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토비 지글러의 ‘이성(理性)의 속살’

PKM 갤러리서 신체 형상에 기인한 신작 10점 전시

김금영 기자 2019.03.20 12:19:32

토비 지글러 위드 ‘더 휴먼 엔진’.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Toby Ziegler Studio.(사진=피터 맬릿)

PKM 갤러리는 3월 20일~4월 30일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토비 지글러의 작품전 ‘이성(理性)의 속살’을 연다. 본 전시는 2015년 PKM 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그의 두 번째 한국 개인전이다.

토비 지글러의 작업은 로마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과거 예술품에서 출발한다. 원본 이미지를 컴퓨터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변환해 금속, 합성 소재 등의 현대식 재료에 입힌 뒤 이를 사포질, 페인트칠과 같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체한다. 이런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미와 층위가 한 화면에 압착되는 특유의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적 미술품의 한 부분, 특히 손, 발 등의 신체 형상에 기인한 회화와 조각, 영상 신작 10점이 새롭게 공개된다.

 

토비 지글러, ‘이성의 속살(Flesh in the age of reason) 1’. 알루미늄에 오일, 100 x 110 x 3cm. 2018.(사진=PKM 갤러리, 토비 지글러)

전시 제목과 동명의 회화인 ‘이성의 속살’은 토비 지글러를 대표하는 알루미늄 페인팅 시리즈 중 하나로, 화면 위 언뜻 보이는 첫 번째 레이어에는 구상적 신체 형상들이 자리한다. 작가는 인터넷 구글링을 통해 찾은 르네상스, 바로크 예술품 속 손발 도상의 저해상도 이미지를 디지털 렌더링으로 조작해, 이를 캔버스 면이 아닌 알루미늄 판 위에 오일 페인팅으로 얇게 도포했다.

물감이 마르고 나면 표면은 전기 사포로 빠르게 갈리고, 기하학적 패턴의 붓 터치로 완전히 생략되기 직전까지 지워지는 과정을 거친다. 즉 금속 판 위의 얇은 막 사이로 창조와 파괴,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자동과 수동, 원본과 차용 등 수많은 대립항과 그 경계가 압축돼 혼재하게 되는 셈. 이런 복잡한 의미들은 빛과 보는 각도에 따라 우아하게 반짝이는 회화 겉면의 물질성으로 인해 순간 무상해지고 만다.

 

토비 지글러, ‘이성의 속살(Flesh in the age of reason) 6’. 알루미늄에 오일, 150 x 100 x 3cm. 2018.(사진=PKM 갤러리, 토비 지글러)

한편, 조각 ‘이성의 속살’은 원본 이미지를 3D 모델링한 뒤 여기서 파생된 픽셀 면을 내·외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아크릴수지 다면체로 균질하게 조합한 작업이다. 고대 ‘콘스탄티누스 거상’의 검지를 든 손이 작업의 모티브로 작용했다.

수집된 이미지의 끝없는 차용과 변환은 2채널 비디오 ‘곧 끝날 것이다’에서 보다 다각화된다. 이 작업의 부제인 ‘우아한 시체’가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한 공동 놀이를 의미하듯, 토비 지글러는 만 레이의 인물 사진 속 목 부분, 분신하는 불교도의 팔과 귀도 레니의 회화 속 성 세바스찬의 몸 도상, 조르주 바타유의 에세이 삽화, 현미경으로 본 세포 형상 등을 채택해, 그 이미지들을 5~6년 동안 검색엔진으로 돌렸을 때 나온 무작위한 2차 이미지들을 영상의 장면으로 접합했다. 마치 그가 또 다른 조각에서 전용한 ‘클라인의 항아리’의 단측 곡면처럼, 이 영상은 시작도 끝도 없이 현재의 시공간을 가득 메운다.

PKM갤러리 측은 “고전 모티브와 기계·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토비 지글러의 독창적 언어는 정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확장되고 수평적으로 접근가능해지는 디지털 시대에 예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토비 지글러, ‘곧 끝날 것이다 – 우아한 시체(It’ll soon be over - exquisite corpse)‘. 2채널 비디오 설치, 소리 4분 55초. 2018.(사진=PKM 갤러리, 토비 지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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