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 반도체 수출 규제' 놓고 일본 편 드는 건 어느 나라 언론?

윤지원 기자 2019.07.04 10:15:07

SK하이닉스 임직원이 반도체 생산 장비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 = SK하이닉스)

일본 정부가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생산 핵심소재의 수출에 규제조치를 취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 표명과 함께 신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불합리하고 상식에 반하는 보복조치”라고 규정하고, “양국관계는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강 장관은 “(일본이) 우리에게 최소한 예의를 안 지켰다”며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어려움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하고 절제된 반응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으며, 보복조치도 면밀히 분석해서 경중에 맞는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황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부·업계는 신중한 대응책 고심 중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 조치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국내 기업들은 입장 표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일본이 실제로 시행한다면 당장의 타격이 있겠지만 그 폭이 크지 않을 것이며, 애초에 시행될 가능성이 낮고, 특히 규제가 장기화 될 가능성은 더욱 낮다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킨 품목 가운데에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제품은 일본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이달 중 출시 예정인 ‘갤럭시 폴드’는 해당 소재를 전량 일본에서 납품받아 생산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초도 물량 수십만 대 분량을 생산하기 위해 최소 두 달치 정도의 소재를 재고로 확보해 둔 상태지만 장기화될 경우 1세대 생산 목표 100만 대를 제 때 공급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삼성전자는 이런 일을 대비해 향후 물량에 대해 내부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몇몇 국내 업체들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산 소재로 이를 대체, 적용하는 것도 고려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핵심 소재의 국산화가 말처럼 간단하지 않으며, 규제가 본격화·장기화될 경우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생산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분석이 좀 더 힘을 얻는 분위기다.

다만 실제로 이런 상황까지 치닫는 가능성이 낮게 점쳐지고 있다. 이번 조치가 한국을 향한 일방적인 공격이 아닌, 일본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수출 규제의 시행 및 장기화는 일본의 관련 기업에도 큰 타격이 가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소재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와 관련해 초치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야스마사 대사는 취재진을 피해 지하 4층 주차장을 이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외교부로 들어갔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이 감당할 수 있을까?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전 세계 D램 시장의 75%, 낸드플래시의 50~60%를 점유하고 있다. 또한 삼성과 LG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는 전 세계 디스플레이 패널의 30% 정도를 생산한다. 따라서 이들 소재 및 장비를 제조하는 일본 기업의 주요 수출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는 중요한 고객이다.

또한, 이번 조치로 일본 기업들의 대외 신뢰도 역시 타격을 입게 된다. 오사카에서 열린 G20에서는 자유무역 기조를 내세운 직후 정치 외교적 갈등을 빌미로 수출 규제를 선언했으니, 앞으로 다른 해외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이 줄면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전 세계의 산업이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런 혼란의 진앙지가 일본이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경우 우리나라가 맞불을 놓을 수단도 강구되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생산하는 반도체나 올레드 패널을 일본에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일본의 전자제품산업도, 대외 수출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무엇을 노리는 규제인지, 애초 목적이 불분명한 규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3일 오후 서울 용산역 징용노동자상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회원이 일본 전범기업 불매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국 소비자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본 제품 불매 리스트’가 올라왔다. 전자, 카메라, 의류/신발, 영화 배급사, 편의점 등등 종목별로 일본 기업 또는 일본 자본이 투입된 기업 리스트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니콘, 기린, 닛산, 파나소닉 등 일부 기업은 아예 ‘전범기업’이라는 종목으로 맨 첫 줄에 명시되어 있다. 이 리스트는 각종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청원인은 “일본 경제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및 일본 관광 불매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에서 경제제재와 관련하여 상대방 관세 보복 또는 관광 금지, 수출 규제 등 방법을 찾아달라"며 "매년 망언과 오만한 행동을 일삼는 일본에게 대한민국이 힘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일본 경제 제재 비판글. (사진 = 웹페이지 캡처)


우리 정부부터 까고 보는 국내 '쫄보수' 언론

이처럼 정부와 업계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 아래 신중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대중은 일본에 대한 소비자 차원의 즉각적인 대응을 추진하려는 모습이다. 그리고 모두 일본의 이번 조치가 치졸한 보복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은 이번 일을 오로지 정부 때리기의 기회로 삼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가 일본으로 하여금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보복조치를 예상하고도 손 놓고 있었다며 적극적으로 비판에 나섰다.

특히 국내 한 대표 일간지는 일본의 조치가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수출 규제 시행 시 우리가 잃을 게 더 많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대일 관계 정상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경제협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사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일관계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며 ”새롭게 마련될 틀이 역사 마찰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일본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의 3일자 조간에 실린 사설. (사진 = 연합뉴스)


누구 편을 드는 지는 둘째치고, 쫄보도 이런 쫄보가 없다. 우리 정부는 물론 업계의 저력이나 글로벌 영향력에 대한 신뢰보다 일본 정부의 확성기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나보다.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와 재계 및 국민에 기대한 반응이 이런 것이었을 터. 우리 보수 언론들은 마치 녹화방송에 동원된 방청객이라도 된 양 일본이 원한 리액션을 정확히, 적극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이번 일을 '과거사 프레임'이라는 말로 비판하는 논리를, 일본 언론도 아니고 설마 국내 메이저 언론에서, 그것도 일제 강점기때 독립 언론임을 자처하는 언론에서 접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제3국 언론은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의 자유무역의 위선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심지어 당사국인 일본의 언론들도 이번 조치에 대해 "정치 목적에 무역을 사용하는 것"(아사히신문)이라고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대항 조치를 자제하라"(니혼게이자이신문)고 주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정부와 정치계에 눈치 보지 않고 언제든 쓴 소리를 하는 것은 언론의 도리다. 역사와 이념, 국민 정서를 왜곡하면서까지 매체의 정치적인 이익만을 우선시 한다면, 이를 언론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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