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29) ‘박도윤 개인전: 가능체계’] “체계의 다른 가능성 받아들이는 게 사랑”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기자 2019.07.23 07:53:36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우리가 사는 동안 만나게 되는 사회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다. 각각의 사회는 자신만의 체계(시스템과 규범)를 갖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체계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사회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과 규범들은 때때로 억압과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 갤러리’ 이번 회에는 인간을 둘러싼 체계를, 언어를 매개로 숙고하는 박도윤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도윤 작가와의 대화

Q. 전시 ‘가능체계(Possible Systems)’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문자(언어)다. 책이 등장하기도 하고, 책의 개별 페이지들, 글자들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작업에 사용되는 특정한 글이나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전 전시에서는 소설 ‘채식주의자’(2007)가 등장했다.
 

박도윤 작가.

A.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주로 선택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에서 사용된 책 ‘조각: 고대부터 현대까지(Sculpture: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Day)’(2002), ‘20세기의 미술(Kunst des 20. Jahrhunderts)’(2012), 빈지노(Beenzino)의 노래 ‘브레이크(Break)’도 마찬가지다. ‘떨어지는 글자들(Detaching letters)’(2019)에 사용된 ‘채식주의자’의 경우 당시에 읽었던 책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시작한 작업이라 한국 저자의 책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도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등장인물들의 세계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고 있어 내 작업 주제와도 맥락이 닿았다. 최근 언어를 통해 체계의 해체와 재배열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규칙’ 시리즈에서는 에코(Umberto Eco)의 ‘기호: 개념과 역사((Il) Segno)’(1973)를 선택했다. 그러나 어떤 책인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 권의 책이 가진 특정한 의미를 소진시키기 위해 일부러 ‘기호: 개념과 역사’를 시리즈의 전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박도윤 개인전: 가능체계’ 전시 전경, 씨알콜렉티브(CR Collective), 2019, 사진 제공 = 박도윤 작가  

Q. 인간은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사회화된다. 언어에는 제도, 규범, 권력과 이데올로기 등이 담겨 있다. 그런 만큼 많은 철학자들이 언어를 분석해왔고, 예술가들도 언어를 매개로 작업을 해왔다. 효과적으로, 명쾌하게 작가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확실한 소재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직접적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A. 나의 작업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신체, 공간과 시간을 거쳐 언어에까지 이르렀다. 현재의 작업에도 이 모두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나는 보편적 이야기,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한 번에 볼 수 없다. 자신이 머무르는 한정된 공간도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존재함을 인식하며 자신만의 체계를 구성한다. 이것은 지각적이고 개념적인 부분 모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유한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인식한 것들을 이름 짓다 보면 자연히 언어의 구조로 이어진다. 또한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고 필수적인 일이지만, 그 체계는 사람마다 다르며 이것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물론 공유되는 부분이 있기에 사회라는 이름의 공동의 체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체계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신화화되어 억압과 갈등이 생긴다. 나는 우리를 둘러싼 체계가 절대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 체계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체계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다음 문장은 박도윤 작가가 작업 전반에 대해 추가 설명을 글로 보내준 것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그대로 옮깁니다.) “인간은 유한한 인식능력을 가진 채 세계 속에 존재하기 위해서 언어를 통한 구성, 구조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를 통해 발생한 체계는 인식된 모든 대상에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언어의 특성인 임의성에 의해 개개인의 구조화 작용은 서로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언어를 통한 구조화가 인간 존재에 필연적이라고 하면 언어의 차이에 의한 구조화의 개별성은 인간이 타자와 구별된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 역시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체계가 공유되고 지속되어 익숙해지게 되면 신화화가 일어난다. 신화화는 구성된 어떤 것이 스스로를 자연적, 절대적, 본래적으로 위장하는 것을 말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여러 주체들이 이룬 사회에서 하나의 체계가 신화화되면 억압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에 대한 고민으로 체계의 해체와 재조합의 작업을 하게 되었다.”
 

박도윤, ‘break’ 스크린, 수조, 글자 3D 프린트,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00:03:24), 2019, 사진 제공 = 박도윤 작가  
박도윤, ‘규칙 2’, 석고가루,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00:01:00), 2018, 사진 제공 = 박도윤 작가

Q. 신화화된 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고 하는데 작가의 작업을 통해 또 하나의 체계가 만들어지고 강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가? 해체와 재구성이 아니라 공고한 또 하나의 가능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A. 그래서 조각이나 회화의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재현이나 재창조가 아니라 재구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오브제를 그대로 들여오거나 캐스팅, 3D 프린팅의 방법을 이용한다. 이미지가 필요할 경우에는 사진을 찍거나 복사한다. 내가 직접 조각하거나 그리는 순간 박도윤의 맥락과 이어지는 또 다른 구성체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치나 색채 등을 최대한 절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신화화된 체계에 대한 나의 느낌은 중력, 높이, 깊이와 관련된다. 그래서 수직적이거나, 직선적이거나, 깊이와 높이를 소유한 구조를 평면적으로 바꿔 놓는 방식으로 재배치한다. 직선적으로 정돈된 글을 뒤섞고, 책을 낱장으로 펼쳐놓는 거다. 그림자도 같은 맥락에서 사용한다. 그림자는 평면적이고 중력에서 벗어나 부유하는 무언가다.

물론 어떻게 해도 나의 가능체계가 형성되는 것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체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체계가 다른 방식으로도 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제시한 작품이나 형태는 대안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내가 해체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구조이다. 구조는 유닛(unit)들이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재조합하더라도 유닛은 그대로 남아 있다. 책과 책의 글씨를 재배열하는 작업도 페이지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 원래의 체계가 어땠는지 유추할 수 있다.
 

박도윤, ‘조각’, 책, 추무브먼트, 30 × 50 × 20cm, 2015, 사진 제공 = 박도윤 작가

Q. 커다란 구멍이 난 책 위로 쏟아지는 물,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를 보면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작업에 문자와 함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물이다. 일반적으로 물은 생명, 재생과 순환을 뜻한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물을 사용하고 있는가?

A. 나에게 물은 인간이 자신의 제한된 인식능력으로 마주하는 세계의 상징과 같다. 바닷가에서 물을 보면서 물결의 높낮이나 그 안에 포함된 입자를 모두 인지하는 사람은 없다. 큰 이미지나 인상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바다는 나노(nano)적인 상황까지 포함한다. 한편 물은 사람이 구성한 체계를 해체하는 외부적인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책에 물을 부으면 모든 틈으로 물이 들어가 책을 망가뜨린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글자는 책이나 문서의 기존 체계를 벗어나 다른 체계를 만든다. 물은 가능체계의 지속불가능성을 드러내는 동력과 같다.

Q. 책 ‘조각: 고대부터 현대까지’나 ‘20세기의 미술’을 선택한 것을 보면 조각 혹은 미술(예술)의 개념과 체계 자체에 대한 고민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예술만큼 인위적인 체계를 갖는 것도 없다.

A.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예술 체계다. 공고한 가능체계가 있지만 끝없이 재배치가 일어나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추 운동을 하고 있는 잘려진 책을 보여주는 ‘조각’(2015)은 조각의 역사와 개념 자체가 해체되고 재배열되는 상황을 은유하는 작품이다.

Q. 작가 역시 신화화된 체계에서 성장했고 살고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신화화된 규범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이 체계를 해체하고 재배열하는 행위 역시 신화화된 동시대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결과일 수 있다. 가능체계의 지속불가능성을 확인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인의 작업을 통해 어떤 결과(영향력)가 만들어지길 바라는가?

A. 나는 체계에 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인간의 한계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체계를 벗어나려는 게 아니라 이 체계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작업은 체계를 인정하는 태도를 전제로 한다. 체계의 필요성을 긍정하지만 특정한 하나의 체계만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나의 작업은 모든 체계가 다 옳고 괜찮은 것이라거나 모두 해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체계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갈등 상황에 대해 함께 고민하길 원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약속들을 원래 그런 것, 무조건 옳은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조정 가능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나는 그것이 사랑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나는 궁극적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화합과 공감이 일어나길 원하는 거다.
 

박도윤, ‘규칙 3’, 합판, 단채널 영상 가변설치(00:00:12 반복재생), 2018, 사진 제공 = 박도윤 작가 

Q. 오늘날의 미술에 개념과 담론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본인은 동시대 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박도윤의 작업도 누군가에게 어렵게 느껴질 만하다. 물론 어떤 작품을 단순히 ‘쉽다, 어렵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A. 실제로 전공자와 비전공자 사이의 간격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런 것은 나도 하겠다’는 그 간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에 대한 답이나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작업을 할 때 염두에 두고 있다. 나의 경우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즐겁거나, 수고로움이 인정된다거나 하는 부분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것은 관객들이 나의 작품(이야기)에 접근하는 하나의 동기이자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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