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나홀로 여행 (186) 인도 ⑤ 잠무·카시미르] 인도의 ‘서비스 없다’ 주의…이것도 “놀라운 인도”인가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자 2018.12.18 10:29:2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9일차. (스리나가르 → 잠무)

사원의 도시 잠무


머리털이 주뼛 서게 만드는 스리나가르 공항의 경비는 내가 다녀본 세계 수많은 공항 중에서 가장 엄중했다. 항공기는 이륙 후 40분도 채 안 걸려 잠무(Jammu) 공항에 도착한다. 잠무·카시미르(Jammu and Kashmir) 주의 겨울 수도(winter capital), 인구 50만 명의 도시이다. 무슬림이 압도적 다수인 스리나가르와 달리 잠무는 힌두교도가 절대 다수(66%)여서 ‘사원의 도시’(city of temples)라고도 불린다. 공항 터미널 바깥으로 나가자 곧장 혼란스러운 시내 한복판이다. 버스로 시내 중심까지 이동하여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 들어가 체크인하고 곧장 도시 탐방에 나선다.

언제나 현지 이동 수단이 문제

숙소 종업원에게 방문하고 싶은 곳을 몇 군데 제시하고 가는 방법을 물으니 당연히 택시나 오토릭샤(뚝뚝)를 타라는 대답이다. 그럴 거면 물어 보지도 않았을 텐데…. 아무리 후진국이지만 택시나 오토릭샤는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주범이다. 요금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과 씨름하고 흥정하는 일에 지쳐 웬만하면 걸어서 다니는 것이 마음 편하다. 걷다 보면 심심찮게 예상치 않았던 볼거리를 만나는 수확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오늘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물어물어 찾아 왔다고 하니까 종업원은 꽤나 놀라는 눈치다. 초행길 외국인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쇠락한 무굴 시절의 궁전

무바라크 만디 궁전(Mubarak Mandi Place)을 찾아 간다. 오토릭샤와 오토바이, 스쿠터가 뒤섞여 저마다 경적을 울리며 보행자를 겁박하는 좁은 시장통 거리를 30분쯤 걸어 완만한 언덕을 올라간다. 타위 강(Tawi River)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서있는 이 건축물은 1824년에 완성된 잠무 카시미르 왕의 궁전이었다.

 

인도 북부 카시미르 지역에 존재했던 잠무 카시미르 왕국의 왕이 살던 무바라크 만디 궁전(위·아래 사진). 사진 = 김현주 교수

성문을 통과하자 궁전 부속 시설이었을 멋진 무굴 양식의 건축물들이 더러는 버려진 채로, 더러는 지방 관청들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관리만 잘 되었다면 유럽이나 중동의 여느 도시 중심부를 장악하기에 충분한 장대하고 화려한 인도 무굴 양식 궁전이다. 1925년 더 북쪽 지역으로 궁전을 옮겨 갈 때까지는 화려함과 웅장함이 극치를 보였을 텐데 궁전의 쇠락은 곧 무굴 왕조의 쇠락과 맞닿은 것이어서 비감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되어 주민들이나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으니 사라져간 제국의 영고성쇠가 덧없다.

성곽 바깥으로 내려가니 절벽 아래로 멀리 타위 강이 흐르는 풍경을 만난다. 강 건너 더 멀리 언덕 위에는 이 도시의 또 다른 상징물인 바후 요새(Bahu Fort)가 웅장하게 건재하며 서있다. 3000년 된 구조물이다. 당연히 강 건너 그곳을 찾아가고 싶은 욕심이 일지만 잠무 일정이 너무 짧고 또한 비싼 택시 이외에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으니 멀리서 조망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막 파장 준비로 분주한 시장 길을 걸어 숙소로 되돌아간다.

 

무바라크 만디 궁전이 서 있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타위 강의 풍경. 사진 = 김현주 교수

20일차. (잠무 → 델리)

한가로운 아침 보내기


아침 시간 짬을 내어 시내 중심부에 있는 이 도시의 또 다른 랜드마크 사원들을 찾는다. 숙소 바로 옆 라구나스 힌두교 사원(Ragunath Temple)의 게이트와 건축물은 무굴 양식의 화려함으로, 사원 내부는 금으로 판박을 입힌 우아한 치장으로 단연 이 도시의 으뜸 사원임을 자랑한다. 게다가 시내 시장통 한복판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어서 새벽부터 참배객들이 찾는다. 다만 사원에 입장할 때 아예 전자 기기는 반입 금지여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이어서 란비레쉬와르 사원(Ranbireshwar Temple)으로 향한다. 1883년 건축한 사원으로 시바(Shiva)를 상징하는 탑과 내부 장식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줄이 사원을 찾는다.

 

‘사원의 도시’라 불리는 잠무에는 아름다운 사원이 많다. 사진은 라구나스 사원. 사진 = 김현주 교수

잠무를 떠나는 아침, 인도를 떠나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일만 남은 오전 시간을 숙소에서 TV 채널을 돌리며 한가로이 보낸다. 지난 밤 스리나가르 외곽에서는 정부군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총격이 있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 정도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투다. 하기야 우리나라도 휴전선에서 남북 군대 사이에 작은 교전이 있더라도 요즘에야 누구든 눈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일상을 영위하지 않는가? 동물들의 배설물을 피해 조심스럽게 걸어서 숙소를 나선다.

공항으로 가는 길. 버스터미널까지 일단 걸어 나갔다. 숙소에서 400~500m 쯤 되는 거리를 걷고 나니 온몸이 땀에 젖는다. 여기는 인도 북부라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제주도 정도의 위도이니 당연히 덥다. 공항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용케 찾았다. 그러나 버스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승객을 계속 태우기 위하여 행선지를 외쳐대는 남자 차장의 목소리가 애처롭다. “청량리, 중랑교~”를 목 놓아 외치던 옛날 서울 시내버스 안내양도 그랬던 것이 느닷없이 생각한다.
 

란비레쉬와르 사원의 웅장하면서도 평화로운 모습. 사진 = 김현주 교수

잠무 공항에서 뒤엉켜 버린 여행 일정

잠무 공항 또한 어제 지나온 스리나가르 공항 못지않게 보안 검색이 엄격하다. 아무리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지만 5중, 6중의 보안 검색으로 짜증이 난다. 그래도 끝까지 인도의 좋은 점만 보려고 했는데 진이 빠진다. 철저함인지 비효율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러나 그 정도 짜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마침내 크게 불편을 겪을 일이 생기고 말았다. 델리 행 에어인디아(Air India) 항공기가 기약 없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에서 잠무로 오려던 항공기가 부품 결함으로 이륙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저녁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세 시간 대기 후 콜카타 행 항공기에 올라야 하는데 델리 행 항공기가 아예 오지 않으니 콜카타는커녕 오늘 중 델리 가는 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스리나가르에서 항공기가 넘어와 줘야 그것을 타고 델리에 가게 되는데 출발 예정 시각 세 시간이 지나도록 항공기가 나타나지 않으니 오늘 이동 계획이 모두 헝클어지고 만 것이다.

오늘 밤 델리 행을 포기할 즈음 항공기가 나타났다. 콜카타는 못가더라도 이 변방의 공항을 벗어나 오늘 밤 단 몇 백 마일이라도 동쪽으로 이동해 놓는 것이 상책이다. 항공기는 델리를 향하여 이륙했다. 지연 출발을 만회하기 위하여 비행기가 조금 빨리 날아 준다면 혹시 원래 타려고 했던 콜카타 행 항공기에 오를 수 있을까? 무모한 기대를 해본다. 만약 떠나 버렸다면 무슨 대안이 있을까? 오늘 밤 콜카타 가는 항공편이 또 있을까? 있다면 좌석은 남아 있을까?

델리 공항 해프닝

어쨌거나 항공기는 델리에 무사히 도착했다. 내가 원래 타려고 했던 콜카타 행 항공기는 당연히 벌써 오래 전에 떠나 버렸다. 낙천적으로 기대하고 왔지만 결국 절망이다. 그리고는 인도의 거대한,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비효율과 무능, 관료주의에 맞닥뜨렸다. 델리 공항에 도착하여 에어인디아(Air India) 환승 카운터부터 어렵사리 찾아갔다. 도착 층이 아니라 2층 출발 층에 환승 카운터가 또 있으니 그곳에 가보란다. 그러나 이미 항공기가 떠나 버려 유효 기간이 지난 이티켓으로는 공항 2층 출발 층 입장 자체가 안 된다. 출국장 입구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에게는 이런 저런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는 도와주기보다는 일단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훨씬 편한 방법일 것이다.

인도 관료주의의 엉뚱한 일면을 보는 순간이다. 나한테 그럴 정도라면 수십 명씩 달려들어 온갖 도움을 청하는 인도 시민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공항 끝 구석 이티켓 확인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있는 여러 항공사 카운터에서도 “나는 모른다”, “나는 권한이 없다” 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화도 내보고 사정도 해보지만 변하는 것은 없으니 결국 오늘 밤 콜카타 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공항 구내를 몇 바퀴 돌다 보니 온몸이 땀에 젖는다.

여행사에서 내일 저녁 콜카타 행 저렴한 항공권을 일단 하나 구입해 놓고 이번에는 당초 내일 아침 타고 갈 예정이었던 콜카타 출발, 다카 행 항공권 출발 변경이 가능한지 문의하려고 스파이스젯(Spicejet) 항공사 카운터로 가본다. 답변은 당연히 “안 된다”였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이므로 온라인에서 변경하라는 것이다. 지금 내 스마트폰으로는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해서 그러니 발생하는 변경 수수료를 받고 당신이 해주면 되는 것 아닌가? 여기는 Spicejet 세일즈 창구이고 당신은 직원인데 왜 당신이 해줄 수 없다는 것인가? 답변은 그러나 “나는 권한이 없다, 인터넷으로 해라”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인터넷으로 내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왜 내가 당신에게 지금 이렇게 부탁하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비효율, 무책임의 극치를 경험한다. 이것 또한 ‘Incredible India’인가? 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고 공항이나 숙소 와이파이로 인터넷 액세스를 하는 나에게 델리 공항의 무료 와이파이 정책은 야박하기 짝이 없다. 용무가 끝나기도 전에 45분 무료 세션이 끝났으니 이제는 유료 와이파이를 이용하라는 메시지가 날아든다. 인도인들의 지독한 상술의 일면을 본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유럽, 일본, 동남아, 미국, 남미 등 내가 다닌 수많은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본다. 당연히 해결된다. 서비스는 이용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기응변

결국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렴한 숙소를 하나 섭외하여 택시를 타고 찾아간다. 우리나라 1970년 모텔 수준도 안 되는 숙소이지만 와이파이 신호가 잘 뜨고 에어컨도 돌아간다. 와이파이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방글라데시 다카행 스파이스젯(Spicejet) 항공권 출발일을 추가 비용 지불하고 하루 늦추었다. 내일 밤 콜카타에서 짧은 하룻밤을 머물 숙소 예약까지 마쳤으니 방글라데시 행은 하루가 늦어졌지만 나머지는 거의 원형을 복구한 셈이다. 창틀형 에어컨의 소음 공해에 시달리며 잠을 청한다. 참 스릴 넘치는 인도 여행이다. 제3세계 여행에 숙달된 나로서도 돌이켜 보면 어느 하루 편안하고 순탄했던 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날씨와 사람들과 시스템과 관료주의, 무능력, 비효율과 씨름하다시피 하며 지낸 두 주일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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