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국 영화시장에 "지진"… 롯데컬처웍스, 15년 만에 1위 ‘금자탑’

‘신과 함께’ 효과에 철옹성 CJ ENM 3위로 밀려

윤지원 기자 2019.01.10 09:19:52

롯데컬처웍스가 2018년 배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왼쪽)과 '신과 함께: 인과 연' 포스터. (사진 = 롯데컬처웍스)


롯데컬처웍스가 2018년 대한민국 영화 배급시장에서 3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15년 만에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2003년 이래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던 CJ ENM는 3위까지 떨어졌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한국의 영화 시장에 일어난 지각변동에 할리우드 언론도 주목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달 22일 내놓은 ‘2018 11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롯데컬처웍스는 2018년 1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를 통틀어 14편의 영화를 배급했다. 총 매출액(이하 실시간 발권데이터 기준)은 약 2953억 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박스오피스 매출 점유율에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이하 디즈니)와 CJ ENM보다 많은 18.1%를 기록했다. 기존 1위 회사인 CJ ENM은 같은 기간 15편을 배급해 매출액 1995억 원, 점유율 12.2%로 3위가 됐다.

여기에 12월 실시간 발권데이터 통계를 합산한 연간 실적에서도 세 회사의 순위는 변함이 없다. 12월 CJ는 374억 원의 월 매출액을 기록하며 월간 점유율(20.3%) 1위를 기록했다. 월간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11월 28일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3위)과 12월 26일 개봉한 ‘PMC: 더 벙커’(7위) 등 한국영화 두 편을 올리며 거둔 성과다. 특히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영화 가운데 12월 매출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막판 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1~11월 매출에 12월 매출을 합산한 CJ의 2018년 최종 성적은 2369억 원이다. 12월 이렇다 할 신작이 없던 롯데컬처웍스(120억 원, 최종 3073억 원)와 디즈니(42억 원, 최종 2585억 원)였지만, CJ가 연 매출에서 이들을 넘어서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롯데컬처웍스가 2018년 배급한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왼쪽)과 '완벽한 타인' 포스터. (사진 = 롯데컬처웍스)


롯데, 2018 박스오피스 톱 10에 네 작품 올려

지난해 롯데의 약진은 직접 투자·배급한 한국영화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와 파라마운트 국내 배급 담당 회사로서 배급한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 대성공한 덕분이다.

먼저 2017년 12월 20일 개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초반 흥행몰이를 2018년에도 이어갔다. 이 영화는 2018년 한 해 동안 한국 극장가에서 관객 587만 명(전년 포함 누적 1441만 명)을 동원했고, 극장 수익 473억 원(누적 115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여름 개봉한 속편 ‘신과 함께: 인과 연’은 총 1227만 명의 관객 동원, 총 1026억 원의 극장수익이라는 기록을 내면서 2018년 한국 박스오피스 전체 1위에 올랐다. 2018년 성적만 봤을 때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전체 5위의 성적이다. 롯데는 ‘신과 함께’ 두 편만으로 2018년 1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파라마운트가 제작하고 롯데가 국내 배급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은 관객 658만 명(559억 원)을 동원하며 역대 ‘미션 임파서블’ 프랜차이즈 여섯 편 가운데 국내 극장가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됐다. 이는 지난해 국내 개봉한 외화 중 1121만 명(999억 원)을 동원한 디즈니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2018년 922만 명(800억 원)을 넘어 1월 8일까지 966만 명(839억 원)을 동원한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박스오피스 순위이며, 한국영화와 외화를 통틀어 4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지난해 롯데의 또 다른 효자 작품은 ‘보헤미안 랩소디’와 같은 날인 10월 31일 개봉한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이다. 이 영화는 100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대작 한국영화가 수두룩하던 지난해 순제작비 38억 원이라는 중·저예산 영화로 관객 529만 명, 누적매출 443억 원의 성적을 거두며 2018년 연간 박스오피스 순위 10위, 한국영화 순위 4위에 올랐다.

1~11월 통계에서는 전체 10위, 한국영화 4위를 기록했던 CJ ENM의 ‘1987’이 ‘완벽한 타인’에 관객 수 3125명, 매출액 약 14억 원 차이로 뒤처져 한 계단 내려갔고, 결국 CJ ENM은 2018년 박스오피스 톱10에 한 작품도 올리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게 됐다.

해외 언론도 한국의 영화시장에서 1위 배급사가 바뀐 것에 주목했다. 할리우드 유력매체 버라이어티(Variety) 지는 지난해 12월 27일 롯데 컬처웍스의 2018년 연간 실적에 관한 내용을 보도했다.

버라이어티는 “한국의 영화 대기업인 롯데 컬처웍스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1위 배급사에 등극했다”며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를 인용해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와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등의 흥행 성적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이러한 성과가 지난해 4월 롯데쇼핑에서 사업부를 분리해 독립한 롯데컬처웍스에게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2018년 박스오피스

 

순위

영화명

(국적, 개봉일)

매출액

(전체 누적)

관객수

(전체 누적)

배급사

1

신과함께-인과 연

(한국, 2018-08-01)

102,666,146,909

12,274,996

롯데컬처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2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미국, 2018-04-25)

99,926,399,769

11,212,710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유한책임회사

3

보헤미안 랩소디

(미국, 2018-10-31)

80,010,485,345

(83,892,919,895)

9,224,587

(9,665,126)

이십세기폭스코리아㈜

4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미국, 2018-07-25)

55,888,375,112

6,584,915

롯데컬처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5

신과함께-죄와 벌

(한국, 2017-12-20)

47,355,583,705

(115,706,080,137)

5,872,007

(14,411,502)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6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미국, 2018-06-06)

49,770,711,037

5,661,128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7

앤트맨과 와스프

(미국, 2018-07-04)

47,468,053,685

5,448,134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유한책임회사

8

안시성

(한국, 2018-09-19)

46,335,334,026

5,440,186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

9

블랙 팬서

(미국, 2018-02-14)

45,885,123,957

5,399,227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유한책임회사

10

완벽한 타인

(한국, 2018-10-31)

44,350,807,074

(44,356,752,474)

5,293,435

(5,294,119)

롯데컬처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11

1987

(한국, 2017-12-27)

42,915,772,108

(58,169,776,145)

5,290,310

(7,232,387)

씨제이이앤엠㈜

※ 2018 하반기 개봉영화의 전체 누적 수치는 2019년 1월 8일까지 기준

CJ, ‘대작 영화’ 전략 안 통했다

롯데 컬처웍스에 이어 디즈니가 마블스튜디오, 픽사(Pixar), 루카스필름 같은 막강한 자회사들을 통해 펼친 파상공세에 밀려 부동의 1위였던 CJ ENM은 3위까지 밀려났다.

CJ가 배급사별 순위 1위를 놓친 것부터 200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CJ는 지난해 연간 박스오피스 톱10에 한 작품도 올리지 못했다. 300만 관객을 넘겨 11위~22위 사이에 랭크된 다섯 편의 한국영화가 관객 2058만 명(1709억 원)을 동원했을 뿐이다.

주요 영화들의 매출액과 관객 수를 단순히 비교해도 CJ의 지난해 성적은 아쉽다. 그런데 속사정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 크다. 제작비 대비 흥행 성적이 좋았던 영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CJ ENM이 2018년 배급한 한국영화들의 포스터. 위 왼쪽부터 '1987, '그것만이 내 세상', '골든슬럼버', 가운데 왼쪽부터 '7년의 밤, '탐정: 리턴즈', '공작', 아래 왼쪽부터 '협상', '국가부도의 날', 'PMC: 더 벙커'. (사진 = CJ ENM)


CJ의 지난해 주력 배급 작품들은 2017년 말 개봉한 ‘1987’을 포함해 ‘그것만이 내 세상’, ‘골든슬럼버’, ‘7년의 밤’, ‘탐정: 리턴즈’, ‘공작’, ‘협상’, ‘국가부도의 날’, ‘PMC: 더 벙커’ 등의 장편 한국영화들이었다.

이 영화들은 이병헌, 강동원, 장동건, 류승룡, 황정민, 현빈, 김혜수, 유아인, 하정우 등 영화계 톱 개런티를 받는 배우들을 줄줄이 내세웠고,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감독 대열에 든 추창민 감독은 물론 흥행 전력이 있는 윤종빈 감독, 김병우 감독 등을 기용해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평균 제작비 상승은 한국영화의 최근 특징인데, 이는 CJ의 지난해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CJ는 그동안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광해, 왕이 된 남자’, ‘해운대’ 등 다섯 편의 영화로 천만 관객을 넘기는 초대박 흥행을 일군 경험이 있다. 곧 천만 돌파가 유력시 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포함 총 23편의 역대 천만 영화 중 다섯 편이 CJ 배급 영화다. 이처럼 큰 제작비 투자로 큰 재미를 본 경험이 많아서인지, 지난해에도 100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대작 규모의 영화가 다섯 편 포함됐다.

‘1987’의 총제작비는 145억 원, 배급비용과 마케팅비용을 빼고 영화를 제작하는 데만 들어간 순제작비는 115억 원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매출 100%로 가정했을 때 손익분기점은 관객 410만 명 이상이 들었을 때였다. 최종적으로 723만 명이 들었다.

북한에 침투한 남한 공작원의 이야기를 그린 ‘공작’의 총제작비는 190억 원대, 순제작비는 165억 원으로 알려졌다. 손익분기점은 470만 명이었는데 최종 497만 명이 들었다. 현빈과 손예진이 인질 협상을 벌이는 액션 스릴러 영화 ‘협상’은 총제작비 100억 원대로 알려졌다. 손익분기점은 300만 명 정도인데 국내 극장 관객은 196만 명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설치된 '마약왕' 포스터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7년의 밤’도 총제작비 100억 원으로 알려졌는데 국내 극장 관객 수는 겨우 52만 8000여 명에 그쳤다. 예고편에서 할리우드 액션영화 수준의 볼거리를 기대하게 했던 ‘PMC: 더 벙커’는 총제작비 140억 원. 1월 8일까지 개봉 후 14일 동안 164만 명의 관객이 드는 데 그치고 있어 370만 명 정도의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0억 원대 대작이 특히 많이 나온 지난해, 소위 한국영화 5대 메이저 기업 중 CJ의 성적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해 CJ 외에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흥행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화는 ‘신과 함께’ 두 편을 제외하면 113억 원 정도의 제작비로 506만 관객을 동원(전체 12위, 한국영화 6위)한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이하 NEW)의 ‘독전’ 정도가 고작이다.

같은 NEW의 영화로 전체 박스오피스 8위, 한국영화 순위 3위에 오른 ‘안시성’은 544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해 크게 흥행한 것으로 보이지만 총제작비가 무려 215억 원, 손익분기점이 541만 명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염력’, ‘마약왕’, ‘창궐’, ‘인랑’, ‘명당’ 등의 영화들은 지난해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이고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지난 12월, '마약왕', 'PMC: 더 벙커' 등 제작비 규모 100억 원대의 한국영화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 동안 '보헤미안 랩소디', '아쿠아맨'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장악했다. 사진은 12월 30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 (사진 = 연합뉴스)

 

‘이름값’보다 중저예산 영화 성적 주목해야

지난해 CJ의 나머지 영화들은 중간급 규모의 영화였다. ‘중간급’이라고 해도 총제작비는 70억 원 전후로 2~3년 전 평균 제작비보다 높아졌고, 손익분기점은 180~260만 명 정도다. 이중 ‘골든슬럼버’는 강동원을 내세우고도 관객 138만 명 동원에 그쳤다.

대신 ‘그것만이 내 세상’ 342만 명, ‘탐정: 리턴즈’ 319만 명, ‘국가부도의 날’은 1월 8일 기준 375만 명 이상이 들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처럼 200만~300만 명대 흥행을 기록한 15위~30위 정도에는 CJ의 세 작품 외에도 롯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260만 명),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마녀’(319만 명), 쇼박스의 ‘암수살인’(377만 명)과 ‘곤지암’(267만 명), NEW의 ‘목격자’(252만 명) 등 외국 영화보다 한국 영화가 다수 올랐다.

이 순위에 오른 한국영화 흥행작들은 제작비 50억 원대~70억 원 정도의 중소규모 영화들로, 대부분 극장 수입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특히 제작비 24억 원이 든 공포영화 ‘곤지암’은 관객 267만 명, 극장 매출 214억 원을 벌어 지난해 한국영화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 각종 영화들이 거둔 이러한 성적은 한국영화산업의 규모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 주는 지표들이라 할 수 있다.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위)과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이탈리아의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한 장면. (사진 = 각 영화 스틸컷)


2019년 ‘리메이크’ 영화 늘어날 것

한편, 중저예산 영화들 가운데 유일하게 10위권에 든 ‘완벽한 타인’이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순제작비 38억, 총제작비 58억 원으로 만들어져 52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추석연휴 기간 100억 원대 제작비의 대작들이 쏟아져 나와서도 달성하지 못한 성적이다. 443억 원의 매출액은 제작비 대비 7.63배나 된다.

이 영화가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영화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우나 감독의 전작 및 네임밸류만 믿고 무리한 기획에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는 모험 대신, 적은 제작비를 들이더라도 해외 시장에서 검증된 탄탄한 드라마를 보장받고, 국내 시장에 어울리는 세밀한 보완에 공을 들이는 것이 흥행을 좀 더 쉽게 이끌 수 있었다는 평가다. NEW의 흥행작 ‘독전’이나 2017년 개봉한 CJ의 ‘침묵’도 중국어권 원작 영화가 따로 있는 리메이크 영화였다.

버라이어티 지가 할리우드 대형 배급사 라이온스게이트의 해외 투자제작 담당 자회사인 글로벌게이트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롯데컬처웍스는 올해 라인업에 멕시코 영화 ‘사랑해, 매기’(원제: Instructions Not Included)의 한국판 리메이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완벽한 타인’의 영광이 재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TV 드라마 시장이 커지면서 많은 작가진이 영화에서 TV로 이동한 데 따른 기획 및 창작의 부담을 리메이크라는 전략이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부터 한국영화의 제작 형태에서 리메이크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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