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게임업계 규제 완화…드디어 ‘산업’ 보았나

결제한도 폐지부터 ‘게임=질병’ 반대까지, 문체부 움직임에 ‘시선 집중’

이동근 기자 2019.05.16 17:25:29

게임업계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규제의 대상에서 육성해야 할 사업으로 시각을 전환시키는 분위기 탓이다. 이같은 움직임이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현재 성인 한 명당 월 50만원에 묶여 있는 온라인게임 결제한도 규제를 이달이나 늦어도 상반기에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박양우 장관 “규제 없애고 업계 키우겠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취임 후 경기도 판교를 방문, 게임업계 관계자 20여명과 간담회를 가지면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성인에게까지 결제한도를 둔다는 건 굉장히 낙후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PC 온라인게임의 결제 한도는 2007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성인은 한달에 30만원까지, 청소년은 7만원까지 결제 할 수 있도록 정한 뒤, 2009년 성인의 결제한도를 50만원으로 한차례 인상한 것이 전부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9일, 게임업계 관계자 2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결제한도 폐지를 포함한 진흥책을 논했다. (사진 : 문체부)


결제한도는 원래 업체의 자율적인 사항이었지만, 위원회가 결제 한도를 정하지 않으면 등급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강제식으로 적용해 왔다.

박 장관은 이어 게임 산업 진흥책으로 현재 10개 수준인 글로벌게임허브센터와 지역게임센터를 16개로 늘리고, 게임 전문학교와 마이스터고를 통해 인력을 양성하며, 게임전문펀드를 2023년까지 1000억원으로 확대할 뿐 아니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실감형 게임과 차세대 게임, 기능성 게임 제작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수출도 지원하는 안도 밝혔다.

또 중국이 판호 허가 규제를 통해 게임산업 수출에 장애가 생기는 문제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외국기업이 중국에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판호라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중국정부에서 이를 2년 가까이 국내 게임업계에 부여하고 있지 않다. 반면 국내에서는 중국산 모바일 게임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움직임에도 정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WHO는 이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 통과 여부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2022년부터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된다. 국내 적용은 2025년부터 논의될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국내 분위기가 급반전되고 있다. WHO의 결정에 이같은 정부 움직임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게임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접근한다는 것만으로도 업계는 힘을 얻는 분위기다.

이어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장애를 규정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반대 의견을 WHO에 전달하고, 협단체와 대학으로 구성된 구성된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게임장애 코드 국내 도입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분서갱유’ 대상에서 ‘돈 되는 사업’으로 인식 전환?

이같은 분위기 전환은 박양우 장관이 앞서 판교에서 열림 기자 간담회에서 “앞으로 문체부 차원에서 게임문화·산업 진흥정책을 적극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힌 것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그동안 2000년대 이후 게임은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대상이었던 만화에 이어 새로 부각된 ‘사회악’으로 인지될 정도로 사실상 정상적인 사업 취급을 받지 못했다. 특히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움직임의 선봉에 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가부는 2011년 ‘셧다운제’로 불리는 청소년보호법 제 26조를 시행, 현재까지 야간에 16세 미만 청소년의 PC게임을 제한해 왔다. 여가부는 5월 중에 이 제도를 모바일게임에까지 적용하려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지부는 2015년 게임에 빠진 청년이 길에서 한 아주머니를 게임 몬스터로 착각해서 폭력을 휘두른다는 내용으로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게임 매출의 몇 %를 강제징수 해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복지부가 2015년 진행한 게임중독에 대한 광고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해외 매체들에 소개될 정도였다. 다만, 대부분의 내용은 조롱에 가까웠다.


그나마 이명박 대통령이 닌텐도 DS 게임기를 언급하면서 “왜 우리는 이같은 게임기를 만들지 못하나”라고 말한 뒤 잠시 게임업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바 있지만, 오히려 “‘명텐도’를 만들라는 거냐”며 업계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이후 여가부와 복지부의 게임에 대한 자세는 사실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하지만 문체부 장관이 직접 게임 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나서면서 게임업계에서는 “든든한 원군을 얻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음악·영화 합친 것보다 더 큰 산업 “문제는 인식”

이처럼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이유는 성장 가능성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년 상반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 산업은 2018년 상반기 6조587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콘텐츠 산업의 12.0%를 차지했다. 음악(2조8732억원), 영화(2조7567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2018년 상반기 한국 게임의 수출액은 2조143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9.1% 증가한 바 있다. 대형 게임사인 넷마블의 지난해 3분기 실적 중 해외매출이 전체 매출의 73%를 차지하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K-POP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수출 산업 역군인 셈이다.

대형 게임제작사 개발팀 A씨는 “정부는 과거 ‘만화책 불태우기 운동’처럼 최근에는 ‘게임 불태우기 운동’을 해 왔다. 문체부가 뒤늦게라도 게임 산업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원해 주겠다는 것은 반갑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게임에 대한 인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게임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본다. 중국산 게임들이 국내 시장을 점유하게 된 것은 업계가 갈수록 위축된 탓도 있다”며 “더 이상 죄인만 안했으면 좋겠다는 친구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중소 게임업계 종사자 B씨는 “현재 게임업계는 3N(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와 중국산 게임이 판치는 상황”이라며 “그동안 업계의 성장은 정부가 아닌 업계 스스로의 힘으로 큰 부분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 억압한다면 넥슨이 일본에 진출 했던 것처럼 다 밖으로 빠져 나가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텐센트(중국 게임업체) 같은 곳에서 국내 업체들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하나 하나 인수하다 보면 산업계 자체를 해외로 넘겨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지원해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중국 게임사인 텐센트는 현재 매각시장에 나와 있는 넥슨의 매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넷마블의 3대 주주, 카카오 게임즈의 2대 주주 로 국내 게임 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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