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상의 법과 유학] “남에겐 춘풍, 나에겐 추상처럼” 했거늘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기자 2019.05.20 09:07:19

(CNB저널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전형적인 적폐라며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을 받고 징계에 회부되어 면직처분을 받았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면직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의 항소심 첫 공판이 최근에 개최되었습니다.

안 전 국장은 2017년 4월 21일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끝난 후 법무부 검찰국과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포함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와의 식사 자리에서 특수부 검사 6명에게 수사비 명목으로 70~100만 원을 지급하였고, 또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이 전 검사장이 검찰국 과장 2명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각 100만 원을 건네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논란이 커지면서 법무부는 안 전 국장과 이 전 검사장을 면직 처분하고, 이 전 검사장에 대해서는 소위 ‘김영란법 위반(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12월에 있었던 1심 재판과 이듬해 4월의 항소심 재판에서 각 무죄가 선고되었고,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면직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의 1심에서 ‘면직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장의 언급 적절했나

안 전 국장에 대해서는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항의에 대한 인사 보복이 추가되어 직권남용 및 김영란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되었고, 법정구속되어 현재 항소심 재판이 계속 중에 있습니다. 위 면직처분에 대한 위 행정소송의 1심에서는 ‘안 전 국장의 비위가 징계 사유에 해당되지만 면직은 과하다며 면직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법무부가 불복하여 항소심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날 안 전 국장의 변호인은 “1심은 (지급)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런 형태의 관행들이 있었고, 반드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형사재판에서 대법원도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선배가 부하에게 지급하는 격려금이라고 판단되었는데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게 징계 사유로 성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장은 이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수사가 끝났다고 서로 간에 두 보스가 만나 아랫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천박하다”고 비판하면서, “비유는 적절하지 않지만 요새 검사들이 판사들을 기소한 사례에 비춰보면 마치 재판이 끝난 이후에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속 법원장과 재판장을 만나 밥을 먹고 재판을 잘 했다고 격려금을 준 것과 같다”, “만약 판사가 그랬다면 (검찰이) 횡령이든 뭐라도 걸어서 수사를 한다고 할 것”이라며 “법원에 대해선 추상같이 수사하면서 자기들에 대해선 봄바람 불 듯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태도는 재판장이 이해할 수 없다”고 일갈하며 최근 검찰의 판사들에 대한 사법농단 수사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안 전 국장에 대한 행정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은 법원장까지 지내신 분으로 법원 내에서 후배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고 최근에는 모 방송사의 연예 프로에 출연하여 사법농단 사건으로 실추된 사법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고 계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사법농단 수사와 재판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책임은 없겠지만 현직 고위법관이자 사법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은 분명 존재하고 있기에 간접적이나마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비판을 한 것은 자신에 대한 수사를 비판한 것에 해당되어 현직 고위법관인 신분을 고려할 때 그야말로 금도를 넘어선 말씀이라고 판단됩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비서관들에게 ‘춘풍추상’을 강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채널A 화면 캡처
고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 서예. 

법관은 오로지 판결로만

법관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로서 자신의 인생철학을 담아내야 하고 그 전에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대놓고 밖으로 분출하거나 표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는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비위와 적폐들이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적폐들에 대한 청산 작업이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가차없이 수행되었고 사법농단 수사도 그 일환으로 시작되어 현재 그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검찰은 그동안 수사권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로부터 수많은 의심과 지탄을 받으며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받아 왔기에 개혁이 되지 않은 검찰에 의해 사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주도된 것에 대해서 많은 저항감이 생긴 것으로 보여질 뿐만 아니라 사법농단 수사에 의해 법원이 검찰보다 먼저 개혁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서 밖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여오던 중 금도를 넘어버린 발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에 대해선 추상같이 수사하면서 자기들에 대해선 봄바람 불 듯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태도는 재판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은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법농단 수사는 적폐청산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지 결코 검찰의 조직논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검찰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되어 왔던 ‘돈봉투 만찬 사건’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수사에 착수하였고, 비록 이 전 검사장은 무죄를 받았으나 안 전 국장은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어 법정구속까지 된 것이므로 검찰이 자기 조직에 대해서는 춘풍 수사, 법원의 사법농단에 대해서는 추상 수사를 하였다는 말씀은 맞지 않는 비판이라고 생각됩니다. 백번 양보하여 재판장의 입장에서 안 전 국장 개인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채근담의 ‘대인춘풍 지기추상’

위 항소심 재판장의 말씀은 본래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에서 유래된 것으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작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각 비서관실에 고(故)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선물하면서 “우리 정부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는데 초심을 잃지 말자는 취지”라고 밝혔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신임 노영민 실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춘풍추상’을 재차 언급함으로써 새삼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사자성어(四字成語)입니다.

그동안 쌓였던 사회 곳곳의 적폐들에 대한 추상같은 청산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고 이제는 모두 화합의 장에서 함께 도약할 수 있는 춘풍의 자세를 배워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김강용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 2013년 성균관 대학교 유학대학원, 2014년 이후 금곡서당에서 수학하며 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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