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골프 만사] 내 ‘Fiel명’은 공골거사…필드의 갖가지 이름들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기자 2018.10.22 10:22:15

(CNB저널 =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분이 집에 오셔서 “남파 계시냐?”고 물으셨겠다.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니 “어찌 느네 아버지 이름도 모르냐”고 야단을 쳤다. 왜 아버지는 남파간첩이 아니신데, 남파라고 불릴까 무척 궁금했는데, 그게 이름을 고상하게 대신하는 호라 했다. ‘남쪽 언덕에 봄이 온다’는 뜻으로 남파(南坡)라 명명했다는 설명을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이름, 중요하다.


연예인들의 예명(藝名)은 심지어 성까지도 바꾸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가수 태진아의 본명은 조방헌이다. 그의 아들도 가수인데, 조 씨 아닌 ‘이루’이니 당연히 다른 이름을 쓰고 있는 것.


다른 이름 많이 쓰는 직업군 중 하나가 글 쓰는 작가들. 상당수가 본명 닳을까봐 숨겨두고 필명(筆名)을 쓴다. 저 유명한 시인 이상은 ‘김해경’, 이육사는 ‘이활, 이원록’이 본명이다. 이육사 경우, 독립운동 하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二六四(264)가 됐다지 아마. 기념할 게 따로 있지!  


처음 아내가 비용, 시간 등 문제로 골프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 엄청난 액수의 그린피를 3분의 1정도로 속였고(그래도 비싸다 했다), 한두 번은 골프장에 안 갔다 하려 김재화 아닌 ‘강감찬’이란 이름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골프를 해서 돈을 버는 프로 골퍼들은 자기 이름이 당당하겠지만 아마추어는 어디 그런가. 여전히 ‘해서는 안 되는 음험한 운동’을 하기에 자기 이름을 감춰야 할 때가 많다. 지금도 골프장에서만 쓰는 다른 이름을 따로 가진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골프장에서 움츠러드는 공직자들


내 필명 공골거사가 작가 이름 같지가 않다고들 한다. 필명이되, 그 필명이 아니라면 고개를 더 갸우뚱한다. 난 내 이름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야 하는 전업 작가(칼럼니스트)이기에 ‘김재화’라는 본명을 팍팍, 널리 쓰고 있다. 필명 공골거사는 뭐냐구? 궁금하시다면 밝히겠다. ‘공 때리고 골 때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골프장에서만 쓰는 필명(Fiel名: 필드 이름)이다.

 

이 나라에서는 여전히 골프장 드나드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공직자나 사업가들이 있는데, 고위직일수록 꼭 필명(필드 이름)을 따로 쓰고 있다. 20여 년 전의 YS정부 때부터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골프에 대해 엄격했다. 대장이 탕수육을 먹지 않은데, 쫄따구가 감히 짜장면 이상을 어떻게 먹나! 목이라도 내놓는 어지간한 간 크기라면 모르되 필드에 나갈 엄두를 못 냈다. 그래도 골프는 얼마나 좋은가. 유혹에 진 공직자들은 본명(本名) 외에 ‘Fiel명’을 달고 나갔다. 명단과 골프백 이름표에 적는 가짜 이름이 ‘필명’이다. 


지금도 일부 그러지만, 꼭 차량 편의 도모뿐 아니라 골프장에 차를 두지 않으려 자기 차는 ‘만남의 광장’에 세워두고, 몇이서 모여 골프장 행을 했다. 더러 감찰기관에서 나와 휴게소에 오래 서 있는 차 중에 공무원 차가 있는지 내사를 하기도 했다. 이게 골프 강국 대한민국의 모습이라면 골프를 하는 다른 나라에선 미세먼지가 들어오건 말건 벌린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 놀랄 것이다.  


에~ 내가 답까지는 모르겠고, 문제 제기는 하겠다. 한국서 골프가 진짜 대중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여자 골프 최강국으로 국위선양과 외화 벌이도 오래오래 하려면, 공직자들부터 자기 이름 당당히 내걸고 골프장에 갈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할 것이다. 현 대통령도 남북평화 위해 바쁘게 애쓰는 거 잘 알지만, 문재인이라는 실명으로 골프장에 좀 다니셨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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