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인 가구 500만 세대' 소외시키는 대기업 AS 체계

"근무 시간만 출장 돼요"…기사님 근무 시간엔 저도 일해야죠

윤지원 기자 2019.03.20 09:04:55

지난해 10월 26일 경기도 평택 소재 LG전자 러닝센터에서 열린 ‘2018 한국서비스 기술올림픽'에 참가한 LG전자 서비스 엔지니어들이 수리 실력을 겨루고 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함. (사진 = LG전자)

혼자 사는 사람이 500만 가구를 넘어선 지 오래다. 1인 가구의 삶에 적합한 각종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소비자 경제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후 서비스에 있어서는 대기업의 서비스체계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사철이던 2월, 불편을 호소하는 소비자 세 사람을 만나봤다.

Q1. 본의 아니게 '갑질' 할 뻔 했던 이 기분 뭐죠?

혼자 사는 A씨는 봄을 맞아 집안 배치를 바꾸면서 세탁기 자리를 옮겨서 설치했다. 그런데 전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제조사의 서비스센터에 출장 수리를 요청했다.

A씨는 직장인이어서 평일 퇴근 후, 아니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서비스를 받고자 했다. 그런데 배정된 서비스 기사는 평일 저녁 늦은 시간에는 출장 수리가 곤란하다고 했다. "저희도 퇴근 해야죠"라는 아주 당연한 이유를 들었다. A씨는 같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서비스 근로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갑질 고객이 되고 싶진 않았기에 기사의 말에 수긍했다.

전 세계 세탁기 시장의 강자인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서비스센터 홈페이지는 평일 오후 6시 이후 및 토/일/공휴일/대체휴무일에는 수리 유무와 무관하게 2만 2000원의 출장비가 기본으로 청구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A씨는 해당 출장비를 청구할 용의가 있었지만 기사는 그날 그 시간에 서비스를 해 줄 용의가 없었다. 기존 신청을 취소하고, 다른 날, 다른 기사를 새로 배정받아 출장 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동네 코인 빨래방을 이용해야 했다.

A씨는 코인 빨래방의 세탁 결과가 탐탁치않아 굳이 세탁기를 구매하고, 세탁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집으로 무리해서 이사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담당기사가 다른 제안을 했다. 대다수의 세탁기 고장은 고객이 직접 조처할 수 있는 간단한 경우이니, 퇴근 후 전화로 증상을 설명해주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업무 외 시간이지만 그 정도의 개인적인 도움은 줄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그날 저녁 8시에 기사와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약 20분에 걸쳐 직접 세탁기를 재설치했고, 다행히 세탁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LG전자서비스(왼쪽)와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의 출장 서비스 요금 관련 정책 안내. (사진 = 각 사 홈페이지 화면 캡처)


Q2. 고장 난 문을 그냥 둔 채로 지내야 하나요?

B씨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의 베란다 창문에 잠금장치가 고장 난 것을 알게 됐다. 전에 살던 사람은 이 고장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산 모양이지만 B씨는 아파트 5층 이상 세대의 절도 사건이 저층보다 많다는 통계를 접한 까닭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침입이 쉬워 보이는 저층은 그만큼 집주인이 보안 채비를 해 둘 가능성이 높은 것에 비해, 5층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은 방심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절도범들이 주요 타깃으로 삼는 일이 많다는 것.

B씨의 새 집이 바로 5층이었다. 그리고 부부가 모두 직장을 다녀 평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집이 비어 있게 된다. "하긴 내가 도둑이라도..." 남편이 무심코 농담처럼 꺼낸 말에 불안감이 더 커졌다.

다행히 대기업에서 만드는 창호였기에 B씨는 창호 회사의 서비스센터에 출장수리를 신청했다.

그런데 B씨도 A씨 경우처럼 일정을 잡기가 곤란했다. 부부의 직장이 모두 탄력근무제를 시행하지 않는 작은 회사였기 때문이다. 평일 늦은 저녁이나 주말, 일요일만 가능했다.

반면 창호 회사의 고객센터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운영했고, 서비스기사의 근무 시간도 같았다. LG·삼성전자 서비스센터와 달리 정규 시간 외 출장에 관한 조항이 아예 없었다.

상담원도 역시 안내된 평일 운영시간 외에는 방문수리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면서, 누군가 평일 낮에 집을 대신 봐 줄 사람이 없는지, 휴가 일정에 수리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아파트 거실 및 베란다 창호. (사진 = CNB저널)


양가 부모님과 친척이 모두 멀리 살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사 가까이 살더라도 이런 일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1년에 겨우 보름 남짓 하는 휴가를 이 일로 쓰기도 아까웠다. 그런 일정들을 자연스럽게 맞추자고 외부로 통하는 베란다 창문을 며칠이고 잠그지 않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품 잠금장치가 아닌 대용품을 임의로 창틀에 설치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었다. 새 집의 시설을 벌써부터 훼손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한 대기업 브랜드인 만큼 창호 값에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어 있고, 그런 점이 집값에도 반영되어 있었을 테니 정식 서비스를 꼭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는 수 없이 평일 오전 시간으로 출장수리를 신청하고 오전 반차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배정된 서비스기사가 방문 일정을 확정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B씨는 아쉬운 사정을 설명했다. 이번에도 B씨의 사정에 공감한 담당 기사가 본사 정책과 상관없이 개인적인 호의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기사는 자신의 출근 시간 이전인데도 다음날 새벽 6시 40분에 B씨의 집에 방문했고, B씨 부부가 출근해야 하는 7시 30분 전에 창문 수리를 모두 마무리해주었다.

다만, 이른 아침부터 수리에 사용한 전동 드라이버 때문에 이웃에서 찾아와 소음을 불평했다. B씨는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 큰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아파트 예절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첫인상을 줬을까봐 마음이 쓰였다.
 

LG전자 직원들이 창원공장 내 에어컨 생산라인에서 휘센 듀얼 에어컨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함. (사진 = 연합뉴스)


Q3. 다들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되신대죠?

C씨는 결혼을 앞두고 마련한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거실 에어콘을 새로 설치했다. 지난 연말에 할인 행사를 하는 대리점에서 구매 계약을 하고, 이사 다음 주 토요일로 배송 설치 날짜를 예약했다.

그런데 예정된 설치일 이틀 전인 목요일 오후, 고객센터에서는 방문 설치 일정을 다음 날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C씨는 되물었다. "저는 토요일로 예약했는데요?" 그러자 상담원은 "네, 고객님 예약 날짜는 토요일이 맞습니다. 그런데 배정된 팀이 토요일에는 일정이 많고 내일 오후에는 시간이 비어 있어서요"라고 설명하며 예약 일정을 변경할 것을 권했다.

C씨는 "토요일 예약이 많은가보죠? 저도 평일에는 직장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처음부터 토요일로 두 달 전에 예약한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상담원은 알겠다면서, 다만 토요일에는 먼저 잡혀있는 일정이 많아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하게 될 수도 있다고 안내했다.

C씨는 알았다고 하고 주말 오후 일정을 취소했다. 두 달 전 예약으로도 설치 시간을 먼저 선점할 수 없을 정도라니, 자기 같은 소비자가 많구나 싶었다.

토요일. 에어콘 팀은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야 C씨 집에 도착했다. C씨 집이 네 번째 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에어콘 두 대를 설치하는 것은 짧고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전화 통화를 몇 번 하나 싶더니, 네 명의 설치 기사들이 더 방문했다. 오늘 스케줄이 먼저 끝난 다른 팀들이 도움을 주러 온 것이다. 여섯 명의 설치기사들은 마치 어벤져스 같은 든든함을 주었지만 설치 시간이 드라마틱하게 짧아지진 않았다.

마무리 단계만 남겨두고 지원군 네 사람은 먼저 떠났다. 토요일 퇴근이 늦어지는 동료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반납하는 동료애는 따뜻했지만, 전날 오후는 공치고 오늘은 이토록 일이 몰렸다는 저들의 상황이 쉽게 수긍되지는 않았다.
 

LG전자 서비스센터. (사진 = 연합뉴스)


A. 대기업 서비스센터, 변화를 모색할 때

대기업 서비스센터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다.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과 그에 따른 임금 피크제 적용으로 인한 갈등, 대기업이 서비스 업체를 불법으로 도급 운영해 왔다는 의혹 등의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기사의 멀티화'라고 부르는 문제도 있다. 여름철에 급한 에어콘 수리 접수가 많아질 때에 대비해서 원래는 모바일 기기나 PC를 전문으로 수리해 온 엔지니어에게 에어콘 기술을 급히 가르쳐 현장에 투입하는 관행이다. 대기업 본사가 기사들에게 다양한 기술 습득을 권장하고 있으며, 현장 직원이 직접 이런 '멀티화'의 문제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털어놓기도 했다.

위에 예를 든 세 사람의 사례는 대기업 서비스센터 운영 방식에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이 불편을 제기한 것은 서비스 업무시간 관련 정책이다.

에어컨, 세탁기, 베란다의 대형 창호 같은 제품들은 기사의 방문 출장 서비스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경비실이나 무인보관함에서 택배를 받아줄 순 있을지 몰라도 세탁기 수리 기사에게 빈 집의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결국 소비자와 기업(기사)이 대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기업과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부족해진다는 데 있다. 위의 세 사람은 모두 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거나 1인 가족이다. 그리고 이들의 근무 시간은 삼성전자 서비스와 LG전자서비스, LG하우시스 고객센터의 업무 시간과 정확히 겹치거나, 출퇴근시간을 포함해 앞뒤로 더 길었다. 평일 낮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 아무도 없어 내내 집을 비워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업과 소비자가 같은 시간에 일하고, 같은 시간에 쉰다는 것은 어쩌면 아름답지만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말 발간한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8'에 수록된 사회통계 지표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1인 가구는 2017년 561만 9천 가구로 전체 가구 중 비율은 가장 높은 28.6%에 달했다. 1인 가구 수는 2020년 600만 가구, 2030년 700만 가구, 2045년 800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됐다. 위 사례와 비슷한 불편을 경험한 사람은 점점 늘어날 거라는 얘기다.

대기업이 이러한 사회 트렌드의 변화를 모를 리 없다. 예컨대 미세먼지가 국민의 최우선 관심사가 되면서 새롭게 각광받게 된 공기청정기, 인덕션 전기레인지, 의류건조기 등은 최근 대기업들이 가장 힘을 쏟는 제품군이다.

대기업들은 1인 가구 트렌드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부족한 시간을 쪼개 살림까지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세탁기, 에어콘, 의류 관리기, 로봇청소기 같은 다양한 가전제품들이며, 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술과 서비스를 내세우는 업체가 대기업이다. 즉, 일손을 덜어주는 기술이 간절한 1인가구야말로 대기업 백색가전의 가장 중요한 고객층인 것이다.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의 LG전자 가전제품 매장. 무선청소기, 공기청정기 등에도 트렌드를 반영한 최신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사진 = 롯데백화점)


최근에는 여기서 한 발 더 깊이 들어간다. 1인 가구 문화 안에 숨은 '펫팸족'(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 '혼술족'(혼자서 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들) 등의 하위 트렌드 키워드까지 세밀하게 분석해서는 반려견 털을 바로바로 청소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내세운 무선청소기나 나만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맥주 제조기 같은 신제품을 광고하는 것이다.

이처럼 팔릴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섬세한 노력을 들이는 대기업이 소비자의 불편이 증가하는 트렌드 변화에 맞춰 서비스센터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위 소비자들의 지적이다.

B씨는 "기사가 서비스 결과 보고를 할 때도 현장에서 태블릿 PC를 쓰는 시대인데, 서비스 가능 시간은 왜 20년 전과 동일한지 모르겠다"면서 "기사님들 퇴근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다니는 작은 회사보다는 대기업 서비스센터가 유연근무제, 탄력근무제, 교대근무제 등을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의 세 가구나, 500만 세대가 넘는 전국의 1인 가구 소비자 상당수는 낮에 집 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소비자들과 달리 2만 2000원의 시간외 출장비를 지불하거나, 연차휴가를 쪼개 써야만 하는 상황이다. 어느 쪽이든 울며 겨자먹기다.

이런 불합리 혹은 차별을 방치하는 서비스센터 운영 정책은 고객 친화적이라거나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 대기업은 '물건만 팔면 장땡'이고 고객은 알고도 또 당하는 '호갱님'이라고 비꼬는 풍조가 만연한 데는 이런 섬세하지 못한 사후 서비스 탓이 크다.

사후 서비스는 기업과 소비자가 제품 구매로 맺은 신뢰 관계를 이어나가는 중요한 소통의 과정이다. 하지만 소통을 위한 약속 시간 잡기부터 너무 어려워 답답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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