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전시] 서울사진축제, 디지털 ‘멋진 신세계’의 참혹에 포커스

첨단 빛나지만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 보여줘

김금영 기자 2018.11.12 11:21:39

박진영, ‘후쿠시마 아카이브 - 타버린 책상’. 디지털 C-프린트, 185 x 225cm. 2011.(사진=작가소장)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올더스 헉슬리의 고전 소설 ‘멋진 신세계’. 찬란하고 빛나 보이는 제목과 달리 소설은 과학과 진보가 만들어 낸 초극단의 체제 안에서 마주하는 미래사회의 위험들을 동시대적 현상을 통해 냉철하게 살폈다. 그리고 올해 서울사진축제는 이를 차용해 ‘멋진 신세계’라고 이름을 내걸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내년 2월 10일까지 2018 서울사진축제 ‘멋진 신세계’를 연다. 기혜경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은 “과학기술과 매체의 발달은 우리의 생활을 새로운 개념들로 채우고 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에 초래할 변화를 동시대 미술을 통해 살펴보려는 의도로 이번 사진 축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노순택, ‘현기증 I #CFJ1301’. 디지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62 x 112cm. 2015.(사진=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축제는 크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의 메인 전시 ▲SeMA 창고를 활용한 특별전 ▲플랫폼창동61에서의 장소 특정적 현장 설치 작업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 아트나인과 함께하는 예술영화 상영으로 구성된다.

 

메인 전시에는 6개국 19명 작가들(김명수, 노순택, 백승우, 박선민, 박진영, 윤향로, 한성필, 김경태, 코바야시 켄타, 고 이타미, 하타케야마 나오야, 가와우치 링코, 코야마 다이스케, 미즈타니 요시노리, 요시다 카즈오, 장커춘, 키트라 카하나, 알레한드로 카르타헤나, 세실 에반스)이 참여한다. 메인 전시는 경제 개발의 문제부터, 체제와 이념의 양극화, 미디어 독재와 사실 구분의 모호성, 인간이 일으키는 수많은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소설 ‘멋진 신세계’가 제기한 기술이 개발된 초 극단의 사회 체제가 갖는 문제들을 살펴본다.

 

박선민, ‘고속도로 기하학 2’.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왼쪽 10분 48초, 오른쪽 11분6초 반복 상영. 2015.(사진 = 작가 소장)

전시에 참여한 박진영 작가는 2011년 대지진이 일어났던 일본 후쿠시마 지역에서 주운 카네코 마리 씨의 사진첩, 그리고 카네코 마리 씨를 찾기 위해 작가가 보냈던 편지 등을 함께 선보인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의 폐허 현장에 갔을 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직접 사진도 찍었지만 현장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앨범도 발견했다. 폐허가 된 해변에서 작은 돌풍이 부는데 여기에 주인 없는 사진들이 흩날리는 모습을 봤다. 작은 USB에 사진 몇 천 장이 들어가는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사진들이 흩날리는 광경에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이 사진의 주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한다. 일본의 여러 시민단체, 언론 등에 편지를 보냈다.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 이 사진을 전시할 것인지, 태울 것인지 일본에서도 논의가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박 작가는 “내 작품 활동을 위한 발로라기보다는 사진 속 인물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위한 시도로서 이 사진들을 전시하고 싶었다”며 “특히 이번 전시와 연관해 느낀 점도 있었다. 디지털을 선도하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자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인공지능 등 기술은 끝없이 발전하지만 역으로 자연은 한 번씩 보란 듯이 우리에게 큰 경고를 한다. 태풍을 예측하는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듯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 또한 있음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 사진들에서도 그런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멋진 세계는 마냥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키트라 카하나, ‘노마딕 아메리카’.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각 20 x 30inch, 2009~.(사진=작가소장)

키트라 카하나 작가는 미국에 존재하는 소그룹의 단면을 포착해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이상과 괴리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1950년대 미국에서는 다리 밑에서 음식을 먹고 쓰레기통 옆에서 자고 무임승차를 하는 유목민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며 “자본주의로 무장한 미국은 멋진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마치 남겨진 부스러기처럼 이런 이질적인 모습 또한 존재한다. 항상 아름다울 수만 없는 세상의 단면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순택, 박선민 작가의 작업에도 눈길이 간다. 한국의 분단과 이로 인해 발생되는 정치 폭력의 의미를 추적하는 작업을 이어 온 그는 현장의 중심에서 지나간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이 일상의 삶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기록한다. 박선민 작가는 2채널 영상 작업에서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고속도로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초고속 시대에서 자본이 특정적으로 몰리는 지역을 연결하는 동시에 다른 지역을 단절시키는 상징이 오늘날 고속도로라 생각했다. 빠른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 파괴되는 것들에 주목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주원,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편집 1’. 사진과 텍스트 프로젝션,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60분. 2018.(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SeMA 창고에서의 특별전에는 김주원, 오연진, 이민지, 더 카피 트래블러스(카노 순스케, 사코 테페이, 우에다 야야) 작가가 참여한다. 특별전은 시간과 같은 물리적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세계와 이런 법칙을 따르지 않는 세계를 겹쳐 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 낯선 세계를 파악하고 상호 번역해낼 수 있는지 질문한다.

 

오연진 작가는 사진이 가진 다중적인 위상을 가늠하고, 김주원 작가는 사진 데이터와 기억의 위상을 재배치한다. 이민지 작가는 데이터로 구축된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 사이를 오가고, 더 카피 트래블러스는 인화와 복제를 통해 이미지를 수평적으로 공유하고 수직으로 쌓아 나가는 작업을 펼친다.

 

서울사진미술관 건립 추진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창동역 주변 플랫폼창동61에서는 압축과 팽창(안초롱, 김주원), 이성민x권영찬 작가가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현재와 겹쳐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더 카피 트래블러스, “이미지(Image)_31” 바이 아트북(by ART BOOK) “더 카피 트래블러스 바이 더 카피 트래블러스(THE COPY TRAVELERS by THE COPY TRAVELERS)”, 레이저 프린트, 29.7 x 21cm. 2014.(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압축과 팽창은 플랫폼창동61의 컨테이너 구조를 활용해 전철이나 도로 바깥에서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대형 빌보드 설치물을 전시한다. 이 작업은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처리하는 방식을 드러낸 전작과 달리 인간의 눈과 손을 거쳐 만들어질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제시한다. 이성민x권영찬은 창동에 건립을 추진 중인 미래의 미술관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개발의 청사진으로 제시한 많은 ‘표본들’의 사진을 활용한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지나온 궤적을 조망한다.

 

북서울미술관과 예술영화 상영 전문관 아트나인에서는 ‘멋진 신세계’라는 전시 주제와 관련된 대중 친화적 영화와 사진예술 관련 영화들을 상영한다.

 

이성민x권영찬, ‘표본들’. 항공사진을 이용한 무허가건물 판독. 1972.(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11월 2일,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11월 6일, 아트나인)을 시작으로 ‘메이플쏘프’(11월 13일, 아트나인), ‘패터슨’(11월 16일,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11월 20일, 아트나인),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11월 27일, 아트나인), ‘플로리다 프로젝트’(11월 28일,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더 랍스터’(12월 7일,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가 이어진다. 내년엔 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에서 ‘원더 힐’(1월 4일), ‘미세스 하이드’(1월 30일),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월 1일)가 상영된다.

 

전시 기획을 맡은 정재임 큐레이터는 “소설 ‘멋진 신세계’는 주제와 키워드 면에서 정확한 내용이 있다. 이전엔 자연을 그대로 모사하는 게 그림, 이미지였다면 동시대 환경에서 자라는 세대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스스로 그들만의 자연을 생성해낼 것이다. 전시는 이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접어든 지금 예술에도 수많은 실험들이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나왔을 때 그것을 실험해보는 단계 자체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의 신세계를 가늠해보고자 한다”며 “그 모습은 마냥 아름답지 않을 수도, 멋지지 않을 수도 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이야기되는 것처럼. 하지만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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