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세 개편, 국산 맥주의 역전 이끌까?

윤지원 기자 2019.06.20 10:47:29

우리나라의 주류 과세체계가 내년부터 맥주와 탁주(막걸리)를 필두로 50여 년 만에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될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마트의 맥주 진열대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주류 과세체계가 내년부터 맥주와 탁주(막걸리)를 필두로 50여 년 만에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될 전망이다. 지난 5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정 협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주류 과세체계 개편방안을 논의,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획재정부의 2019년 세법개정안에 반영해 9월 초 국회에 제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수입 맥주에 시장 절반을 빼앗긴 국산 맥주 업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국산 맥주 업체들은 현행 종가세 체계에서는 수입 맥주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그동안 종량세 개편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이에 2년 넘게 논의가 이뤄진 끝에 이번 당정 협의를 통한 개편 방안이 확정된 것이다.

개편 배경: 현행 세제는 국산 맥주에 불리?

현행 종가세 체계는 주류 제품의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체제이고 개편될 종량세는 주류 제품의 용량 또는 알코올 함유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주정 외의 주류에 대해 주종에 따라 출고가격 기준 5~7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맥주는 최고 세율인 72%를 적용한다. 이러한 종가세 체계가 자리 잡은 것은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9년의 일인데, 당시 원칙은 비싼 술에 높은 세율을 매기고 싼 술에 낮은 세율을 매기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50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맥주가 비싼 고급 술로 여겨졌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3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주류 과세체계의 개편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현행 종가세 체계에서 같은 맥주라도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간 과세 표준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산 맥주의 과세 표준은 출고가격이 기준이고 수입 맥주의 과세표준은 수입신고가격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의 출고가격에는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이 포함된다. 반면 수입 맥주의 신고가격에는 판매관리비와 이윤이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같은 알코올 도수와 같은 용량이라도 국산 맥주의 과세표준이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수입 맥주 회사가 수입가격을 낮춰 신고하면 그만큼 세금은 더 낮아지고, 국산 맥주 대비 월등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여기에 판매관리비와 이윤이 세금과 무관하므로 이를 자율적으로 조정하며 다양한 프로모션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4캔에 1만 원’ 행사로 대표되는 수입 맥주의 적극적인 국내 시장 공세가 가능했던 주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FTA가 수입 맥주에 날개 달아

종가세가 맥주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된 데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2010년 이전만 해도 유럽연합(EU) 및 미국에서 수입되는 맥주에는 30%의 관세가 부과됐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EU 등 주요 수입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이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됐다. EU에서 수입되는 맥주의 관세율은 2012년 22.5%, 2016년 7.5%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 7월 0.0%로 전면 철폐됐다. 미국산 맥주도 지난해 1월에 관세가 완전히 없어졌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수입맥주 코너에 다양한 수입 캔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에 따라 수입 맥주의 수입가격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2016년 416원이던 미국산 맥주 355mL의 통관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281원으로 32.5% 감소했다. 네덜란드산 맥주 500mL의 경우에는 2011년 상반기 639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356원으로 44.3% 감소했다. 과세표준도 그만큼 떨어졌다.

이처럼 FTA에 따른 관세 철폐는 과거 마음 편히 사 마시기엔 비싸다는 인식이 있던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주된 동력이 됐다. 수입 맥주는 2015년부터 ‘4캔에 1만 원’ 행사를 통해 편의점 및 대형마트 등의 채널에서 시장 점유율을 가파르게 상승시키기 시작했다. 수입 캔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 4% 정도에서 지난해 약 20%까지 상승했다.

주요 대형마트 및 편의점의 수입 맥주 매출 비중은 2017년에 기어코 50%를 넘겼고,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수입 맥주 수입액은 2017년 처음으로 2억 달러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3억 달러까지 단숨에 돌파했다.

국산 맥주마저 외국 생산-역수입

이처럼 수입을 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인 구조에서 국산 맥주 업체가 국내에서 맥주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수입 맥주의 40%는 국내 맥주 업체가 수입한다.

예컨대 클라우드와 피츠 등을 만드는 롯데주류는 2017년 말 미국 몰슨쿠어스 인터내셔널 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해부터 수입 맥주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현재 롯데주류가 수입하는 맥주는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 밀러라이트, 쿠어스 라이트 등 미국 맥주와 벨기에 스타일 밀맥주 블루문, 올해 라인업에 추가한 체코 맥주 스타로프라멘 등이다.

하이트진로도 크로넨버그 1664 블랑(프랑스), 기린(일본), 싱하(태국), 포엑스 골드(호주) 등을 수입해오고 있으며 지난해엔 덴마크 맥주 기업인 칼스버그와 정식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써머스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에 진열된 국산 병맥주 및 PET병 맥주. (사진 = 연합뉴스)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도 마찬가지다. 오비맥주는 카스라는 막강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19종의 수입 맥주를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오비맥주는 국산 맥주 간판 브랜드인 카스마저 역수입하는 전략까지 구사했다. 지난해 6월 카스 러시아월드컵 패키지 중 740mL 캔을 미국에서 생산해서 역수입한 뒤 기존보다 12%나 저렴하게 판매한 것이다.

카스의 역수입 사례는 정부가 주류 과세체제 개편을 본격적으로 서두른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 국산 맥주 3사의 맥주 생산 관련 직접고용 일자리는 5000~6000여 개로 파악되며, 포장 및 유통과 관련된 고용까지 포함하면 국산 맥주 산업에는 수만 개의 일자리가 달려있다.

따라서 주세 개편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국산 맥주 역차별을 해소하고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수조 원대 부가가치와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하나의 산업을 보호하는 문제인 것이다.

종량세, 맥주와 탁주 우선 적용

이번에 확정된 개편안의 커다란 원칙은 우리나라의 주류 과세체계를 현행 종가세 체제에서 종량세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단 우선은 맥주와 탁주에 한정해서 적용하고 소주와 증류주, 약주와 청주, 과실주 등 다른 주종은 제외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 여건을 추가로 감안하고, 의견 수렴을 거친 후에 종량세 전환을 검토한다.

구체적으로 종량세제 개편 후 맥주에는 ℓ당 830.3원의 주세가 붙게 되고, 탁주에는 ℓ당 41.7원의 주세가 붙는다. 이 종량세율은 물가에 연동해서 매년 1회 조정한다.
 

주류 과세 체계가 종량세로 전환되면 탁주에는 리터당 41.7원의 주세가 붙게 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대형 마트 주류 코너의 탁주 진열대. (사진 = 연합뉴스)


국산 맥주의 경우 주세와 교육세(주세액의 30%),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ℓ당 세부담은 생맥주가 445원 오른 1260원, PET병 맥주는 39원 오른 1299원, 병맥주는 23원 오른 1300원이 되고, 캔맥주는 415원 감소한 1343원이 된다.

업계가 기대한 대로 국산 캔맥주는 4캔 1만 원으로 대변되는 소비자 시장에서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생맥주의 경우엔 세율 상승 폭이 크지만, 정부는 업계가 적응할 수 있는 2년 동안 생맥주 세율을 한시적으로 경감해주기로 하여 이를 상쇄할 계획이다.

이런 결정은 국내 맥주 대기업 3사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제조원가 비중이 크고 생맥주 생산 비율이 높은 중소 규모의 수제 맥주 업체들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국산 수제맥주 업체의 캔맥주는 현재 편의점에서 500mL에 4천~5천 원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종량세로 바뀌면 1천 원 이상 가격이 낮아지게 되어 가격 경쟁력이 크게 상승하고, 나아가 수제맥주 산업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 부담 커지지 않아”…품질 상승 효과도 기대

한편, 수입 맥주는 국산 맥주와 동일한 세율을 적용받게 되면서 세 부담이 ℓ당 709원에서 830원으로 121원 상승한다. 이는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이 맥주 시장의 가격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주류 과세체계 개편안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수입 맥주의 40%는 국내 맥주 업체가 수입하는 것이다. 국내 3사가 종량세 개편에서 생맥주 경감으로 이익을 보니 수입 맥주의 상승요인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고 우리(정부)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가 수입 맥주는 세금이 오히려 내려가고 저가는 올라간다. 개편으로 일부 국내업체가 이익을 보게 되니 가격은 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맥주 회사 경쟁이 치열해서 이미 가격이 더 내려가는 추세”라며 네 캔에 1만 원의 수입 맥주 가격 수준은 충분히 유지될 것으로 봤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관련 사전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세제 개편에 따른 국산 맥주의 품질 경쟁력 향상 효과도 기대된다. 현행 종가세 체계에서는 출고가가 높아지면 세금도 커지는 구조여서 업체가 생산 원가를 아끼는 것이 유리했고, 이에 따라 저렴하게 생산되는 국산 맥주의 품질이 수입 맥주에 비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과세 체계에서는 좋은 원료와 공법을 써서 맥주를 제조해도 세금 부담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전반적인 맥주의 품질이 높아지면서도 가격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한,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와 주세 부담 측면의 차별점이 없어진다면 해외 생산보다 국내 생산의 장점이 부각될 수 있고 이는 국내 산업 규모 확대 및 고용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유진투자증권 정소라 연구원은 7일 브리핑을 통해 “이번 주세 전환에 따라 오비맥주는 그동안 해외 생산을 해 오던 호가든과 버드와이저 등의 브랜드를 국내 생산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롯데칠성의 경우에도 유통만을 담당하던 수입맥주(몰슨쿠어스 브랜드)를 국내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국내 주류업체들의 맥주 생산 가동률 상승으로 이익 개선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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