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하태경 의원님, 중재(arbitration)가 한쪽 대변하는 거니 “김정은 대변인 맞다” 하라구요?

그러면 정말 더 큰 난리 날 게 뻔한데…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기자 2019.04.23 14:29:06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오늘 아침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재밌는 발언을 했다. 바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발언에 대해 “(발끈해 맞대응한) 청와대는 굉장히 유치하다, 왜 이렇게 황교안 키워주기만 하냐. 중재라는 게 트럼프한테 가서는 김정은 대변하는 거고, 김정은한테 가서는 트럼프 대변 하는 것이다. 아예 떳떳하게 그렇게 했고 그래서 힘들었다고 밝히면 된다”고 조언한 대목이다.

여기서 중재(arbitration)라는 단어를 한번 생각해보자. 중재라는 게 과연 이쪽에 가서는 저쪽 입장을 전해주고, 저쪽에 가서는 이쪽 입장을 대변해주는 걸로 될까? 트럼프한테 가서 김정은 입장을 대변 또는 강변해주고, 김정은한테 가서는 “트럼프 입장을 좀 받아들여라”고 대변 또는 강변하면 과연 적절한 절충안이 찾아질까?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오른쪽). 사진 = tbs


그렇지 않다. 그렇게 중재자가 한쪽 편만 들어서는 절충은커녕 “왜 당신은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저쪽 편만 드는 거냐? 앞으로 나한테 오지마!”라는 핀잔이나 받으면서 싸움은 더 커질 거라고 보는 게 더 상식적 아닐까?

중재의 요령은 arbitration이라는 영어(유럽어) 단어에 잘 표시돼 있다. 필자의 경우 그간 항상 헷갈렸던 게 arbitration과 이 명사의 형용사격이랄 수 있는 arbitrary의 차이였다. 철자는 거의 같은데, arbitration은 ‘중재’라 번역해야 하고, arbitrary는 ‘맘대로’(물론 ‘중재의’라고 번역해야 할 때도 있지만)라 번역해야 하니 도대체 그 중재와 맘대로의 연관성이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중재의 회전'은 도대체 몇 도를 돌려야 하는가?


일례로 많이 쓰는 그래픽-사진 소트프웨어에 보면 메뉴 중에 arbitrary라고 이름 붙은 항목이 가끔 눈에 띈다. 예컨대 사진을 회전시킬 때 ‘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 ‘시계반대 방향으로 90도 회전’ 메뉴가 있고, 그 아래에 ‘arbitrary 회전’ 메뉴가 있다.

‘arbitrary 회전’ 메뉴를 선택하면 어느 방향으로 몇 도 만큼 돌릴 건지를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arbitrary rotation’이라는 메뉴는 한글 번역을 한다면 ‘임의로 회전’으로 해야지, 이를 ‘중재로 회전’이라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임의(任意)로’ 즉 ‘뜻대로’라는 말에 중재의 핵심이 들어 있다.

 

중재 기능을 나타날 때 흔히 동원되는 천칭 이미지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지, '때에 따라 한 쪽 편을 들었다 말았다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rbitration의 어원을 찾아보면 라틴어 arbitrationem(판단, 의지)에서 나온 말로, 14세기 후반부터 ‘결정-판단-방향결정의 능력’이라는 의미로, 이어 15세기 초부터는 ‘분쟁을 판결짓는 권위-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고 나온다. 이렇게 권능을 갖고 임해 문제를 풀어내는 게 arbitration(중재)이기 때문에 arbitrary는 '맘대로' 또는 '뭐든지 가능한'이라는 확장된 의미도 갖는다. 

 

권능-권위 없는 중재자가 힘든 이유


바로 이런 것이다. 중재자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한 뒤 권능과 권위를 갖고 양자 사이에서 분쟁을 종결지을 제3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중재가 성공하는 것이지, 으르렁대는 두 사람 사이를 중재를 한답시고 이쪽에다가는 저쪽 칭찬을 하고, 저쪽에다가는 이쪽 칭찬만 해서는 양쪽 모두로부터 매질을 당하기 십상이지 않겠는가? 오히려 '맘대로' 또는 '뭐든지 가능한'이라는 확장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툼을 중재하면서 평화를 찾는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언론중재 위원들은 양쪽 의견을 모두 듣지만 "당신들 말이 모두 맞소"라는 무책임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명백하게 잘못한 쪽을 판정해 내거나 아니면 분쟁 쌍방이 한발씩 양보하면서 "그래도 이게 나은 것 아니냐"는 '임의에 따른' 합의를 도출해낸다. 

 

기자들이 기사를 잘못 쓰면 불려가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도 중재위원들이 분쟁 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청취하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권위를 갖고 '이렇게 해라'고 해서 합의를 성공시키지, "그래 당신 말이 맞다"고 했다가는 곧 이어 "아니, 당신 말도 맞기는 하네"라면서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갈피를 못 잡는다면 싸움을 키울 뿐 중재를 성공시킬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중재자 = 운전대 잡는 사람


중재라는 게 분쟁하는 양쪽 당사자에게 ‘참을만한’ 제3의 길을 제시(arbitrationem에 근거한 조언 또는 지시를 통해)함으로써, “계속 싸우면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거 하나를 저쪽에 집어줌으로써 당신이 더 실익을 얻는 게 나은 것 아니냐”고 설득해내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뛰어난 중재자는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지, 한쪽 편들기만 잘하는 사람이어서는 절대로 훌륭한 중재자가 될 수 없다.

 

심판은 중재에서 한 발 더 나간 개념이지만, 중재자에게는 '심판과 결정의 권능'이 반드시 필요하다.(사진 = 위키피디아) 


따라서 하 의원의 말은 얼핏 듣기에 말이 되는 듯도 싶지만(한쪽 편의 입장을 다른 쪽에게 잘 설명해주는 게 중재에 필요하다는 소리이기에), 그런 편들기는 중재의 한 요소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만으로는 중재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은, 양쪽의 의견과 속셈을 충분히 파악한 뒤 독자적인 arbitrationem(판단, 의지)을 내리고, 귄위와 권능을 갖고 이를 분쟁 쌍방에 관철시켜야 하는 극히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런 중재가 실패하면 그에 따른 분쟁의 피해를 직접 당해야 하는 당사자이기에 arbitrationem을 직접 해야 하는 운전자는 그만큼 힘들고 고독하고 피곤하다.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재자는 한 쪽 편만을 대변하거나 칭찬하기만 하는 게 아니기에 양쪽 모두로부터 공격받기 십상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이 한반도 거주자로서는 맞는 선택이지만, 외세 또는 외세에 기대려는 세력으로부터 공격받기 쉬운 이유다.(사진 = SBS 뉴스 화면 캡처)

 

이런 마당에 제1야당 대표가 “대통령은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막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야당의 최고위원은 “김정은 대변인 맞다고 그러면 되는데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드냐”고 훈수 아닌 훈수를 두는 것은, 참으로 적절치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 의원 조언 따른다면 더 큰 혼란과 난리 부를 것


만약 이런 조언에 청와대 관계자가 혹해(그럴 리야 절대 없겠지만), “맞다. 그래 우리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이 맞다”고 해버린다면, 그땐 그야말로 또다른 굉장한 비난과 홍역이 남한 땅을 휩쓸고 지나갈 게 뻔하다. 아무리 정치가 속셈을 감추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말재주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이렇게 망하는 쪽으로 훈수를 두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중재’라는 단어의 어원사전을 들쳐봤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