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일 운동’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동근 기자 2019.08.12 14:45:53

올해는 ‘일본’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열린 해다. 무엇보다 광복절을 앞두고 갈수록 격해지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은 피부에 와 닿는 가장 직접적인 체험으로 남을 전망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경험’으로 남길 것인가가 아닐까. 사진은 지난 3월 열린 3·1 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출처 = 연합뉴스

 

‘지금’이 지나면 어디로 갈까. 광복절을 앞두고 더욱 격해지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말이다.

고백하건데, 기자는 친일파이며, 반일파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을 좋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폐쇄적인 문호를 싫어해 왔다. 마징가와 건담을 좋아하면서도 이순신 장군과 김구를 존경해야 할 인물로 꼽아왔다. 닌텐도 게임기를 사용하면서 유한양행을 국산 기업으로 자랑스러워 해 왔다.

이 같은 이율배반적 태도는 일본을 알아 가면 언젠가 일본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납득시켜 왔다.

우리는 얼마나 일본에 대해 알고 있을까. 단순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로 정의 내리기엔 사실 모르는 점이 많았다는 것을 이 기회에 절실히 느끼고 있다. 생각보다 우리는 일본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었고, 아는 것보다 많이 일본을 넘어서 경쟁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몇 가지 수출 규제안을 발표하자 나라가 들끓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경계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성장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일본 관광을 즐기고, 일본차를 사며, 일본 경기 부양에 일조해 왔는지 알게 됐으며,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앎’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공포’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적이다.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수입 물품이 언제는 경제전쟁에서는 무기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소비자들은 한국에서 구매하는 만큼 일본에서는 구매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일본 제품을 사는 한국인을 보는 일본인의 시선도 느끼게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논란이 됐던 ‘의료민영화’다. 당시 의료민영화 논란은 결국 정부에서 ‘추진한 적 없다’는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당시 국민들에게 ‘국민건강보험’이 민영화 될 수 있다는 공포에 빠뜨렸다.

그리고 결과적이지만 건강보험의 소중함을 알게 했고, 타국의 사례를 알게 되면서 이후 유사한 논란이 나왔을 때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단초가 됐다. 더 이상 “난 병원도 잘 가지 않는데 비싼 보험료 내는 것이 아깝다”는 말을 듣기 어렵게 된 것이다.

경험은 당시 시점에서는 ‘공포’ 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아픔을 동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금’으로 그치고, ‘지식’으로 삼아 ‘다음’엔 더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무역전쟁으로 분명 잃는 것이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먹고, 사는 제품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경험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성숙한 태도가 동반돼야 한다. 반일 운동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정당성은 상실되고 ‘극단’으로 치우쳐져 오히려 기피해야 할 사고방식이 될 수 있다. ‘뜨거운 가슴’은 ‘차가운 머리’가 함께 해야 그 힘이 더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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