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참사' 보잉 737 맥스, 국내 도입 예정이던 114대 운명은?

윤지원 기자 2019.03.15 15:35:25

10일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항공기 추락 사고로 안전 우려가 제기된 미국 보잉(Boeing) 사의 최신 항공기 B-737 맥스(MAX)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모든 하늘에서 운항 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향후 국내에 도입이 예정된 해당 기종 항공기가 114대에 달해 국토부와 항공사의 골치가 아픈 상황이다.
 

지난 10일 1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티오피아 여객기 추락사고의 잔해(왼쪽)와 사고 기종인 B-737 MAX 여객기.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 시간),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의 비쇼프투 인근에서 에티오피아 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직후 추락, 탑승자 157명 모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해당 사고기는 미국 보잉 사의 B-737 맥스8(이하 737맥스) 기종이었다.

이번 참사에 앞서 지난해 10월 29일 인도네시아에서는 저비용항공(LCC) 라이언에어의 여객기가 바다에 추락해 탑승자 189명 전원이 숨진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때의 사고기도 동일한 B-737 맥스8 기종이었다.


불과 5개월 사이 벌어진 항공기 추락사고 2건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보잉의 737맥스 중 맥스8과 맥스9 기종의 근본적인 결함이 공통된 사고 원인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같은 안전 우려가 제기되자 해당 기종을 보유한 세계 유수의 항공사와 각국 항공 당국이 잇달아 해당 기종의 운항 금지 조치를 취했다. 국내 항공사 및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다.
 

이스타항공 객실승무원들이 지난해 12월 새로 도입한 B-737 MAX 8의 내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 이스타항공)


이스타, 2대 '운항 금지'…올해 4대 더 들여올 예정인데

국적 항공사 가운데 사고 시점에 737맥스 기종을 운항 중이던 곳은 LCC인 이스타항공이 유일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2월 20일 보잉으로부터 737맥스 여객기를 인도받았다. 이는 국내 도입된 첫 737맥스다. 이스타항공은 올해 초 추가로 들여온 1대까지 총 2대를 일본과 태국 노선에 투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안에 4대를 더 들여올 예정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난 10일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에 긴급비행안전지시를 발령하고 11일부터 15일까지 항공안전감독관을 이스타항공에 보내 긴급안전점검을 진행했다. 국토부는 737맥스 조종사와 정비사의 철저한 안전관리와 비상시 대응 매뉴얼 숙지 여부 등을 집중 점검했다.

12일에는 김정렬 국토부 2차관이 최종구 이스타항공 사장을 만나 항공안전에 대한 국민적 우려 해소를 위해 안전점검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고, 이어 13일 이스타항공은 737맥스의 운항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최 사장은 "이번 결정은 국민의 불안과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국토부 종합안전점검에 협조하기 위한 자발적 조치"라며 "고객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경영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은 국토부가 추가 정밀안전점검을 벌인 뒤 안전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확인되고 나면 이후 운항 재개를 고려하겠다고 밝히고, 운항이 중단된 노선에는 대체기를 투입하는 동시에 타 항공사 운항 편 협조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타항공의 B-737 MAX 8 여객기. (사진 = 이스타항공)


중국, 96대 운항 단호히 금지…미국은 끝까지 망설여

정부 차원에서 가장 먼저 737맥스 기종의 운항 금지 조치를 내린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추락 사고가 처음 보도된 지 20시간도 지나기 전에 운항 중지 결정을 내렸다. 반면 미국 정부는 보잉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비행기 자체는 안전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취하다가 13일(현지 시간)에야 운항 중단을 지시했다. 이날 미국과 캐나다를 마지막으로 이제 맥스 8의 운항을 허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아무 곳도 남지 않았다.

중국이 미국 연방 항공청(FAA)의 결정이 있기 전에 독자적으로 항공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뉴욕타임즈는 이에 대해 중국 항공사 관계자를 인용해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미 2005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신규 상업용 여객기 구매국으로 등극한 나라이고, 737맥스도 96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항공사들과 탑승객에게 불편과 손해를 끼칠 결정이었지만 중국 항공 당국은 안전을 위한 최선의 조치를 내리는 데 망설이지 않았고, 이에 다른 나라들의 운항 금지 조치가 줄을 이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잦은 추락 사고로 항공 안전 측면에서 악명 높던 중국이 이제는 세계의 항공 안전을 선도하는 나라가 된 셈이다.

국내에서 운항되던 737맥스는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2대 뿐이었다. 중국에 비하면 운항 금지에 따른 수습이 덜 번거롭고 그에 따른 비용도 크지 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면밀한 조사 결과 737맥스가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이스타항공 외에도 여러 항공사들과 국토부가 곤란해질 상황이다.
 

세계 각국의 항공 당국은 최근 5개월 사이 두 차례 추락 사고가 일어난 B-737 Max 기종의 운항을 금지시켰다. (사진 = 연합뉴스)


인기 절정이던 737맥스…국내에도 114대 도입 예정

국토부에 따르면 국적 항공사들은 2027년까지 총 114대의 737맥스기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이스타항공이 추가 도입하기로 예정된 4대의 737맥스 외에도 대한항공 6대와 티웨이항공 4대 등 당장 올해 국내 도입이 예정된 737맥스만 14대가 남아있는 상태다.

항공사별로는 대한항공이 2015년 30대 구매 확정 계약을 맺고 20대는 옵션으로 체결해 올해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확정 40대와 옵션 10대 등 총 50대의 대규모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도입할 예정이었으며, 이에 앞서 6대를 2020년부터 리스 형식으로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밖에 이스타항공이 18대, 티웨이항공이 10대의 737맥스를 도입해 운용할 예정이었다. 737맥스 도입 예정이 없는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과 그 계열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 뿐이다. 이들은 보잉 대신 에어버스 사의 항공기를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다.

737맥스는 2015년 초도기가 생산되고 2017년 5월 처음 민간 항공사에 첫 항공기가 인도된 이래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아 온 최신 기종이다. 보잉의 대표작이자 스테디셀러인 737 시리즈를 잇는 기종으로, 기존 모델 대비 연료 효율이 14% 높고 전작보다 1000㎞ 이상 긴 최대 6700㎞의 항속거리를 갖췄다.
 

2015년 12월 8일 보잉 사가 737 시리즈의 최신 기종인 737 MAX의 초도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 Flickr 유저 Aka The Beav)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LCC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 100개 이상의 항공사에 4500대 이상 팔리는 등 보잉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린 모델이 됐다.

그런데 최근의 잇단 추락 참사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사고 여객기는 자카르타에서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락했다. 해당 사고기는 생산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8월 15일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교통안전위원회(NTSC)에 따르면 사고기의 비행시간은 총 800시간에 불과했다.

이번 에티오피아 사고기 역시 지난해 10월 첫 비행을 한 새 항공기였으며 이륙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추락했다는 것도 인도네시아 사고 상황과 유사했다. 737맥스 기종의 공통된 문제가 근본적인 사고 원인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보잉과 FAA는 전문가들의 의혹에 대해 이 기종 자체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각국 정부와 항공사들은 서둘러 운항 중단 조치를 취했다. 게다가 일부 항공사들은 운항 중단을 넘어 737맥스 도입을 뒤로 미루거나 아예 취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잉 사는 미국 연방 항공청(FAA)의 737 MAX 운항 금지 조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 보잉 홈페이지 캡처)


64조 원 규모 계약 취소될 수도

지난해 사고의 아픔을 겪은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는 기존에 737맥스를 포함한 보잉사 항공기 190대에 대한 220억 달러 상당의 구매 계약을 취소하고 에어버스로부터 여객기를 구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의 LCC 비엣젯항공은 최근 737맥스의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기 전까지 도입을 미루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비엣젯은 지난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직전 보잉과 737맥스 100대를 127억 달러(한화 약 14조 3725억 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계약 현장에 참석하면서 보잉과의 친분을 과시해 주목을 끌었고, 비엣젯은 이 계약으로 아시아에서 737맥스를 가장 많이 구매한 단일 항공사로 등극하게 된 점도 화제 거리였다.

비엣젯이 구매하기로 했던 737맥스 중 80대는 맥스10 기종이고 20대가 이번에 연이은 사고에 연루된 맥스8 기종이었다.

그밖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LCC 플라이어딜도 59억 달러 상당의 737맥스 구매 계약을 전면 재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케냐항공은 737맥스 대신 유럽 에어버스의 A320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0대를 도입할 예정이던 러시아의 UT항공은 보잉에 초기 납품 전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항공사들이 737맥스의 발주를 재검토하기 시작하면서 570억 달러(약 64조원) 규모 계약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보잉 737 Max 8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날아 오르고 있다. (사진 = 보잉 홈페이지 캡처)


국내 항공사들 "조사 결과와 국토부 조치 지켜봐야"

국내 항공사들 중에는 이 정도로 단호한 입장을 취한 항공사가 아직 없다.

대한항공은 당장 5월부터, 티웨이항공은 6월부터 순차적으로 해당 기종을 운항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시행된 운항 중단 조치가 그 때까지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기체 결함이라는 결과가 나온 뒤에는 더 단호한 조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각 항공사는 안전하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기 전에는 운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혔다.

대한항공은 14일 "최근 잇단 추락 사고가 발생한 B737-맥스8 항공기의 안전이 완벽히 확보되기 전까지는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5월부터 737맥스를 투입하려던 노선에는 다른 기종을 대신 투입하기로 했다.

이어 "고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안전운항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항공기 도입 관련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보잉 측이 조속히 안전을 확보하는 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제주항공도 14일 해당 기종의 안전에 대한 공감대가 확립된 이후에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제주항공은 “최근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해당 항공기 이슈와 관련, 아직 문제의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도입의 전제는 ‘안전성에 관한 국제적 공감대’가 확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제주항공이 정한 최고 경영 목표는 ‘안전운항 체계 고도화’다. 따라서 항공기 도입 계획도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티웨이항공 역시 일단 상황을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결과에 맞춰 상황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사진 = 연합뉴스)


위약금 탓 계약 파기는 곤란…마냥 놀리는 비용도 커

계약 취소나 재검토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한 항공사는 없다. 국토부의 명확한 방침이 나오기 전까지 자체적인 결정을 내릴 근거가 없으니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사고조사 과정과 미 연방 항공청(FAA) 및 보잉, 해외 당국의 후속 조치 등의 진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후속조치를 취할 계획이며, 이 기종에 대한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내 도입을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입 금지라는 결과가 나오면 국내 항공사들의 계약 변경 및 파기는 불가피해진다.

그 전에 항공사가 자의로 737맥스 구매 계약 취소를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기체 결함이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인 계약 취소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반적으로는 객관적인 항공사 귀책사유가 없는데 계약을 파기하면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사와 보잉 간에 협의를 통해 도입 시기 등을 조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발생한 라이언에어 추락사고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을 보면 앞으로도 사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조사가 지체됨에 따라 새로 도입한 비행기를 마냥 놀려 두어야 하는 상황도 불가피하다. 끝내 운항 중단 조치가 해소된다 해도 발표 내용이 미흡해 승객의 불안감이 지속된다면 해당 기종을 운항에 투입하기도 곤란하다. 이에 따라 기단 운용 계획이 불투명해지는 것도 항공사에는 큰 부담이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7월 23일 김포국제공항에서 이석주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과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첫 B737-800 구매 항공기 도입 축하행사를 가졌다. (사진 = 제주항공)


신규 항공기 1대를 도입하는 데만 수백억 원이 오간다. 이에 따른 채용 효과까지 고려하면 직·간접적 비용도 크다. 항공업계는 항공기 1대 도입에 따라 평균 100명의 고용 창출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항공기 구매는 항공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영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스타항공이나 티웨이항공처럼 현재 운용 중인 기단 규모가 작은 LCC들은 운행 금지 기간이 길어지고, 조사 결과가 늦어질수록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종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말 24대인 기재수를 올 연말까지 30대로 늘리려고 했는데 계획을 크게 수정해야 한다"며 "보잉 맥스 기종을 제외하면 신규 항공 공급이 2대에 그쳐 실적 하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항공기 공급 증가에 대비해 인력 채용이 마무리됐다면 인건비 부담도 커질 것"이라며 "실적 조정에 따른 주가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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