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쓰레기로 만들어진 꽃·의자·유토피아

최정화·문승지·케니 샤프 등 작업 눈길

김금영 기자 2018.10.11 09:30:00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플라스틱 대란이 휘몰아친 올해, 쓰레기를 보는 시선 또한 달라졌다. 쓸모없는 존재로만 치부해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지, 또한 이미 생성된 쓰레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또 현재의 문제를 초래한 원인에 대한 고찰까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는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

 

최정화 작가의 대형 설치 작품 ‘민들레’가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모습. 7000여 개의 버려진 식기로 만들어졌다.(사진=김금영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엔 사람들이 쓰던 식기 7000여 개로 구성된 9m 크기의 대형 작업 ‘민들레’가 설치됐다. 식기를 비롯해 플라스틱, 빗자루, 돼지저금통, 풍선 등 남들이 볼 때는 쓰레기였던 이 재료들을 꾸준히 작업에 사용해 온 최정화 작가의 작품이다.

 

최 작가는 “이 재료들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90년대에는 ‘저게 뭐야?’ 하며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요즘엔 사람들의 시선이 변화됐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민들레’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느껴진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은 새로운 포토존으로 떠올랐다. ‘민들레’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민들레’는 쓰레기의 집합체가 아닌, 친근한 예술이다.

 

문승지 작가는 버려진 캔들을 녹여서 의자로 재탄생시켰다.(사진=파라다이스 문화재단)

파라다이스집에서 열리고 있는 문승지 작가의 ‘쓰고쓰고쓰고쓰자’전에는 의자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냥 만들어진 의자가 아니다. 한 장의 합판에서 버려지는 나무 조각 하나 없이 의자가 생산되는 개념의 포 브라더스(Four Brother) 컬렉션을 비롯해 버려진 캔을 녹여 만든 의자 등을 선보이며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 작가는 “하나의 의자를 만들기 위해 그 의자만큼의 쓰레기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렇다면 ‘아예 쓰레기가 안 나오는 의자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포 브라더스 컬렉션이 시작됐다”며 “무언가를 쓰기 전에 환경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를 전시에 담았다”고 말했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코스(COS)는 환경을 생각하는 포 브라더스의 스토리에 공감하며 문 작가와 2013년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케니 샤프의 전시가 열리는 롯데뮤지엄 전경. 작가는 공상 과학만화의 캐릭터와 소비사회의 메시지를 결합시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쳐 왔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리고 이번엔 케니 샤프의 전시가 한국을 찾았다. 롯데뮤지엄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열리는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전은 공상 과학만화의 캐릭터와 소비사회의 메시지를 결합시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친 팝아트 작가 케니 샤프의 회화, 조각, 드로잉, 비디오, 사진자료 등 작품 100여 점을 소개한다. 특히 작가의 작업에 눈길이 가는 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바라본 그의 시선이 담겨 있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태어난 케니 샤프는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를 만난다. 서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은 이들은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를 활보하며 ‘클럽(Club) 57’에서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실험했다. 전시는 이때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케니 샤프는 1960년부터 방영된 만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미래 시대 우주가족 젯슨’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기도 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우리는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파티를 열었다. 바스키아는 낙서를 했고, 길거리에 그래피티를 하기도 했으며, 나와 키스 해링은 TV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인 관심을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노 퓨처, 포 유(No Future, For you)’를 외쳤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 모르니까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자는 예술가들의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권윤경 롯데뮤지엄 수석 큐레이터는 “이스트빌리지 반항아들의 집합소와도 같았던 클럽 57엔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힙합, 펑크, 패션, 대중문화, 거리문화를 실험하고 혼합했다”며 “하위문화로 여겨졌던 젊은 예술가들의 반항심이 어떻게 주류문화까지 올라왔는지 전시 시작 부분에서 알려준다”고 덧붙였다.

 

핵폭발로 인한 지구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귀여운 얼굴을 가진 생명체로 재탄생시킨 설치작업 ‘피카붐(Pikaboom)’.(사진=김금영 기자)

그리고 작가의 관심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으로 옮겨져 간다. 1958년생인 작가는 1979년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를 통해 핵전쟁과 환경 파괴에 대한 두려움을 몸소 경험했다. 이 두려움 속 작가는 톰과 제리의 제작사로 유명한 헤나-바베라의 만화에 빠져들었다. 특히 1960년부터 방영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미래 시대 우주가족 젯슨’은 석기시대와 우주시대의 전혀 다른 배경을 다뤘지만, 작가가 당면한 현실의 고통을 과거와 미래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특별한 매개체가 됐다.

 

“이 괴짜는 뭘까? 맨해튼의 모든 쓰레기를 다 끌고 다니는 것 같다”

 

‘정글 ’시리즈는 공격적인 개발로 파괴된 자연의 모습을 지구 멸망 이후의 모습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핵폭발에 의해 지구가 멸망한 그 이후의 모습을 우주에 사는 가족 ‘젯스톤’ 시리즈를 통해 보여줬다.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버섯구름과 미래 시대의 건축물을 과거의 풍경에 배치하며 시간과 공간이 교차된 혼성적인 내러티브를 생성했다. 핵폭발로 인한 지구 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귀여운 얼굴을 가진 생명체로 재탄생된 폭발 구름을 담은 설치작업 ‘피카붐(Pikaboom)’에서도 발견된다. 권윤경 큐레이터는 “작가는 당시 핵전쟁, 환경 파괴의 위험을 만화 세계와 결합해 과거와 미래, 즐거움과 공포, 선과 악이 혼재된 혼성적인 화면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작가는 소비사회와 물질주의 삶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잔혹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슈퍼 팝(Super Pop)’ 시리즈와 ‘도넛 & 핫도그(Donuts & Hotdogs)’ 시리즈 등을 작업한다.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거대하게 그려진 통조림, 도넛 등을 통해 대변했다.

 

케니 샤프는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버려진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져 왔다.(사진=김금영 기자)

‘정글’ 시리즈와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통해서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 브라질을 여행하던 작가는 이국적인 열대 우림에 매료됐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자연의 모습을 목격했고, 작가는 1989년부터 마돈나를 비롯한 연예계 스타들과 환경 캠페인 ‘돈 번글 더 정글(Don’t Bungle the Jungle)’을 진행하고 환경기금을 마련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환경에 대한 실질적인 목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그 행보는 ‘정글’ 시리즈를 통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글 ’시리즈는 공격적인 개발로 파괴된 자연의 모습을 지구 멸망 이후의 모습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최근작 ‘정글 짐(Jungle Gym)’에서는 신비한 생명체들로 가득 찬 환상적인 자연의 세계가 담겼다. 권윤경 큐레이터는 “작가는 그를 둘러싼 자연과 파괴적인 인간성을 예술로 표현함으로써 환경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실천하기를 촉구한다. 밝고 유쾌한 그의 작품 속에는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케니 샤프의 전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공간 ‘코스믹 카반’.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커스터마이징 작업의 확장판으로, 케니 샤프가 창조한 유토피아 공간이기도 하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버려진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 또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작은 시계, 라디오, 전화기부터 시작해 의자, 침대, 자동차까지 버려진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직접 수거해 작업하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작업을 보고 키스 해링은 “이 괴짜는 뭘까 생각했다. 맨해튼의 모든 쓰레기를 다 끌고 다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권윤경 큐레이터는 “초창기 괴짜의 실험적인 퍼포먼스로만 여겨겼던 작가의 커스터마이징 작업은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 예술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예술’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인정받게 됐다”며 “작가는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통해 일상의 순간을 예술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각종 상품들이 버려져 쓰레기로 전락하는 현대 물질주의와 소비사회의 폐허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코스믹 카반’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에서 케니 샤프는 특별히 한국 관람객 50명이 기증한 폐장난감을 함께 사용해 공간을 꾸렸다.(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건 ‘코스믹 카반(Cosmic Cavern)’이다.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커스터마이징 작업의 확장판과도 같은 느낌이다. 작가는 플라스틱, 장난감, 키보드 등 버려진 것들로 꾸려진 새로운 공간, 즉 현실에서 벗어나 우주로 탈출하는 유토피아를 창조했다. 코스믹 카반 내 설치된 TV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고,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특별히 한국 관람객 50명이 기증한 폐장난감을 함께 사용해 공간을 꾸렸다.

 

권윤경 큐레이터는 “관람객은 코스믹 카반 공간에 들어와 이 공간을 구성한 물건들을 바라보며 플라스틱 쓰레기로 둘러싸인 우리의 환경을 자연스럽게 함께 체험한다”며 “이 공간에서 즐거움과 환상을 경험함과 동시에 우리가 만든 쓰레기로 오염되는 자연의 모습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니 샤프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업한 10m 길이의 대형 벽화. 서울을 감싼 산과 한강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표현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사실 작가가 처음 코스믹 카반을 작업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엔 플라스틱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의 일상용품으로 편히 쓰였고, 사람들도 큰 경각심 없이 플라스틱을 쓰고 버렸다. 작가는 “대중이 사회 이슈를 깨닫기 전 먼저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아티스트로서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1960~70년대 때는 사람들이 아직 재활용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때였다.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쓰고 버리기만 하면 지구가 오염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플라스틱에 대해 사람들이 경각심을 지녔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줄로만 알았던 쓰레기들의 드라마틱한 변신. 변신의 결과는 아름답지만 마냥 환상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아름다움 이면에 자리한 냉혹한 현실 또한 품고 있다. 이 작품들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케니 샤프는 이번 전시를 기념해 10월 2일 잠실 롯데월드타워 광장에서 자동차 외부에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카밤즈(Karbombz) 퍼포먼스를 펼쳤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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