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라지는 대기업 공채…'적재적소'와 '적소적재'의 차이

윤지원 기자 2019.02.22 09:52:32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신차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현대자동차그룹)

상반기 공채 시즌이 찾아왔다. 올해의 대기업 공채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다. 정기 공채가 아닌 수시 채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재계 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주 재경·경영지원 분야 10개 직무에 대한 신입사원 상시 공개채용 공고를 냈다. '정기'가 아닌 '상시'이다.

현대차, 정기 공채 없앴다

현대차그룹은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부터 현대·기아차의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본사 인사부문이 관리하는 ‘정기 공개채용’에서 각 현업부문이 필요한 인재를 직접 선발하는 직무중심의 ‘상시 공개채용’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밝혀 취업 시장에 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총 1만여 명이나 채용했던 재계 2위의 현대차그룹이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정기 공채 폐지라는 변화를 선언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상하반기 한 차례씩 연 2회 고정된 시점에 채용하는 기존 정기 공채방식으로는 제조업과 ICT기술이 융·복합하는 미래 산업 환경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실 현대차의 채용 방식 변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현대차의 신입사원 정기 공채 규모는 이미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축소되어 왔다. 2011년부터 반기마다 열었던 현대차 채용 설명회 '잡페어'도 2015년부터 1년에 한 차례 하반기에만 진행하다가 그나마도 지난해부터 없앴다.

상시 채용을 도입한 것도 지난해 상반기부터다. 현대차는 지난해 3월 상반기 신입 공채를 진행하고 나서 5월부터 11월 초까지 신입사원 상시채용을 계속 진행했으며 올해도 1월 말 R&D 부문을 시작으로 상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 내용이 알려지자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공채가 없어진 만큼 채용 규모도 줄어드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일어났다. 또한 직무에 적합한 인재 위주의 채용 때문에 경력자만 선호하고 신입의 취업문이 더 좁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현대차 측은 세간의 채용 규모 축소설에 대해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채용이 확대되는 부분이 오히려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력자 중심의 채용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직장 경험과 인턴 경험만이 직무에서 요구되는 역량의 전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2016년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모여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필요한 자리에만 적합한 인재 뽑는다

지금은 현대차가 가장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 대기업들의 수시 채용 추세는 더욱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삼성그룹과 LG그룹, 한화그룹 등은 이미 계열사별로 신입 사원을 뽑고 있다. SK그룹은 정기 공채를 실시하지만 수시 채용 비율이 70%나 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2019년 신입 채용 방식 계획에 관한 조사에서 공개 채용 방식을 채택한다는 대기업은 59.5%, 수시 채용 방식을 채택한다는 대기업은 21.6%로 집계됐다. 대기업 5곳 중 1곳은 올해 수시 채용을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수치는 지난해 하반기 신입 채용 방식에 관한 조사에서 공채 비율이 67.6%, 수시 비율이 11.8%였던 것에 비해 각각 8.1%P 감소, 9.7%P 증가한 수치여서, 수시 채용이 분명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규모 추천 채용을 선호하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2년간 대규모 공채 대신 조선학과가 있는 각 대학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추천 채용을 해 왔다. 조선업이 불황이어서 인력 수요가 줄어든 만큼 꼭 필요한 인재만 소규모로 채용하기에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력 수요가 늘고 있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분야에서는 석사·박사급에 대한 추천 채용이 공채보다 효율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구직자들의 취업 준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인크루트는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스펙과 그렇지 않은 스펙에 대해서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 '인턴십 등 직무 관련 경험'(29%)과 '직무/전공 자격증'(21%)이 가장 중요한 스펙 1, 2위를 차지했는데, 무려 50%의 응답자가 이와 같은 직무 역량을 중요한 스펙으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상위 두 응답은 지난해 조사에서도 순위만 바뀌었을 뿐 가장 중요한 스펙으로 꼽혔다.

'학점'(18%)과 '봉사활동'(13%), '어학연수 경험'(8%) 등 한때 취준생의 필수 스펙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 스펙들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이들 스펙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구직자 38%가 '실무 활용도가 적어서'라고 응답했고 '기업에서 요구하지 않는 추세라서'(23%), '채용 트렌드에 적합하지 않아서'(19%)가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4월 현대자동차 인적성검사장인 성수중고등학교에 응시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대기업 채용 방식, 왜 바뀌나?

대기업들이 정기 공채를 상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주된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성격에 맞추고, 채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정기 공채에선 향후에 필요한 인력 규모를 사전에 예상해서, 정해진 시점에 모든 부문의 신입사원을 일괄 채용한 다음 일정 기간의 교육을 거치고, 기업에 따라서는 여러 보직에 순환 근무를 시킨 뒤, 평가를 통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직무에 배치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는 공채로 뽑은 신입사원이 실제로 업무에 배치되는 시점에 해당 신입사원과 해당 직무가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부문마다 잉여 인력 혹은 인력 부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반면 상시 채용은 각 부문별로 인력이 필요한 시점에 연중 상시로 진행되고, 특히 현대차의 경우는 현업부문이 직접 채용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해당 부문에서는 새로 채용한 신입사원이 일하게 될 직무에 대한 세부 정보와 필요한 역량을 채용 공고를 통해 더욱 상세하게 공개하고, 직무에 적합한 인재 선발을 위해 부문마다 차별화된 채용방법과 전형과정을 적용하며, 필요 직무역량 위주로 인재를 선발한다.

지원자 입장에서 기존 정기 공채는 불필요한 스펙 쌓기를 유발하기도 하고, 한 번 지원한 공채에서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반년을 더 기다리거나 졸업을 유예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상시 채용에서 지원자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희망하는 부문과 직무를 정하고, 그 부문 및 직무에 요구되는 역량을 갖추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연중 상시로 지원할 수도 있다.

또한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의 정기 공채는 대규모 지원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거대 이벤트다. 기업은 매년 한 두 차례 공채를 치르기 위해 매년 많은 비용을 들여야 했다. 그러나 상시 채용에서는 필요한 특정 스펙을 미리 공개하기 때문에 잉여 지원자 수가 줄어들고, 채용 규모가 적어지는 만큼 비용도 줄어들며, 채용 과정의 효율이 더욱 높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지원자들에게도 상시 채용은 비용과 효율 면에서 장점이 많다. 앞서 인크루트가 조사한 구직자 스펙 관련 설문에는 구직자들이 특정 스펙을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꼽은 이유에 대한 응답 중 해당 스펙을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 및 시간 때문이라는 응답이 양쪽 모두 언급되어 있었다.
 

2016년 열린 한 취업박람회에서 현장 면접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적재적소(適材適所)보다 적소적재(適所適材)가 나을까?

기존의 정기 공채가 인재를 먼저 뽑은 뒤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는 '적재적소'(適材適所) 원칙의 채용이었다면, 최근의 상시 채용은 적합한 자리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적소적재'(適所適材) 원칙의 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적소적재와 적재적소는 미묘하게 다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크게 다른 뜻은 아닐 것이다. 트렌드는 적소적재를 향하고 있고, 어감은 여전히 적재적소가 더 익숙한 정도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규모 공채나 상시 채용은 둘 다 필요한 직무에 우수한 인재를 새로 발굴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다르지 않다. 공채가 상시 채용보다 나은 점은 여전히 많다.

 

스펙도 마찬가지다. 직무 관련 스펙이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학점과 봉사활동 경험 등은 평가 항목에서 빠져 있거나 우선순위가 낮아지고 있지만 적재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스펙인 것은 여전하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스펙이 지원자의 적재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구글은 채용 과정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지원자의 면접 영상에서 파악되는 어휘, 목소리, 몸짓 등을 분석하고,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의 언어 패턴, 과거 온라인에서 작성한 댓글까지 찾아 분석해서 직무 적합도는 물론 지원자의 성격, 이직 확률, 심지어 기억력과 사고력 같은 인지 기능을 주관하는 전전두엽까지 분석한다고 알려졌다.

직원은 규격에 맞춰 깎아 쓰는 부품도 아니고 소숫점까지 정산할 수 있는 자금도 아니다. 인사(人事)에는 비용과 효율 측면 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이처럼 많을 수밖에 없다.
 

경희대학교 2018학년도 학위 수여식이 열린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캠퍼스 평화의전당 앞에서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공중으로 던지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기업은 이처럼 다양한 필터를 거쳐 인재를 선별한다. 그런데 어떤 기업, 어떤 부서에나 어울리지 않은 직무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직무 역량과는 무관하게 인성, 도덕성 측면에서 문제 있는 사람 역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회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표현까지 있다.

채용은 이익에 보탬이 될 인재를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위험 요소가 될 만한 사람을 걸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기업에 당장 득이 되는 사람은 우수한 직무 역량을 갖추고, 실력까지 검증된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직무 역량이 뛰어나도 '돌아이'는 기업에 큰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갑질'이나 횡령 같은 돌아이 한두 명의 일탈이 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손해를 일으키는 사례는 수없이 많이 목격된다.

 

기업은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이다. 먼저 '적재'를 제대로 발굴할 수 있다면 '적소'나 '적시'(適時)는 나중에라도 유연하게 조율해서 맞출 수도 있다. 편의와 효율보다 바르고 공정한 기준과 신중함이 채용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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