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호퍼에서 미로까지’ 명화에 꽂힌 기업들

삼성·LG·신세계·오뚜기…광고·제품 등에 명작 활용 “왜”

선명규 기자 기자 2018.10.22 11:01:02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해 화제가 된 ssg닷컴 광고 영상. 사진 = 유튜브 캡처

(CNB저널 = 선명규 기자) 기업들이 독보적 화풍의 세계적인 화가들에게 손 내밀고 있다. 삼성·LG전자는 TV가 꺼진 상태에서 유명 갤러리의 소장품과 대가들의 명작을 관람하는 갤러리 기능을 선보였고, 오뚜기는 서른살 된 진라면 포장지를 스페인 거장의 그림으로 바꿨다. 신세계종합온라인몰 SSG닷컴은 명화를 패러디한 광고로 화제성과 매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방안에 두 남녀가 있다. 둘뿐인데 서로 심드렁하다. 남자는 서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고, 등 돌린 여자는 검지를 세워 공연히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려 한다. 냉랭한 기운만이 둘을 싸고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 1932년 作)’을 보면 경제 대공황 당시 미국인들의 권태롭고 메마른 정서가 전해진다.


신세계종합온라인몰 SSG닷컴은 호퍼 특유의 냉소에 재치를 더한 반전 광고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그림 속 두 남녀로 변신했는데 차가운 분위기와 상반되는 둘의 입담이 재미있다. 


가령 공효진이 “이거 어때요? 나한테 어울려요?”라고 물으면 공유가 “사신거?”라며 되묻고, 서로 “살생각, 사셨군, 선수군”이라고 빠르게 주고받는 식이다. 말투는 건조하고 심각한데 다분히 일상적인 대화라서 재치 있게 느껴진다. 대화속 단어 대부분을 SSG의 초성인 ‘ㅅ, ㅅ, ㄱ’으로 구성한 점도 눈에 띈다. 이 광고는 무수한 패러디를 낳으며 유튜브와 SNS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호퍼의 명작을 오마주하면서도 위트 있게 비튼 ‘쓱(SSG)’ 캠페인은 재작년부터 최근까지 다수가 연재되는 동안 각종 광고 시상식을 휩쓸었다.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장관상, 한국광고학회 선정 ‘올해의 광고상’ TV부문 대상, 대한민국 광고대상 광고상을 받았고, 서울영상광고제에서 최고 영예인 그랑프리(대상)와 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매출 증가도 따라왔다. 본격적으로 광고가 가동된 2016년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고,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세를 보였다. 잘 만든 광고 하나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S-FACTORY)에서 열린 현대미술 작가들의 축제 ‘유니온 아트페어 2018’에 참여해 ‘더 프레임(The Frame)’ TV를 활용한 작품 전시를 개최했다. 사진 = 연합뉴스

명화가 광고에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요즘 TV의 대세 기능 중 하나는 화면을 그림으로 바꿔주는 ‘액자 모드’이다. TV가 갤러리로 전환돼 거실을 미술관처럼 꾸며주는 ‘공간 변신’ 모드가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형 ‘더 프레임(The Frame)’에 전 세계 주요 갤러리와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트 모드’를 탑재했다. 관람 방식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사용자가 설정한 주기에 따라 자동으로 작품을 변경해 주고(슬라이드쇼), 자주 찾는 아트 작품을 별도로 구분(즐겨찾기)해 준다. 계절이나 주제에 따라 작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기능도 갖췄다.


LG전자는 최근, 올레드 모델에만 있던 ‘갤러리 모드’를 LCD TV인 슈퍼 울트라HD TV 라인까지 확대 적용했다. ‘갤러리 모드’는 사용자가 시청하지 않을 때 그림을 띄워 액자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능. 선호에 따라 등록한 사진이나 모네, 고흐 등의 명작으로 나만의 공간을 갤러리로 탈바꿈할 수 있다. 

 

진라면, 스페인 거장과 만나


노란 바탕 위에 투박한 선이 자유롭게 그어졌고, 빨강, 파랑, 초록색이 점점이 뿌려져 있다. 종잡을 수없는 패턴과 화려한 원색의 조합이 왠지 익숙한 피카소의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이 추상적인 작품이 등장한 곳은 다름 아닌 ‘라면 봉지’. 샛노란 포장지로 대표되는 진라면의 최근 모습이다.


오뚜기는 올해로 출시 30년 된 진라면의 겉옷을 명화로 바꿨다. 작품의 주인공은 피카소, 달리와 함께 스페인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호안 미로. 미로는 프란시스크 갈리의 미술학교에서 교육 받았는데 수업 방식이 독특했다. 눈을 가린 채 양손의 촉감만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 교습을 받았다. 그의 작품이 추상적이면서도 단순한 형태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번에 출시된 ‘진라면X호안 미로’ 아트콜라보를 두고 어린 아이의 낙서 같지만 선과 색을 조합하면 ‘물체가 보인다’는 평과 ‘그림 동화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멀지 않다. 입체주의, 초현실주의를 추구한 미로의 작품 세계가 라면 한 봉지에 들어 있는 것이다.


진라면 이립(而立)을 맞아 시도한 예술과의 만남으로 기대하는 점은 이미지 제고. 오뚜기 관계자는 이번 아트 프로모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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