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일 작가, 비어 있는 그 사이를 들여다보다

갤러리 퍼플서 개인전 ‘ㅐㅏㅘ ㅐㅏㅏㅣ’

김금영 기자 2019.05.20 14:58:57

김신일, ‘오색사이(In between Five Colors-space)’. 스텐인리스 스틸, 폴리카보네이트 에폭시, pvc, abs, 200 x 500 x 93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에 있다.”
음악가 모차르트의 이 말이 김신일 작가에게 깨우침을 줬다. 대부분의 예술 활동은 바깥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 ‘틈’에도 분명 존재한다고.

갤러리 퍼플이 김신일 작가의 개인전 ‘ㅐㅏㅘ ㅐㅏㅏㅣ’를 5월 24일~7월 6일 연다. 전시명을 이루는 모음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뜻을 지니지 않아 존재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모음들은 자음과 자음 사이를 이으며 비로소 뜻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지녔다. 이런 ‘사이’에 주목하고 이곳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에 작가는 관심을 가진다.

 

김신일 작가의 ‘오색사이(In between Five Colors-space)’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사진=갤러리 퍼플)

작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비디오, 조각, 드로잉, 사진 등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작업해 왔다. 고정된 인식에서 오는 왜곡을 배제하며 세상을 보려는 자세가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다. 작가는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고 재고하며 느낀 과정을, 인간의 기본적인 ‘보는’ 행위를 통해 시각적 힘과 철학적인 통찰을 담은 작품들로 발전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비어 있음’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쉬운 예로 돌멩이와 바위가 있다고 치자. 돌멩이 사이마다의 간격이 없으면 쌓임 자체가 있을 수 없고, 단지 하나의 바위가 될 뿐이다. 즉 돌멩이들 사이 비어 있는 간격이 있기에 각각의 돌멩이는 쌓일 수 있고, 또 독자적인 존재감도 지닌다.

 

김신일, ‘어 내추럴 엘레먼트-씨(A Natural Element-C)’. 흑연, 다이아몬드, 혼합재료, 152 x 120 x 7.5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이를 작가는 ‘생각 간의 간격은 이런 비어있음의 역할과도 같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풀어냈다. 물체를 범주화에서 벗어나게 해 간격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것. 더 나아가 이번 작업을 매개로 생각과 생각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본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작가는 어떤 간격을 포착했을까? ‘오색사이(Inbetween Five Colors-space)’는 쓸모가 없어져 버려진 폐품들을 촬영하고 확대해 마치 시간이 녹는 것처럼 보이게 표현한 작업이다. 폐품들이 재활용되기까지의 시간적 간격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활력성과 시간성을 부여해 무용(無用)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도록 했다.

 

김신일, ‘1380초 보기’. 영상, 23분. 2019.(사진=갤러리 퍼플)

관련해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문자 조각을 해오며 문자 간의 간격, 그리고 문자 자체 내의 간격을 시각화 또는 음성화 해보고자 했으나 마음에 맞게 되지 않아 보류하던 중 우연히 폐품 이미지를 오랫동안 보게 됐다”며 “쓰레기는 사람의 기존 용도에서 벗어났기에 다른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과거의 고착됐던 용도와 미래의 새로 태어남 사이에 있는 쓰레기의 변화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극대화된 사이에서 색은 새로운 공간을 만든 듯 보인다”며 작품의 탄생 과정을 밝혔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간격에서 속도는 비교적 느리다. 느리게 보려고 한 게 아니라 연속을 자세히 보려 했더니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아이러니를 봤다”며 “사이, 경계를 보려할 때 무용(無用)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약동을 볼 수 있다. 이름과 정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엇’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폐품, 이 모호한 단계는 인식의 한계로 인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김신일, ‘시각 - 8시 22분’. 시계, 파라핀, 28 x 28cm.(사진=갤러리 퍼플)

‘어 내추럴 엘레먼트-씨(A Natural Element-C)’와 영상 작업인 ‘1380초 보기’에서는 작품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계속 변하고 있던 실상의 한 부분을 어떤 왜곡 없이 담았다. 관람의 주체가 작품을 끊임없이 관람하고 있으면 작품의 작은 변화들을 체감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적 간격을 두고 관람하면 그 사이에서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작가 노트를 통해 “이미 깊은 골이 미간에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과 비슷한 자리에 제3의 눈이 있다는 전언이 있다”며 “그 눈의 위치와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는 두 눈의 물리적 한계뿐만 아니라 바라봄과 인지 그리고 해석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아둔한 면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사이의 가능성을 어디서든 찾고자 했던 건 아닐까?”라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두 눈의 간격이 없었더라면 제3의 눈은 있을 자리가 없고, 글을 쓰고 있는 손과 자판도 사이 없이 연결돼 있었다면 이 글을 쓸 수 없듯이 생각에도 어떤 ‘사이’가 있어야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생각과 생각 사이’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작용을 응시한다”고 강조했다.

 

김신일, ‘오색사이(In between Five Colors-a Log)’. 폴리카보네이트 에폭시, pvc, 200 x 5cm. 2019.(사진=갤러리 퍼플)

갤러리 퍼플 측은 “작가는 쉽게 관념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이미지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달리 한다. 사실 그대로 작품 내에서 시각의 한계로는 보지 못하는 어떤 미(美)를 이끌어 냄과 동시에 무심히 지나치던 시간들 모두 우리의 현재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남양주 와부읍 월문리에 위치한 갤러리퍼플(G.P.S: Gallery Purple Studio)은 ㈜벤타코리 아의 후원을 받아 2013년 1기를 시작으로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왔다. 또한 작가들에게 스튜디오를 2년 동안 제공해 창작 활동에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등 창작 공간과 전시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다. 1기 작가 9명, 2기 작가 8명,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3기 작가 8명(김성윤, 김신일, 배윤환, 유의정, 이배경, 이완, 조현선, 한 경우)이 입주한 상태다. 그리고 3기 작가 중 김신일 작가의 개인전 ‘ㅐㅏㅘ ㅐㅏㅏㅣ’를 5월 24일~7월 6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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