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국GM, 호주‧인도‧태국과 다른 미래 가능할까?

산업은행 ‘변심’에 법인분리 ‘일사천리’… 노조만 남았다

정의식 기자 2018.12.28 09:12:47

5월 31일 폐쇄된 한국GM 군산공장 입구. 사진 = 연합뉴스

한국GM의 법인분리를 극구 막아내겠다던 산업은행이 불과 두달 만에 ‘법인분리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애꿎은 노동자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과연 산업은행의 ‘헌신’은 GM의 ‘자비’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애초부터 이 문제는 한국GM의 갑작스런 ‘철수’ 협박에서 시작됐다. 지난 2월 한국GM이 그간의 영업실적 악화를 빌미로 ‘군산공장 폐쇄’ 입장을 밝힌 것. 한국GM 노동조합은 즉각 ‘먹튀’라며 반발하고 나섰지만,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문재인 정부로서는 철수를 막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5월 10일 정부가 한국GM 정상화를 위해 7.7조 원을 투입하는 자금지원 방안을 확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5월 18일 산업은행과 미국 GM 본사는 한국GM 관련 기본계약서에 합의했다. GM은 10년간 한국GM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비토권(거부권)을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불과 두달도 지나지 않은 7월 한국GM은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렸다. 현재의 단일 법인 체제를 생산공장 법인과 연구개발 법인 2개로 인적분할하고, 연구개발 부문을 글로벌 연구개발 거점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

이에 노조 측은 법인분리 계획이 구조조정과 철수를 위한 수순에 불과하다며 법인분리 반대를 위한 단체행동에 나섰다. 산업은행 역시 처음엔 노조와 뜻을 같이 했다. 한국GM 주총에서 법인분리에 대한 비토권 행사를 검토했으며, 주주총회 결과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정싸움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11월 18일 서울고등지방법원이 산은의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법인분리는 암초에 걸린 듯 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법인분리, 모두에게 좋다”

하지만 지난 12월 18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국지엠 법인분리 동의에 대한 산은의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산업은행이 GM의 법인분리에 찬성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GM과 ‘주주간 분쟁 해결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것. 정부와 산업은행의 입장이 불과 한달 사이에 180도 바뀐 이유는 뭘까?

산업은행의 설명에 따르면, GM으로부터 법인분리 사업계획서를 제출받아 외부 용역기관에 검토를 의뢰했는데, 보고서 내용이 법인분리에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검토 보고서는 법인분리를 통해 생산법인과 R&D법인 모두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부채비율도 개선되는 등 경영 안정성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으며, 비용절감 효과도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은행이 법인분리에 찬성하는 대신 GM은 신설법인을 글로벌 차원에서 준중형 SUV·CUV 거점으로 지정해 최소 10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10년 이상의 지속 가능성’, ‘추가 R&D 물량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등의 문구가 합의문에 담겼다.

5월 10일 오전 서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GM협력 MOU체결에서 백운규(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배리 엥글(오른쪽) GMI사장,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MOU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동걸 회장은 “GM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국내 업체의) 부품 공급률 증가, 협력업체 신규고용과 생산유발 효과 등을 기대한다”며 “부품 업체도 개발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어서 부품 공급 능력이 커지는데, 이는 R&D법인과 생산법인 모두에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논리 하에 산업은행은 이날 열린 한국GM 이사회와 임시 주주총회에서 법인분리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가처분신청도 취하하기로 했다. 이어 12월 26일 산업은행은 시설자금 4045억 원 조달을 목적으로 한 한국GM 우선주 1190만 6881주를 받고, 이에 대한 주금 4045억 원을 납입하면서 앞서 정부와 미국 GM 본사가 합의했던 모든 지원방안 이행을 마무리했다.

산업은행의 갑작스런 ‘변심’으로 한국GM의 법인분리를 막을 법률적 장애물이 사라짐에 따라 한국GM은 12월 31일 신설법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를 분할하고, 2019년 1월 2일 등기할 예정이다. 신설법인에는 한국GM 총직원 1만 3000여명 중 R&D 부문 인력 3000여 명이 소속돼 GM 본사가 배정한 준중형 SUV와 새로운 CUV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해당 차종의 생산은 한국GM 생산법인이 주도할 예정이다.

CSA 등 독자생존 안전판 사라질 가능성↑

과연 한국GM은 산업은행과의 약속대로 최소 10년 간 한국GM을 유지하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할까? 노동계는 물론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GM의 철수를 막기는 어려워졌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은행과 GM의 합의문 내용이 온통 “수익성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향후 10년 및 그 이상 지속가능성 보장 위해 노력할 것에 합의했다”, “경쟁력 강화에 노력할 것도 확약했다” 등 추상적인 문구로 점철되어 있으며, GM이 구체적으로 보장하거나 약속한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2010년 GM의 한국 철수가 거론될 때 한국GM이 독자생존을 위해 확보했던 CSA(Cost Sharing Agreement, 비용분담협정)가 연장이 안될 가능성이 커졌다. CSA에는 한국GM이 공동개발한 기술에 대한 항구적인 무상사용권, CSA 해지 이후에도 비용분담율에 따른 로얄티 수령권 등이 보장돼 있었다. GM이 철수하더라도 한국GM이 독자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인 셈이다.

한국GM이 주주총회를 열고 법인분리 안건을 의결한 10월 19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본사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노조원들이 투쟁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SA는 2018년 말에 계약이 종료되고 자동 연장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6월 한국GM은 CSA의 자동갱신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7월 중순에는 연구개발 법인을 분리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한국GM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됐고, 산업은행이 법인분리를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이번에 산업은행이 GM에 사실상 ‘투항’을 선택함으로써 CSA는 사문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계약 당사자인 법인 자체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애초에 계약 연장을 원치않는 GM이 이를 연장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GM의 대외적으로 공개된 투자정보에 따르면, 한국은 호주‧태국‧인도와 함께 ‘철수를 준비하는 지역’에 속한다. 이미 GM은 호주와 인도, 태국 등에서 공장을 폐쇄하고 철수를 선택했고, 각국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철수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철수를 막지 못했다.

특히 GM의 철수 과정에서 예외없이 등장하는 것이 법인분리와 구조조정‧정리해고다. 호주에서는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디자인센터만 남겼고, 태국에선 승용차 부문을 버리고 트럭‧SUV 부문만 남겼다. 한국GM이 비슷한 엔딩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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