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기업] PART 3. “사진에 대한 애정이 한미사진미술관의 시작”

김선영 한미사진미술관 큐레이터 인터뷰

김금영 기자 2019.08.13 14:54:37

김선영 한미사진미술관 큐레이터.(사진=김금영 기자)

제약회사보다는 문화예술 기관을 방문한 느낌이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분위기 대신 중국의 현대작가 왕칭송의 다양한 작품 이미지들이 건물에 들어서기 전 외관부터 엘리베이터 옆 등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특히 독특한 합성 사진으로 역설의 미학을 던지는 그의 작품이기에 흥미를 느꼈고, 부담 없이 건물에 들어설 수 있었다. 김선영 한미사진미술관 큐레이터를 만나 이번 전시와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한미사진미술관이 2002년 개관 이래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어떤 시스템 아래 운영되고 있는가?

“한미사진미술관은 한미약품이 2002년 설립한 가현문화재단에 소속됐다. 재단 산하엔 미술관, 사진문화연구소, 사진 아카데미까지 크게 세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미술관은 전시를 선보이고, 사진문화연구소는 한국 사진사의 기록, 자료들을 수집, 정리, 보존하며, 사진 아카데미는 사진과 관련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꾸린다.

미술관 산하엔 학예팀이 있는데 전시, 교육, 홍보, 출판팀이 꾸려져 체계적으로 일이 이뤄지고 있다. 미술관은 소장품 전시를 1년에 평균 1~2회 정도 선보이고 있고, 국내 작가를 비롯해 해외 작가 초대전, 타 기관과의 공동 기획 전시를 매년 마련하고 있다. 기획전은 1년에 평균 7개 정도 열고 있다.”

 

한미사진미술관 로고.(사진=김금영 기자)

- 현재 열리고 있는 중국 작가 왕칭송의 전시가 주목받았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첫 중국 작가 개인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8년 중국 샤먼에서 열린 ‘지메이 x 아를 국제 사진축제’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됐고, 한미사진미술관이 한국 대표기관으로 초대됐다. 한국 원로, 중견 작가들의 사진 전시를 중국 현지에서 선보였는데, 이 전시가 중국과 한미사진미술관이 첫 문화 교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사진축제 이후 중국 현대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가를 찾다가 왕칭송의 작업을 접했다. 왕칭송은 국내에서도 인지도 있는 작가이지만, 2000년 광주비엔날레, 2014년 대구사진비엔날레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작업이 소개됐을 뿐, 그의 작업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 적이 없었다.

왕칭송 또한 다양한 작업을 펼쳐왔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창작 작업과 작품을 선보일 기회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누드 작업의 1/3가 정부의 검열로 삭제되기도 하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더 블루드 오브 더 월드(The Blood of the World)’의 또한 사진 필름을 빼앗겨 완성본이 아닌 작업 도중 찍었던 촬영 현장 사진만 남아 있기도 하다. 이 가운데 자신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이번 전시에 작가가 많은 애정을 보였다. 사진 작업부터 영상 작업까지 하나하나 미술관과 입을 맞추며 전시를 꾸렸다.”

 

왕칭송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각 작품 옆에는 QR코드가 함께 배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 모든 사진 작품 옆에 작은 QR코드가 배치돼 있던데.

“전시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미술관 측이 제안했다. 왕칭송은 중국 고서화를 연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변형시키는 작업에 특화됐다. 그냥 완성된 작품 이미지 자체를 보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어떤 의도로 고서화를 차용했고, 그 고서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중국 현대사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함께 바탕이 되면 더욱 전시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QR코드를 찍으면 고서화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왕칭송은 100명 이상의 인물을 섭외하고, 세트를 제작하는 등 영화 촬영 현장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작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만으로 유명한 게 아니다. 이주민으로서의 삶, 중국의 빛나는 발전 뒤 숨은 인간성 상실과 점점 괴리감이 깊어지는 현실과 이상 등 그는 중국인으로서 자신이 살며 직접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중국 현대사의 이면을 꼬집는다. 그 자신이 직접 작품에 등장해 역할극을 선보이고, 설치미술과 행위예술까지 아우르며 중국 사회를 밀도 있게 읽고, 미래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의 이 의도를 읽고,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시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이번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중국 작가 전시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검열로 필름을 빼앗기고 촬영 과정만 담긴 사진 등 작가의 방대한 작업을 아우른다.(사진=김금영 기자)

- 한미사진미술관은 전시와 관련된 아티스트 토크, 강연 프로그램 등으로도 알려졌다. 이번 왕칭송 전시 연계 프로그램에도 많은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고.

“아티스트 토크와 북사인회는 전시 개막일인 6월 1일 진행했다. 7월 6일엔 하계훈 미술평론가를 섭외해 전시연계 토크 시간을 진행했다. 왕칭송이 중국 현대사를 주제로 하기에 이 주제를 보다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섭외하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왕칭송과 중국 현대미술, 개혁 개방의 시대 이후’를 주제로 중국 현대미술의 변화와 현재를 살펴보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격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바라봐온 왕칭송의 시각을 함께 살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는 ‘당신의 글로리어스 라이프’를 진행하고 있다. 왕칭송 전시를 관람하고, 왕칭송 작업에 담긴 사회문제를 자신이 느낀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연결시켜 토론한 뒤, 왕칭송 작품 속 인물과 상황에 이입해 분장하고 셀피를 촬영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보통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질 때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직설적으로 중국 현대사를 다루는 콘텐츠 성격을 고려해 성인용 프로그램으로 꾸렸다. 참여자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다. 특히 셀피에 관심이 많고 잘 찍는 시대라 사진 촬영에 적극적이다. 한미사진미술관은 매 전시마다 콘텐츠의 성격을 고려해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인다.”

 

왕칭송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미술관에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 20층 라운지 공간 한켠에 작가들의 포트폴리오와 도록이 설치된 공간이 인상적이다.

“한미사진미술관 내 아카이브가 방대하다. 작가들의 전문 도록을 출판하는 데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해외에 일정을 나가거나 국내 작가들과 만날 때 좋은 책을 수집해 온다. 책 출판만 해도 99권, 수집한 책은 5000여 권에 이른다. 이 아카이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방안을 고심하다가 방문객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은 책을 예약하고 자료를 볼 수도 있지만, 자그마한 북큐레이션 공간을 마련해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나 도록 등 전문 서적을 편안하게 볼 수 있게 꾸리면 더욱 대중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능하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와 연계된 자료들을 배치해 놓는 편이다. 현재는 왕칭송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기에, 중국에서 열린 사진 페스티벌에 한미사진미술관이 참여했을 때 소개했던 중견 작가들과 관련된 서적을 배치해 놓았다.”

- 18년차를 맞이한 미술관으로서의 책임감이 크겠다.

“한미사진미술관이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인 만큼 사진 애호가분들이 많이 방문한다. 이번 전시의 경우 중국인 관람객도 많이 방문했다. 확고한 팬 층이 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소장품을 꾸준히 모아 오다 보니 해외에서는 소장품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이건 미술관 문을 열기 전부터 사진 작품 수집에 열정을 보여 온 송영숙 관장의 영향이 크다. 그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부터 19세기 후반 한국 식민지에서 촬영됐던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일본에 가서도 자료들을 수집했다. 이것이 한미사진미술관 컬렉션의 첫 시작점이었다. 송영숙 관장은 사진사의 흐름을 구축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누군가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현재의 한미사진미술관을 있게 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 ‘당신의 글로리어스 라이프’를 진행한다. 왕칭송 전시를 관람하고, 작업에 담긴 사회문제를 자신이 느낀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연결시켜 토론한 뒤, 작품 속 인물과 상황에 이입해 분장하고 셀피를 촬영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사진=한미사진미술관)

- 한미사진미술관이 추구하는 전시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시대적 트렌드에만 휩쓸리는 전시는 지양하되 흐름을 읽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장품 전시와 기획전을 아우르는 가운데 사진사의 흐름 중 꼭 짚어야 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이려 한다. 지금 당장은 유명한 작가가 아닐지라도 꼭 소개돼야 하는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거나 한국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내 작가의 경우 1세대 사진가부터 차근차근 전시를 선보이며 한국 사진사의 맥락을 짚어오고 있다. 전민조, 주명덕, 배병우 등 한국 사진사의 기틀을 잡은 작가들을 소개했다. 젊은 작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포트폴리오도 꾸준히 받고 전시, 출판 지원 등에 힘쓰고 있다. 단지 사진미술관에 그치지 않고,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는 사진 전문 플랫폼이 되기 위해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본인이 직접 사진작가의 길을 걸은 송영숙 관장의 애정이 한미사진미술관의 지지대가 됐다. 1960년대 대학 내 사진 동아리에서 사진을 처음 배운 송 관장의 당시 스승이었던 선배들이 지금 1세대 사진작가로 불리는, 한국 사진사의 기틀을 잡은 작가들로 자리 잡았다. 송 관장은 그 속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사진에 대한 애정을 현재까지고 가졌기에 작가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한미사진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마련됐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한미사진미술관이 한국 사진사의 흐름을 제대로 보여주고, 더 나아가 능력 있는 작가들이 세계무대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더욱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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