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구간] 일본의 바나레와 한국의 거절하기 책 유행…기업 마케팅에 바이바이 현상?

'미움받을 용기' '개인주의자 선언'에 이어 '거절 잘하는 법'까지

최영태 기자 2018.10.11 10:54:14

일본의 20대 운전면허증 소지자 감소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바나레’가 유행이라고 한다. 바나레(離れ)는 이별 또는 분리의 뜻이며, 예컨대 ‘구루마차(차) 바나레’는 차 구입과의 작별하기, ‘사케(술) 바나레’는 술과 작별하기라는 의미란다. 


자가용 차의 경우 “일본처럼 대중교통망이 잘 발달된 나라에서 버스-전철이 어디든 가는데 굳이 내 차가 왜 필요하냐?”라는 의문을, 술 바나레는 “내가 원치 않는 술을 교제니 뭐니 하면서 마실 필요가 뭐람?”이란 반발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한다. 

 

바나레 현상은 한국의 ‘N포’(여러 가지를 포기) 현상과 비슷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N포는 “하고 싶지만 형편이 안 되니 못 한다”는 측면이 강하지만, 일본의 바나레 현상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아 떠난다”는 측면이 강한 듯한 느낌이다.

 

일본의 아르바이트 인건비 수준이라든지 최근의 일본 내 구인난 등을 고려하면, 일본 젊은이들의 이른바 '구루마 바나레'가 "살 수 없으니 포기한다"는 포기 현상과는 일정 정도 차이가 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연애, 결혼, 집장만, 자녀출산 등을 한국 젊은이들이 포기하는 바탕에는 “하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안 되는 나라이니 포기한다”는 아쉬움이 묻어 있지만, 일본 젊은이들의 바나레에는 “하기 싫으니 냅둬”란 마음이 더 비치는 듯하다. 

 

70대 노인보다 더 외출 않는 일본 젊은이들 

 

수치를 보면 이런 특성은 분명해진다. 한국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전체 자동차 소유주 중 30세 미만 비중은 2001년 14%에서 2015년엔 6%로 급감했단다. 해외로 유학을 나가는 일본 학생의 숫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보다도 적고, 외출(통근, 쇼핑, 운동 포함) 횟수도 20대가 월평균 37.3회로, 70대의 40.8회보다도 적단다. 70대 노인보다 20대 젊은이가 더 외출 안 하는 현상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바나레 현상을 ‘마케팅 거절’로도 읽을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마케팅 사회가 된 지 오래다. 마케팅 사회란 필요가 아니라 광고에 의해 물건을 판다는 개념이다. 처음 차가 나왔을 때 그 가격 대비 성능이 말 또는 자전거보다 월등했기에 사람들은 비싸도 차를 샀다. 효능을 산 것이다. 그러나 품질관리의 향상, 기술의 평준화(차를 만드는 나라 숫자의 증가)에 따라 이제 차의 성능은 거의 평준화됐으며 어떤 차를 사든 차를 굴린다는 효능에는 별 차이가 없는 세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차를 팔려면 과거처럼 “성능이 좋으니 사라”고 해서는 팔리지 않는다. 요즘 TV의 자동차 광고에서 소형차의 경우 “이렇게 차내 공간이 넓고 성능이 좋다”는 광고도 어쩌다 한 번씩 보이지만, 외제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대형 이상 승용차의 선전은 “이 차만 있으면 당신은 섹시해질(매력적일) 수 있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신들은 마케팅하세요. 저는 사기 싫어서 안 산답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바나레 현상은 이제 마케팅 꼬임수까지도 거절하는 단계까지 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제가 정 필요하면 사겠지만 당신들 마케팅 속임수에는 안 넘어가요”라는 바이바이 손짓이라고나 할까.


이런 현상은 책 출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자기개발 책은 “노력해서 성공하려면 이리이리 해라”는 내용이었고, 그 성공의 기준은 객관적이었다. 즉 남들이 봐서 인정하는 성공이었다. 

 

그러던 한국에서 2014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나와 큰 인기를 끌더니 다음해엔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2015년)이 나와 화제가 됐다. 외적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평안한 게 중요하다는, 즉 기준을 밖이 아닌 마음 안에 둬 세상이 뭐라 하건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중심을 내 안에 두기’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독서코칭연구소라는 곳에서 거절 테라피스트로 일한다는 이하늘 저자가 펴낸 ‘거절 잘하는 법’이라는 신간서도 이런 책 중 하나다. 


책에는 ‘대부분 사람들은 당신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부탁하는 것이다’(41쪽), ‘자신의 능력 밖이거나 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는 등 이유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묵인하고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다’(40쪽), ‘도와주려는 마음을 내려두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해보자’(121쪽)는 등 거절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가 뽑은 거절의 5대 요령 중 네 번째 ‘관계에 지배 당하지 말고 지배하라’는 문구에서도 기준을 외부에 두지 말고(그러면 지배를 당하므로), 내부에 두라는 당부가 읽혀진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정부만 꼬드기면 뭐든 팔 수 있어"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마케팅만 잘하면 뭐든 팔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처럼 정부가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면 굳이 내 집 마련에 인생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게 진실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빚 내기 쉽게 해줄 테니 집을 사라’며 재벌급 건설업체들을 돕기 위한 주택 정책을 폈으며, 그 전의 이명박(최근 자동차 시트 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법원의 판결을 받은) 정부는 ‘자동차 면허 따기 쉽게 해줄 테니 차를 사라’는 정책을 폈다. 재벌이 정부를 꼬드겨 마케팅하면 돈이 척척 들어오는 구조라고나 할까.

 

일본의 바나레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면, '정-관 유착'이라는 한국의 훌륭한 마케팅 수단은 그래도 살아남을까? (사진 = 국회방송 캡처)


현대 한국인 또는 일본 젊은이들의 ‘거절’ 흐름을 기업과의 관계에서 읽어보면, 마케팅에 대한 거절로도 읽을 수 있다. 


‘중심을 내 안에 두자’는 거절-개인주의 세태 대 “마케팅만 잘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대기업들의 자신감이 맞붙는 형국이다. 최종 승자는 누굴까?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