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20) 유리 작가 이재경 ] “쓸모있는 걸 만들면 예술 아니라는 건 편견”

이문정(미술평론가,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19.01.28 09:27:34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리포에틱 대표)) 필자에게 부산은 아끼는 친구들이 살고 있는 친근한 도시다. 작년 연말 모처럼의 부산 방문길에 흥미로운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유리 작가 이재경과 - 더 갤러리에서도 소개했던 - 코끼리 작가로 유명한 이정윤의 2인전인 ‘꿈꾸는 겨울정원’이었다.

오늘날 미술에서 협업은 익숙한 일이다. 전혀 연결될 일이 없을 것 같은 장르와 장르가 만나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예술의 경계가 반드시 해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계를 넘나들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전부터 자주 이야기했던 내용이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다양한 작업들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경험한다. 전시도 다양해졌다. 회화, 조각, 설치뿐 아니라 공예, 디자인, 나아가 대중문화와 관련된 전시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예에는 내러티브, 작가적 개성과 독창성이 상대적으로 덜 담긴다고 여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같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을 밝히자면, 그러한 규정과 평가를 장르별로 획일화시킬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작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또한 하나의 장르로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많다. 화병이나 그릇 하나가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한다. 에밀 갈레(Emile Galle)의 작업을 떠올려보면 이야기는 명확해진다.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들면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컵 하나가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예술적 오브제일 수 있다.

 

‘꿈꾸는 겨울정원 - 이재경 x 이정윤’, 전시 전경, 메르씨엘비스, 2018, 도판 제공 = 이정윤

유리 작가 이재경은 유리로 감상만을 위한 오브제를 만든다. 동시에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컵과 그릇도 만든다. 유리는 그 어떤 재료보다도 양가적이다. 단단하지만 산산조각이 날까 불안한, 약한 재료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고체이지만 유동적이기도 하며 투명하지만 그 안에 무수한 이미지를 투영한다. 이런 유리에 이재경은 소리와 빛, 그와 연결된 작가의 일상을 담아낸다. 작품 하나하나에 그의 삶과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볼 수 없는 소리, 보이지만 붙잡을 수 없는 빛은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고민을 담아내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이재경 작가와의 대화
“‘저 너머’까지 보여주는 유리에 빛과 소리 담고파”

 

이재경 작가.

- 가장 많이 받았을 질문 같지만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겠다. 왜 유리 작업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유리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도 말해주길 바란다.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달리 유리가 풍부한 조형적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투명성과 섬세한 형상(shape)의 공존이라는 유리의 특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시작은 일본에서 유리 작업을 하는 과정을 직접 보면서부터다. 불 앞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유리는 맑고 투명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유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희소성이라는 부분도 중요했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는 것을 싫어했다. 내가 처음 유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당시에는 국내에 유리 작업을 하는 작가가 거의 없었다.


- 유리 작업만이 갖는 작업 과정이나 방법의 특수성이 있을 것 같다. 어시스턴트와 함께 작업을 하는가?

그렇게 크지 않은 블로잉(blowing) 작업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형물을 제작할 때에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지만 3~5명 정도의 어시스턴트가 함께 한다. 유리 작업은 어시스턴트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단순한 보조의 개념이 아니다. 나의 역할은 지휘자이고, 어시스턴트는 연주자 혹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이끌어가지만 단원들 한 명 한 명도 전문가이다. 유리 작업도 마찬가지다. 1200도의 유리를 다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며 기술적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나 역시 나의 작업을 도와주는 다른 작가의 작업을 도울 때가 있다.
 

‘Drop melt manuscript paper 2’, Glass MA, Gaffer, Cane, 24 x 24 x 78cm, 2014, 도판 제공 = 이재경

- 이재경은 공예가인가? 작가인가? 호칭보다는 작업 자체가 중요하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호칭은 작업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유리 작가가 제일 맞는 호칭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유독 유리를 매체로 선택한 작가에게 공예가라 명명하는 것 같다. ‘유리’라는 단어에서 접시, 컵, 볼(bowl) 이상을 생각하지 않아서이다.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들기도 하니 공예가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공예품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을 공예라는 말로 한정짓고 싶지 않다. 처음 유리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도 오브제를 제작했었다. 덧붙이자면 컵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컵을 만들고 있으면 작가로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편견이다. 유리 작업을 제대로 하려면 컵과 같은 기본적인 형상을 잘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컵을 못 만들면 다른 작업도 할 수 없다. 나아가 가장 일상적인 물건에 작가만의 색을 넣는 것은 더 어렵다. 나는 컵 하나를 보고도 이재경의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든, 아니든 그건 작가의 자유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은 특정한 하나의 재료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작업의 개념이 변할 때마다, 시리즈별로 매체가 바뀌는 작가도 있다. 유리 외의 다른 매체를 선택할 가능성은 없는가? 물론 하나의 매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료를 생각하는 본인의 입장이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지금은 유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흙, 금속 작업을 했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나는 재료에 대한 한계선을 정해두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유리라는 소재가 나의 작업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해서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Drop melt manuscript paper 3’, Glass MA, Gaffer, Cane, 25 x 25 x 75cm, 2014, 도판 제공 = 이재경

- 일반적으로 실용성을 띤 오브제에는 개념이나 메시지가 덜 담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다. 그리고 이재경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그와 같은 생각은 편견이다. 그릇 하나에도 작가의 예술적 신념과 내러티브가 담긴다. 유리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일관되게 담아내는 것은 빛과 소리다.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붙잡을 수도 없고 형상도 없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에 딱 들어맞는 재료가 유리다. 유리는 액체와 고체의 중간 성질을 갖는 신비로운 재료다. 또한 유리는 그 스스로 완결된 형태를 갖지만 동시에 유리 너머의 존재를 투영하고, 빛을 머금을 때도 있다. 최근에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소리와 빛을 유리에 기록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매일매일 작업실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영향을 끼친다. 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 유리로 제작할 경우 크기나 규모의 제약은 없는지 궁금하다.

제작 기법에 따라 크기 제한이 없는 경우도 있다. 블로잉의 경우에는 한계가 있다. 캐스팅(casting)의 경우에는 제작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다. 유리는 열을 가해 녹이는 것보다 작업이 완료된 후 식히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만약 등신대 정도의 크기를 만든다면 식히는 시간만 6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다. 잘못 식히면 바로 혹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반드시 깨진다. 또한 작은 금이라도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 한다. 하나의 큰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 다른 색의 유리를 접합시키는 것도 어렵다. 유리마다 팽창 계수가 있는데 흙보다 더 예민하다. 그래서 웃으며 느긋하게 작업한 적이 없다.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작업한다.


- 모든 예술 작품은 파손의 위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리 작업은 더 위험해 보인다. 또한 파손되면 복구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이 또 다른 한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가?

유리니까 깨진다. 어쩔 수 없다. 항상 전시 중에 한두 개의 작품이 파손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진행한다. 앞서 말했듯 식히는 과정에서도 깨질 수 있다.
 

‘Dreaming garden 3’, Glass MA, Gaffer, Cane, 23 x 17 x 33cm, 2018, 도판 제공 = 이재경

- ‘꿈꾸는 겨울정원’ 전시장에서 해줬던, 유리 설치 작업이 한 달도 못 가 파손되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유리 작업과 관련된 전시를 다수 기획했던 작가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였다. 물론 유리 작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품 파손은 일어날 수 있다.

2011년 ‘한국도자재단 세계도자 비엔날레’에서 ‘한일 유리조형 워크숍’을 기획했을 때 생긴 일이다. 천장에 약 1000개의 유리 조형물을 매달아 풍경(風磬)인 ‘소리를 녹이는 터널’(2011)을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후 작품을 철수시킬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사고로 한두 개 깨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높이에 매달았는데도 굳이 만지고 깨는 사람들이 있었다.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야외 연못에 큰 볼을 띄운 작품인 ‘Melting Sounds’(2011)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후부터는 관리가 가능한 전시장에만 작품을 설치했다.


- 이정윤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드로잉에서부터 설치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이지만 이정윤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특히 공기조형물, 섬유로 만든 코끼리 등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유리와는 정반대되는 성향의 재료이다.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워낙 재료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 작가다. 어느 날 이정윤 작가가 자신의 드로잉을 보여줬는데, 그것을 내가 유리로 구현했다. 결과물을 보고 이 작가가 매우 흥미로워했고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발전했다. 이후 이 작가의 드로잉을 본 뒤 나의 해석을 덧붙여 작업을 진행했다. 내가 만든 유리 작업에 이 작가가 페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각자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면서 하나의 프로젝트로 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훌륭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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