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 골프만사] 첫눈 오자 옛男 만나려 펑크낸 그녀…오려면 다 와야지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기자 2018.12.03 10:12:10

(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2018년 11월 24일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펑펑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니, 퍼뜩 걱정이 찾아왔다. 이틀 후에 골프 라운드 예정인데 어쩌나. 눈이 오는 동안에도, 눈이 그치고 나서도 카톡방에서는 눈 때문에 라운드가 취소될까봐 모두들 발을 동동 굴렀다.

‘첫’눈은 ‘첫’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관계이다.

내가 여학교에 다닐 적에는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이 오는 날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있었다. 그 시절에는 용의검사라는 것이 있어서 손톱이 길면 선생님에게 손등을 30센티미터 자로 한 대씩 탁 맞았고, 머리가 길면 선생님이 가위를 들고 와서 여학생의 머리를 함부로 잘랐다.

그래서 봉숭아물이 든 손톱은 보존하면서 용의검사는 무사통과하려고 새끼손가락을 다친 척하며 붕대로 처매고 다니기도 했었다. 첫사랑 이루어지라고.

‘10년 후, 첫눈 오는 날 정오에 명동성당에서 만나자’라는 애달픈 언약을 하고, 첫사랑과 가슴이 미어지는 이별을 나눈 친구가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녀는 주위의 친구들에게 ‘20XX년 첫눈 오는 날, 나는 명동성당 성모상 앞에서 첫사랑을 만날 터인즉 느그들은 나를 절대 찾지 마라’고 귀에 더께가 앉도록 이야기를 했었다.

20XX년 11월 마지막 주일, 그녀를 포함한 우리 악동 친구들은 골프 라운드를 계획했다. 서울 지역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골프장이 위치한 경기도 남부 지방의 눈 올 확률 10%미만에, 예상 적설량도 1센티미터 미만이라는 일기예보를 건성으로 읽으며 상쾌하게 집을 나서서 차를 몰아 골프장에 도착했다.

세상에나, 그녀는 그날 당일 예고도 없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골프 라운드를 펑크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긴급 상황은 ‘본인 사망’과 ‘작은댁 해산’ 둘 뿐이다. 우선 본인 사망이 아닐까 걱정하여 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다. 모두 얼굴이 하얘지도록 걱정스런 표정으로 병원 응급실 쪽으로 전화를 돌렸다. 뉴스의 교통사고도 검색한다. 아무런 꼬투리도 잡히지 않는다.

“작은댁 해산이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친구가 묻는다.

“여자의 작은댁도 해산을 한대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그런 가능성도 점쳐보는 거야.”

“너 이런 급박한 상황에, 유머가 나와? 무사하라고 기도를 해야지.”

설왕설래 갑론을박 하다가 셋이서 라운드를 마치고, 불길한 기운을 애써 떨치며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전화가 연결되었다.
 

내렸나, 안 내렸나, 그것이 문제로다

그녀가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냅다 욕부터 할 수는 없다. 교양 있는 지성인답게 목소리를 화하게 꾸몄다.

“너 사망 아니야? 사망 직전이야? 너 작은댁은 없잖아…?”

셋이서 전화를 돌려가며 걱정과 힐단을 번갈아 던지는데, 그녀가 당당 떳떳하게 말했다.

“골프 약속도 선약이 우선이잖아. 나 니들에게 백번도 넘게 얘기했어. 첫눈 오는 날 정오에 첫사랑 만나기로 했다고. 선약이잖아. 오늘 첫눈 왔어. 집 나서는데 눈 오더라.”

“머 첫눈? 우리 셋은 오늘 눈 못 봤어.”

“왔다구, 첫눈.”

“안 왔다고, 첫눈.”

나중에 사실을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녀의 집 동네에는 첫눈이 내렸고, 그녀의 첫사랑이 있었던 곳에는 첫눈이 안 온 모양이다. 일테면 골프 약속까지 펑크를 내고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굳게 약속한 첫사랑을 만나러 간 우리 친구는, 그날 첫눈이 안 온 동네에 사는 첫사랑에게 바람을 맞은 것이다.

아아, 첫사랑이 무엇이더냐, 첫눈이 무엇이더냐, 골프가 무엇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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