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작가 – 양문기] “무겁고 하찮은 돌덩어리에 명품 로고 붙으면?”

갤러리 로프트 개인전서 욕망 드러내는 돌가방 작품 선보여

김금영 기자 2019.01.10 09:11:43

양문기 작가.(사진=김영태 작가)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재료는 자연석, 하지만 이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명품 가방이다. 욕망으로부터 동떨어져 보이는 자연의 결정체와 동시대의 불타오르는 욕망을 상징적으로 품은 명품 가방의 만남. 이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양문기 작가의 개인전 ‘락스(Rocks)’가 프랑스 파리 갤러리 로프트에서 1월 5일까지 열렸다. 작가는 2013년 이후 갤러리 로프트에 소속돼 후원과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리미티드 에디션 ‘시크 락스(Chic Rocks)’ 120점이 제작, 작품 48점과 퍼포먼스 영상이 함께 어우러진 개인전 오프닝과 함께 발표됐다. 이 에디션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프랑스와 유럽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양문기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프랑스 파리 갤러리 로프트. 가장 앞쪽에 보따리에 돌도끼 형태를 접목시킨 ‘시크 락스(Chic Rocks)’ 리미티드 에디션이 설치됐다.(사진=갤러리 로프트)

작가는 왜 자연석으로 인간의 욕망을 대변했을까? 그는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을 따라갔다. 과거 동굴 안에서 삶을 영위하던 인류는 동굴 벽과 딱딱한 돌에 들소나 사슴, 물고기 등을 그렸다. 먹고 살기 위한 욕망이 반영된 그림. 원시시대의 물고기와 사슴 그림에서 형태만 변천해 왔을 뿐, 인간의 욕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음을 작가는 돌가방을 통해 이야기한다.

‘사피엔스(Sapiens)’ 작품에는 작가 개인적 욕망의 일부 또한 부여돼 있기도 하다. 작가는 “욕망의 기원, 원천을 되짚어 보자면 동굴 벽에 그려진 들소나 사슴, 물고기 등은 그 당시 인류와 우리들 간의 차이점이 아닌, 유사성을 시사해주는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나도 그들처럼 돌가방에 물고기와 들짐승들을 간간히 새긴다”고 밝혔다.

 

양문기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작가는 명품 로고를 새긴 자연석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사진=갤러리 로프트)

또한 태초 역사의 시작엔 생존을 위한 욕망으로 만들어진 돌도끼도 있었다. 그래서 자연석은 작가에게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재료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먹에 쥐어지는 돌멩이만을 도구로 삼다가 나무를 연결해 만들어 낸 손잡이, 나는 이것을 신체의 연장이자 인지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을 인지하게 된 순간, 그곳에 자연석이 있었다.

작가의 돌가방 작품에서도 손잡이는 특별하다. ‘럭셔리 스톤(Luxury Stone)’ 시리즈가 유독 독특한 건 앞면은 마치 진짜 명품 가방인양 매끄럽고 빛이 나지만, 뒷면은 자연석 그대로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것.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과 한껏 가꾼 모습이 공존한다. 번지르르하게 드러나는 욕망의 겉과, 그 안에 숨은 욕망의 거친 실체를 동시에 보여주는 느낌이다. 돌가방 작품에서 손잡이는 가방을 들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양면성을 품은 앞면과 뒷면을 연결 지어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문기, ‘돌도끼 1606 #3’. 나무, 화강석, 30 x 42 x 11cm. 2016.(사진=갤러리 로프트)

이 손잡이가 지탱하는 돌가방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당연하다. 자연석의 무게 자체가 실제로 무겁기도 하지만, 욕망의 무게가 어찌 가벼울 수 있을까. 그보다 더할 것이다. 우리는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낳는 시대에서 때로는 욕망에 잠식돼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무거운 욕망이 가방으로 표현됐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가방은 뭔가를 담는 용도의, 이동성을 고려해 만들어지는 존재다. 하지만 작가는 들고 다닐 수 없는 무거운 돌덩어리로 가방을 만들어 이동성과 대치하는 모순을 만들어냈다. 마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욕망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양문기, ‘사피엔스(Sapiens) 1505 #4’. 한국 자연석, 21.5 x 7 x 45cm. 2015-.(사진=갤러리 로프트)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한없이 무거워진 가방

 

양문기, ‘럭셔리 스톤(Luxury Stone) 1105 #4’. 한국 자연석, 우레탄 채색, 27 x 14.5 x 40cm. 2011.(사진=갤러리 로프트)

서로의 욕망이 한 군데서 충돌하는 모습은 ‘군중’ 작품에서 느껴진다.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이 돌가방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여러 한글이 적혔다. 작가는 “새겨진 하나하나의 글자는 한국에 존재하는 성(姓)씨다. 즉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진 개인들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고유성을 가진 개인들이 돌가방의 제한된 표면에 모이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모습이다. 작가는 “치열한 경쟁, 부대끼며 생존하는 것에 대한 혼란감과 사회현상, 그 엉킴에 대한 말 걸기를 시각적, 조형적으로 시도했다. 가방 안에서 아래에서 위로 오르고자 하는 우리네의 모습, 그러나 위로 오르는 이는 소수에 불과할 뿐”이라고 밝혔다. 돌가방에 난 구멍은 스스로의 욕망에 블랙홀처럼 빨려드는 우리네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간의 욕망과 가방의 본성 사이 느껴진 모순과 답답함을 풀기 위한 시도는 2m 크기의 돌도끼의 형상 ‘욕구불만’(1999)에서 이뤄졌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방이라 할 수 있는 보자기를 활용한 보따리에 돌도끼 형태를 접목시켜 시각적 중첩을 이루는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리미티드 에디션 ‘시크 락스’로 제작돼 선보였다. 이 에디션에는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꽃무늬가 찍혔다.

 

양문기, ‘럭셔리 스톤(Luxury Stone) 1506 #2’. 한국 자연석, 철, 23 x 41 x 10cm. 2015.(사진=갤러리 로프트)

여기서 본질적인 궁금증이 생긴다. 욕망을 드러내기 위한 수많은 매체 중 왜 명품 가방을 선택했을까? 작가는 특히 한국사회에서 명품 가방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후발 산업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이 남긴 집단 심리학적 흔적이 사회문화 전반에 여러 형태로 깔려 있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경제 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부유층이 자신의 우월감을 표출하는 한 방법으로 명품 즉, 사치품에 열광하게 됐다”고 짚었다.

또한 “이들이 추구하는 소비의 양태는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라 비싸서 남들이 사지 못하는 것을 나만이, 또는 나 또한 사야 하는 차별적·모방적 소비다. 그것이 부유층 사이에 명품 열풍을 일으켰고, 그런 부를 동경하는 서민들 사이에서도 명품을 추구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져나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문기, ‘군중 1401 #1’(앞). 한국 자연석, 60 x 10 x 40cm. 2014.(사진=갤러리 로프트)

그리고 이런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메커니즘은 사회적 갈등을 끝없이 야기했다는 게 작가의 분석이다. 작가는 “한 집단은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려고 하고, 다른 집단은 최신, 최고 유행을 즉각 받아들여 그런 차이를 없애려 한다”며 “명품은 선망과 질시, 무시라는 모순된 감정을 일으킨다. 모두 타인과 견줘지는 사회적 동기로 생겨나는 이 시대의 욕망”이라고 강조했다.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가방이라도 특정 마크가 붙어야만 없었던 가치가 생기는 것처럼 욕망을 드러내고 부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됐다. 하찮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지나갔을 길가 또는 시냇가, 산 속의 돌에 명품 로고가 새겨지자 사람들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돌아보는 현상. 사람들의 욕망은 어디까지이며, 그 욕망에조차 서열을 세우는 가치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작가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작업으로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양문기, ‘럭셔리 스톤(Luxury Stone) 1807 #1’. 한국 자연석, 철, 23.5 x 8 x 23cm. 2018.(사진=갤러리 로프트)

작품 낱개를 전시하는 고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바벨탑, 빌딩을 연상시키는 나무 각목의 엮임, 철망 구조물 등 설치 형식을 선보이기도 하고, 돌가방을 든 사람들이 길거리를 거니는 ‘거리에서의 재미’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직접 관객들을 모으고 다양한 반응을 접하며 또 다른 질문을 던지기 위한 ‘끝’이 아닌 ‘과정’이다.

작가는 “설령 답을 제시해주거나 누군가를 설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술은 이 사회에 해답의 기능, 선도와 계몽의 기능이 아니라 질문의 기능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내게 작업을 이어가는 건 자전거 라이딩과도 같다. 오롯이 혼자 페달을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작업의 과정과 맥락이 닿지만, 언덕을 넘어가는 과정은 감상자와 향유자와의 소통, 그리고 중간에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미티드 에디션 ‘시크 락스(Chic Rocks)’의 모티브가 된 양문기 작가의 ‘욕구불만’ 작품. 화강석, 나무, 밧줄, 240 x 100 x 90cm. 1999.(사진=갤러리 로프트)

또한 “요즈음 ‘나를 포함한 예술가들에게 생존이란 곧, 예술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창작 행위가 장려되는 환경을 개척하거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부쩍 깊이 한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감상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결과물일테지만, 창작자인 내 자신에 관해 작업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답해주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창작의 과정과 행위는 불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작가는 작업을 할 때 질문을 던지기를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어갈 계획이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발견한 후세의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가 선사시대의 돌도끼를 보고서 욕망과 그 근원을 경험하듯, 우리의 욕망을 유추하며 또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질지.

 

20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양문기 작가의 돌가방을 들고 사람들이 거리를 거니는 형식으로 진행됐다.(사진=갤러리 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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