하겠다”

정의식 기자 2018.09.24 08:18:12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특별수행원들이 20일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동참했던 재계 인사들의 귀환 후 일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별한 소감을 밝히지 않았지만, 최태원 SK 회장은 경협 가능성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고, 현정은 현대 회장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구광모 LG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도 이번 방문을 통해 남북경협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별수행원 52명 중 경제인은 17명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 간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방문단에는 공식 수행원 14명과 특별수행원 52명이 포함됐는데, 특별수행원 중 약 3분의 1 수준인 17명이 경제계 인사였다. 과거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때와 같은 수준이다.

 

경제계 참가자 면면을 살펴보면, 최태원 SK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4대 그룹의 대표자들과 경협 기업을 대표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경제단체를 대표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등과 오영식 코레일 사장, 민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 공기업 대표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이재웅 쏘카 대표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구성됐다.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이 공군 1호기에 탑승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이들의 일정은 기본적으로 ‘관광’과 ‘현장 시찰’로 꾸며졌다. 방북 첫날인 18일에는 평양시 관광과 리룡남 내각 부총리와의 면담이 있었고, 둘째날인 19일에는 황해북도 송림시의 양묘장을 방문한 뒤 평양 옥류관에서의 오찬, 문 대통령과 평양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의 환송 만찬을 가진 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 예술 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했다.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백두산에 올라 천지의 장관을 함께 즐긴 후 비행기 편으로 성남공항에 귀환했다.

 

바쁜 일정을 마무리한 후 방문단은 공통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는 소감을 드러냈다. 북한이 예상 이상으로 발전된 생활상을 보였으며, 과거와 달리 경협에 대한 큰 기대감을 표현했다는 것. 이에 각 기업 총수들은 남북 화해가 가져온 변화에 걸맞는 사업 추진을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부회장, 리룡남 부총리와의 만남 ‘화제’

 

방북단에 참가한 경제인 중 가장 관심을 모은 인물은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삼성그룹 총수로서는 처음 참가한다는 점과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의 방북 기간 중 일거수일투족은 빠짐없이 언론의 주목 대상이었다.

 

방북 첫날 평양시 중구역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리룡남 북한 내각 부총리와의 경제인 방북단 면담에서 이 부회장은 “평양의 건물에 쓰여진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는 표어가 삼성의 기본경영철학인 ‘기술중심 인재중심’과 유사하다”며 “마음에 벽이 있었는데 이렇게 와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여러분을 뵙고 하며 ‘이게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리용남 내각 부총리와 악수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 연합뉴스

이에 리 부총리는 “우리 이재용 선생은 보니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던데”라고 말문을 연 뒤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유명한 인물이 되시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다. 이는 삼성그룹이 남북 경협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비쳐진다.

 

20일 귀환 후 이 부회장은 취재진들의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승용차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경협 추진 가능성을 ‘반반’이라고 예상하는 분위기다. 사업적 이해관계보다는 한국 대표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경협을 검토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태원 “많은 기회 혹은 백지”… 구광모 “구체적 단계 아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북인 최태원 SK 회장은 방북 기간 내내 한결 여유로운 자세를 보여 화제를 모았다.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손에서 떼지 않고 방북 기간 중 일행들의 사진사를 자처해 재미있는 장면을 여럿 연출했다.

 

최 회장은 귀환 후 취재진들에게 “여러가지를 보고 왔다. 양묘장에서부터 학교들도 봤다”면서 “아직은 보고 온 얘기가 있고, 듣고 온 얘기가 있으니까 소화하고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최태원 SK 회장(왼쪽)이 19일 오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에 앞서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는 “상당히 많은 기회도 있을 수 있고, 또 어찌 보면 하나도 없는 백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거기에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그다음에 어떤 협력을 통해 좀더 한반도 발전이 잘 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해 적극적인 경협 검토를 시사했다. 

 

구광모 LG 회장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총수 취임 이후 대중에게 공개된 첫 일정을 북한에서 소화한 그는 리룡남 부총리 면담에서 “LG는 전자, 화학, 통신 등의 사업을 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경협 참여 의지를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구 회장은 귀환 후 취재진들에게 “많이 보고 왔다. 잘 다녀 왔다”고 인사말을 전한 뒤 남북경협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현정은 “희망이 우리 앞에 있다”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큰 기업은 단연 현대그룹이다. 현정은 현대 회장은 귀환 후 평양 방문 소감을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짧게 밝힌 후 자리를 떴지만, 이후 별도의 소감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도 넘어야 할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 이제 희망이 우리 앞에 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중단상태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를 기대하고 있는 현대의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 읽혀진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가운데)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 차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외에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도 경협에 대해 다각적으로 구상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재계 관계자는 “국제 사회의 북한 제재가 유지되고 있어 경제인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북한 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으며, 이번 방북은 미래 대북 사업 구상을 가다듬는 좋은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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