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상의 법과 유학] 안희정 사건과 공자의 性 스캔들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기자 2019.03.04 09:36:11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자 수행비서에 대한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의 항소심은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던 제1심 판결을 뒤집고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동시에 법정구속을 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대법원의 판단만 남겨두어 치열한 법리공방이 무대를 옮겨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희정 전 지사가 차기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관계로 이 사건은 수행비서인 김지은 씨의 핵폭탄급 폭로에서부터 검찰의 수사와 1심 및 항소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습니다.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신문) 단계에서부터 쟁점이 되었던 상황은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 사이인지 또는 도지사와 수행비서의 업무상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빚어진 위력에 의한 간음행위인지 여부였습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일단 구속영장은 기각되어 자기방어의 기회가 충분히 인정된 상태에서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싸움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피해자다움’과 ‘성인지 감수성’

1심 판결의 주된 내용은 통상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과는 달리 김지은 씨는 성폭행 피해 뒤 안희정 전 지사를 위하여 순두부집을 물색하고, 와인 바에 함께 가기도 하였고, ‘애교 섞인’ 이모티콘을 보내는 행동을 하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성폭행 피해자로 보기 힘든 행동, 즉 ‘피해자다움’을 상실한 행동이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안희정 측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 “특정하게 정형화된 피해자의 반응, 즉 ‘피해자다움’만을 정상적인 태도라고 보는 편협한 관점”이라고 질타하였습니다. 김지은 씨의 위와 같은 행동은 비록 ‘피해자다움’을 벗어난 행동이기는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성폭행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 즉 ‘성인지 감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판시였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그동안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된 점을 들어 피해자 진술에 더욱 신빙성을 인정하고 1심 판결의 무죄 선고를 뒤집고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까지 하였습니다.

 

2월 1일 지위이용 비서 성폭력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항소심 재판부가 거론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는 2018년 4월 대법원이 처음 사용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이와 같은 성폭력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성폭력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일반적인 평균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학생이나 여직원 등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 사람의 눈높이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더욱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이 피해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때 어떻게 대처하였을지 바로 그 피해자의 관점에 서서 잘 생각해 보라”는 의미이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피해자는 취약한 상태나 지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 가해자와 계속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피해 사실이 있었음을 부정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 신고가 조금 늦었다고 해서 이것이 피해자의 진술을 믿지 못할 이유가 될 수도 없다는 것,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다소 소극적인 진술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음을 충분히 감안하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공자의 성 스캔들

‘성인지 감수성’은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 설시된 이후 같은 해 10월 대법원의 ‘친구 부인 성폭행 혐의 무죄 사건의 파기환송’에서도 원심 판결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판결”이라는 지적이 있었기에, 향후 ‘성폭력 재판의 변화 예고’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이번 안희정 전 지사 재판으로 성폭력 판결의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안희정 전 지사는 수행비서와의 성 스캔들로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에서 급전직하 낙마하였습니다. 그런데 논어 옹야(雍也) 편에 보면 공자가 위령공(衛靈公)의 부인 남자(南子)를 만난 일을 두고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벼슬길을 청탁한 것으로 오인하고 화를 내자 공자가 절대로 부정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며 맹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후대의 호사가들은 이를 공자의 성 스캔들로 비화시켜 조선 500년 동안 공식석상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심지어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홍콩 배우 주윤발이 공자로 분한 중국 영화 ‘공자 - 춘추전국시대’에서는 음탕한 南子로 분한 여배우가 노골적으로 요염한 자태로 허리를 꼬며 공자를 유혹하고 주윤발의 표정도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공자(가운데)가 음녀로 유명한 南子를 만나러 갔던 것에 대해 우락부락하게 생긴 자로(왼쪽)가 불평을 말하는 장면의 그림. 

南子는 위령공의 부인으로서 대단한 미인으로 유명하였지만 그것보다 음녀(淫女)로서 더 악명이 높았습니다. 본래는 송나라 제후의 딸인데 위나라로 시집오기 전부터 미남으로 유명했던 이복오빠 송조(宋朝)와 근친상간의 관계였고, 결혼 후에도 송조를 불러다가 정을 통하곤 하면서 무능한 위령공을 조종하여 정치에 개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南子가 공자가 위나라에 갔을 때 만나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공자가 거절하였지만 그녀가 집요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공자는 부득이하다고 생각하여 만나주었는데 이를 자로가 불쾌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공자의 처지는, BC 497년 공자가 처음 위나라를 방문하였을 때는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의 집에 머물렀는데 이때 위령공으로부터 노나라에서와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참소하는 일을 겪고 열 달만에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향하던 중 그를 노나라 계씨의 가신이던 양호(陽虎)로 착각한 광(匡) 사람들에게 5일간 억류되었다가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대부인 거백옥(蘧伯玉)의 집에 머물고 있던 때(BC 496년)로서, 공자가 남에게 의탁하던 처지를 벗어나 벼슬길에 나가기 위해서는 南子의 추천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논어 팔일(八佾) 편에 당시 위나라의 실세였던 왕손가(王孫賈)가 공자에게 南子를 아랫목, 그리고 자신을 부뚜막에 비유하면서 “아랫목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부뚜막에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속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서 벼슬을 얻으려면 南子에게 청탁하지 말고 실세인 자신에게 청탁하라는 취지로 넌지시 말한 것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처럼 공자의 당시 처지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 南子의 평소 음탕(淫蕩)한 행실, 당시로서는 남녀 단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고 더구나 음탕한 南子와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억측을 불러올 수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호사가들이 매우 불경(不敬)스런 상상을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영화 ‘공자’ 중 南子가 공자를 유혹하는 장면.

공자가 南子를 만난 일은 당시로서는 안희정 사건 이상의 화제를 몰고 왔을 것입니다. 이에 평소 강직하기로 소문난 자로가 이를 꺼림칙하게 생각(不說)한 나머지 공자에게 ‘왜 南子를 만났느냐’고 추궁하듯이 따지자 난감한 공자는 절대로 부정한 일이 없었다고 맹세하면서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라고 거듭 궁색한 해명을 하는 장면이 지금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선하게 떠오릅니다.

주자(朱子)는 이 일에 대해서 “공자께서 위나라에 이르자 南子가 만나기를 청하니 공자께서 사절하시다가 부득이 만난 것이다. 옛날에는 그 나라에 벼슬하면 그 소군(小君, 임금의 부인)을 뵙는 예가 있었다”고 변명하였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는 “南子가 갈포로 만든 발 안쪽에 있었다. 공자가 문으로 들어와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자 부인은 발 안에서 재배(再拜)로 맞았다. 그러자 공자는 우리 고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보지 않지만 만나는 예(禮)로 답을 합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일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자가 아랫목의 南子를 만나도 욕을 먹지 않고, 백성에게 죄인이 되지 않았던 것은 예로 만나 마주하고 물러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도 자신을 의심하고 힐난하던 자로에게 하늘을 두고 맹세할 정도였으니 남녀 간 성 스캔들의 해명이 쉽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안희정 전 지사 스캔들의 종착역은 어디일지 매우 궁금합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 1978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돼 ‘특수통’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다. 2006~2008년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초대 심사본부장,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2018년 9월 한국해양진흥공사 초대 투자 심의위원 위촉. 2013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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