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향방…"삼성과 손잡는다" vs "삼성의 차 진출 견제 중" 엇갈려

“정의선-이재용 친분 덕 깜짝협업 가능” vs "G90에서 ‘삼성 하만’ 쏙 뺐는데"

윤지원 기자 2018.11.30 09:53:51

제네시스 G90. (사진 = 제네시스)

 

현대자동차그룹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27일 호텔신라에서 G90의 신차 발표회를 열었다. 제네시스 G90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삼성전자 하만(Harman)이 아닌 LG전자의 제품이 장착된 것을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전장부품 부문에서 라이벌이 된 재계 1, 2위 그룹의 신경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대로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향후 파트너십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많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27일 서울 중구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이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G90을 국내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G90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과거 EQ900까지 장착했었던 하만 제품이 아니라 LG전자로부터 단독 공급받은 제품이었다.

제네시스가 LG전자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택한 것은 미래 자동차의 핵심이 될 커넥티드 서비스 강화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만이 공급 사업자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이유는 제네시스 측에서 원하는 차세대 시스템의 스펙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 이광국 부사장이 27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90 신차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제네시스가 기존에 제공하는 ‘제네시스 커넥티드’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원격시동, 문 개폐, 비상등 작동, 공조장치 설정 등의 제한된 기능만 컨트롤할 수 있다.

반면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풀터치 12.3인치 디스플레이, 내비게이션 자동 무선 업데이트(OTA), 지능형 차량관리 서비스 등 더욱 강화된 커넥티드 서비스를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했다.

이에 제네시스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텔레매틱스 분야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LG전자와 새롭게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다.

LG전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메르세데스-벤츠, 볼보·재규어랜드로버, 제너럴모터스(GM) 등 10개 글로벌 완성차 기업을 이미 고객사로 두고 있다.

또한 자동차 커넥티드 서비스의 핵심인 통신 모듈, 텔레매틱스 컨트롤유닛(TCU) 부문에서는 지난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콘티넨탈, 하만, 보쉬 등의 세계적인 전장부품 회사들보다 앞서 있어,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제네시스 G90은 뒷좌석에도 듀얼 모니터를 설치해 DMB, 영화 등의 시청과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사진 = 제네시스)

 

현대차,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 견제?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제네시스가 하만을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공급자에서 제외한 배경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1990년대 말 완성차 시장에 진출했다가 발을 뺀 삼성이 2015년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이듬해 하만 인수에 나서자 현대차그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간 현대차그룹이 삼성 하만을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것 같은 행보는 적지 않게 발견됐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하만 산하의 오디오 브랜드인 JBL, 렉시콘(Lexicon) 등의 사운드 시스템을 옵션으로 장착해 왔다. 특히 초대 제네시스에서 처음 도입한 렉시콘의 경우 2세대 에쿠스, 제네시스 브랜드, 기아자동차의 스팅어 등 그룹 내 고급 브랜드에 꾸준히 채용했다.

그런데 지난해 삼성이 하만을 인수한 이후 공개되는 신차들에 하만 산하의 JBL, 렉시콘이 아닌 미국의 다른 오디오 브랜드 크렐(Krell)의 사운드 시스템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

크렐은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에서는 명품급 제조사로 명성이 높지만, 카오디오 분야에서는 2014년 혼다 어큐라 RLX에 탑재된 것이 처음일 정도로 업계 신출내기다. 때문에 2016년 기아 K7에 장착할 때도 모험으로 여겨진 바 있지만 올해 현대차그룹은 많은 신차에 기존 JBL 대신 크렐 사운드 시스템을 옵션으로 채택했다. 크렐을 채택한 현대차그룹의 신차는 신형 싼타페, 수소전기차 넥쏘, 기아의 K5와 카니발의 페이스리프트, 신형 K3 등이다.

이번에 공개한 제네시스 G90의 오디오는 EQ900과 마찬가지로 하만의 렉시콘 시스템을 채용했다.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인 신형 K9 역시 최고급 트림에서는 여전히 렉시콘 시스템을 채용한다. 다만 K9 기본 트림의 옵션은 기존 JBL이 아닌 크렐이다.

 

제네시스가 27일 신차발표회를 통해 공개한 G90의 실내. 스피커에 하만의 오디오 브랜드인 '렉시콘' 로고가 보인다. (사진 = 제네시스)

 

미래차 시장 위해 협업 본격화 할까?

반대로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가 커넥티드, 자율주행, 전동화 등 글로벌 미래차 부문에서 협업을 이어갈 것으로 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

지난 11월 5일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는 삼성전자의 기업 맞춤형 솔루션 ‘녹스 커스터마이제이션’을 적용해 기아자동차 고객에 최적화된 맞춤형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내년 초부터 선보이고 제휴 마케팅을 진행한다는 등의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기아차와 삼성은 이보다 앞선 지난 8월, 처음으로 공동 마케팅을 진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8월 1일부터 두 기업은 기아차를 구매한 고객이 기아차 홈페이지를 통해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을 최고 45%나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마케팅을 기획해 진행했다. 이는 두 기업의 첫 공동 마케팅이었으며,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2006년 이후 처음으로 함께 나선 마케팅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에서는 양웅철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부회장)은 삼성전자와의 협력 가능성에 관해 “아직 구체적인 아이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대화는 오고간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도 현대모비스 부스를 방문해 “가능성이 늘 열려있다”며 협력에 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디네쉬 팔리월 하만 대표이사가 지난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삼성과 하만의 비전과 포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두 기업의 협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미래 첨단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친환경 전기자동차, 자율주행 기술, 커넥티드 서비스 등을 비롯해 카셰어링 산업의 확산까지, 미래 첨단 자동차는 완성차 회사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술 분야가 복잡하고 다양하다.

현대차는 이제껏 철강을 포함해 핵심 부품 대부분을 수직 계열화해서 자체 조달하는 전무후무한 생태계를 갖추고 이를 통해 글로벌 5위 업체로 성장했지만, 그만큼 외부 협업에 인색하고 독자노선을 고집한 끝에 최근 글로벌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삼성전자도 전장사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규정하고 하만을 거액에 인수하는 강수를 두었으며, 최근 발표한 180조원 대 투자 계획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전장사업에 할애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글로벌 완성차 기업인 현대차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시도한다면 가시적인 성과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2번째)이 지난 7월 9일(현지 시간)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공단에서 개최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재용-정의선 복식조 결성될까?

두 그룹의 협업 가능성을 사소한 징후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네시스가 27일 G90 신차 공개 행사 장소로 호텔신라를 택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현대차는 신차 공개 행사를 할 때 주로 서울 광진구의 워커힐 호텔이나 W호텔을 이용해 왔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호텔신라를 택했다. 여기에 두 그룹 간 화해를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고 분석한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8월부터 대외 업무에 제네시스 EQ900을 타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동안 쌍용자동차의 체어맨 V8 5000 시리즈를 이용해 왔는데, 8월 초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 EQ900을 타고 온 모습이 포착됐다.

사실 현재 제네시스 EQ900을 타는 재벌 총수는 이재용 부회장만이 아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EQ900을 직접 세상에 소개한 장본인답게 기존의 에쿠스가 아닌 EQ900을 업무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 6월 LG그룹 회장직에 오른 구광모 회장도 회장 취임과 함께 기존에 타던 그랜저 대신 EQ900을 업무용으로 사용하고 있고, 최태원 SK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도 업무용 차량으로 EQ900L을 타고 있다.

그런데도 업계 일부에서 이 부회장의 EQ900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그가 이 차를 본격적으로 타고 다니기 시작한 시기 때문이다.

8월은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공동 마케팅을 진행한 시기다. 당시 업계는 이 이례적인 공동 마케팅이 가능해진 배경으로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의 승진을 꼽았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지난 1월 CES 2018에서 한 가전업체 부스를 방문해 전시물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 현대자동차)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은 두 살 터울이고, 같은 재벌가 3세 후계자이며, 한남동 이웃이라는 점 등 얕지 않은 인연이 있고, 실제로 오랫동안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며 가끔 전화 통화도 나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정 부회장은 특히 미래차 부문에 있어서는 다양한 업체들과의 협업은 물론 스타트업 회사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등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결이 다른 경영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그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고 나면 깜짝 놀랄 수준의 협업이나 M&A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어 왔고, 삼성전자도 협업 대상으로 거론되어 왔다.

때문에 지난 9월 정 부회장이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고, 그 직전에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의 공동 마케팅이 이루어졌다는 것 등이 향후 두 3세 총수의 파트너십을 예고하는 징후로 해석되었던 것.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지금은 협업에 적극적으로 열려있다고 해도 그 상대가 반드시 삼성과 하만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삼성이 현대차와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면 삼성전자와 하만의 뛰어난 시너지 능력부터 제대로 입증해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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