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82) 인도 ①] 영어에 글로벌감각에, 인도가 곧 中 누른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8.10.18 09:28:29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9일차 (반다아체 → 쿠알라룸푸르 → 하이데라바드)


강력한 한국 여권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를 떠나 쿠알라룸푸르에서 환승, 4시간 넘게 날아서 밤 10시 40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 도착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만 해도 인도는 사전에 e-Visa를 받아야 했는데 여행기를 정리하는

지금은 도착 비자로 완화되었다. 이미 세계 7위인 한국 여권의 비자 자유도(Visa Freedom Index, 무비자나 도착 비자가 아니라 사전 비자를 받아야 방문할 수 있는 국가의 수가 적을수록 비자 자유도는 높다)가 한 단계 더 높아진 반가운 소식이다. 참고로, 인도 관광 비자는 첫 입국 후 60일 이내에 한 번 더 입국할 수 있는, 이른바 더블 비자다. 나의 경우, 하이데라바드로 입국하여 여행 후반부 콜카타에서 인도를 출국하여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후 다시 콜카타로 재입국하는 여정으로 계획할 수 있었던 것도 더블 비자 덕분이다. 


왜 하이데라바드에 왔냐고 물으면


하이데라바드를 첫 입국 도시로 선정한 것은 해당 일자 쿠알라룸푸르에서 항공 요금이 가장 저렴했다는 것과 함께 이곳은 인도의 남북 문화가 융합되는, 즉 종교적으로는 힌두와 무슬림 문화가 만나는 인도 중남부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라는 점. 그리고 방갈루루(Bangaluru), 첸나이(Chennai)와 함께 인도 IT의 본산이라는 점 때문이다. 


인도 동남부 데칸 고원(Deccan Plateau) 북부에 자리 잡은 인구 670만 명, 뭄바이, 델리, 콜카타에 이어 인구 기준 인도 4위의 도시로서 안드라 프라데시(Andra Pradesh) 주와 텔라가나(Telagana) 주의 공동 수도를 겸하고 있다. 


특히 1857년 영국에 의하여 델리와 무굴 제국이 함락되고 난 후에는 인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과거에는 진주와 다이아몬드 교역으로 진주의 도시(City of Pearls)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에는 제조업 도시로 성장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IT와 서비스, 금융 산업으로 다각화했다. 약품과 BT 산업으로도 유명하여 게놈 밸리(Genome Valley)라고도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인도 본부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버스를 놓칠까봐


에어아시아(Air Asia) 항공기의 연착과 느린 입국 절차 때문에 시간이 꽤나 지났다. 더구나 비까지 오는 아주 늦은 밤, 난생 처음 방문하는 낯선 도시라서 마음이 분주하다. 시내까지는 꽤나 먼 길인데 버스를 놓치면 택시 말고는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공항 터미널을 나오니 예상대로 택시 기사들이 극성을 부린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심지어 인도네시아처럼 사람들이 선량한 곳에서도, 택시와 뚝뚝 기사들은 교활하다는 것이 오랜 여행의 경험이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이지만 그래도 택시 기사들이나마 나를 반겨 주니 고맙기는 하다.

 

원래 10km 길이 성벽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군데군데 허물어진 골콘다 요새 유적. 사진 = 김현주 교수

택시 기사들은 버스가 없다고 겁을 주지만 더블 체크하며 확인한 인터넷 정보를 꿋꿋이 믿고 좀 더 걸어 나가니 공항버스 막차가 막 출발하려고 한다. 간신히 올라탄 버스는 만원이지만 운 좋게 빈 좌석을 하나 확보했다. 좌석이 살짝 빗물에 젖어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까짓것 빗물쯤이야 체온으로 삽시간에 마를 것이므로 상관없다. 버스는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긴장과 스릴의 질주를 계속한다. 


여기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진주(眞珠)의 도시, 게놈(genome)의 도시, IT 도시…. 이런 표현들은 아직은 허명인 듯 보인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세쿤더라바드(Secunderabad) 역 부근에서 버스를 내려 뚝뚝을 타고 숙소에 도착, 한숨을 돌린다. 우리나라 1960-70년대 시골역 앞 여인숙 바로 그 모습의 숙소에 경악하면서 억지로 잠을 청한다.


화장지 없이 볼일 보기


그런데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면 크게 당황할 뻔 했다. 종업원에게 휴지를 달라고 하니 아예 휴지 자체가 없다고 한다. 큰일 났다. 오늘, 내일까지는 평소 소지하고 다니는 비상용 화장지로 버틸 수 있다지만 앞으로 인도 다른 도시에서도 계속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이후 인도 여행을 계속하면서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수준의 호텔은 아예 화장지가 없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결국 나는 현지인들의 용변 후 처리 방식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마다 반드시 있는 물총을 이용하여 뒤처리를 하는 것은 화장지를 이용하는 것보다 어찌 보면 훨씬 깨끗한 방식이었음도 깨달았다.

 


10일차 (하이데라바드 → 고아)


Incredible India


밤새도록 들려오는 열차 기적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래도 새 날이 되어 어젯밤 놀랐던 인도의 모습에 적응해 간다. 10년 전 세계 여행 초기 처음 찾은 인도 여행길에서 가는 곳마다 받았던 충격을 기억해내며 지금 닥친 현실을 이겨낸다. 날씨는 다행히 선선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데칸고원 언저리 해발 542m 높이에 도시가 자리 잡은 까닭일 것이다. 덥긴 더웠지만 그래도 이 계절 동남아의 다른 지역, 특히 어제 떠나온 인도네시아에 비하면 여기는 날씨만큼은 훨씬 쾌적해서 좋다. 


그런데 솔직히 도착하자마자 떠날 생각이 든다. 인도를 떠날 때까지 앞으로 12일 남짓… 말없는 전쟁. 차라리 나와의 전쟁을 시작하기로 한다. 여행 중에는 지긋지긋 넌더리가 나다가도 훗날 다시 생각난다는 나라 인도. 참으로 묘한 나라라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말을 되뇌며 인도 여행의 첫 아침을 연다. 그래서 인도인들도 스스로 ‘놀라운 인도’(Incredible India)라고 하는가 보다.
 

하이데라바드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비를라 만디르(Birla Mandir). 후사인 사가 호수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잡은 이 사원은 인도 남부와 북부의 건축 스타일을 융합한 독특한 양식으로 유명하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하룻밤 사이에 인도 시민 되기


숙소 앞 거리는 매우 번잡하지만 시내버스 터미널이 바로 옆에 있어서 이동에는 편리하다. 도시 전역에 명소가 흩어져 있어서 하이데라바드에서는 시내버스 이용이 필수이다. 그래도 시내 웬만한 명소는 버스로 연결되므로 잘만 찾아서 타면 공짜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이동 비용이 저렴하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 비를라 만디르(Birla Mandir)부터 찾는다. 시내 한복판, 후사인 사가 호수(Hussain Sagar Lake, 일명 탕크 번드/Tank Bund)를 내려다보는 작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사원은 인도 남과 북의 융합 건축 양식의 진수로 평가받는다. 다만 카메라를 비롯한 개인 용품을 모두 맡기고 신발을 벗은 후에야 사원에 입장해야 하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운 좋게 버스를 잘 만나 차르미나르(Charminar)로 향한다. 4개의 거대한 아치 위 56m 높이의 미나렛은 사방 풍경을 조망하기에 그만이다. 1591년 무굴 왕국 쿠툽 샤(Qutub Shah) 황제 때 창궐하던 도시의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부적으로 건립했다. 부적으로 건립하기에는 너무 크고 웅장한 것으로 보아 절대 군주의 성세를 과시하기 위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혼줄 빠지는 인도 여행


그런데 엄청나게 인파가 많다. 굳이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도는 언제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으니 인구 14억 명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 인파는 중국 유명 관광지에서도 종종 겪어 봤던 일이기에 덤덤히 받아들인다. 인파보다 힘든 것은 어딜 가도 질퍽거리고 시끄럽고, 특히 전후좌우에서 정신없이 달려드는 오토바이까지 보태져서 정신이 쑤욱 빠져나가는 것 같은 여행 환경이다. 냄새도, 쓰레기도, 진창까지도 견딜 수 있지만 청각으로 자극하는 경적은 인도 여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그래도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가끔은 공공 와이파이가 매우 강한 신호로 잡히니 알다가도 모를 조화다. 

 

56m 높이의 거대한 미나렛 위에서 사방 풍경을 조망하기에 그만인 차르미나르. 1591년 무굴 황제가 창궐하던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부적으로 건립했다는 이 건물은, 부적이라기엔 너무나 웅장해 군주의 권세 과시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무굴제국의 영화는 사라지고


차르미나르와 바로 붙어 있는 메카 마스지드(Mecca Masjid) 또한 이 도시의 대표적 이슬람 사원이다. 쿠툽 샤 황제 때 건축을 시작하여 1687년 아우랑제브(Aurangzeb) 황제 시절 완성했다. 아치 모양의 문이 인도 이슬람 양식의 전형으로 꼽힌다. 과거 인도 여행 당시 인도 북쪽 여러 곳에서 느꼈던 무굴 제국의 위세가 머나먼 남쪽까지 뻗쳐 있었음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골콘다 요새(Golconda Fort) 유적지를 찾는다. 지독한 교통 체증으로 차르미나르에서 여기까지 버스로 오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고 말았다. 쿠툽 샤 왕국의 수도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던 거대한 요새가 지금은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패인 채 성벽만 남아 있다. 원래 외부 성벽은 10km 길이에 걸쳐 축성되었다. 


힘들게 왔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퍼붓는 수준이다. 사진 몇 장을 겨우 남기고 숙소로 서둘러 돌아와 짐을 챙겨 공항행 버스에 오른다. 숙소 앞 세쿤더라바드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공항까지 두 시간 거리에 고작 40루피(650원), 믿을 수 없이 저렴한 요금이다. 공항에 오니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북부 무굴 제국의 위세가 머나먼 남쪽까지 뻗쳐 있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메카 마스지드 이슬람 사원. 아치 모양의 문이 인도 이슬람 양식의 전형으로 꼽힌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인도 굴기’의 가능성을 엿보며


공항에서 두 개의 인도를 본다. 초현대식 공항과 그 안을 오가는 인도의 선남선녀들…. 인도에서 항공기는 아직 선택된 자들만이 향유하는 교통수단인가 보다. 터미널 건물 내 가득 입주한 상점과 음식점들. 인도 기준으로는 매우 높은 가격이지만 상점마다 음식점마다 손님들로 가득한다. 기어코 ‘인도 굴기’를 보게 될 날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무서운 나라가 하나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도인들의 영어와 글로벌 소통 능력, 서구식 민주주의 교육만 보태져도 중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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